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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하지만 이제 주강인한테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던 신가람은 담담히 대꾸했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 만약에라도 강인 씨 보게 되면 최대한 돌아서 다니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은 엮이고 싶지 않거든요.”

신가람의 확답을 들은 김현정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한 말 똑똑히 기억해. 안 그러면 제대로 망신당하게 해줄 테니까.”

소란스러웠던 일들이 모두 해결되고 신가람만이 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에 핸드폰을 본 그녀는 화면에 떠 있는 해외번호에 심장이 빨리 뛰었고 호흡이 가빠져왔다.

그런데 신가람이 전화를 받으려고 핸드폰을 들어 올릴 때 그 뒤로 다가온 누군가가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제 위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에 고개를 돌려보니 굳은 표정을 한 채로 서 있는 박정후가 보였다.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그쪽에서는 계속 다시 걸고 있었다.

“핸드폰 줘요.”

신가람이 핸드폰을 다시 잡으려 하자 박정후는 자신의 큰 키를 이용해 손을 높게 들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비서를 향해 말했다.

“차 가져와.”

“알아서 갈 거예요.”

살짝 화가 나 있었던 신가람은 그동안 익숙해졌었던 가식적인 말들을 잊어버리고 순간 본인의 원래 성격대로 답했다.

“대표님이 안 데려다주셔도 돼요.”

그에 박정후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넘겨짚지마, 지금 네 꼴을 봐봐. 다른 사람이 네가 천하 그룹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기라도 하면 내 체면이 구겨지잖아.”

그제야 신가람은 물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드러낸 큰 곡선을 보며 서둘러 손을 들어 가슴을 가렸다.

그러면서 드러난 상처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 박정후가 말했다.

“부원그룹 담당자 만나고 오라니까 왜 여기서 저 아줌마 비위나 맞춰주고 있어?”

“진작 오셨나 보네요? 그럼 제가 사모님 귀걸이 찾는 것도 다 보셨겠네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주씨 집안 대문도 못 넘었을 거예요.”

“지금도 못 넘는 건 마찬가지잖아.”

신가람은 항상 이렇게 정곡을 찔러대는 박정후를 흘기면서도 제 앞까지 도착한 차를 보며 눈치를 주는 그를 당해내지 못하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더러워진 옷이 차까지 더럽힐까 걱정되어 신가람은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앉아있었다.

박정후는 그런 그녀를 한번 보더니 핸드폰을 던져주며 말했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 계약서 일은 빨리 해결하고.”

“알아요, 내일 바로 주 회장님 뵙고 말씀드릴 거에요.”

신가람은 대답을 하며 휴지를 꺼내 이마에 맺힌 물들을 닦아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닦아내는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신가람의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물에 잔뜩 젖어있는 그것들이 얼마나 부드러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박정후는 차가우면서도 모호한 표정으로 신가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강인이 돌아온다니까 그렇게라도 그 눈에 띄고 싶었던 거야?”

신가람을 단속하는 듯한 그 말투에 조민형은 깜짝 놀랐지만 신가람은 아무것도 못 느낀 것인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살면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주강인이에요.”

말 한마디도 없이 사라지더니 김현정한테 그런 수모까지 당하게 만든 주강인을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은 이상 보고 싶어 할 리가 없었다.

그때 신가람의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

[가람아, 잘 지냈어? 나 다음 주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어.]

주강인에게서 온 문자에 신가람은 바로 손이 떨려왔고 시야가 흐려졌다.

3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사람이 어떻게 번호를 안 건지 이제 와서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문자를 보내는 게 어이가 없었다.

박정후는 순식간에 변하는 신가람의 표정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안 보고 싶다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침대에서도 네가 이렇게까지 울지는 않았어.”

박정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신가람은 바로 문자를 지우고 번호까지 차단하고는 손을 들어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분수대에 물이 눈에 들어가서 그런 것뿐이에요.”

신가람은 바로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려고 했지만 너무 당황해서인지 손이 미끄러진 탓에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흘러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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