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어조로 묻는 남자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신가람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키스한 적 없어요. 제가 스스로 부딪힌 거예요.”그는 결벽증이 심한 만큼 더럽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가차 없이 버렸고, 여자도 마찬가지였다.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탰다.“혹시 8천만 원만 먼저 보내주면 안 될까요? 카드에 2천만 원이 남았는데 병원에서 1억을 준비하라고 하네요.”사람은 비천한 처지에 놓이는 순간 마치 구걸이라도 하는 듯 자존심 따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된다.“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물론 공짜로 받을 생각은 없어요.”그리고 고개를 젖혀 옷깃을 향해 손을 뻗어 단추를 하나씩 풀고 외투를 벗었고, 이내 백옥처럼 하얗고 매끈한 몸이 나타났다.깨끗한 피부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겼고, 며칠 전 차 안에서 그가 남겼던 흔적만 몇 군데 남아 있었다.박정후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는 성욕이 강한 만큼 결벽증도 심해서 3년 동안 만진 여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게다가 사랑을 나누면서 조건도 까다롭기 그지없었다.남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신가람은 얼마나 많은 동영상을 봤는지 모를 정도였다.박정후는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일단 깨끗이 씻고 와.”곧이어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무심하기만 하던 눈빛은 뜨거운 열기로 활활 타올랐다.결국 한참을 시달리게 되었다. 이내 연고를 찾으러 갔다가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 남자가 흘러가듯이 한 마디 던졌다.“3년이나 되는데 아직도 이리 칠칠하지 못해서야 원.”박정후는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둘러 화장실로 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담배를 끄고 휴대폰을 집어 들고 1억을 보내주었다.연고를 바르고 나온 신가람은 입금 문자에 뜬 금액을 확인했다.속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본인의 선택이니 불만은 없었다.“옆방 가서 자.”그는 다른 사람과 침대를 같이 쓰는 걸 좋아하지
신가람은 초조한 마음에 박정후의 눈치를 볼 겨를도 없이 회사의 비상용 차 키를 들고 앞만 보고 직진했다.사무실 기온이 뚝 떨어졌고, 마치 엄동설한처럼 싸늘했다.박정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따라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 괜히 회사 차를 끌고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이라도 잃으면 골치 아프니까.”조민형은 상사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담긴 걱정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어젯밤에도 느즈막이 연락와서 이정신과 함께 강민석을 ‘잘’ 챙겨주라고 하지 않았는가?얼굴이 퉁퉁 부은 강민석은 그동안 저질렀던 추잡한 짓거리를 술술 불었고 하나같이 가관이었다.회사를 벗어난 신가람은 내비게이션에 따라 S시에서 가장 큰 개인 병원, 모아병원으로 향했다.경비원들은 전부 군인 출신으로 경비가 삼엄했고, 그녀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여보냈다.신가람은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운 듯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3층에 문이 열려 있는 병실은 하나뿐이고,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갔다.안으로 들어서서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자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이 여기 웬일이지?”강민석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눈은 호두처럼 퉁퉁 부었고, 험상궂은 얼굴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게다가 이빨이 두 개나 부러진 탓에 어눌한 말투로 협박했다.“저 빌어먹을 년을... 붙잡아...”경호원 몇 명이 다가와 신가람을 즉시 포박했다.장정들을 어찌 여자 혼자서 상대하겠는가? 결국 바닥에 양쪽 무릎을 꿇고 목덜미까지 붙잡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신가람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우리... 엄마를... 어디로 데려간 거죠?”“젠장, 내가 어떻게 알아?!”강민석은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중심부를 걷어차인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이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신가람은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버둥거렸다.“고집이 장난 아니네? 듣던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구나.”이때, 등 뒤로 귀에
“사모님께서 선심을 베푸셨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네요.”신가람은 더는 실랑이를 벌일 기력이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조민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가람 씨 어머니는 무사해요. 30분 전에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이미 병원으로 다시 모셔갔어요.”신가람의 눈시울이 대뜸 빨개지더니 조민형의 손을 덥석 붙잡고 초조하게 물었다.“엄마는 괜찮아요?”반면, 그녀를 바라보는 박정후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상사의 따가운 눈초리에 조민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황급히 신가람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양팔을 등 뒤로 가져갔다.“네, 멀쩡해요.”신가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강정애를 향해 걸어갔다.“그 눈빛 뭐야? 잘하면 손찌검이라도 하겠는데?”강정애는 살벌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방금 제가 사모님 남동생의 인생을 망쳤다고 했는데 법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저질렀으면 들춰내서 구속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사모님께서 권력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이상 저 같은 하찮은 시민은 대적하기 힘든 법이죠. 하지만 감히 우리 엄마를 다치게 한다면 설령 이 한 몸을 바치더라도 끝까지 맞서 싸울 거예요.”어차피 이미 갈 데까지 갔기에 두려움 따위 없었고, 설령 명성이 더럽혀지더라도 무관했다.박정후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운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얼굴에 겁을 먹은 기색은커녕 너 죽고 나 죽자는 각오도 얼핏 보였다.그녀의 기세에 눌린 강정애는 저도 모르게 경호원을 부르려다가 조민형에게 죄다 쫓겨난 사실을 깨닫고 이를 악물고 딸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정후 씨, 왜 한마디도 안 해? 어떻게 비서 따위가 우리 엄마에게 협박하는 걸 마냥 지켜볼 수 있어? 그래도 한참 어른인데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소지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이 아픈 척 연기했다.박정후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관찰하다시피 훑어보았다
박정후는 입술을 달싹이며 둘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정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물었다.“둘이 싸웠어? 강인이 왜 저래?”신가람은 사과를 내려놓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잘 만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따라가서 확인해 보고 올게요.”이내 주선희에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하고는 박정후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갑자기 멈춰서는 남자 때문에 등에 정통으로 부딪혔다.“죄송해요.”신가람은 뒤로 물러서며 이마를 문질렀다.뒤돌아서 그녀를 바라보는 박정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주강인이라... 내 기억에 당시 너랑 약혼을 앞둔 남자 맞지? 남의 약혼녀가 될 여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노예로 전락해 밤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신세라니.”한 뼘 거리에서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는 남자 때문에 신가람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오래전에 이미 끝난 사이에요. 대표님, 지난 3년 동안 정말 고마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요? 엄마가 몸이 편찮으신데 의사 선생님께서 더는 자극하지 말라고 했거든요.”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는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맑고 투명한 액체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박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1억을 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람이 욕심을 너무 부리면 안 돼.”신가람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엇이든 할게요.”“그래?”남자는 눈썹을 까딱하더니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신가람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텅 빈 화장실은 불이 꺼져 있었고, 문틈 사이로 복도 불빛이 새어 들어와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뚜렷한 이목구비만큼은 어렴풋이 보였다.주변이 조용할수록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신음은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감출 수 없어 자칫 들킬세라 두려울 지경이다.격정의 순간을 끝으로 신가람이 물었다.“이 정도면 되나요? 어차피 사귀는 척하는 거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그럼 다행이고.”이정미는 한시름 놓으며 ‘주강인’을 붙잡고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고, 나중에 닭백숙까지 한 그릇을 먹었다.그러고 나서 졸음이 몰려오자 병상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신가람은 박정후를 배웅했고, 넓은 등을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는 순간 남자가 몸을 돌리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성의 보여주기로 한 거 잊지 말고.”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얼굴은 물론 귓불마저 빨갛게 달아올랐다. 박정후가 원하는 성의는 단순하면서 원초적이었다.“대체 몇 번을 원하죠?”신가람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다시피 했다.박정후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얼마나 해줄 수 있는데?”애초에 횟수로 가늠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섣불리 대답하기 힘들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약이 끝난 상황에서 또다시 부득이하게 얽히고설키지 않았는가? 이제 본인마저 그가 베푼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강민석은 다시 경찰서로 끌려갔다. 대부분 경미한 찰과상이라 뼈와 근육이 멀쩡한 이상 굳이 입원할 필요도 없었다.3일 뒤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동료를 강제로 성추행하고 여성을 유인한 다음 성관계를 가지고 나서 위협하고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아 징역 3년 5개월을 선고했다.회사는 공지를 내려 통보했고, 실명으로 신고한 직원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직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제보자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고 포상금은 비공개로 지급했다.점심시간, 신가람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느라 바빴다.문밖에 수상쩍은 그림자가 얼씬거리자 곧바로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무슨 일이죠?”하지영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우물쭈물 말했다.“가람 씨, 잠깐 시간 괜찮아요? 얘기 좀 나눠요.”“들어오세요.”비록 호감은 없지만 같은 회사에서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와중에 안면박대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영은 커피를 손에 들고 환심을 사려는 듯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전에는 미안했어요. 다 제 잘못이죠.
소지율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팔을 빼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떠올려 최대한 박정후를 설득하는 데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문을 열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정후 씨.”휴게실에서 나온 박정후는 어리둥절하더니 금세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왜 미리 온다고 얘기 안 했어? 기사님 픽업 보내면 되는데.”“정후 씨 보고 싶어서 그랬지. 나 안 보고 싶어?”말을 이어가면서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백옥같은 팔로 목덜미를 감싸 안더니 새빨간 입술로 고혹적인 웃음을 지었다.신가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의 말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씁쓸했지만 문을 살포시 닫아주었다.이제 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현실은 계속 구질구질하게 엮여야만 했다.저녁에 병원으로 갔더니 이정미가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보여주었다.“약혼반지는 왜 안 보여?”어쨌거나 오지랖 넓게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와중에도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단번에 문제점을 캐치했다.그동안 주강인은 언제 어디서든 왼손에 실버 반지를 끼고 있었다.신가람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제가 뺐어요.”그리고 가방에서 반지 두 개를 꺼냈다.“너무 옛날 스타일이라 매장 가서 새로 사려고.”“그럼 됐어.”이정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다음 신가람은 이불을 여미어주고 의사를 찾아갔다. 컨디션을 확인했더니 회복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려고 했다.이때, 한 젊은 인턴이 그녀를 불렀다.“가람 씨, 낮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던데 맞아요?”신가람이 웃으면서 말했다.“네.”“남자친구랑 사이가 좋나 보네요.”잘생긴 젊은 인턴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곧 인턴십이 끝나서 다른 곳으로 전근 갈 것 텐데, 밥 한 끼 사드려도 될까요?”신가람은 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남자는 좌절한 듯 말했다.“아, 그럼 일 보세요.”어깨가 축 처진 뒷모습은 충격을 꽤 많이
박정후와 소지율이 백마 라운지에 도착했을 때 일찍 온 여러 명의 예쁜 재벌 집 아가씨들은 이미 남자들과 신나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하지만 박정후가 VIP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연스레 풍기는 그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아우라에 그들은 알아서 센터 자리를 내어주며 남자들을 떨쳐내고 박정후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어머, 다들 대표님이랑 지율 씨만 기다리고 있었어요!”소지율과 함께 팔짱을 끼고 들어온 박정후는 자리를 비켜주는 여자들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진열된 명품 백에 먼저 시선이 갔다.그런데 입술을 말아 물고 그 명품 백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박정후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정후 씨, 어때? 예쁘지? 직원이 그러는데 다 정품에다 한정판이래. 근데도 20%나 할인한대. 돈이 많이 급한가 봐.”소지율이 아무 가방이나 들어 열어보자 안에는 구매한 날짜가 적혀있는 인보이스가 들어있었다.깔끔하게 적혀있는 익숙한 글자들을 본 박정후는 코웃음을 쳤다.돈이 급하긴 했나 보네.그때 룸의 문이 다시 한번 열리더니 신가람이 사과를 하며 안으로 걸어들어왔다.“죄송해요, 전화 좀 받고 왔어요.”핸드폰을 집어넣던 신가람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주위에 의아함을 느껴 고개를 들어봤는데 제 눈앞에 서 있는 의외의 인물에 웃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고 마치 누가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몸이 떨려왔다.신가람은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리는 박정후의 눈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대표님이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이 정도로 돈이 급한 거야?”차가운 음성이 귀에 내리꽂히자 이명까지 들리는 듯해 신가람은 서둘러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아니요, 그건 아니고... 가지고 있어도 저는 안 메니까 그럴 거면 그냥 필요한 사람들한테 주고 싶어서요.”신가람의 말을 들은 박정후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너무나도 날카로워 신가람은 마치 살을 에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때 소지율이 가방 하나를 들
이렇게 빨리 죽고 싶지는 않았던 신가람은 당연히 박정후가 그 돈을 준다 해도 받을 엄두가 없었다.신가람은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서 양치까지 깨끗이 한 뒤에 박정후를 찾아갔지만 박정후는 여전히 화가 난 것인지 신가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방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신가람은 결국 열쇠를 찾아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신가람은 늘 그래왔듯 박정후가 누워있는 침대에 올라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일정한 호흡을 내뱉고 있던 박정후는 이미 신가람이 하도 만진 탓에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박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려 신가람을 제 품 안에 가두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혀를 쓸어내렸다.축축하고 뜨거운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박정후가 나무라듯 말했다.“이 입으로는 거짓말밖에 할 줄 몰라?”신가람은 저릿해 나는 혀에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박정후가 대신해서 답을 해주었다.“아니면 내가 준 게 부족해서 그런가? 좀 더 많이 먹어보면 고분고분해지나?”곧바로 신가람의 입안에는 손가락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왔다.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에 금세 힘들어진 신가람은 또다시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속이 쓰려와서 배를 부여잡고 애원했다.“토할 것 같아요... 화장실 한 번만 다녀오면 안 돼요?”그 말에 표정이 굳어버린 채 신가람의 등을 응시하던 박정후는 그녀의 목덜미에 빨간 자국을 남겨놓고는 거칠게 입을 뗐다.신가람은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그길로 뛰쳐나가서는 10분이 지나서야 다시 깨끗이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나가.”“계속할 수 있어요.”창백해진 얼굴에 땀방울을 매달고 말하는 신가람이었지만 물기가 가득한 눈에 자기주장 뚜렷한 이목구비는 여전히 예뻐서 지금 이 순간조차도 박정후를 유혹하고 있었다.“신씨 집안 아가씨가 이 정도로 밝히는지는 몰랐는데, 내가 널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아. 그깟 돈 때문에 몸도 팔더니 이젠 자존심도 필요 없다 이거야?”박정후의 말에 정곡이 찔린 신가람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침대에 누워서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