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국, 네 아들이 아무리 허물을 벗고 나와도 임 대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어. 그러니 너희 송씨 가문은 이번에 패배할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어.”강진수는 송진국을 힐끗 쳐다보고는 냉랭하게 말했다.“그건 강 문주님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천문의 장로들에게 연락해 놨거든요. 장로들이 저를 전력으로 도와주기로 했으니 우리 송씨 가문은 이번 내기에 반드시 이길 겁니다.”임지환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천하무적일 리는 없었다.천문 장로회의 지원을 받으면 송씨 가문이 이길 확률은 90% 이상일 것이다....오후가 되었다.모든 준비를 마친 임지환은 낡은 등나무 상자를 하나 들고 용은 저택에서 걸어 나왔다.“임 선생님, 이렇게 빨리 나오시는 겁니까?”지프에 앉아 있던 허청열은 임지환이 단 하나의 등나무 상자만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임지환이 그래도 꽤 많은 물건을 가져갈 줄 알았는데 임지환이 전에 말했던 그 상자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임지환은 손으로 나무 상자를 툭툭 치며 미소 지었다.“이 친구만 있으면 충분해.”“그럼 바로 부두로 모시겠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면 더 빠를 겁니다.”허청열도 수다 떨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임지환과 함께 부두로 돌아갔다.그 시각, 강변 부두에는 모든 손님이 이미 떠났고 오직 니혼 사람들만이 부두에 남아 있었다.마침내 긴 기다림 끝에 마지막 헬리콥터가 성공적으로 돌아왔고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착륙했다.헬리콥터의 프로펠러 굉음 속에서 큰 체형과 작은 체형의 두 사람이 헬리콥터에서 내려왔다.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용수 병사들은 큰 상자를 몇 명이 힘겹게 들어냈다.“한중오 스승님!”“유리 씨!”무사히 돌아온 두 사람을 보자 니혼 검도관의 제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소유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이들은 니혼으로 돌아가서 할복해야 했을 것이다.“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스승님, 먼저 모두를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상자는 제가 알아서 운반
임지환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이 어린 소녀가 약속을 지키는 성격일 줄은 몰랐다.“필요 없어. 상자 안에 있는 건 전부 네가 가져가.” 임지환이 고개를 저으며 보물 상자를 사양했다.“그건 안 돼, 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소유리는 임지환이 거절하자 초조해지며 급히 말했다. “네가 안 받으면 이 상자 여기 두고 가버릴 거야.”“상자 안 물건이 어떤 경로로 온 건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잖아. 나도 보물을 처리하기 어려워. 그러니 네가 가져가는 게 나아.”임지환은 냉랭한 말투로 단호하게 거절했다.임지환은 번거로운 일을 유독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임지환에게는 이 보물이 별 가치가 없었다.“임 선생님, 유리 씨도 선의로 그러는 거니 받아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옆에 있던 허청열이 두 사람의 실랑이를 보며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저는 금릉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상자 속 물건은 제가 대신 처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이 상자 안의 물건을 정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임지환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물론이죠!”허청열은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부탁이 하나 있는데 제가 한 번 열어봐도 될까요?”“그래, 열어 봐.”임지환이 어깨를 으쓱였다.소유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허청열은 허락을 받자마자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뚜껑이 열리자 허청열의 눈앞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넘쳐나는 황홀한 상자 내 모습이 드러났다.탁!허청열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애써 침착한 척 뚜껑을 다시 덮었다.그리고 임지환에게 다가가 쓴웃음을 지었다.“임 선생님, 이 물건 혹시 어느 무덤에서 파낸 게 아닙니까?”이 상자에 가득한 금은보화는 최소 수백억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임지환 앞에서 큰소리를 쳤던 허청열은 이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이 보물은 정당한 경로를 통해서 얻은 건 아니지만 무덤에서 가져온 건 절대 아니에요. 딴 건 보증할 수 없어도 이것 하나만은 내가 보증할 수 있
말을 마치자마자 임지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청월은 헬리콥터의 좌석에 먼저 앉았다.“이봐...”임지환은 당황해서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청월 앞에선 두 손 들어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임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있군요.”옆에서 허청열이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보며 임지환을 비꼬았다.“네놈이 정보를 흘린 거지?”임지환이 허청열을 흘긋 쳐다보며 담담하게 추측을 털어놨다.“너 말고 내가 금릉에 가는 걸 아는 사람이 없잖아.”“천만에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허청열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어 자리를 뜨려 했다.“어딜 도망가려고? 가만히 앉아 있어!”임지환은 허청열의 옷깃을 잡아 병아리를 집어 던지는 것처럼 좌석에 던졌다.“허 교관, 죄송해요. 저 때문에 피해를 보네요.”이청월은 혀를 내밀며 사과하는 듯했지만, 눈빛에는 전혀 사과의 기색이 없이 고소해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섣불리 좋아하지 마, 이따가 너도 난처해질 거니까.”임지환은 굳은 얼굴로 이청월을 노려보며 그녀를 겁주었다.“얼씨구? 하나도 안 무섭거든?”이청월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어쨌든 이제 내가 올라탔으니 날 버리고 갈 수는 없잖아, 안 그래?”“한번 해볼까?”임지환은 천천히 이청월에게 다가갔다.“앗,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이청월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좌석에 쓰러졌다.“발 연기가 너무 심하잖아. 아직 널 다치지도 않았어.”임지환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이청월은 창백한 얼굴을 들고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비행기 멀미 오래된 병인데, 아까 급히 오느라 약을 안 가져왔어.”“그래? 그럼 침놓아 줄까?”임지환은 그 말에 가방을 열려고 했다.그러자 이청월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까진 없어. 네가 내 옆에 앉아주면 나아질 거야.”“앉아 있는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어?”임지환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옆에 있던 허청열은 임지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아마도 테러 조직 사람들이 유람선의 승객들을 납치한 것 같아. 듣기로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임 대사가 선뜻 나선 덕분에 모두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아.”배국권은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서 무언가가 떠올라 배지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러고 보니... 그 임 대사가 우리 배씨 가문에 여러 번 도움을 주신 적이 있잖니. 이번에 그분을 유람선에서 만나긴 했어?”배국권은 늘 소망이 하나 있었다. 배씨 가문이 임 대사와 어떻게라도 얽혀서 배경으로 둔다면 앞으로의 부귀영화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할아버지, 망상이 너무 심하네요. 임 대사님은 어마어마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배씨 가문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죠. 그런 대단한 분이 여러 차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건 아마도 진운 도련님 덕분일 거예요.”배지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유람선 위에서 임 대사는 자기와 어머니에게 굉장히 모욕적이었고 안중에도 없는 자태를 보여줬었다.둘 사이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깊은 협곡 같아서 배지수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망적인 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임 대사는 누구나 다 아는 탁월한 신분과 지위를 가진 분이니 진운조차 임 대사를 움직이게 할 수 없을지도 몰라. 지수야, 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어. 널 집으로 데려다준 그 아가씨가 말하길 임 대사가 그 아가씨더러 너희 모녀를 잘 모시고 저택에 보내드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하더구나.”배국권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그럴 리가 없어요. 임 대사님은 배 위에서 날 정말 쌀쌀하게 대했거든요. 절대로 사람까지 시켜 우리를 저택까지 잘 모시라고 할 수 없죠.”배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어째서 임 대사는 이렇게 앞뒤가 다를까?“바보야, 임 대사는 지금 우리 강한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거물이야. 그런 거물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널 특별히 대하는 모습을 보일 리가 없잖아.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임 대사가 너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알
“듣고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구나. 어쨌든 우리 배씨 가문에겐 좋은 일이야. 하지만 지금 제일 급한 건 일단 준영의 병을 고치는 거야.”배국권에게 있어 현재 가장 큰 걱정은 배준영의 병이었다.“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회사 일은 전부 수경에게 맡겼어요. 금릉 쪽 병원도 미리 다 예약해 놨으니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요.”배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진성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아니었다면 배지수는 아마 지금쯤 금릉에 도착했을 것이다.“서두르지 마, 네 큰아버지와 영지 일행이 오면 다 함께 가자꾸나.”배국권은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말했다.“우린 준영의 병을 보러 가는 거잖아요. 큰아버지네가 왜 끼는 거죠? 제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배지수의 목소리엔 분노가 섞여 있었고 표정이 단번에 차가워졌다.“지수야, 거 참 듣기 거북한 말을 하고 있구나. 우리 아들이 너희 남매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사실을 벌써 까먹었어? 다 배씨 가문 사람인데 누구 하나 편애할 수는 없지 않겠어?”배지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전무와 배영지가 배지수의 저택 거실로 들어왔다.“손등도 손바닥도 다 살인데 너도 이 할아버지가 곤란해지길 원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인국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식물인간이 된 이상 이렇게 무관심하게 둘 수는 없잖아.”배국권은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이성적으로 배지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배국권도 항상 화목하던 배씨 가문이 이번 일로 붕괴하여 뿔뿔이 흩어지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할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과거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게요.”결국, 배지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하지만 이번에 금릉에 가서 저 사람들이 또 훼방을 놓으면 그땐 제가 가족이고 뭐고 가리지 않을 거예요.”...한편, 임지환은 허청열의 주선으로 화연평 장군의 저택에 도착했다.이곳은 금릉에서 최고급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이었다.임지환은 저택에 들어오면서 최소한 일곱 군데의 감시초소를 발견했다.그리고 초소마다 무도 고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임지환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도대체 이 청년은 무슨 배경이길래 감히 침왕의 치료를 막을 수 있는 거지?“임 선생님, 이건...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심지어 허청열도 지금은 임지환을 충격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아무래도 임지환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이봐, 젊은이, 난 네가 누구든 전혀 상관없어. 이것만 명심해. 지금 화 장군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태야. 이 손을 놓지 않으면 널 거칠게 다룰 거니까 그렇게 알아.”이민재의 짙은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면서 냉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위협했다.“청열아, 다 들었지? 아직도 안 데리고 나갈 거야? 빨리 데리고 나가! 이 침왕이 우리 아버지 치료하는 걸 방해하면 네가 용수의 교관이라 해도 그 책임을 질 수 없을 거야!”화도윤의 얼굴에는 냉정함이 스며 있었다.허청열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급히 방 안으로 들어가며 설득했다.“임 선생님, 제발 잠시 물러나 주십시오. 이 침왕의 치료가 끝나고 나면 그때 치료하셔도 늦지 않습니다.”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자기 소견을 밝혔다.“이 사람이 침을 끝까지 놓게 되면 나중에 내가 치료한다고 해도 화 장군의 목숨은 살릴 수 없어.”“입 다물어! 지금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리 아버지를 직접 보지도 않고 그런 개소릴 지껄여? 우리 화씨 가문이 네가 함부로 날뛰는 곳이라고 착각하는 거야?”화도윤이 성난 목소리로 임지환을 향해 외친 후 손을 휘저었다.그러자 화도윤 뒤에 서 있던 경비병들이 우르르 방에 들어와 바로 임지환을 둘러쌌다.허청열은 그 광경을 보고 황급히 임지환을 변호하며 말했다.“임 선생님은 단지 조급해서 그런 것입니다. 임 선생님이 화씨 가문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려는 의도는 하나도 없습니다.”“청열아, 내가 네 체면을 봐서 한 번만 기회를 주는데 지금 당장 이 녀석을 데리고 나가! 그러면 없던 일로 해줄게. 근데 저 녀석이 계속 이렇게 날뛰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명심해!
침왕 이민재는 그야말로 금릉 의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이민재는 절묘한 침술 하나로 금릉에서 명성을 떨쳤다.수십 년간 이민재가 구해낸 사람은 적으면 수백 명, 많으면 수천 명에 달했다.이민재의 침술은 세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실력이었다.이런 뛰어난 의술을 자랑하는 신의는 아무래도 임지환이라는 출처 불명의 돌팔이보다 훨씬 더 믿을 만했다.게다가 임지환이 한 말은 화도윤에게 그저 터무니없게만 들렸다.이민재의 침왕 명성은 자타가 공인한 것이지 이민재 자신이 부풀린 것이 절대 아니었다.이런 신의의 의술을 동원한다면 아버지의 상태도 곧 회복될 것이다.생각을 마친 화도윤은 이민재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침왕, 아까는 제가 잠시 실수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화 선생, 이번에는 당신이 아버지를 구하려는 다급한 마음을 고려해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바로 떠날 겁니다.”이민재는 뒷짐을 지고 서서 자부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그러고는 다른 한 손에 은침을 들고 돌아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화연평을 바라보았다.이때의 화연평은 얼굴이 칠흑처럼 검게 변했고 숨결이 미약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화 장군님은 사악한 기운이 몸에 침투된 상태입니다. 제가 은침으로 경락을 자극해 체내의 생기를 불러일으켜 정의로운 기운으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면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 침을 놓으면 장군님의 생명은 문제없을 겁니다.”이민재는 자세히 화연평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은침을 손가락 사이에 집어넣고 노인장의 미간에 놓았다.“콜록콜록...”그 순간, 화연평의 얼굴에 퍼져 있던 검은 기운이 사라졌고 갑자기 눈을 뜨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아버지가 정말 깨어났네요. 이 침왕은 정말 명불허전입니다!”화도윤은 이 장면을 보자마자 감격스러워 어쩔 바를 몰랐고 급히 이민재 앞에 다가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이 침왕,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은혜를 이 화도윤이 평생 잊지 않겠
“아버지, 그냥 편히 누워 계세요. 이 침왕이 계시잖아요. 임지환이라는 사람은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작은 인물일 뿐입니다.”화연평과 달리 화도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다.이민재도 미소를 지으며 화도윤을 거들었다.“저 이민재가 보장하건대, 보름도 안 돼서 장군님께서 완전히 회복되실 겁니다.”“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임 대사는...”화연평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아버지, 굳이 임지환이라는 사람에게 빚진 기분이 드신다면 나중에 제가 돈을 좀 주면 됩니다. 그냥 진료비라고 생각하면 되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가 온전한 상태로 요양하시는 겁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깔끔하게 처리할게요.”화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면...”화연평은 유유하게 한숨을 내쉬며 더는 말을 잇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이 침왕, 이번엔 전부 당신 덕분입니다. 제가 금릉에서 가장 좋은 5성급 호텔에 성대한 만찬을 준비했으니 부디 와주십시오.”화도윤은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이민재도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저택을 떠날 준비를 했다.삑!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짧고 낮은 경고음이 밖에서 들려왔다.“푸흡...”조금 전까지 혈색을 되찾았던 화연평이 갑자기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냈고 온몸의 힘이 풀려 경직된 상태로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검은 피가 화도윤의 옷에 가득 튀었다.“이 침왕, 이게 무슨 일입니까?”화도윤은 믿을 수 없는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민재에게 목소리를 높여 따졌다.항상 침착한 태도를 보이던 이민재조차도 당황스러워하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논리적으로만 보면 화연평이 안정된 상태여야 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피를 토하는 거지?“역시 임 선생님 말씀이 맞았군요. 이제 장군님을 구할 방법은 임 선생님을 다시 모셔 오는 것뿐입니다.”이 광경을 목격한 허청열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