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인다고 하면 진짜 죽였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임 대사가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주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저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이런 상황에서도 임지환이 감히 나서서 사람을 죽이다니, 니혼 공주인 소유리의 체면을 전혀 세워주지 않았다.“임 선생님, 저 남자를 죽일 필요까지 있었습니까? 너무 감정적인 거 아닙니까?”한중오는 죽은 행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봐요 영감, 영감이 보건대 임 선생님이 단순히 감정에 휩싸였다고 생각한다면 영감의 경지는 정말 형편없는 거야.”유란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감정적이 아니면 뭡니까?”한중오가 차갑게 물었다.유란은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당연히 아니지. 임 선생님이 저 남자를 죽인 건 모두의 안전을 위한 거야. 만약 행크를 너희 손에 넘겨준다면 너희는 배후의 주모자를 추궁해 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 이후엔... 또 다른 피바람이 불어올 게 분명하다고! 알겠어?”유란은 조리 있게 자기 추측을 털어놨다.“나를 노리는 자들에게 난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소유리는 패닉 상태에서 점차 침착해졌고 목소리에도 살기가 묻어났다.“그게 바로 결정적인 문제야. 너희가 이기면 당연히 상황이 평화롭게 흘러가겠지. 하지만 너희가 진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너희 때문에 죽게 될 거야. 이 조직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유란은 쌀쌀한 목소리로 소유리의 말을 끊고 말을 이었다.“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 아직도 임 선생님이 행크를 죽인 것이 단순한 감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그건...”유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유리와 한중오, 그리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에 꽂혔고 다들 말문이 막혔다.“유란 씨 말이 맞네. 우리는 너희 두 집단 사이 모순의 희생물이 되고 싶지 않아!”“임 대사님은 우리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재앙을 막아준 거야. 감사해야 할 일이야.”“임 대사님, 정말 현세의 보살이세요!”순식간에 강한시 대부들이 임지환을 구세주처럼
“난 상관없어. 모든 건 임 대사님의 뜻에 따를 거야.”강진수가 차분하게 송진국의 말에 반응했다.“됐어? 또 다른 문제라도 있어?”임지환은 담담하게 송진국을 쳐다보며 물었다.“됐어... 더 이상 볼일 없어.”송진국은 강진수가 임지환 편에 선 것을 보고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임지환의 눈치를 살피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용수 병사들의 안내대로 헬리콥터에 올라 자리를 떠났다.“임지환, 우리도 이만 가볼게. 몸조심해!”오랜 망설임 끝에 소유리는 임지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로 결심했다.“잠깐, 뭘 그렇게 서둘러? 나랑 함께 네 방으로 가자.”임지환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갑자기 소유리의 자그마한 손을 덥석 잡았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소유리는 임지환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군말 말고 그냥 따라와!”임지환은 소유리의 저항을 무시하고 바로 소유리를 끌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이게... 무슨 일이지?”주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설마 임 대사가 신사인 척하면서 사실은 엉큼한 짐승이었나?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여자를 끌고 간다고?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한 한중오는 직접 임지환에게 달려가서 따지려고 했다.“어르신, 거기 서세요!”하지만 한중오가 움직이기 전에 허청열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유리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한중오는 허청열에게 화난 목소리로 외쳤지만 허청열의 차분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임 선생님이 유리 씨를 데려간 이상,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이봐...”한중오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청년, 뭔가 모르는 모양인데 유리 씨는 니혼 황실 일원이야. 난 이번에 유리 씨의 호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일이 생기게 놔둘 순 없어!”“그만 해. 그런 얘긴 관심 없어. 여기서 난 임 선생님의 명령만 따를 뿐이니까 방해하려
임지환의 능력을 목격한 후, 유란은 임지환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의 맹목적인 신뢰를 보였다.유란에게 있어서 임지환은 전지전능한 신 그 자체였다.“그럼 내가 사람들을 다 보내고 나서 바로 돌아와서 유란 씨와 임 선생님을 데리고 떠날게요.”허청열은 말을 마치고 한쪽에 가만히 서 있는 한중오에게 힐끔 눈길을 주며 물었다.“이봐 영감, 왜 아직도 안 가? 여기서 죽을 생각인가?”“유리 씨가 나오지 않으면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한중오는 단호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좋아,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그 말을 끝으로 허청열은 더 이상 한중오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헬리콥터에 올랐다. 헬리콥터는 손님들을 태우고 빠르게 유람선을 떠나갔다.“아가씨, 진짜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사람들이 다 떠난 후, 한중오는 유란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죽을 생각?” 유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네가 임 선생님께 희망을 두지 않았다면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지?”“임지환의 능력은 인정해. 하지만 내가 남아 있는 이유는 유리 씨의 안전이 걱정돼서야. 그 자식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유리 씨에게 뭐라도 할까 봐 이러는 거야.”한중오는 유란이 자기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말을 하자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마음 좀 더 곱게 먹어. 그 여자애를 소중하게 여기는 건 너희들뿐이지, 임 선생님은 그런 걸로 시간 낭비하지 않아.”유란은 한중오가 억지로 강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겨우 참았다.“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을 간파하는 일이야. 네가 임지환 속을 완벽하게 잘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 난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어.”한중오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갑판에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유란이 한발 먼저 한중오의 길을 막으며 엄숙하게 말했다.“임 선생님이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임 선생님을 방해할 수 없어.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너...”한중오는 버럭 화를 내려다가 갑자기
소유리는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남자한테 항상 잘 통하던 방법이 이 남자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신기한 일이었다.“흥, 네가 뭔데 나보고 나가라고 해? 안 가! 네가 과연 이 방에서 뭘 찾아내는지 한번 보자고. 참고로 말하는 건데, 우리 니혼 사람들 방은 전부 무작위로 배정됐어. 여기에 비밀 장치 같은 건 있을 리 없거든.”소유리는 임지환이 방 안의 가구들을 옮기려는 모습을 보며 비웃으며 귀띔했다.하지만 임지환은 전혀 포기하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를 손으로 잡아 돌렸다.찰칵!임지환이 스탠드를 돌리는 순간, 침대가 갑자기 뒤집히며 비밀스러운 입구가 보란 듯이 드러났다.임지환은 그제야 소유리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아까 뭐라고 했더라?”“이게 말이 돼? 우미가 이 유람선에 온 지 겨우 이틀인데, 어떻게 이런 비밀 통로를 만들 시간이 있었겠어?”소유리는 그 비밀 통로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너도 네 곁에 있던 시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구나.”임지환은 비꼬듯이 말하며 비밀 통로로 들어섰다.“잠깐, 나도 갈래...”소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임지환의 뒤를 따라 통로로 들어갔다.쿵!두 사람이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침대가 원래 위치로 돌아갔고 통로 안은 순식간에 완전히 캄캄해졌다.“임지환!”소유리는 깜짝 놀라며 임지환의 팔을 꽉 잡았다.“긴장하지 마.”임지환은 어둠 속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놀란 소유리를 달래며 여유롭게 통로를 따라 걸었다.두 사람이 약 1분쯤 걷자 끝내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그 앞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두꺼운 벽이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임지환은 걸음을 멈추고 주저 없이 손을 들어 벽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우르르!임지환의 손바닥이 닿자마자 통로에서 천둥소리처럼 둔탁한 소리고 울렸고 산산조각 난 벽에서 부서진 돌 조각들이 튀어나오면서 통로에 다시 빛이 비쳤다.“와, 임지환, 너 정말 대단해! 우리 스승님도 힘으로
슈웅!한 줄기 눈부신 광채가 임지환의 눈앞에 번쩍였다.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순간 펼쳐졌다. 이 상자 안에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금괴와 황금 조각들이 가득 들어있었다.그 외에도 값비싼 보석과 골동품들이 넘쳐났다.“와, 예상치 못한 수확이구나. 이 상자 안에 있는 것들만 해도 최소 수백억은 될 거야. 용기를 내서 너와 함께 내려온 보람이 있네. 완전 대박이잖아!”소유리는 뜻밖의 횡재에 신나서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하게 웃었다.비록 소유리는 니혼 황실 출신이긴 했지만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아니었고 본인의 재산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눈앞의 이 보물 상자는 아무리 봐도 가치가 최소 수백억에 달했다.이 비밀 통로로 들어와 이렇게 큰돈을 손에 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올라가서 사람들을 불러서 이 상자들을 옮기자고. 네가 찾고 있던 사람들도 찾았으니 서둘러 옮기고 자리를 떠야지.”임지환이 말없이 가만히 서 있는 걸 보며 소유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연신 재촉했다.“우리가 지금 떠나려고 해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임지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뭐야? 내가 이 보물을 혼자 독차지할까 봐 겁나는 거야? 난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아니야. 같이 발견한 거니까 반반으로 나누면 되잖아. 어때? 이러면 문제없겠지?”소유리는 조심스레 자기 생각을 밝혔다.소유리는 이 보물 상자가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걸 운반하는 데 임지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이런 금은보화는 나한테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단지... 이 일이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이럴 때일수록 임지환은 더 냉정해졌다.눈앞에 놓인 보물이 가득한 상자는 임지환을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어딘가 이상한데... 분명 뭔가 있어...”짝짝짝...임지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텅 비어있는 밀실 속에서 갑자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박수 소리는 빠르지 않고 느릿느릿했는데 임지환을 높이 평가하는 박수
“저 남자가 한 번은 우리 아버지를 암살하려다 실패했고 내 스승 김현무 검성에게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어. 그런데 그때 송평화가 죽은 척한 연기로 우리를 속였을 줄이야.”말을 마치고 소유리는 눈을 부릅뜨고 송평화를 노려봤다.“김현무의 검술로 날 죽이려 했다고? 웃기는 소리야. 그때 내가 꾀를 써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마 쫓기는 신세로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고 있었을 거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20년 넘게 마음껏 살 수 있었겠냐고?”송평화는 지금까지의 삶을 천천히 털어놓고 임지환을 향해 살기가 가득 찬 눈빛을 던졌다.“그런데 네가 내 모든 계획을 망쳐버렸어!”“오호라? 우린 오늘 처음 보는데 말이야. 혹시 이 보물들을 가져가려는 거면 다 가져가도 돼. 난 신경 안 써.”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이 보물들은 당연히 내가 다 가져갈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널 죽여야 해. 우리 딸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야!”송평화는 쌀쌀한 눈빛으로 임지환을 쏘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네 딸이라고?”임지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미가 내 친딸이야. 그 애를 키우기 위해 난 정말 많은 노력을 들였어. 우미를 뛰어난 무술 고수로 배양하기 위해 심지어 탐랑을 스승으로 모셔 피나는 노력까지 들였어. 요 몇 년 동안 우미는 쭉 소유리의 곁에서 은밀히 나와 과거에 원한이 있던 상대들을 처리해 왔어. 이번 일을 마치면 원래 딸과 함께 깔끔하게 은퇴하려고 했는데 네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어! 그러니 널 죽여야만 내 분이 풀릴 것 같아, 알겠어?”송평화는 점점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고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까지 번져갔다.“역시 부녀지간이네. 미치면 둘 다 남을 물고 뜯기 바쁘군. 하지만 넌 아직 날 죽일 만한 능력이 안 돼.”임지환은 송평화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임지환, 저 남자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독수리의 신은 이미 20년 전에 대사의 절정에 이르렀어. 게다가 저 남자의 어깨에 있는 저
송평화의 공격은 그의 이름과는 정반대였다.조금의 평화로운 느낌도 없이 처음부터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살벌한 기술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지원하는 흰 발톱의 송골매 덕분에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이봐, 넌 엄청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걸? 내 손에 죽은 자들은 전부 황족과 귀족들이었어. 너 같은 무명 인사가 내 손에 죽는 건 운이 참 좋다는 뜻이지.”송평화는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임지환을 끊임없이 비웃으며 심리전을 펼쳤다.뼈 때리는 공격보다 마음을 울리는 공격이 더 효율이 높은 공격이었다.'“재밌네,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어.”절체절명의 순간, 임지환은 손으로 땅을 짚고 반동을 이용해 오른발을 강하게 차올렸다.그러고는 지면에 갇힌 용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강력한 발차기로 송평화의 가슴을 강타했다.“이 정도면 송평화는 임지환의 상대가 안 되겠네.”옆에서 지켜보던 소유리는 임지환의 반격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댔다.쾅!하지만 소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임지환의 발차기가 송평화의 가슴에 정확히 적중했음에도 송평화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 보였다.더 놀라운 건 송평화의 마른 몸에서 희미한 청색 빛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이건... 선천강기잖아. 설마 너 죽은 척 연기로 20년 동안 숨어서 지내며 대종사 경지에까지 올랐단 말이야?”소유리는 이 기이한 장면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역시 황실 자손이군. 보는 눈은 있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었어.”송평화는 섬뜩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임지환의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다.“너 참 웃기네. 너무 일찍 기뻐하는 거 아니야?”임지환의 목소리는 죽음을 예고하는 사신처럼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이 정도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 내 선천강기를 뚫지도 못하면서 허풍을 떨긴 뭘 떨어...”송평화 역시 임지환을 조롱하듯 웃으며 매서운 손을 뻗어 사나운 기세로 임지환의 오른쪽 다리를 낚아채려 했다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른 해 봐. 안 그러면 너도 네 딸처럼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할 테니까.”임지환은 뒷짐을 지고 냉담한 표정으로 송평화를 바라보며 재촉했다.“삐익...”하지만 임지환의 예상과 달리, 송평화는 더 이상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고 대신 갑자기 휘파람을 불며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삐익...”다음 순간, 하늘을 맴돌던 흰 발톱의 송골매가 그 소리에 반응했다.임지환은 송골매가 자기를 향해 공격해 올 것으로 추측했지만 생각 밖으로 송골매는 송평화를 향해 돌진했다.쫙...송평화는 옷을 찢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기 팔에 상처를 냈다.뚝...뚝...순간 시뻘건 피가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송골매는 피 냄새를 맡는 순간 갈색 눈동자가 피처럼 붉게 변했다.임지환과 소유리 두 사람의 의아한 눈빛 속에서 송골매는 송평화의 피를 마구 삼키기 시작했다.“죽여라!”송평화는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진한 붉은색 눈동자로 변한 송골매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임지환을 향해 돌진했다.“설마 이게 독수리의 신이 남겨둔 마지막 카드인가? 아까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소유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송평화는 그 말을 듣고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이 송골매는 내 피를 흡수했어. 이제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된 거야. 그 힘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어. 저 녀석을 죽이는 건 순식간이야.”“그래?”임지환은 가볍게 웃으며 허리춤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휙 던졌다.슝!은침은 차가운 빛을 내며 빠른 속도로 송골매를 향해 날아갔다.하지만 송골매는 임지환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했다.탁!은침이 날아가 박히는 순간, 송골매는 날개를 휘둘러 은침을 막아냈다.임지환의 은침이 처음으로 빗나가는 순간이었다.이전에 상대가 대사급 고수라 할지라도 은침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송골매 앞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흥미롭네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