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가 따라가겠다니까 네가 왜 싫다고 그래? 날 데려가지 않으면 저 위 도련님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줄 거야?”임지환은 싱글벙글 웃으며 위준우를 생각해서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유진헌은 불에 달궈진 솥에서 뛰어다니는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심사숙고 끝에 갑자기 유진헌의 눈이 번뜩였다.“내 생각엔 방금 일은 완전히 오해였던 것 같아요. 위 도련님, 그렇게 생각하시죠?”눈치 빠른 유진헌은 상황이 불리해진 것을 눈치채고 바로 공을 위준우에게 넘겼다.지금 위준우의 얼굴은 부모가 죽은 것처럼 어둡고 찌그러져 있었다. 위준우는 비록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임지환을 건드린 결과가 어떤지 진대하의 죽음이 가장 좋은 증거였다.그래서 위준우는 이빨 사이로 겨우 몇 마디를 내뱉었다. “네가 날 때린 건 그냥 넘어가겠어.”그러고는 유진헌을 향해 험악한 눈빛을 던졌다.“유 국장, 오늘 너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자리에 무사히 앉아 있기를 바랄게.”말을 마치고 위준우는 자리를 뜨려 했다.“거기 서 봐!”하지만 몇 걸음도 걷지 않았는데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무서운 소리가 위준우를 불러세웠다.위준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난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고 했잖아, 뭘 더 원하는데?”“방금 해결한 건 너와 나 사이의 문제였어.”임지환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양 팀장을 모함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위준우는 이 말을 듣고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어. 양 대장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면 돼.”임지환은 담담하게 말했다.무릎 꿇고 사과하라고?“이봐, 임지환. 네가 아주 날 바보 취급하는구나. 양서은은 내 여자야. 내가 너희 관계를 오해했다고 하자. 그래서 뭘 어쩌라고?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웃기지 마. 네 앞에서 양서은을 쌍욕 해도 양서은
양서은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눈빛에 굴욕감이 서려 있었다.위준우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양씨 가문이 도망치려고 해도 결국 위씨 가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위씨 가문은 용산시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거물급 존재였다.양서은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위씨 가문이라는 운명의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내가 보기엔 너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구나.”임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잠시 눈앞이 흐려졌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임지환은 이미 위준우 앞에 서 있었다.“너... 너 뭐 하려는 거야?”위준우는 눈앞의 괴물 같은 존재를 보고는 반사적으로 돼지머리처럼 부어오른 뺨을 감싸안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팍!이번엔 임지환이 귀싸대기를 날리지 않고 손을 뻗어 위준우의 배꼽 아래 2촌 부위를 가볍게 쳤다.“고작 이거야? 뭐 대단한 필살기라도 보이는 줄 알고 쫄았단 말이야. 너도 위씨 가문이 두려워 감히 주제넘은 행동은 못 하겠지?”임지환이 단지 겁만 주려는 듯 자기를 가볍게 툭 건드린 걸 보고 위준우는 터져 나오는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날 안 때린다고 해서 내가 널 용서할 거라고 착각하진 마. 임지환, 너랑 나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위준우는 으름장을 놓고 당당하게 별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위 도련님, 잠시만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유진헌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슬그머니 도망치려 했다.“허 교관, 수고스러운 대로 이 사람들을 처리해 줘. 그리고 몇 명 더 불러서 별장 청소 좀 부탁할게.”임지환은 바닥에 널브러진 유진헌 부하들을 힐끗 보다가 진대하의 시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재차 지시했다.“임 선생님, 맡겨만 주십시오.”허청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한 시간 안에 모든 걸 원래 상태로 복원해 드리겠습니다.”허청열이 손을 휘젓자 부하들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임지환, 우리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차창이 내려가며 진태양의 얼굴이 드러났다. “강 문주님을 모셔 왔으니 잠시 차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시죠.”“잠깐 기다려줘. 잠깐 얘기를 하고 바로 돌아올게.”임지환은 양서은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괜찮아. 먼저 볼일 봐. 굳이 날 챙기느라 애쓰지 않아도 돼.”양서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돌았고 마음속에서 달콤한 기분이 스며들었다.‘왜 굳이 임지환이 주동적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임지환은 한국 차의 문을 열고 태연한 자태로 조수석에 앉았다.“정호야, 출발해.”한국 차 뒷좌석에서 꽤 권위 있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서은은 이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져 뒷좌석을 보려 했으나 뒷좌석의 유리는 짙은 검은색 방탄유리였다.양서은이 주시하는 가운데, 그 한국 차는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임지환은 차에 올라타고 뒤쪽을 쓱 훑어보았다.뒷좌석에는 진태양 외에 선글라스를 쓰고 지팡이를 든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이 사람이 바로 진태양이 말한 천문 둘째 가주 장 문주일 것이다.임지환의 시선을 감지한 듯, 진태양 옆에 앉은 강진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선글라스를 통해 임지환을 살펴보았다.“네가 임지환이냐?”“그래, 나야.”임지환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간이 크긴 하구나. 우리 천문 사람을 감히 건드려? 죽을 준비는 됐나?”강진수가 말을 꺼내자 차 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냉기가 감돌았다.아무래도 타인의 목숨을 손에 거머쥐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했다.“날 건드린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 너희 천문 사람이라도 내 규칙을 따라야 해.”임지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젊은 놈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도 모르고 내 앞에서 규칙을 논하고 앉아 있어?”강진수는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진태양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토록 칭찬하니까 난 또 어떤 대단한 청년인가 했는데 이렇게 건방지고 무지막지한 놈인 줄은 몰랐어. 내가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나 보네.”“강
강진수는 용두 지팡이를 꽉 쥐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웠다. 대신 강진수의 얼굴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별로 크지 않고 왜소한 편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은 그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진수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 무술 대사인 진태양조차 입을 꼭 다물고 다급한 눈빛으로만 임지환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하지만 임지환은 진태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틀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너한테 사과해야 해? 혹시 너희 천문 인간들은 다들 이렇게 권력을 남용하는 게 취미야?”“버르장머리 없는 놈!”임지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진수는 용두 지팡이를 들어 임지환의 얼굴을 향해 강하게 내리치려 했다. 나무로 만든 용두 지팡이였지만 강진수의 손에서 뻗어나가는 힘은 견고한 창을 휘두르는 것처럼 강렬했다. 천문 둘째 문주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인지라 강진수의 무술 실력은 절대 범상치 않았다.강진수의 급작스러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임지환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임지환은 오른팔을 가볍게 휘둘러 용두 지팡이의 강력한 힘을 손쉽게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냈다.펑! 뒷좌석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강진수는 강력한 힘이 지팡이를 통해 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순간 균형을 잃은 채 뒷좌석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강 문주님, 괜찮으세요?”진태양이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강진수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끼이익...천천히 달리던 차가 갑작스러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 섰고 운전석의 정호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어 임지환의 머리에 겨누며 차갑게 말했다. “감히 강 문주님을 불순한 태도로 대하다니, 네놈 대갈통에 총알을 박아버릴까?”누군가가 총으로 겨누고 있는 긴박한 상태에서도 임지환은 하나도 긴장하지 않고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강진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또 천문 문주라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내가 미련하구나.”임지환의 말에 강진수
강진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운전사를 바라보며 손짓했다.“강 문주님, 알겠습니다!”정호는 자신 있게 대답하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임지환은 번개처럼 움직여 두 사람을 놀라게 했다.쉭!순간 정호는 눈앞이 갑자기 흐려지며 손에 쥐고 있던 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어?”임지환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고 조금 전까지 정호가 쥐고 있던 총은 이미 그의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임지환은 총을 가볍게 돌리며 그것이 자기 연장인 양 능숙하게 다루었고 이 일련의 동작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진태양과 강진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대사급 강자였지만 전혀 임지환의 속도를 따라잡아 제지할 수 없었다.“임 대사님, 일단 총을 내려놓으시죠. 모든 건 대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내심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진태양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진태양은 단순하게 중재하려고만 했지만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심각한 사태로 넘어갈 수도 있어 보였다.임지환은 빙그레 웃으며 손목을 휘둘러 총을 강진수 앞에 던지며 말했다. “내가 괘씸하지? 불만이 가득하지? 자, 나도 기회를 줄게. 네가 나한테 사과하든지, 아니면 직접 총을 쏘든지.”강진수는 가까이 놓인 총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한참 후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휴, 이제 나도 나이를 속일 수 없군. 임 대사, 아까 내가 좀 경솔한 모습을 보였어요. 부디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천문 둘째 문주라는 거물급 인물이 어린 후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태양은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보아하니 당신이 천문 둘째 문주 자리에 앉은 게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말해 보세요. 오늘 날 찾아온 진짜 이유가 대체 뭔
천문 문주 자리를 양보해라고?“임 대사님,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진태양은 한참 동안 얼이 빠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농담 아니야.”임지환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10억 달러로 천문 둘째 문주 자리를 바꾸는 건 어떻게 봐도 천문이 이득을 보는 거래야.”“흥, 우리 천문을 너무 만만하게 보네요. 10억은커녕, 100억 달러라도 이 자리를 바꿀 수는 없어요.”멍해 있던 강진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랭하게 말했고 임지환을 바라보는 눈빛에 적대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뭘 또 그렇게 긴장하세요? 그냥 농담한 겁니다.”임지환은 강진수의 불쾌한 시선을 느끼고 웃음을 터뜨렸다. “난 자유로운 걸 좋아해요. 강 문주가 진짜 자리를 준다고 해도 귀찮아서 맡지 않을 겁니다.”임지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강진수는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임지환이 문주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배짱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진짜 깜짝 놀랄 일이기도 했다.“문주 자리가 아깝다면 내가 좀 양보할게요... 그 용두 지팡이를 나한테 이틀만 빌려주는 걸로 하죠.”임지환은 말을 마치고 강진수가 쥐고 있는 용두 지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이 용두 지팡이는 우리 천문 문주 상징입니다. 외부인에게 절대로 빌려줄 수 없어요.”강진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용두 지팡이는 천문 지도층의 신분 상징이다. 용두 지팡이를 쥔 사람은 각 지역의 천문 제자들을 호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사실 천문 둘째 문주라는 타이틀보다 용두 지팡이의 실제 용도가 더 선명했다.“내가 제시한 조건을 다 거절한다면 그건 당신이 성의가 없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이엔 더 이상 할 말이 없겠네요. 지금 당장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해요. 난 이만 내려가 볼게요.”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흥미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강진수는 임지환의 태도를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임 대사, 아까 그 제안은 협상의 여지가 있어요. 임 대사가
임지환은 용두 지팡이를 받고 차에서 내렸다.“강 문주님, 방금 왜 저 자식을 총으로 쏴버리지 않았습니까? 저 녀석은 너무 건방지잖아요.” 임지환이 멀어지자 운전사 정호가 참지 못하고 임지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흥, 내가 총을 쏘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방금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더라면 이미 저 녀석 손에 목이 꺾였을 거야.”강진수는 말을 마치고 손을 뻗어 바닥에 있는 총을 들어 정호에게 던졌다.“헉!”정호가 총을 집어 들고 자세히 보더니 본능적으로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이 총의 총신은 이미 변형되어 있었고 강진수가 방금 총을 쏘려 했다면 임지환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총은 그 자리에서 폭발했을 것이다.“임지환이라는 녀석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상대하기 어렵군. 그런데 저 녀석은 대체 왜 용두 지팡이를 빌려 갔을까?”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임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진수는 의문에 가득 찼다.“어쨌든 임 대사님이 이번 의뢰를 받아들였으니...”진태양이 옆에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로회에서 맡기신 일을 무사히 처리하면 다음 천문 문주 자리는 이미 강 문주님 손안에 있는 것과 다름없죠.”“저 녀석이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말끝을 흐리며 일부러 꺼내지 않았지만 강진수의 눈에는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임지환이 저택 거실로 돌아오자 양서은이 바로 다가왔다.“임지환, 안전하게 돌아와서 다행이야. 네가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나랑 허 교관이 널 구하러 갔을 거야.”양서은은 임지환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임 선생님을 찾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죠?”허청열은 양서은과 달리 침착한 말투로 물었다.“진태양이 천문의 둘째 문주를 데리고 와서 나랑 조금 얘기를 나눴어. 지금쯤 그들은 이미 떠났을 거야.”임지환은 나른한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천문 사람들 말입니까? 혹시 그들이 임 선생님을 협박하려 한 겁니까?”허청열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장군님께 보고
검은색 명패가 깔끔하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그리고 그 명패의 중앙에는 뜻밖에도 둥글게 말린 양피지가 숨어 있었다.임지환은 그 양피지를 꺼내어 바닥에 펼쳤고 옆에 있던 용두 지팡이를 들어 용두 부분을 눌렀다.그러자 놀랍게도 용두 지팡이의 몸체도 명패처럼 깔끔하게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양피지가 나왔다.임지환은 그 양피지를 꺼내 천천히 펼쳤다.순식간에 두 장의 양피지가 합쳐져 하나의 완벽한 지도가 완성되었다.“홍 어르신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네. 과거 용파의 세 가지 보물에 진짜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네.”임지환은 완성된 지도를 보며 평소에 보기 드문 흥분한 감정을 드러냈다.“이건 아마 용파 보물창고의 지도일 거야. 그 창고 안의 보물들만 해도 가치가 조 단위를 넘나들 거야. 옛날 전쟁으로 인해 용파가 천문과 청파 두 세력으로 나뉘었지. 영룡반지는 아마 청파의 손에 있을 거야. 기회가 되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어.”잠시의 흥분을 뒤로하고 임지환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보물창고의 지도는 손에 넣었지만 영룡반지가 없으면 보물창고에 도착해도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다.“나 원 참, 천문 문주 강진수가 이 용두 지팡이의 가치를 모를 줄이야.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기회를 놓쳤다는 걸 알면 분명 땅을 치며 후회할 거야.”임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진수가 참 한심하다고 비웃었다.임지환은 양피지 두 장을 조심스럽게 접어 상자 맨 안쪽에 넣었다.그 후, 다시 용두 지팡이와 흑룡령을 원래대로 복구했다.이 두 보물은 도대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원 상태로 합쳐놓으니 틈새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막 이 모든 작업을 마치자 문밖에서 양서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환, 자고 있어? 아까 위준우에게 전화가 왔어. 병원에 가서 자기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임지환은 흑룡령을 상자에 넣고 상자를 침대 밑으로 깊숙이 밀어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그 녀석이 생각보다 똑똑하네. 너에게 전화해서 대신 부탁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