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랑의 시체가 가까이에 보란 듯이 누워 있었고 장천은 그 시체를 보며 멍청하게 죽음을 자초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속으로 결심했다.“그래도 난 임지환이 양 팀장에게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김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걱정 마.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임지환이 감히 무슨 짓을 하겠어? 진짜 양 팀장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이 목숨을 걸고라도 임지환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장천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용은 저택 넓은 객실 내.촤악...임지환은 아무 망설임 없이 양서은의 정장 재킷을 찢어버렸다.순간, 한 줄기 눈 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하얗고 매끄러운 몸과 풍만한 가슴선이 임지환의 눈앞에 드러났다.양서은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임지환은 그 황홀한 광경에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이 순간, 임지환의 눈은 샘물처럼 해맑았고 양서은의 팔에 꽂혀 있던 은침들을 하나씩 뽑아냈다.그 순간, 양서은의 팔에서 짙은 검은 선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임지환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양서은의 온몸에 침투된 독은 임지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임지환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에서 상자를 가져와 그 안에 있는 포장을 천천히 열었다.안에는 18개의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은침이 들어 있었다.“오랜 친구들, 이번에도 너희한테 신세를 지게 되는구나.”임지환은 은침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양서은이 깨어 있었다면 아마도 이 장면을 보고 화산처럼 분노하다가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임지환에게 있어 은침의 매력이 어떤 매혹적인 여자보다도 더 강력했다.지금 임지환의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전혀 없었다.침을 뽑고 침을 놓는 동작은 거의 순간적인 차이로 마치 절정에 다다른 예술처럼 완벽했다.18개의 은침 중 임지환은 9개의 가는 침만을 꺼냈다.그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은침들은 임지환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양서은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원망과 증오가 가득 찬 눈빛으로 임지환을 바라봤다.이 모습은 평소와는 다른 묘한 매력을 풍겼다.“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네 옷을 찢은 건 단지 침을 놓기 편하게 하려고 한 것뿐이야.”임지환은 일어나서 양서은과 눈빛을 마주치며 말했다.“내가 진짜 뭔가 하려고 했다면 네가 저항할 수 있었을 것 같아?”양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했다.“이번 한 번만 네 말을 믿어줄게. 계속 해 봐.”양서은은 속으로 임지환의 눈을 파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화를 누르고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양서은은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난 지금 오른쪽 어깨가 따끔거리고 있음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네 치료가 끝나면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할게.”임지환은 유유히 말문을 열었다.“당연하지,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 내가 굳이 귀띔할 필요도 없겠네.”임지환의 해맑은 눈빛을 보지 않았다면 양서은은 이 남자가 일부러 자기를 놀리는 게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양서은은 자기가 모든 남자를 홀릴 수 있는 절세 미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여성스러운 매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그런 양서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앞에서 이런 수모를 겪었다.‘나쁜 놈, 설마 내 매력이 부족한 건가?'양서은은 이를 악물며 속으로 뭔가 굳게 다짐했다.“아야! 좀 살살해!”상처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양서은은 깜짝 놀라 눈물이 맺힌 채로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임지환을 바라봤다.보통 남자라면 이런 야릇하고 애교가 섞인 목소리에 온갖 상상을 하며 흥분했을 텐데 임지환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러고는 상자에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 양서은의 보기만 해도 끔찍한 상처 위에 가루를 뿌렸다.“이게 뭐야?”양서은은 얼떨떨해졌다. 이 가루는 누르께한 황토처럼 보였고 딱히 약 같아 보이지 않았다.“약이야.”임지환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는 침을 놓기 시작했다.“이게 약이라고?”양서은은 콧방귀를
양서은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네 생각엔 누가 내통자일 것 같아?”“내가 신선이라도 되는 줄 아나?” 임지환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내가 누구일 것 같다고 해도 넌 안 믿을 거잖아. 그러니 내통자를 찾는 일은 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지.”그 말을 듣자 양서은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어서 옷 입고 나가. 네 부하들이 내가 뭐라도 할까 봐 다급해서 이 저택 부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임지환은 침실로 돌아가 상자를 제자리에 두고는 외투 하나를 집어 들어 양서은에게 던졌다.양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받아 입었다.“오늘 일은 비밀로 해. 바깥에서 오늘 이 일에 관한 소문이라도 들리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양서은은 이를 악물고 임지환을 위협했다.“걱정 마. 나도 오해받고 싶지 않거든.”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순진한 표정으로 웃어넘겼다.양서은은 이런 태도에 화가 나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날 이렇게 무시하는 거지?'“그럼, 잘 있어.”양서은은 딱딱한 목소리로 작별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쿵!바로 그때, 갑자기 저택의 문이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고 강제로 열렸다.수사국 직원들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와 양서은을 둘러쌌다.“팀장님, 괜찮으세요?”“팀장님,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나요?”다들 양서은을 둘러싸고 일제히 질문을 쏟아냈다.“밖에서 기다리라 했잖아. 왜 마음대로 들어온 거야?” 양서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부하들을 나무랐다.“양 팀장님, 걱정돼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팀장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제가 병원에 연락해서 더 자세한 검사를 받으시라고 예약했어요.”김준은 양서은의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필요 없어. 임 대사가 이미 독을 풀어주셨어.”양서은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주운재의 시신을 강한시 분국으로 옮겨. 나중에 내가 주운재의 가족에게 연락할 거야. 오늘 모두 고생 많았으니 돌아가 일찍 쉬어.”양서은은 피곤기
양서은은 그 말에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이 남자는 정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이 정도 급의 별장이면 문 하나에 400만 정도는 합리적이네. 하지만 난 지금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어. 나중에 시간이 나면 직접 돈을 가져다줄게. 그래도 돼?”양서은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이렇게 해결해도 될까?”“양 팀장이 나와 약속했으니 나야 당연히 괜찮지. 네 인품을 믿을게. 날 실망하게 하지 마.”임지환은 호탕하게 웃으며 동의했다.“다들 멍하니 뭐해? 얼른 나가! 너희들 때문에 창피해 죽겠네. 이런 말썽이나 일으키고 말이야!”양서은의 호통에 직원들은 싸움에서 진 닭처럼 고개를 떨구고 풀이 죽은 상태로 마지못해 별장을 떠났다.“임 대사, 우리 언젠가 또 보게 될 거야.”양서은은 떠나기 전 임지환을 힐끗 쳐다보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듯했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팀장님, 저 임지환이라는 자식 분명히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거예요. 그 대문 수리비로 진짜 400만을 주시면 완전 봉 되는 거 아니에요?”별장을 나와서도 김준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김준은 기어코 양서은의 심기를 건드려 양서은은 화약통에 불이 붙은 듯 단번에 폭발했다.“네가 그걸 말할 처지야? 내가 밖에서 대기하라고 했어? 안 했어? 꼭 문을 부수고 들어와야겠더냐? 임지환이 돈을 요구한 게 차라리 다행이지. 진짜로 큰 문제 삼고 우리를 골탕 먹이려 했다면 민간 재산을 파괴한 혐의로 신고해 국장님이 직접 나서서 너희를 감싸줘야 할 상황이었을 거야. 알겠어?”양서은은 참지 못하고 억누르던 화를 전부 쌍욕으로 분출했다.양서은의 분노 섞인 질책을 처음 경험한 김준 일행은 쪼그라든 채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됐고 주운재의 시신을 잘 수습해서 장례식장으로 옮겨.” 마침내 양서은도 지친 듯 손을 휘저으며 지시를 내리고 주차된 곳으로 걸어갔다.“다들 팀장님
그동안 진대하는 위씨 가문을 위해 줄곧 껄끄러운 일을 해결해 왔다. 사람을 죽이는 것쯤은 진대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일이었다.“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이번엔 내 역린을 건드린 중대한 일이야. 내가 직접 그놈 숨통을 끊어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눈치 없는 병신같은 놈들이 계속 이런 무모한 짓을 할 거란 말이야!”위준우는 분노를 전부 쏟아낸 후에야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진대하 당신이 너무 오래 쉬어서 손이 근질근질한 것도 알겠어. 근데 그 임지환이란 놈은 아직 그럴 자격이 안 돼.”“저도 항상 조용히 지내왔지만 그 ‘임 대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임지환은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무술 대가를 죽였다고 하더군요. 실력은 상당히 강하답니다. 만약 소문대로 실력이 뛰어난 강자라면 한번 겨뤄보고 싶군요.” 진대하는 입술을 핥으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좋아,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네가 옆에 있으니 걱정할 것 없겠군. 게다가 우리 아버지가 강한시에서 쌓아 놓은 인맥도 있잖아. 그놈을 진짜 죽인다 해도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할 수 있겠어?”위씨 가문은 당장 강한시로 발걸음을 돌리기로 결심했다.다음 날 아침.임지환은 이청월에게 전화를 걸어 대문을 고칠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반 시간도 안 돼 이청월은 차를 타고 용은 저택에 도착했다.“생각보다 빨리 왔네. 수리공은?”임지환은 편안한 셔츠에 슬리퍼를 신은 채 다소 흐트러진 모습으로 물었다.“웃기고 있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전화하면 나더러 어쩌라고? 수리공은 아직 출근도 안 했어.” 이청월은 커다란 하얀 봉지를 들고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아침밥을 챙겨왔어. 뜨거울 때 얼른 먹어.”이청월은 손에 든 흰 봉지를 거실 식탁에 내려놓고는 하품했다. 딱 봐도 이청월은 자다가 임지환의 전화를 받고 억지로 깨어난 듯했다.임지환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럼... 방에 가서 좀 더 자고 와.”“어머, 너 그래도 양심이란 게 있구나.
“전에도 말했잖아. 이 일은 네가 직접 조사해야 한다고. 난 그저 방향만 제시해 준 거지. 그 외엔 나랑 상관없어.”임지환은 말을 마치고 두유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너에게 도움을 바라는데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 어젯밤에 네가 나한테 한 짓도 눈 감고 그냥 넘어가 줬잖아. 넌 남자잖아. 볼 것 못 볼 것 다 봤는데 너도 뭔가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양서은은 턱을 괴고 눈을 깜빡이며 임지환을 바라보았다.성숙한 매력을 풍기는 여자가 갑자기 애교를 부리니 가히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임지환은 양서은의 애교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서 두유를 뿜을 뻔했다.“콜록, 콜록...”임지환은 몇 번 기침하고 나서야 말했다. “밥은 마음대로 먹어도 말은 함부로 뱉으면 안 되지. 그건 네 해독을 위해서였지 일부러 네가 불쾌할 만한 짓을 한 건 아니잖아.”“의도적이든 아니든 어쨌든 넌 내 은밀한 모습을 다 봤잖아.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명예야, 안 그래?”양서은은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한테 안 알려줄 거야?”양서은은 오늘 일부러 검은색 무테안경을 쓰고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용은 저택을 방문했다. 그리고 정장 안에는 셔츠를 받쳐 입었고 가까이서 보면 분홍색 속옷도 어렴풋이 보였다.임지환은 넌지시 정장 안을 바라보다가 잠시 방심해 그만 실토하고 말았다. “내 추측으론 부팀장 장천이 내부자일 가능성이 커.”“말도 안 돼! 장천은 우리 수사팀에서 가장 오래 있은 사람이고 공도 수없이 많이 세웠어. 그런 베테랑이 어떻게 내통자일 수 있겠어?”양서은은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네가 물어봤으니까 성의껏 말해준 거야. 근데 안 믿으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임지환은 기지개를 켜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증거는?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면 말이 안 되잖아.” 양서은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따졌다.“그 사람이 제일 오래된 베테랑이
하지만 위준우가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양서은을 놓아주지 않을 줄은 그녀의 예상밖에 있었다.“내가 오늘 여기 오지 않았으면 내 여자를 외간 남자에게 빼앗기고도 헤헤 웃으며 살았겠네.”위준우는 냉소를 지으며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 위 도련님의 여자를 감히 건드리는 자가 있을 수 없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랑 임지환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양서은은 큰 소리로 질책하며 단호히 부정했다.“내가 귀머거리인 줄 알아? 방금 네가 한 말, 다 들었어.”위준우는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저 임지환이라는 놈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지금 당장 어젯밤 일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해 봐.”“결백한 자는 저절로 결백하다는 게 증명되는 법이야. 네가 믿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게다가 난 애초에 너에게 해명할 이유도 없어.”양서은은 장천을 바라보며 한기가 넘치는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장천, 네가 우리 팀의 내통자라니... 난 아직도 믿기지 않아.”“양 팀장,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증거도 없이 이렇게 사람을 모함해도 되는 겁니까?”장천은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 내가 위 도련님에게 양 팀장과 임지환 사이가 부정한 관계라고 고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날 내통자라고 모함하려는 건 아니겠죠?”이 교활한 여우 같은 놈은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역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헛소리하지 마. 나랑 임지환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양서은은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가슴도 덩달아 요동쳤다.“내가 헛소리한다고요? 어제 일은 모든 팀원이 다 봤는데도 발뺌하려는 겁니까?”장천은 두 손을 펼치며 잃을 게 없어 무엇도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넌 일단 나와 함께 돌아가서 네 상황부터 명확히 조사해 보자.”양서은은 앞으로 나가 장천을 잡으려 했다.“서은 씨, 진정하세요.”하지만 등이 굽은 진대하가 슬쩍 장천 앞을 막아섰다.“진대하, 지금 뭘 하려는 거야?”양서은은 눈
진대하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구부정한 몸은 높은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마른 체형의 노인이 이렇게 강력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기운에 압도된 사람들은 숨조차 내쉬기 힘들었다.“종현이라면 10년 전 강북 무술 연맹의 맹주잖아. 국제 수사국의 기록에 따르면 그 사람은 거미줄 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양서은은 진대하의 폭탄 발언에 깜짝 놀랐다.“양 팀장,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군요. 국제 수사국 사람들은 미제 사건들을 전부 거미줄 조직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습관이 있는 걸 모르나요? 양 팀장이 해결한 사건 중 일부도 사실 이런 방식으로 해결한 겁니다.”장천은 양서은이 순진하다고 비웃으며 국제 수사국의 내막을 폭로했다.“설마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양서은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줄곧 믿어왔던 중요한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했다.양서은은 국제 수사국 내부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더럽고 어두운 진실이 숨어 있을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됐어, 너희 수사국 내부의 하찮은 일에는 관심 없어. 내가 온 이유는 딱 하나, 이 임지환이라는 놈을 폐인으로 만드는 것뿐이야.”진대하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쌀쌀한 눈빛으로 임지환을 빤히 노려봤다. 탁해 보였던 진대하의 눈이 갑자기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났다.“진대하, 얼른 끝내. 난 빨리 돌아가서 잠이나 보충해야겠어.”위준우는 하품하며 느긋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도련님.”진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제게 몇 분만 주십시오. 반드시 저 녀석을 도련님 앞에 무릎 꿇게 하겠습니다.”“나이 들면 괜히 허풍만 늘어나는 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다 그딴 허풍으로 버틴 거야?”임지환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이거 정말 웃기네. 진대하가 허풍 친다고 생각해? 네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한 건지 이내 알게 될 거야.”위준우는 냉랭하게 웃으며 임지환을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하듯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