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랭킹 2위의 암살 조직, 거미줄 조직.이 암살 조직은 규모가 엄청나서 조직원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고 모든 암살자를 합치면 대략 3천 명에서 4천 명 정도가 된다.“이거 참, 날 곤란하게 만드네. 내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렇게 거대한 암살 조직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 같아?”임지환은 냉소를 지으며 진태양이 헛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저는 임 대사가 그 조직을 멸망시켜 주실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에 임 대사가 용수의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용수의 사람이라면 아마 탐랑에 대해 말씀드렸을 겁니다. 제 부탁은 간단합니다. 바로 그 탐랑을 잡아서 제 아들의 생사를 그놈의 입에서 알아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진태양이 실질적인 목적을 드러냈다.결국 진태양이 노린 진짜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이 일이라면 내가 약속할 수 있어. 만약 네 아들이 그놈 손에 죽었다면 내가 그놈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 아들이 그놈에게 죽은 게 아니라면 내가 이 일 때문에 일부러 귀찮은 일에 휘말려 들지는 않을 거야.”임지환은 진태양의 상황에 동정심이 들긴 했지만 곤경에 빠진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그저 한 번 만난 사이에 불과한 사람을 위해 굳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안심하세요. 저는 그저 제 아들의 생사만 알고 싶을 뿐입니다.”진태양도 인간관계에서 과도하게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임지환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큰 은혜였고 더 이상 뭔가를 바란다는 건 과분한 욕심이었다.“너도 너무 낙담하지 마.”임지환은 진태양을 한 번 쓱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별로 손해 볼 일 없이 네 아들을 구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구해낼 수 있어.”“임 대사, 정말입니까? 만약 정말 제 아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저 진태양은 자존심을 다 버리더라도 반드시 천문과 임 대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겠습니다.”진태양은 감격에 겨워 떨리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임지환이 여자에게 이유를 물었다.“이번에 당신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우리 수사에 협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양서은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방문의 목적을 드러냈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자 임지환은 양서은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비록 몸에 딱 맞는 셔츠를 입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서은의 풍만한 가슴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게다가 기다랗고 늘씬한 다리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완벽한 몸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난 지금 바빠서 당신들의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시간 없어요.” 임지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양서은은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 남자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거절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저는 이번에 임무를 받아서 찾은 거예요. 미안하지만 우리 수사에 협조해 주길 바래요.”“당신 수사국 사람들이 남한테 부탁할 때 원래 이렇게 건방진 태도로 하는 겁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무슨 불법 조직이라도 건드린 줄 알겠네요.” 임지환은 차 앞에 기대어 빙그레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이봐, 말조심해! 양 수사관이 직접 온 것만 해도 네게 충분히 큰 배려야.”“허청열이 그렇게 강력히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너 같은 녀석은 이 일에 끼어들 자격조차 없었을 거야.”양서은 뒤에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큰 소리로 협박하기 시작했다.“됐어, 적당히 너희들.” 양서은이 직원들을 제지했다.“임 선생님, 방금 제 부하들이 한 말을 들으셨을 거예요. 제가 여기 온 건 전적으로 허청열의 추천 덕분이에요. 당신이 이미 허청열과 한 약속이 있으니 우리 수사에 전력을 다해 협조해야지, 여기서 일부러 폼을 잡고 있으면 안 되죠. 제 말이 틀렸나요?”비록 부탁하는 입장이었지만 양서은의 기고만장한 자존심은 뼛속까지 깊게 박혀 있었다.임지환은 양서은을 한 번 쓱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당신이 뭔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것 같네요. 난 그저 탐랑
임지환은 더 이상 이 여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천천히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자 뒤에 있던 직원들은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거기 서!”양서은이 앞으로 뛰어와 임지환의 길을 가로막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임지환은 양서은의 가슴이 거의 자기 얼굴에 닿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왜? 나랑 같이 자고 싶어?” 임지환은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말투로 비꼬았다.“너...”양서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억지로 억누르고 차갑게 웃었다. “넌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내가 왜 어리석지?” 임지환은 그 말에 웃으며 물었다.“네가 대사인 건 맞지만, 이번에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인물은 거미줄 조직에서 세 번째로 랭크된 골드 킬러야. 게다가 이 인물은 우리 국제 수사국 내부에서도 S급으로 분류된 지명 수배자야. 이 인물의 무술 실력이 너보다 한참 우위에 있는 건 물론이고 이 인물이 속한 거미줄 조직엔 대사급 무사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숨어 있어. 만약 네가 우리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암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거야.”양서은은 한꺼번에 자기 패를 다 까고 나서 팔짱을 끼고 임지환을 바라보았다.“그 자식이 날 암살하러 온다고?”임지환은 그 말을 듣고 멈칫하다가 물었다.양서은은 임지환이 자기 말에 공포감을 느끼는 줄 알고 예쁜 눈 속에 자부심이 살짝 스쳤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응.” 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그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너 뭐 하는 거야?”양서은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그 녀석이 날 암살하러 올 거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너희와 협력하면 그 녀석이 경계심을 가지고 모습을 감출 게 뻔하지 않겠어? 허청열의 면목을 봐서 좋은 말로 충고하는데, 어서 우리 집에서 나가. 그 탐랑인지 뭔지 하는 놈이 이 모습을 본다면 암살 대상이 너희로 바뀔지도 몰라.”임지환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으며 말하고 계속 걸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그렇게 숨어 있어? 널 기다리다가 목이 빠질 뻔했어.”임지환은 마당을 쓱 훑어보며 어둠 속에 대고 홀가분한 말투로 가볍게 말했다.“이 녀석이 혹시 몽유병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한밤중에 왜 마당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거지?” 대문 밖 풀숲에 숨어 있던 수사국 직원들은 이 장면을 보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리둥절해했다.“임지환이 몽유병이 있는 건 아니야.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한 것 같아. 설마... 탐랑이 정말 온 건가?”양서은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돌았고 곧장 풀숲에서 나가 상황을 묻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펑!바로 그 순간, 갑자기 마당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거대한 연막이 뿜어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임지환의 모습이 그 연막 속에 잠겼다.“이건 미혼연이야! 탐랑이 드디어 나타났어! 임지환은 너무 자기 실력을 믿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했어. 대사급 강자라 해도 이 미혼연을 마시면 한동안 전투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어. 다들 눈 똑바로 뜨고 있어. 이제 우리가 나가서 구출할 차례야.”양서은은 배낭에서 방독면을 꺼내 쓰고 곧장 마당 안으로 뛰어들었다.“너 빨리 나가, 여기서 말썽부리지 말고!”마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임지환의 목소리가 양서은의 귀에 들려왔다.“너... 왜 아무렇지도 않지?”양서은은 소리를 듣고 위치를 파악했고 재빨리 임지환의 옆으로 이동했다.하지만 양서은을 경악하게 만든 건 연기 속에서도 임지환은 중독된 기색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이 정도 독 연기는 나한테는 그냥 아이들 장난에 불과해. 그것보다 너 자신과 부하들부터 먼저 챙기는 게 좋을 거야.”임지환은 말을 마치고 시선을 멀지 않은 풀숲 쪽으로 돌렸다.“으악!”바로 그때, 풀숲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비명이 양서은의 귓가에 울렸다.“큰일이야, 탐랑의 범을 산으로부터 유인하는 계책에 걸렸어!”비명을 듣는 순간, 양서은은 바로 자기가 탐랑의 손에 놀아났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양서은이 허겁지겁 팀원을 구하러 가려고 하는 순간,
바로 그때,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땅을 뚫고 나왔다.눈만 드러낸 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튀어나와 단도를 들고 임지환을 찌르려고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오래 기다렸어, 어서 와.”갑작스러운 기습에도 임지환은 전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임지환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번개 같은 속도로 두 손가락을 뻗었다.까닥...서슬퍼런 빛을 내뿜던 단도는 임지환의 손가락 앞에서 진흙으로 만든 것처럼 너무나 쉽게 부러지고 말았다.“뭐야?”검은 옷의 자객은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하여 저도 몰래 말이 새어 나왔다.임지환이 자기가 설치한 미혼연에 중독되지 않은 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하지만 임지환은 자객의 반응을 무시한 채, 손가락을 칼처럼 사용하여 그의 가슴을 정확히 찔렀다.그 순간, 임지환의 눈에 잠깐 혼란스러운 빛이 스쳐 갔다.펑!예기치 못한 손가락 공격에, 검은 옷의 자객은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이놈, 뭔가 수상한데...”임지환은 자기 손가락에 맞아 날아간 자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임지환, 저쪽에 저격수가 있어!”임지환이 누워있는 자객을 잡아 일으켜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는 찰나, 양서은이 갑자기 뛰어와 소리쳤다.“가슴 크면 머리에 든 게 없다고 하더니, 딱 너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임지환은 양서은의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힐끗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혼잣말로 중얼댔다.그러고는 다시 손을 뻗어 은침을 하나 꺼냈다.“이런 상황에서 나와 성희롱할 기분이 나냐?”임지환의 시선을 느낀 양서은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펑!하지만 양서은의 말에 돌아온 건 임지환의 대답이 아닌 어둠을 가르는 둔탁한 총소리였다.임지환은 총소리가 나자마자 빠르게 손목을 살짝 흔들어 손에 숨겨둔 은침을 던졌다.슉!이내 아까 양서은에 눈앞에서 번뜩이던 은빛 광채가 다시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은빛 광채가 빠르게 날아가며 총알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막아냈다.이번엔 양서은의 운이 좋았다. 그 총알은 양서은의
날렵한 칼날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서늘한 빛을 담아 임지환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미혼연이 효과를 발휘했나 보구나. 이 녀석, 방어조차 하지 않다니.”임지환이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은발 남자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슉!하지만 남자의 긴 칼이 내려오기 직전, 임지환이 그의 예상을 깨고 몸을 움직였다.임지환은 천천히 손을 뻗어 허공을 가르듯이 휘둘렀다.순간, 은빛 광채가 은발 남자의 눈앞을 스쳐 갔다.쨍그랑...다음 순간, 남자의 몸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렸고 손에 들고 있던 긴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뚝, 뚝...시뻘건 피가 남자의 이마에서 빗방울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남자는 어렵게 손을 들어 이마에 박힌 은침들을 빼내려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결국 남자는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고 피가 금세 땅을 붉게 물들였다.임지환은 반쯤 웅크린 채 쓰러진 남자의 모습을 관찰했다.그때, 양서은이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달려왔다.“네가 이렇게 쉽게 탐랑을 해치우다니, 내가 널 과소평가했구나.”양서은은 은발 남자의 시신을 검사한 뒤, 경멸에 찬 눈빛으로 임지환을 바라보던 태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양서은 뒤를 따르던 남자 직원들은 임지환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목격한 뒤, 함부로 세 치 혀를 놀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죽은 사람이 탐랑이라고? 누가 그랬어?”임지환은 돌아서서 양서은을 비웃으며 물었다.“우리는 탐랑을 3년 동안 추적해 왔어. 재가 되더라도 난 탐랑을 알아볼 수 있어. 이 죽은 사람이 바로 탐랑이야. 틀림없어!”양서은은 확신에 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너희 국제 수사국의 수사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이런 놈은 나뿐만 아니라 아무 대사나 와도 식은 죽 먹기로 죽일 수 있을 거야.”임지환은 냉랭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양서은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어질어질해진 머리를 흔들며 중얼댔다. “그럼... 우리가 지금껏 확보한 정보가 다 가짜였던 거야?”“아니, 대부분은 진짜였을 거
이 뜨거운 감자는 다시 그들에게 되돌아왔다.수사국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빠졌다.누구도 팀장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게 뻔했다.만약 임지환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연 이 상황을 책임질 수 있을까?부팀장 장천은 양서은의 상처를 확인한 후 임지환이 결코 과장된 주장을 펼치지 않았음을 알아챘다.그래서 장천은 미안함이 묻은 말투로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임 선생님, 방금 김준도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 말실수한 겁니다. 넓은 기량으로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김준아, 어서 임 선생님께 사과드려!”“부팀장님, 제가 좀 관심이 지나쳐 말실수를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김준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닥쳐! 임 선생님께서 양 팀장이 중독됐다는 걸 알아챈 이상 분명 해결책도 있을 거야. 양 팀장이 죽는 걸 넋 놓고 보고만 있을 거야?”장천은 화난 목소리로 김준을 꾸짖었다.“그건...”김준은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잠시 침묵을 지킨 김준은 결국 이를 악물고 임지환에게 사과했다.“임 선생님, 아까는 제가 경솔했습니다. 제발 화를 푸시고 절 용서해 주십시오.”“내가 널 용서하지 않았다면 넌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웠을 거야.”임지환은 쌀쌀한 눈길로 김준을 흘겨본 후, 이내 양서은에게 다가갔다.탁!임지환은 사람들 앞에서 은침을 꺼내 양서은의 팔에 꽂았다.그러자 양서은의 팔에서 흘러내리던 검은 피가 순식간에 멈췄다.“이건 은침이잖아요! 제 예상이 맞았군요. 임 선생님, 역시 의술이 뛰어나시군요.”임지환의 능숙한 침술에 장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임지환의 설명을 듣자 장천의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다.“너무 일찍 안심하지 마. 너희 팀장 체내의 독은 보통 독이 아니야. 방금 난 단지 출혈을 막은 것뿐이야. 체내에 깊숙이 들어간 독을 전부 제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침을 놓은 후에도 임지환의 표정은 조금도
탐랑의 시체가 가까이에 보란 듯이 누워 있었고 장천은 그 시체를 보며 멍청하게 죽음을 자초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속으로 결심했다.“그래도 난 임지환이 양 팀장에게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김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걱정 마.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임지환이 감히 무슨 짓을 하겠어? 진짜 양 팀장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이 목숨을 걸고라도 임지환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장천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용은 저택 넓은 객실 내.촤악...임지환은 아무 망설임 없이 양서은의 정장 재킷을 찢어버렸다.순간, 한 줄기 눈 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하얗고 매끄러운 몸과 풍만한 가슴선이 임지환의 눈앞에 드러났다.양서은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임지환은 그 황홀한 광경에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이 순간, 임지환의 눈은 샘물처럼 해맑았고 양서은의 팔에 꽂혀 있던 은침들을 하나씩 뽑아냈다.그 순간, 양서은의 팔에서 짙은 검은 선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임지환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양서은의 온몸에 침투된 독은 임지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임지환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에서 상자를 가져와 그 안에 있는 포장을 천천히 열었다.안에는 18개의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은침이 들어 있었다.“오랜 친구들, 이번에도 너희한테 신세를 지게 되는구나.”임지환은 은침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양서은이 깨어 있었다면 아마도 이 장면을 보고 화산처럼 분노하다가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임지환에게 있어 은침의 매력이 어떤 매혹적인 여자보다도 더 강력했다.지금 임지환의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전혀 없었다.침을 뽑고 침을 놓는 동작은 거의 순간적인 차이로 마치 절정에 다다른 예술처럼 완벽했다.18개의 은침 중 임지환은 9개의 가는 침만을 꺼냈다.그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은침들은 임지환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