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도길이 전포 앞에 서서 임지환을 막아섰다.“따웅!”도길은 호랑이의 포효와 용의 울음소리 같은 웅장한 외침을 내질렀고 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전부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았다.금빛으로 휘감긴 도길의 주먹이 임지환의 가슴을 향해 맹렬히 내리쳤다.왜소해 보이는 노인이 이 순간 발산한 주먹의 기운은 굉장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켜 임지환의 옷을 펄럭였다.정신을 차린 임지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체내의 영기를 전력으로 운용해 바로 주먹을 내질렀다.대종사 경지의 무사를 상대할 때 임지환은 어떤 기술도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필요한 건 단 하나, 오직 더 강한 힘으로 강하게 상대방을 눌러야 하는 것이었다.쾅!두 주먹이 맞부딪치며 폭발한 기류는 10급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류를 뿜어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 다들 오감이 잠깐 사라진 듯했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머릿속 생각조차 느릿느릿 돌아가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런 기묘한 느낌은 고작 3초도 지속되지 않았다.쾅!3초 후, 천둥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이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 속에서 원래 절대적으로 우세의 위치에 있던 도길은 임지환의 주먹에 정면으로 가슴을 맞고 끈이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도길 존자가... 패배했다고?”“말도 안 돼! 금강 법체를 가진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다는 거지?”“도길 존자가 대종사 경지에 오른 실력으로도 저자를 이길 수 없단 말인가?”이 장면을 본 나머지 세 명의 존자는 전부 얼굴이 창백해졌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임지환, 무사해서 다행이야!”이청월은 기쁨에 차서 임지환의 옆으로 달려와 와락 끌어안았다.“콜록콜록...”하지만 이청월이 기뻐할 틈도 없이 임지환은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붉은 피가 임지환의 입가에서 흘러나와 이청월의 붉은색 셔츠에 뚝뚝 떨어졌다.“임지환, 무슨 일이야? 날 놀라게 하지 마!”이 모습에 깜짝 놀란 이청월은 울먹거리며 임지
하늘 아래, 마치 모든 것이 그 손바닥 아래에 있는 듯했다.이청월은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져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고 머리도 하얘져서 온몸이 불구가 된 것처럼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이청월을 계속 끌어당기며 단번에 삼켜버리려는 것 같았다!“청월아, 얼른 피해!”생사의 갈림길에서 임지환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이청월을 앞으로 세게 밀어냈다.바로 그 행동 때문에 임지환은 마지막으로 공격을 피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악!”임지환은 큰 소리로 외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산을 뽑아 올릴 듯한 기세로 금강 대수인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쿵...다음 순간, 원자탄이 폭발하는 것 같은 둔탁한 굉음이 용문산 전체를 뒤흔들었다.잠깐 산이 흔들리고 땅이 울리며 산사태가 난 듯했다.어마어마한 규모의 뽀얀 먼지가 주변을 뒤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도길은 이때 손을 거두고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얼핏 보면 도길이 이미 임지환을 제압한 듯 보였다.거대한 진동 속에서 임지환이 멀리 밀쳐낸 이청월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무릎이 돌에 긁혀 피가 흘렀다.진용 역시 난감한 자태로 넘어졌으나 곧바로 헤헤 웃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임지환이 드디어 완벽하게 뒈졌겠네. 유미야, 이제야 네 복수를 이뤘구나!”진용의 얼굴에는 벼르고 벼르던 복수를 끝내 이룬 듯한 기쁨이 가득했다.나머지 세 명의 존자도 안도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임지환!”한편, 이청월은 슬픔에 찬 목소리로 임지환의 이름을 애타게 외쳤다. 어느새 자기 무릎의 상처를 무시한 채, 극심한 고통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임지환 쪽으로 절뚝거리며 간신히 다가갔다.이 짧은 몇백 미터의 거리가 이청월에게는 몇만 미터처럼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쿵...하지만 이청월이 임지환의 곁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바닥에 넘어졌다.“임지환... 너 왜 그렇게 멍청해? 방금 날 밀어내지만 않았다면 넌 분명 이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거야!”강한 자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
하지만 이 정도로도 임지환을 죽일 수는 없었다.도길은 순간적으로 임지환이 밀종의 훈련 비법을 몰래 연습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감히 내 지역에서 임 진인을 건드리다니, 너희들 죽고 싶어 환장했어?”도길이 임지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오리무중에 빠져 있을 때,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명의 인물이 산꼭대기 작은 길에서 빠르게 산골짜기로 돌진해 왔다.천지를 뒤흔드는 소란을 듣고 서둘러 지원하러 온 진운과 오양산이었다.오양산은 도착하자마자 임지환을 자기 몸 뒤에 가려 보호했다. 한편, 진운은 이청월을 일으켜 세우고 멀리서 냉랭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진용을 빤히 노려보았다.“누구인가 했더니, 우리 진씨 가문 얼굴에 똥칠한 배신자구나. 왜? 임지환의 발바리가 되더니 이 형님도 모른 척하는 거야?”동생이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진용은 살짝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곧 진용은 다시 조금 전의 거만하고 쌀쌀한 태도로 돌아왔다. 눈앞의 동생은 이제부터 자기 적이지 절대 한편이 아니었다. 임지환을 죽이려는 자기 계획을 방해한다면 아무리 혈육이라 해도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넌 우리 할아버지도 해치려 했어. 내게 넌 이미 짐승과 다를 바 없어. 그러니 너도 형제의 의리 같은 개소리를 들먹이며 날 속박하려고 하지 마!”진운은 진용의 도발에 분노가 폭발해 주먹을 꽉 쥐었다.“원래는 형제의 의리를 생각해 널 살려줄까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구나. 잘됐네.”진용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전포와 두 명의 존자에게 말했다. “존자님들, 이 두 방해자를 먼저 처리해 주십시오.”“너희 둘은 하나는 내공이 초보자 수준이고 다른 하나는 간신히 대사 경지에 이르렀구나... 이런 얼토당토않은 수준으로 이 혼란에 끼어들다니, 정말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전포는 두 사람을 훑어보고 머리를 살짝 저었다.그러고는 뒤에 있는 두 존자와 눈빛을 교환했다.잠시 후,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한 발짝 내디뎠다.쿵
임지환이 선보인 공법은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주위에 모인 영기는 이미 농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이 장면은 아까 도길이 처음으로 대수인 비법을 보인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도길의 금강 대수인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에 비해 임지환의 이 기술은 너무 평범해 보여 그다지 큰 충격을 자아내지 못했다.“대수인 수련 법결이 없으면 네 기술은 맥락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 하는 우스운 기술에 불과해. 너희 셋은 물러나 있어. 내가 공격할 때 휘말려 들어 다치지 말고.”도길이 세 존자를 물러나게 한 후,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임지환을 보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임지환의 반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인 것 같았다.도길은 원래 임지환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반격을 할지 심히 우려했지만 지금 보니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영기를 아무리 많이 모아봤자 적절한 공격 방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너무 일찍 기뻐하는구나.”임지환은 도길의 생각을 간파한 듯 막 착지하려는 순간, 자기 주위의 영기를 모아 순식간에 날카로운 기검으로 변화시켰다.“영기를 병기로 만들다니? 저건 외팔이 검신 정천곤의 필살기 아닌가? 임 선생님이 언제 터득한 거지?”쓰러진 진운은 바닥에서 일어나 이마의 식은땀을 연신 닦으며 눈앞의 광경에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영기를 병기로 만드는 건 검도의 작은 기술일 뿐입니다.”하지만 오양산은 진운과 달리 많이 봐 온 듯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임 진인의 수련 정도라면 이런 기술을 터득하는 건 식은 죽 먹기죠.”영기를 병기로 만드는 것은 기술에 대한 요구가 높은 비법은 아니어서 대사 경지의 강자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지환이 갑자기 사용하자 도길은 이런 정황을 미리 대비하지 못해 순간 당황했다.임지환이 착지하는 순간, 이 영기를 끌어모아 만든 기검은 도길의 머리를 향해 주저 없이 내려쳤다.그러자 도길은 황급히 팔을 들어 막았다.푸슉...기검은 야들야들한 두부를 자르는 것처
이 기회를 이용해 임지환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계획을 짧은 순간에 짠 것이다.“나를 죽인다 해도 너희들은 여기서 살아남지 못할 거야.”임지환은 이를 악물며 설명했다. “독을 쓴 사람은 따로 있어. 그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거야!”“헛소리하지 마라. 지금 당장 널 죽여주마!”전포는 임지환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깨부수려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전포 역시 아무런 징조 없이 검은 피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털썩...거의 동시에 나머지 두 명의 존자와 오양산도 차례로 바닥에 쓰러졌다.현장에 있는 사람 중, 진씨 형제와 이청월 세 명만이 아무런 이상도 없이 중독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진 도련님, 당신은 왜 아무렇지 않은 거죠?”중독된 채 쓰러진 오양산은 옆에 아무런 이상도 없이 서 있는 진운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다.“도사님, 지금 날 의심하는 겁니까?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아까 그 두 명한테 겁먹고 바닥에 쓰러졌겠어요?”진운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심지어 억울해 보이기까지 했다.“이 독은... 무사에게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해요.”이청월은 잠시 생각한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계집이 결론을 잘못 내렸네. 이 독은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어. 다만... 무술 수련도가 높고 영기를 운용이 활발할수록 독성이 빨리 발현될 뿐이야.”검은 망토를 입고 온몸이 안개에 둘러싸인 키 크고 마른 남자가 산길 위에 나타났다.“너였구나. 3 년 전, 날 포위한 자 중 네가 있었지?”검은 망토 남자가 나타나는 순간, 임지환의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하하, 내가 너와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3년 전, 네가 죽은 척하고 그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결국 3년이 지난 오늘에 나 당준오의 손에 죽게 될 줄은 생각 못 했지?”당준오는 깊은 밤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유령처럼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약을 올렸다.“아까 네가 독을 쓴 거야?” 임
“너도 시간 끌 생각하지 마. 내가 네 주변에 오랫동안 숨어 있으면서 이미 네 능력을 다 파악했어.”당준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네 강한 실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지 않았겠지.”전포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서야 모든 걸 이해하게 됐다.알고 보니... 자기가 억울하게 이 둘의 싸움에 말려든 것이었다.그래서 전포는 얼굴을 굳히며 명령했다. “이건 너와 저 녀석의 개인적인 원한이지 우리와는 상관없잖아. 빨리 해독제를 줘!”“보통 때라면 너희 밀종 사람들을 보면 감히 건드리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너희 생사가 내 손에 달렸으니 여기서는 모든 결정권이 나한테 있어.”당준오는 전포를 쳐다보며 하찮은 사람을 대하듯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준오 씨, 정말 우리 밀종을 적으로 따돌리고 싶은 건가요? 해독제를 고분고분 넘겨준다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임지환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으니 이번 중독 사건은 눈 감고 넘어가 줄게요.”중독된 후 도길의 금강 법체는 이미 해제됐다.지금 도길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숨결도 무척 약해졌다.그러나 그의 말투에는 여전히 고상한 태도가 남아 있었다.“내 기향산은 치명적인 독약이 아니야. 해독제를 먹지 않아도 열흘이나 보름쯤 휴양하면 자연히 회복될 수 있어. 그전까지는 얌전히 여기서 회복되길 기다려. 내가 임지환을 죽이고 나면 자연스레 여길 떠날 거니까.”당준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평소의 당준오 일 처리 스타일이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겠지만 도길을 비롯한 라마들은 천창 밀종의 존자들이라서 당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있는 당준오도 원수로 돌리기를 꺼렸다.그래서 당준오는 먼저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기로 했다.“하하... 정의를 품고 있으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도와주고 그게 아니면 사람들이 떠난다더니 하늘도 날 도와주는구나. 임지환, 오늘이 네가 죽기 딱 좋은 날이야.”진용은 신나서 호탕하게 웃었다.이 상황은 진용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결과였다.두 무리의
칼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쉽게 공기를 갈라냈고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아무리 실력이 뛰어나 임지환이라 해도 중독된 이상 평범한 사람만도 못해.”“자 한 방을 정면으로 받으면 틀림없이 죽을 거야.” 이 광경을 본 밀종의 세 존자는 전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유독 도길만이 눈빛이 순간 미묘하게 변하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임지환이 너무 평온해 보여 아무리 봐도 도저히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슥...당준오의 손이 임지환의 머리에 닿기 직전, 임지환의 기다란 손바닥이 허리를 스쳐 지나 반짝이는 은침 하나를 손에 잡았다.“설마 아직도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을 남겨둔 건가?”임지환이 은침을 꺼내자 당준오는 순간 경계심을 느꼈다.하지만 당준오는 공격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위잉...당준오의 손이 임지환의 머리에서 단 한 척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멈춰버렸다.“왜 멈췄어? 빨리 이 기회에 임지환의 대갈통을 박살 내!” 진용이 그 모습에 짜증 나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밀종 존자들도 어리둥절해하며 당준오가 무슨 속셈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당준오는 음산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이를 갈며 말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안 죽이려는 게 아니라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는 거야!”말을 마치고 당준오는 모든 기력을 모아 다시 임지환의 머리로 손바닥을 내리쳤다.쾅!다음 순간, 둔탁한 폭발음이 들렸다.거대한 음파가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아무런 대비가 없던 당준오는 그 충격으로 바로 뒤로 날아갔다.펑!당준오는 그대로 날아가 이청월의 빨간 페라리에 부딪혔고 순간 엔진 후드가 심하게 찌그러졌고 차 유리도 강한 충격으로 산산조각 났다.수억 원짜리 스포츠카가 당준오의 충돌로 폐차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진용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임지환이 중독된 상황에서
붉은 피가 당준오의 이마에서 분수처럼 솟구쳤다.쿵!당준오의 몸이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고 못내 아쉬운 듯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숨을 거두었다.“이제 너희들 차례야.”임지환은 몸을 돌려 도길 일행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밀종 존자들은 얼음 창고에 던져진 듯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이런 수를 써서도 저 자식을 죽일 수 없다니. 내 복수가 진짜 불가능한 건가?”진용의 얼굴은 급기야 피 한 방울도 없이 창백해졌다.거대한 공포가 진용과 존자들의 마음속에 퍼져나갔다.다들 이 모든 게 임지환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임지환,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괜한 걱정만 하게 했잖아!”이청월의 표정은 약간 원망스러웠다.“임 진인은 저 사람의 계책을 이용해 새로운 계책을 사용했군요. 제 가슴이 다 철렁했어요.”오양산도 긴 한숨을 쉬며 임지환에 대해 탄복하며 그에 대한 경외심이 마음속에서 더욱 커졌다.“임 선생님, 제가 요즘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아마 방금 그 당준오의 일격에 죽었을 겁니다.”진운은 힘겹게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며 아직도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놈이 진짜 진운 씨를 죽이려 했다면 이놈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기 전에 이미 내 손에 죽었을 겁니다.”임지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임 대사, 정말 교활하기 짝이 없네. 이번엔 우리가 진 걸로 하지. 죽이든지 살리든지 네 마음대로 해!”도길도 이젠 저항을 포기하고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세 명의 존자들도 목숨까지 바칠 마음은 없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도저히 반항할 수 없어 똑같이 체념했다.“난 마음을 바꿨어. 너희를 죽이진 않겠어. 이제 너희는 떠나도 되니까 얼른 가 봐.”임지환이 또 폭발적인 얘기를 꺼냈다.이런 놀라운 얘기를 듣자 존자 네 명은 전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귀를 비비며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오양산은 그 얘기를 듣자 즉시 만류했다. “임 진인, 저 라마들은 밀종의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