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환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고 문밖으로 향했다.그는 모든 일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이 오면 배지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었다."왜 이렇게 급하게 가? 설마 제 발 저린 건 아니지?"진화가 냉소를 지으며 그를 막아세웠다.임지환은 싸늘한 눈빛을 하고 또박또박 말했다."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난 다른 사람 사정 봐주는 습관이 없거든.""어쩌려고? 설마 나 때리려고?""내 힘은 수시로 널 죽여버릴 수도 있어, 믿어?"진화는 임지환을 바라보았고 눈 안에는 도발이 가득했다.임지환은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그전에 감히 그를 도발했던 사람들은 벌써 무덤 위 잡초가 1미터를 넘을 정도다."진 회장, 제 체면을 봐서라도 놓아주세요!"배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흥, 운 좋은 줄 알아!"진화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배지수는 차가운 얼굴로 임지환을 보았다."너한테 아직 미련 있어서 도와주는 거 아니야, 그저 계속 잘못된 길로 가지 말았으면 해서야.""앞으로 우리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거야."차갑고 매정하다!"마음대로 해!"임지환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문밖으로 향해 걸어갔다."지수야, 네 전남편 정말 나쁜 사람이네.""만약 방금 저 자가 손을 썼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진화가 입술을 삐죽거렸다.배지수는 슬픈 얼굴을 하고 말했다."미안해도, 진 도련님.""됐어, 저런 녀석 때문에 큰 인물들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말자."진화는 말을 하면서 틈을 타 배지수의 가녀린 손을 잡으려 했다.배지수는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피했다."죄송해요, 기분이 좋지 않아서.""괜찮아, 이해해."진화의 눈 안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음침한 빛이 스쳐지났다.‘띵!’이성봉과 홍진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뒤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뒤따랐다."이 아저씨, 안녕하세요."진화는 바로 앞으로 나아가 아첨이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너는?"이성봉은 멈칫했다."이 아저씨 기억을 못 하시나 봐요."진화가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임지환이 아니었다면 그가 VIP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을 설명할 수 있었을까?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배지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시장님이 말씀하신 임명의란 분이 혹시 임지환은 아닐까요?”“감히 네 따위가 어떻게 감히 그 높으신 분을 추측하려 한단 말이야?”홍진은 눈살을 찌푸렸다.“죄송해요. 그게 아니고...”배지수는 해명하려 했다.“관계에 의지하려고만 하며 숟가락만 얹을 생각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홍진은 불만스럽게 고개를 저었다.그의 시선에 두 사람은 그저 아첨하며 관계를 타려 하는 사람들이었다.그리고 그가 제일 혐오하는 것이 이런 교활한 사람들이었다.배지수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상급자로부터 오는 압박 때문에 그녀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시장님 진정하세요.”이때 진화가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지수 씨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 거예요.”그도 홍진이 왜 이렇게까지 펄쩌 뛰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아.”“대단한 분이시니 너무 쉽게 입에 올리지 마.”“항상 성실하게 행동해야 하지 언제나 쉬운 길만 걸으려 하면 안 되는 거야.”한바탕 꾸짖은 뒤 홍진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이성봉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뒤를 따랐다.모두가 흩어진 후에야 배지수는 조금씩 긴장이 풀렸고 얼굴에도 핏기가 돌았다.거물들의 아우라에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아까는 너무 대담했어.”“어떻게 시장님의 면전에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거야?”진화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죄송해요. 제가 폐를 끼쳤네요.”배지수는 고개를 숙였다.“괜찮아요.”“진씨 가문의 위상이면 시장님도 더 언급하지 않을 거야.”“그런데... 어떻게 임명의가 너의 남편이라고 생각한 거야?”진화는 코웃음 쳤다.배지수는 멍한 표정으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그래!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임지환이 의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 없었다.게다가 명의라고 불리려면 수년간
“아직 강한시에서 감히 연경 진씨 가문에 맞설 사람이 없을 거야.”진화는 호탕하게 웃었다.“연경 진씨 가문.”배지수의 눈이 반짝였다.홍진과 이씨 가문의 지위가 높다 한들 연경 진씨 가문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연경 진씨 가문이야말로 거대한 존재였다.“걱정하지 마, 그때 꼭 너에게도 초대장을 보낼게.”진화는 정중하게 약속했다.“고마워요.”배지수는 달콤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현했다.이건 절호의 기회였다.만약 연경 진씨 가문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배씨 가문의 앞날이 훤히 빛날 것이다....날이 어두워졌다.한 대의 전용기가 연경에서 출발해 강한시로 향하고 있었다.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긴 머리를 한 젊은 남자가 가죽 소파에 앉아있다.기다란 손가락이 와인 잔을 들고 있었지만, 그는 마시는 것을 잊은 채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가 바로 연경의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 진운이었다.“도련님, 흔치 않은 외출인데 조금 불안해 보이네요?”그것은 그의 옆에 앉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엄숙한 그의 얼굴은 분위기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졌다.“아저씨는 제가 쉬러 간다고 생각하세요?”진운은 손에 든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집안의 손님 접대 전문가인 경천은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제가 알기론 수십조의 그 프로젝트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경천이 대답했다.“단지 그것 때문이라면 내가 직접 갈 필요는 없겠지요.”진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분 때문이에요.”“그분이라면 설마...”경천의 숨소리가 거칠어 졌다.그분은 진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위기를 모면하게 했었다.그는 뛰어난 의술로 진 씨 가문의 어르신을 살리고 외부에 숨겨져 있던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을 해결해 줘 진씨 가문이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했다.그렇게 진씨 가문은 신속하게 성장했고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그분은 진씨 가문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래서 이번에 강한시
임지환은 어르신이 선물한 카드를 출입 통제 장치에 갖다 댔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정원의 크기는 그가 전에 살던 별장보다 훨씬 컸다.바위로 만든 분수, 잘 가꾸어진 꽃밭, 조명 아래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했다.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러움과 모던함이 조화를 이룬 장식이 눈에 띄었다.일상생활에 필요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오락도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하지만 임지환은 관심 없었다. 그의 시선은 정중앙에 놓인 백옥 원형 테이블에 머물렀다.“역시 대지 맥의 눈이네.”임지환은 다가가 주위의 기운을 느꼈다.테이블에 몸을 내린 그는 신기한 인장을 찍었다.기묘한 기가 그의 주위에 모이더니 커다란 안개로 변해 임지환의 몸속을 파고 들어갔다.그리고 그의 경락을 따라 온몸에 퍼졌다.다음 날 아침.임지환은 인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주위를 감싸고 있던 희미한 안개층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그가 눈을 뜨자 황금빛 광채가 번쩍였다.몸 바깥으로 배출된 더러운 기운을 본 그는 재빨리 샤워실로 가 시원한 샤워를 했다.환복한 그는 영양 식단을 만들어 여유 있게 아침 시간을 즐겼다.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는 크고 다급했다.임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여기는 어르신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고 도우미도 없어 이 시간에는 방해가 없어야 했다.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임지환은 다가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화려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 한 분이 서 있었다.그 여자는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레드 색 긴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풍만한 가슴에 아찔한 굴곡을 자랑하는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고 노출된 다리는 가늘고 늘씬했다.그녀는 큰 눈을 반짝이며 임지환을 아래위로 훑었다.“누구시죠?”임지환이 물었다.모르는 여자였다.“당신이 그 전설 속의 임명의 신가요?”“나이가 있으신 줄 알았는데 꽤 젊으시네요?”“단지 외모가 조금 평범하네요.”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무슨 일이죠?”임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다.이것은 그녀의 필살기였지만 통하지 않았다.임지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저 아침에 집중하고 있었다.“벙어리예요?”“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여자는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했다.마침내 식사를 마친 임지환이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그리고 무심하게 물었다.“당신 도대체 누구죠?”“사실 난 이성봉의 딸 이청월이에요.”“내가 뒤끝 작렬이라는 것을 이씨 가문의 모두가 알고 있죠.”“그러니 저를 건드리지 마세요.”거만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당신이 이성봉의 딸이라고요?”“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방면에서는 당신의 삼촌과 다를 바 없네요.”“아이가 바뀐 게 아닌지요?”임지환은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이청월은 분노했다.그녀는 성난 암사자처럼 성큼성큼 다가가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정도껏 해요!”“할아버지를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나에게 말 걸 자격도 없어요.”“별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가...”“어쩔 건데요?”임지환의 눈이 무서운 살기로 채워졌다.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벼락같이 그녀의 귀에서 울려 퍼졌다.순간 날카롭게 변한 임지환은 그녀가 본 그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였다.미쳐 날뛰는 살기로 가득했다!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공포였다.“여기는 어르신이 기어코 선물하신 거예요.”“내가 받아들였으니, 처분권도 나에게 있죠.”“그러니 간섭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은 거예요.”“만약 그렇게 소유하고 싶은 거라면 여기서 귀찮게 굴지 말고 당신 할아버지께 가서 얘기하세요.”그는 한숨에 말을 끝내고 더는 그녀와 말을 섞지 않았다.그는 조용히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뒷모습만 본다면 그는 그저 무해한 가정주부였다.얼굴이 창백해진 이청월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아가씨란 자존심 때문에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두고 봐요!”“연경 진씨 가문의 거물
강한 공항.특별히 개방된 통로에는 검은색 캐딜락 비즈니스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강한 진씨 가문의 일인자 진성이 가족들과 함께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연경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은 진운이었다.그는 매우 대담한 인물이었다.그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8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학식과 지성 모두 우수했다.하여 연경 진씨 가문에서도 그를 후계자로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드디어, 화려한 전용기가 착륙했다.기내 문이 열리자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 진운이 모습을 보였다.그 옆에는 경천이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다.진성은 급히 그를 맞이하며 공손하게 말했다.“강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죠?”진운은 담담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모두 진씨 가문의 사람이들이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진성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진씨 가문은 백 년 전에 연경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많은 세력을 키웠다.진성의 혈통은 원래 진씨 성이 아니었으나 당시 가문의 일인자가 진씨 성을 물려주어 번성하게 된 것이다.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서 연경 진씨 가문은 항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속해 있었다.명령 한 번이면 그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다.그러니 진운의 방문은 강한 진씨 가문에게 중요한 일이었다.가문이 총동원되어 맞이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였다.“도련님, 이놈이 저의 아들입니다.”진성은 진화에게 눈짓했다.진화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안녕하세요. 영광입니다.”“그래.”담담하게 대답하는 진운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예의상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장시간 비행으로 많이 피곤하실 것 같습니다.”“환영 파티를 준비했으니, 호텔로 이동해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진성은 즉시 손을 내밀어 초대의 제스처를 취했다.차량들이 진씨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천호로 이동했다.진운은 진성이
“그들이 이번 일의 중요한 손님이니깐요.”진운이 강조하며 덧붙였다.표정이 바뀐 진성이 곧바로 대답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서둘러 물러갔다.진운은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도련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경천이 물었다.진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직접 그분을 모시고 싶어요.”“진성더러 책임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경천은 그의 움직임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이 일은 반드시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할아버지께서 거듭 강조하셨어요.”“내가 직접 초대하는 것이 성의를 표현하는 거예요.”진운은 휴대폰을 꺼내 그 번호를 눌렀다.용은 별장.방금 작은 기운을 한 바퀴 돌린 임지환이 긴 숨을 내쉬었다.대지 맥의 눈 위에서 수련하는 것은 노력은 적게 들었어도 이루는 공이 그야말로 큰 것 같다.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액정에 뜨는 낯선 번호에 임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통화버튼을 눌렀다.“안녕하세요. 저는 진무한의 손자 진운이라고 합니다.”영리했던 진운은 바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네.”임지환은 담담하게 덧붙였다.“무슨 일이죠?”“일전에 우리는 강한시에 수조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했습니다.”“할아버지는 두 분의 관계를 바탕으로 배씨 가문에 특별히 프로젝트의 일부를 맡기라고 지시하셨습니다.”“내일 저녁, 천호에서 축하 파티를 할 겁니다.”“방금 제가 진성더러 배씨가문에 초대장을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하여 선생께서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진운의 말투는 정중했고 심지어 보잘것없기까지 했다.임지환은 즉시 태도 표시를 하지 않았다.그는 파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지난번 이씨 가문이 초대했던 파티에서도 소란이 생겨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진운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만약 내가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물었다.“선생께서 참석하지 않으신다면 파티는 취소 될 겁니다.”“... 선생께서
다음날, 오후.천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화려한 조명과 화환들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온갖 고급 승용차들이 모여들었다. 오가는 이들은 모두 강한의 엘리트와 상류층이었다.진씨 가문은 수조 원의 프로젝트를 따냈고 여기에서 계약 체결 축하 만찬이 열렸다.수조 원의 프로젝트는 엄청난 금액처럼 들리지만 최고 유명 인사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그들이 여기에 모인 것은 연경 진씨 가문에서 VIP가 참석할 거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그 명성이 어마어마했기에 모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끽!”포르쉐 한대가 멈춰서고 배씨 일가가 차에서 내렸다.오늘 배지수는 연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단아하게 올린 머리 아래에 가느다락 목선이 드러났다. 거기에는 수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아름다운 외모는 조명 아래에서 더욱 매혹적으로 빛났다.유옥진도 한껏 꾸미고 나타나 중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배지수의 아버지, 배전무도 정장을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누나, 여기가 천호야? 너무 고급스러워.”배준영은 한껏 들떠있었고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눈이 분주했다.“우와, 저 사람이 왕 씨 가문의 왕한 맞지? TV에서 본 적 있는데.”“보여? 청공그룹 대표, 고문천?”“그리고 저기, 강한 장씨가문의 장도휘. 몸값이 수조 원에 달한다지?”“...”흥분한 배준영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말했다.모두 TV에서만 볼 수 있던 사람들이다.그런데 여기에서 실물을 영접하게 될 줄이야.느낌이 너무 이상했다.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그에 비해 배지수는 과묵했다.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설레이긴 마찬가지였다.이들 중 어느 가문과 관계를 맺어도 경성은 더 높이 오를 수 있었다.이것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네트워크였다.“오늘 반드시 기회를 잡을 거야.”배지수는 남몰래 맹세했다.“왔어?”근사하게 차려입은 진화가 그들 앞에 서 있었다.“도련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