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보며 무한한 공포를 느꼈다.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받은 문자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야!] 더 괴이한 건, 문자를 보낸 상대가 내 핸드폰에 ‘남편’이라고 저장되어 있다는 거다. 난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까?
View More내 말에 바닥에 있던 남자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파서 이내 숨을 들이켜며 식은땀을 흘렸다.“말하면 허리와 배에 힘이 들어가니까 나머지는 내가 말해줄게.”나는 천천히 진실을 읊었다.“넌 내 남편 이지환이 아니라, 그 사람 동생 이준환이잖아. 그날 지하실에서 죽은 사람이 진짜 이지환이고.”남자는 여전히 꿋꿋하게 허리 부상을 당했음에도 말을 했다.“지... 씁... 지금 뭐라는 거야? 나... 씁... 나 이지환이야.”나는 손뼉을 쳤다.“정말 프로패셔널하네. 그렇게 다쳤는데도 연기하다니. 배우 안 한 게 다 아까울 지경이야.”남자는 여전히 끝까지 부정했다. 그때 내가 그의 허리를 발로 차자 그는 바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멍청하긴. 본인 사원증을 이지환 옆에 놓으면 내가 곧이곧대로 믿을 줄 알았어? 두 사람 쌍둥이라면서 어떻게 이지환이 왼손잡이라는 걸 몰라? 그런데 넌 오른손으로 칼을 들었잖아.”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이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의외네, 그런 사소한 일로 들통날 줄이야.”“맞아, 나 이준환이야.”준환이 자기 정체를 인정한 건 예상했던 바다.그때 준환이 물었다.“언제부터 눈치챘어?”“그날 약 가져다줄 때부터 눈치챘어.”그날 준환은 너무 마음이 조급했다. 나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약을 먹이자마자 은행카드 위치와 비번을 물어보려고 했으니 허점을 보이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나는 그때 남자가 오른손으로 유리 조각을 정리하는 걸 보고 이준환이라는 걸 확신했다.그리고 지하실에 있는 시체는 오른손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건 왼손잡이인 지환만이 가능하다.나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읽었다.“은행 가지 마!”“죽을 거야! 도망쳐!”“그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야!”“이 문자는 지환 씨가 보낸 거야. 네가 날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나서 이런 방식으로 주의를 준 거겠지.”준환은 내 말에 흠칫 놀랐다.“너 누구야?”나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싱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소희도 놀란 듯 뒷걸음쳤다. 보아하니 지환이 자신을 찌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놀라워? 사실 네 아버지도 우리 부모님한테 이렇게 죽었어.”지환은 휴지를 꺼내 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지환의 말을 들은 소희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털썩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바라봤다.“왜?”지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왜냐고? 당연히 돈 때문이지. 난 내 돈 절반을 남한테 나눠주기 싫거든. 그리고 살인 누명을 너한테 덮어씌우면 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소희는 비명을 지르더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지환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나를 내려다봤다.그 순간 한숨이 나왔다.“나도 이젠 죽은 목숨이네? 죽기 전에 당신 계획을 얘기해줄 수 있어? 적어도 알고 죽어야지.”지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시간 끌 생각은 버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니까.”하지만 나는 적어도 알고 죽어야겠다며 계속해서 계획을 말해달라고 애원했다.지환도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동안 나한테 조금이라도 정이 들었는지 결국은 동의했다.“그래.”지환은 바닥에 앉아 천천히 자기 계획을 말해주었다. 지환은 사실 내가 퇴원하자마자 죽이려 했는데 그때 내가 기억을 잃었던 거다.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은 기억 잃은 여자는 단번에 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그러다가 나와 결혼하면 가족이 다음 생까지 먹고 사는 건 걱정할 필요 없을 테고, 옆에 두고 기억이 돌아오나 감시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다.사실 지환은 나와 평생 함께 살 생각이었다. 내가 고모의 재산을 상속받기 전까지는.그 방대한 유산에 가족은 순간 금이 갔다.지환이 유산 절반을 독식하려 하자 동생 준환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싸운 날 밤, 지환은 몰래 준환의 방에 들어왔다. 하지만 돈을 나누지 않으면 그때 일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준환의 말에 지환은 화가 나서 칼로 그를 죽여버렸다.여기까지 들으니
내 머릿속은 펑 하고 터져버렸다.‘내 부모님이 묻힌 곳?’‘그걸 아가씨가 어떻게 알지?’“그때 그 강도가 설마... 너였어?”나는 믿을 수 없어 소희를 바라봤다. 그 순간 머리가 너무 아파 머리를 감싼 채 바닥을 뒹굴었다.“아!”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중얼거렸다.“그때 강도는 분명 세 명이었는데...”“이제 기억 나나 봐? 그럼 재미없는데...”나는 몸이 굳어버린 채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이 말을 한 사람은 내 남편 이지환이었다. 그는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더니 천천히 일어나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돈 찾고 죽일 때 말하려고 했는데. 정말 흥 깨네.”지환은 내 뺨을 후려갈기더니 나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그 순간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비릿한 냄새가 입안을 감쌌다.지환은 내 머리채를 잡아 내 머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쯧쯧쯧, 정말 불쌍해. 얼굴 더러운 것 좀 봐.”말과 달리 지환은 추호의 연민도 없이 계속 내 뺨을 후려갈겼다.나는 끊임없이 피를 토하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지환은 나를 때리다 지쳤는지 그제야 놓아주었다. 곧이어 옷을 풀어 헤치며 찢어진 혈액 팩을 바닥에 내던졌다.바닥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아파 났다.그러다가 문뜩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1년 전,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업 전시회에 참석했다가 지갑을 챙겨오지 않는 게 떠올라 중도에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복면을 쓴 사람 세 명이 우리 집 금고를 뒤지고 있었다.분노한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놈들이 갑자기 전기충격기로 아버지를 쓰러뜨렸고, 나와 어머니도 놈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우리가 깨어났을 때는 차 안이었다. 게다가 늦은 밤이라 주위가 보이지 않았다.강도는 어머니를 인질로 집은 채 아버지를 협박해 모든 재산을 내놓게 했고, 그다음 우리 집 식구를 모두 죽이려 했다.아버지는 강도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 필사적으로 차 문을 열고 나를 차에서 밀어 버렸다. 하지만 본인은
“왜 거기에 숨겨?”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러게 내 방은 왜 매일 뒤졌어? 집은 안전하지 않으니까 밖에 숨기는 수밖에.”지환은 쓴웃음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나도 소희가 사람까지 죽일 줄은 몰랐어.”“그러게, 나도 배후가 아가씨일 줄은 몰랐어.”그러고 보니 소희도 참 총명하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했는지.지환의 폰을 훔쳐 가서 나와 지환 씨 사이를 이간질하고, 지환 씨가 바로 준환이라고 오해하게끔 만들고.문자로 나를 설득하면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막고.그다음에는 지환이 나한테 약을 먹일 거라고 말해 내가 정말 그렇게 기이한 일이 있다고 믿게 했다.약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당연히 문자 내용을 더 믿을 거고 공제를 당할 테니까.전에도 나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문자를 보고 포기했었다. 그것도 모자라 문자의 지시대로 은행에 갔다.마지막에 소희가 문자를 보낸 사람이 자기라고 고백하고 적당한 핑계를 대면, 나는 분명 소희를 믿고 돈 찾으러 함께 은행에 갔을 거다.돈을 찾은 뒤 소희는 나를 죽이고 돈을 갖고 멀리 도망가면 그만이다.하지만 내가 준환의 시체를 발견한 건 소희의 계획을 완전히 빗나갔다.내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소희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을 테니 그동안 문자로 나를 설득했던 거다. 나더러 신고도 하지 못하게 하고, 도망치지도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소희는 전에 분명 나더러 은행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시체를 발견하니 또 은행에 가라고 했다. 이토록 모순되는 말을 한 건 아마도 달리 방법이 없어 계획을 강행해서일 테다.하지만 내가 카드를 두고 가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 게다가 내가 지환 앞에서 모든 걸 까발리고 결판내는 바람에 그동안의 계획이 무산되었을 거다.나는 내 생각을 지환한테 말해주면서 그를 벽돌 공장으로 부축해 갔다.가는 내내 지환은 끊임없이 피를 흘렸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기둥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다.“얼른 가서 카드부터 챙겨...”“
지환은 고통스럽게 배를 움켜쥐었다. 그의 옷은 이미 피로 흥건해졌다.그 장면을 본 소희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더니 피범벅이 된 칼을 바닥에 떨구었다.“나...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소희는 머리를 감싼 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목숨처럼 여겼던 오빠를 다치게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나는 황급히 지환한테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여보! 괜찮아?”지환은 호흡이 약해졌다.“나... 안 될 것 같아... 도망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환은 눈을 감더니 더 이상 아무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아!”소희는 자기 손으로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나는 멍하니 지환의 시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여보...”하지만 다음 순간, 지환이 갑자기 눈을 떴다.나는 너무 놀라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귀신이야!”지환은 이를 악문 채 배를 움켜쥐며 퉁명스럽게 나를 노려봤다.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귀신은 무슨! 나 안 죽었어!”나는 멍해서 조심스럽게 지환을 쿡쿡 찔러봤다.몸이 아직 부드럽고 온기가 남아 있는 걸 봐서 죽었다 깨어난 건 아닌 것 같았다.“방금...”“아까는 죽은 척 연기해서 소희 좀 놀린 거야. 안 그러면 당신을 어떻게 구해?”지환은 피가 나는 배를 움켜쥐고 아픈 듯 냉기를 들이마셨다.“그런데 칼 맞은 건 진짜야.”나는 구급차를 부르려고 다급히 주머니를 뒤졌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아까 소희가 나와 지환의 폰을 빼앗아 갔다는 게 떠올랐다. 이제 도움을 청할 도구는 더 이상 없었다.지금은 천지신명께 빌어 봐도 소용없었다.이 집은 황량한 들판에 세워진 불법 건축이기에 평소 지나다니는 차가 없었다.예전에 지환한테 왜 시내에 집을 사지 않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지환은 동생들을 돌보려면 시내가 불편하다고 했다.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지환의 차뿐이다.나는
소희는 서늘한 빛을 뿜는 칼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고, 두 다리는 후들거려 나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벽이 등에 닿았다.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나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우리 한 식구잖아요. 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지환이 앞으로 다가와 내 앞에 막아섰다.“돈은 너한테 다 줄게, 그러니까 우리를 풀어줘. 오늘 일은 영원히 함구할게, 나중에 시체 처리하는 것도 도와줄게.”“그러면 우리도 공범이 되니 네 일을 까발리는 순간 우리도 같이 잡힐 거야.”지환의 뒷모습을 보니 나는 갑자기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를 지켜주다니.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사랑했나 봐.’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입을 막고 흐느껴 울었다.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는 듯했다. 워낙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데다 이런 표정을 지으니 귀엽고 깜찍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니 너무 공포스러웠다.소희가 고민하는 몇 분이 나에게는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다 한참 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말대로 할게.”내가 미처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소희가 또 입을 열었다.“그런데 난 오빠만 풀어줄 거야. 오빠 뒤에 있는 여자는 안 돼. 감히 오빠랑 결혼하다니. 오빠는 내 거야. 이준환도 그래, 감히 오빠를 화나게 하다니. 그래서 내가 대신 죽여줬어. 오빠, 나 착하지?”순간 절망감이 밀려왔다.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소희는 살인마 사이코패스인 데다 정신까지 이상했다. 친오빠한테 남녀 사이의 사랑을 느끼다니.그제야 소희가 그동안 나를 왜 그렇게 냉대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내가 자기 오빠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니까.소희는 나를 풀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가 됐든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각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나는 지환 앞에 막아서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소희를 바라봤다.“나를 죽이면 은행카드가 어디
‘나한테 문자를 보낸 사람이 아가씨라고?’‘아가씨가 미래의 나란 말인가?’‘미래에 내가 지환의 여동생이 되는 건가?’‘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아가씨가 미래의 나예요?”소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완전히 멍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내가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지환이 뛰쳐나와 문을 확 열어젖더니 매 머리채를 잡아 차에서 끌어내렸다.“어딜 도망가려고?”지환은 나와 소희 사이에 서서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꽉 눌렀다. 내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그 순간 끝났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나를 죽이면 은행카드의 행방은 평생 알 생각 하지 마.”지환은 흠칫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봤다.“무슨 소리야? 내가 왜 자기를 죽이겠어? 난 자기가 나한테 돈 안 나눠주겠다는 줄 알고 화난 거야.”지환은 이 상황에도 모르는 척 연기하고 있었다.나는 지하실에서 본 광경을 모두 말했다.그러자 지환은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준환이가 죽었다고?”‘아직도 발뺌이야?’지환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나를 지하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준환의 시체를 본 순간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했다.‘모든 게 밝혀졌는데 아직도 연기할 필요가 있나? 왜 차라리 인정하지 않지?’내 마음속에는 너무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왜 나한테 진실을 고백하는 약을 먹였어? 오늘 은행에 갈 때는 왜 도련님을 부르지 않았는데?”지환은 눈시울을 붉힌 채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바라봤다.“진실을 고백하는 약이라니? 그건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약 아니야? 소희가 그랬는데, 준환이 나를 보기 싫어한다고 돈을 우선 자기보고 대신 맡으라고 했다고 했어. 약도 소희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산 건데, 나더러 자기한테 비밀로 하라고 했어.”지환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그러다 결국 머릿속에 두 글자만 계속 맴돌았다.‘소희...’‘소희
죽은 사람은 내 남편 이지환이 아니라 이준환이었다.이 사실을 알고 나니 모든 게 장난 같아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지환 씨가 아직 살아 있다면 문자에서 왜 그 사람이 내 남편이 아니라고 한 거지?’‘그리고 준환 씨는 누구한테 죽임을 당한 거지?’내가 생각나는 사람은 내 남편뿐이었다.‘두 사람이 돈 때문에 싸우다가 남편이 실수로 준환 씨를 죽인 게 틀림없어!’“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겠네.”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경찰에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그때, 익명의 문자가 또 날아왔다.[신고하지 마! 도망 치지도 마!][내일 계속 은행에 가.]미래의 내가 보낸 문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신고도 하지 말고, 도망 치지도 않으면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라는 건가?’‘내가 은행에 가면 죽는 줄 알면서 미래의 나는 왜 자꾸 은행에 가라는 거지?’‘설마 내가 준환 씨 시체를 봐서 미래가 변했나?’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미래의 나를 믿기로 했다.나는 조심조심 지하실에서 나와 문을 다시 잠갔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온 적이 없는 것처럼.방에 돌아온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다음날, 준환... 아니, 지환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소희도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지환 뒤에 서 있었다.“원희야, 우리 은행 가자.”나는 두 남매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지환은 나와 소희를 뒷좌석에 앉히고, 내가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소희더러 돌봐 주라고 했다.‘하! 돌봐 주기는 무슨.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라는 거면서!’나는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도련님은? 왜 안 왔어?”지환은 몸을 흠칫 떨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아직도 삐졌어. 상관할 거 없어.”나는 그 말을 믿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내내 우리 셋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하지만 나는 속으로 미래의 나를 무척 원망했다.‘어제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망가면 오늘 이렇게 끌려다니지 않았을 텐데.’지환은 매우 기뻐하며
이 사람 목적이 이거였다니.이 사건의 이유는 지난주부터 이야기해야 한다.지난주, 나는 먼 곳에 계신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변호사의 연락을 받았다.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고모는 돌아가실 때 유산을 유일한 가족인 나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모는 그동안 바다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모인 자산이 족히 몇십억은 된다.그리고 지난주, 담당 변호사가 찾아와서 고모의 은행카드와 편지를 나한테 건네주고 갔다.그 편지에는 나더러 무조건 돈을 직접 가서 찾으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심지어 이 일을 남편인 이지환도 모르게 하라고 했다.하지만 남편의 동생 이준환이 그 편지를 보게 되었고, 그 사실을 지환과 소희한테 말해버렸다.그 일로 두 형제는 매일 싸웠다.지환은 그 돈이 나와 자신의 공동 재산이니 준환과 소희와 상관이 없다고 했고, 준환은 자기와 소희도 가족의 일원이니 재산을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평소 말수가 적던 준환이 이 일로 지환과 대판 싸우는 걸 보니 나는 너무 놀라 얼른 분위기를 풀었다.“다들 그만 싸워요, 이 40억 중 20억은 내가 가질 테니, 나머지 20억은 세 사람이 나눠 가지는 거 어때요?”준환은 우습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한사람이 6억씩 나눠 가지면 나머지 2억은 어떡해요?”그날 이후 우리 집안 분위기는 이상해졌다.두 형제는 매일 싸워댔고, 심지어 몇 번은 주먹 다툼까지 할 뻔했다.예전에도 세 남매가 내 방을 마구 뒤지며 카드 비번을 물어본 적이 있다.하지만 나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카드를 꼭꼭 숨기고 비번도 함구했다.그러다가 한번은 지환의 애원을 못 이겨 돈을 찾을 때 데리고 갔던 적이 있다.‘잠깐!’내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가 번뜩 지나갔다.지환과 준환은 쌍둥이라 두 사람은 똑같이 생긴 데다 목소리도 똑같다.‘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혹시... 도련님은 아닐까?’‘틀림없어!’지환은 이미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고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대화하는 거고.일
[은행 가지 마!][죽을 거야! 도망쳐!][그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야!]갑자기 온 문자에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팔을 부르르 떨었더니 이어폰 줄이 당겨지면서 귀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이 빠르게 온몸으로 번졌다.나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내 남편 이지환이었으니까.‘하지만 지환 씨는 분명 집에 있는데? 그 사람이 내 남편이 아니면 누구지?’[당신 누구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지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옷차림이 흐트러졌으며 많이 초췌해 보였다.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등 뒤에 숨겼다.문자 메시지를 본 뒤 남자가 이토록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왜 그래?”나는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지만 애써 침착한 척 연기했다.“내 핸드폰이 안 보이는데, 못 봤어?”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의심은 더욱 쌓여만 갔다.눈앞의 남자는 생김새도 목소리도 내 남편 이지환과 똑같다.‘이 사람은 분명 지환 씨인데?’‘설마... 누군가 지환 씨 핸드폰을 주워 장난치는 건가?’‘그럼 진짜 너무한데!’지환은 머리를 긁적였다.“그럼 다른 곳에 흘렸나 봐. 이상한 전화나 문자를 받으면 믿지 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환의 말이 무척 의심스러웠다.내가 내일 은행에 간다는 건 우리 집 식구만 아는 사실이라 다른 사람은 알 리가 없다.게다가 지환은 폰으로 은행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다.이게 만약 장난이면 가족 중 누군가가 지환의 전화로 나를 놀리는 것일 수도 있다.그러니까 내가 문자를 받자마자 지환이 달려와 자기 핸드폰을 봤는지 물어보고, 이상한 전화나 문자를 믿지 말라고 했겠지.하지만... 진짜 그럴까?이게 정말 장난일까?나는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남자는 침대 옆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옛날 일은 떠올랐어?”나는 애써 생각해 보다가 결국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저었다.“벌써 기억을 잃은 지도 1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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