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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서정호는 단 한 번도 이토록 모순적인 배현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굳건한 신념이 조유진에 의하여 세차게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조유진이 배현수를 대신해 맞게 된 칼은 배현수 마음속의 그 단단한 벽을 부숴버리는 데 충분했다.

한편 조유진은 기나긴 꿈을 꾸었다. 꿈속의 그녀는 늪지에 빠져있는 것만 같았다.

조유진이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기만 할 뿐이었고 가슴에는 둔탁한 통증이 전해져왔는데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이윽고 조유진은 온통 희고 아득한 빛으로 감싸진 곳에 놓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에서 선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가지 마!”

조유진이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조선유가 조유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유진은 선유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선유는 그러한 그녀가 보이지 않는지 그대로 조유진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조유진은 얼떨떨하게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은 어느새 점점 투명해져 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수술실.

“큰일 났습니다! 환자분 혈압이 40까지 떨어졌습니다.”

“삐—”

‘나 곧 죽는 건가?’

‘하지만, 나 아직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

선유와 남초윤이 조유진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날, 조유진은 촛불을 불기 전 케이크에 대고 세 가지 소원을 빌었었다—

배현수가 자신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기.

돈을 모아 선유와 어머니를 모시고 대제주시를 떠나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곳으로 가 영원히 함께하는 것.

그리고, 배현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었다.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배현수는 그녀를 용서해주지 않았고 또한 조유진이 죽게 된다면 홀로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와 선유는 또 어떻게 산단 말인가.

여러가지 생각이 미치자 조유진은 너무 슬퍼졌다.

그 순간 사방이 삽시에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조유진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배현수를 보았다. 배현수는 차가운 얼굴로 한 글자 한마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조유진, 난 영원히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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