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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병원 아래, 맞은 켠 도로에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서 있었다.

이윽고 운전석의 차창이 3분의 2 정도 내려갔다.

뼈마디가 뚜렷한 커다란 손이 담배 한 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두고 아무렇게나 차창밖에 걸치고 있었다.

그 차갑고 흰 긴 손가락 사이로 선홍색 불빛 한 점이 유난히 눈부셨다.

바람이 반쯤 불어오면 배현수도 담배를 반 모금 피웠다.

선홍색의 담배 불빛이 흘러가는 바람 속에서 아슬아슬 빛을 발했다. 마치 배현수의 감정처럼 한순간 파도처럼 일으켜 세워졌다가도 그의 이성에 의해 억눌려지는 반복이었다….

배현수의 음울한 안색이 담배 연기 속에 파묻혀졌고 흰 연기가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가려 쓸쓸한 적막만이 허공에 머물 뿐이었다.

배현수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닥의 침향목을 꺼내 들어 담배에 끼워 넣어 불을 지폈다.

담백하고 은은한 침향목 향이 참으로 조유진을 닮아 있었다.

희미하고 담담한 존재감이지만 순식간에 사람을 중독시켰다.

어디가 그리도 좋은지 꼭 짚을 수는 없었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그러한 존재였다.

하지만 조유진이 선물해준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배현수는 침향목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중독된 건 끊으면 그만이었다. 이는 결코 어렵지 않았다.

담배가 그러했다. 침향목도 그러했다. 조유진도, 그럴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담뱃불이 희미하게 자신의 종말을 고했다.

배현수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짓이겨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불빛을 껐다. 담뱃불에 데인 살결이 아려왔고 곧이어 그 통증은 살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담배꽁초가 하찮게 창밖으로 버려졌다.

그리고 배현수는 계속하여 병원 맞은 편에 30분 동안 머물렀다.

차에 시동을 걸기 전, 배현수는 병원 정문을 다시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배현수는 이내 그러한 자신을 비웃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 배현수가 직접 조유진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으면서 지금, 어떻게 조유진이 다시 쫓아 나와 그를 붙잡아주길 바란단 말인가.

배현수는 항상 알고 있었다. 감정방면에 있어서 그는 줄곧 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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