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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배현수는 보드카 한 잔을 따라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뼈마디가 뚜렷한 긴 손가락이 술잔을 쥐고 톡톡 두드렸다.

“말해봐, 무슨 일이야?”

육지율이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 광경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배현수의 물음에 육지율은 독한 술을 한입에 삼키고는 이를 악물며 말을 꺼냈다.

“나 이혼해.”

“이 소식은 들어본 적 없는데. 꽤나 새롭네.”

배현수는 눈썹을 치켜들며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아 술잔을 들어 육지율의 잔에 건배하고는 다시 한 모금 음미했다.

술의 맵고 독한 향이 목구멍을 자극해오자 배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배현수의 반응은 마치 육지율이 “오늘 밤 조금 춥다.”라며 부리는 투정을 대하고 있는 듯 침착했다.

‘내 말에 이리도 아무런 리액션도 없고 침착한 건 조금 실례되는 행위 아닌 건가?’

“야, 너 진짜 사람 맞냐?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나 이혼한다고.!”

배현수는 울부짖는 육지율을 그저 가볍게 힐끗 곁눈질하고는 돌직구를 던졌다.

“결혼한 적이 없어서 이혼하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네.”

“…켁!”

육지율은 하마터면 사레들릴뻔했다.

“너 지금 이게 이혼하는 사람 위로하는 방식이야? 근데 듣고 보니 네가 나보다 더 불쌍한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난 누울 관이라도 있지. 넌 정말 곁에 아무도 없다 못해 아예 황지에 놓인 거네.”

“보아하니 너도 딱히 그렇게 슬퍼 보이지도 않는데 게다가 나한테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도 있고 나 이만 갈까?”

배현수는 몸을 일으켜 바로 자리를 뜰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육지율은 다급히 배현수의 팔을 잡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가지 마! 네가 가면 나더러 누구한테 이 슬픔을 털어놓으라고.”

“네가 먼저 제기한 거야? 아니면 남초윤이 먼저 제기한 거야?”

“내가 제기한 거야. 남초윤도 내가 이혼까지 제기할 줄 몰랐을 거야.”

“원인.”

배현수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육지율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육지율은 이 상황이 우스운 듯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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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진,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야?”‘설마 남초윤이 조유진에게 다 털어놓은 건가?'하지만 육지율이 조유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초윤도 분명 알고 있을 터인데 남초윤은 조유진을 중재인으로 삼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육 변호사님, 지금 시간 되시나요?”“아니.” 육지율은 단칼에 거절해버렸다.전화 건너편의 조유진은 몇 초간 침묵을 유지하더니 진지하게 다시 말을 꺼냈다. “변호사님께서 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신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변호사님을 찾은 건 변호사님께 매우 중요한 일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만나 뵙고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매우 중요한 일…육지율은 자신의 곁에 앉아 그대로 얼어붙은 배현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불야성 바 알지? 나 지금 불야성 바에서 술 마시고 있거든. 할 말 있다면 여기로 와.”전화를 끊은 뒤, 육지율은 얄밉게 배현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곧 있으면 조유진이 여기로 올 텐데. 나한테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할지 궁금하지 않아?”배현수는 육지율의 손을 쳐내고는 여전히 침착하게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가 조유진과 할 중요한 얘기가 있다면 나도 너희들을 방해하지 않을게.”육지율은 배현수의 팔을 덥석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하지 마!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거 다 알거든? 너 못 가. 너 지금 가면 나 취했다고 조유진이 그 틈을 타 내 몸이라도 탐하면 난 죽어도 결백을 증명할 수 없다고.”배현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조유진한테 눈이 없는 줄 알아?”“너 그거 몰라? 친한 친구는 남자 보는 눈도 결국 비슷하다잖아. 만약 조유진도 나한테 반하면 어떡해?”“남초윤도 딱히 널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배현수, 이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15분 뒤, 조유진이 불야성 바에 도착하자 육지율이 조유진을 향해 손가락을 딱 치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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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06화

    이때, 의사가 반창고를 가져왔다.“먼저 이거 붙이세요. 상처가 매우 깊숙해서 다 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실 겁니다. 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됩니다.”“네.”조유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의사가 배현수에게 말했다.“여자친구분이 샤워하실 때 방수 반창고를 붙여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몸을 닦아내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한동안은 참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선생님, 제 남...”남자친구라는 호칭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조유진은 옷을 챙겨 이미 뒤돌아 떠난 배현수의 뒤를 따랐다.“의사 선생님께서도 이미 봐주셔서 이제 정말 괜찮아요.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요.”앞에서 걷고 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조유진은 그대로 그에게 부딪힐 뻔했다.배현수는 뒤돌아서더니 강제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데려다주겠다고 했으니 약속 지킬 거야. 난 너처럼 변덕이 심한 사람은 아니야.”“그저... 번거로우실까 봐...”조유진은 시무룩한 채 땅을 쳐다보고 있었다.한번 잘못했으면 무엇을 하든 잘못을 거듭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였다.예전의 조유진이라면 배현수 앞에서 이 정도로 비굴한 사람은 아니었다.배신만 아니었다면 배현수는 얼마든지 그녀가 마음대로 애교부리고 떼쓰는 모습을 받아줄수 있었다.조유진이 직접 자신을 향한 사랑을 짓밟은 것이다.차에 올라타고, 주소를 알려주었다.가는 길 내내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동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조유진이 갑자기 물었다.“만약 제가 죽는다고 해도 저를 미워할 거예요?”배현수는 멈칫하더니 비웃었다.“다 죽게 되는 마당에 내가 미워하든 말든 너랑 뭔 상관이야. 어차피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조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일리가 있네요.”다만 욕심일 수도 있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었으면 했다.그러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죽어도 여한이 있으면 또 뭐 어때? 죽으면 그만인데.’하지만 그래도 욕심이 났다. 어차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07화

    조유진이 집으로 들어가자 조선유가 안방에서 달려오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엄마, 방금 엄마 데려다준 차 엄청나게 멋있던데. 누구야?”현관에 서 있던 조유진은 멈칫하고 말았다.“그걸 봤어?”“응! 잠깐 게임을 하고 창가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그 차에서 내리는 걸 봤어. 혹시 그 멋진 아저씨야?”조유진은 씻은 손으로 조선유를 안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우리 선유 언제 이렇게 호기심이 많아졌지?”“그저 엄마를 관심하고 있는 거지!”조유진은 조선유의 귀여운 얼굴을 쳐다보며 인정했다.“맞아. 선유가 좋아하는 그 멋진 아저씨가 엄마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어.”조선유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진짜? 엄마, 아저씨랑 연애하는 거야?”“선유는... 그 멋진 아저씨랑 함께 살고 싶어?”“엄마, 아저씨랑 결혼하게?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아저씨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랑 결혼한다고 해도 난 찬성이야.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어.”그들의 생활에 곧 자신은 없을 거라는 의미였다.조유진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선유야, 아빠 찾으러 가고 싶지 않아?”“찾으러 가고 싶지. 그런데 아빠 이제는 안 계시잖아.”“아직 살아계셔. 엄마도... 최근에야 알았어.”언제든 알게 될 사실을 더는 숨기지 않으려고 했다.“응?”조선유는 입을 쩍 벌린 채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엄마, 그러면 우리 멋진 아저씨랑 같이 살아야 해 아니면 아빠 찾으러 가야 해?”조선유는 고민되는지 두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엄마, 아빠가 왜 다시 살아난 거야? 설마 좀비야?”비록 슬펐지만, 딸의 이 한마디에 웃음이 터질뻔했다.조선유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만약에, 선유가 좋아하는 그 멋진 아저씨가 아빠라면 좋을 것 같아?”놀란 조선유는 입을 더욱 크게 벌리더니 두 손으로 조유진의 이마를 짚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파? 왜 그런 말을 해? 엄마, 진심이야? 정말?”조선유는 믿기지 않아 재차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08화

    “아마도, 다음 주일 거야.”조선유를 등지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딸이 엄마의 옷도 챙겨오는 모습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조유진은 몰래 자신의 옷을 꺼내면서 특별히 당부했다.“선유야, 아빠 집에 도착하면 말 잘 들어야 해. 맨날 침대에 누워 태블릿 PC로 게임을하지 말고. 시력이 나빠져.”“엄마, 아빠 집은 어때?”“엄청나게 큰 별장이야. 벽면 하나가 온통 책이고 수영장도 있고 잔디도 있어.”“와~ 아빠 벼락부자야? 와이프가 여러 명인 건 아니겠지? 엄마, 만약 와이프도 많고 아이도 많으면 찾으러 가지 말자!”조선유의 순진한 말에 웃고 말았다.“아니, 아이는 너 하나야.”배현수를 벼락부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자수성가하여 천천히 1세대 부자로 거듭났기 때문에 벼락부자는 아니었다.조선유는 조유진에게 저녁 내내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12시가 넘어서야 졸린 지 조유진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아빠 집에 가면 엄마 이제는 고생하지 않겠네...”조유진은 울음을 터뜨릴까 봐 입을 꾹 막고 있었다.‘선유가 아빠 집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엄마가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이내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아파 났고, 가슴 한쪽에 꽉 막혀있던 찡하고 아쉬운 마음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조유진은 고개를 숙여 조선유의 이마에 뽀뽀하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정리했다.캐리어에는 그저 조선유의 물건만 가득했다.딸이 더 나은 생활 하러 가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배현수는 조유진 못지않게 조선유를 공주처럼 예뻐하고 아껴줄 것이 뻔했다.이때 다이어리를 꺼냈다.다이어리의 한 페이지에는 세 가지 소원이 적혀있었다.두 번째 소원에 줄을 그었다.조선유와 안정희를 데리고 대제주시를 떠나고 싶은 소원은 이룰 수가 없었다.눈물이 다이어리에 떨어져 글씨가 얼룩졌다.이 밤, 조유진은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동안, 조유진은 다친 관계로 연차를 냈다.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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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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