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야?”‘설마 남초윤이 조유진에게 다 털어놓은 건가?'하지만 육지율이 조유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초윤도 분명 알고 있을 터인데 남초윤은 조유진을 중재인으로 삼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육 변호사님, 지금 시간 되시나요?”“아니.” 육지율은 단칼에 거절해버렸다.전화 건너편의 조유진은 몇 초간 침묵을 유지하더니 진지하게 다시 말을 꺼냈다. “변호사님께서 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신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변호사님을 찾은 건 변호사님께 매우 중요한 일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만나 뵙고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매우 중요한 일…육지율은 자신의 곁에 앉아 그대로 얼어붙은 배현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불야성 바 알지? 나 지금 불야성 바에서 술 마시고 있거든. 할 말 있다면 여기로 와.”전화를 끊은 뒤, 육지율은 얄밉게 배현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곧 있으면 조유진이 여기로 올 텐데. 나한테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할지 궁금하지 않아?”배현수는 육지율의 손을 쳐내고는 여전히 침착하게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가 조유진과 할 중요한 얘기가 있다면 나도 너희들을 방해하지 않을게.”육지율은 배현수의 팔을 덥석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하지 마!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거 다 알거든? 너 못 가. 너 지금 가면 나 취했다고 조유진이 그 틈을 타 내 몸이라도 탐하면 난 죽어도 결백을 증명할 수 없다고.”배현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조유진한테 눈이 없는 줄 알아?”“너 그거 몰라? 친한 친구는 남자 보는 눈도 결국 비슷하다잖아. 만약 조유진도 나한테 반하면 어떡해?”“남초윤도 딱히 널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배현수, 이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15분 뒤, 조유진이 불야성 바에 도착하자 육지율이 조유진을 향해 손가락을 딱 치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
“괜찮은데, 왜? 이것때문에 또 신경 쓰여?”육지율은 일부러 말을 애매하게 하며 배현수가 신경 쓰는 대상이 육지율인지 조유진인지 알수 없게 만들었다.배현수가 돌아왔다. 따라서 조유진도 더이상 이 자리에 오래 머물기 곤란했다. “육 변호사님, 저도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믿든 안 믿든 이건 변호사님 자유시니까요. 하지만 변호사님께서 정말 초윤이를 오해하셨습니다.”“됐어. 너도 이만 가봐. 나와 남초윤 사이의 일은 외부인인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남초윤이 정말 이 일에 해명하고 싶다면 직접 오라고 해.”조유진도 더이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바를 나왔다....대제주시의 여름은 항상 한치 앞도 예측할수가 없었다.한밤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바 입구의 복도에 서서 휴대폰을 켜 택시를 잡고 있었다.그녀 뒤의 바 입구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나왔고 그 사람들은 술에 잔뜩 취해 길을 가다가도 앞이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지 계속하여 조유진에게 부딪쳐왔다.계속된 타격에 상처를 건드린듯 싶었다.조유진은 급격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천천히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았다.그때 검정색의 마이바흐 한 대가 그녀의 앞을 지나쳤다.차 내부, 배현수는 백미러로 조유진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더이상 관여하지는 않았다.차가 그대로 또 한 구간 앞으로 나아갔다.콩알만큼 굵은 빗방울이 끊임없이 앞유리에 부딪쳐 부지런히 움직이는 와이퍼에 의해 빠르게 튕겨져 날아갔다.이 길은 번화가이고 술집도 많았다. 게다가 이토록 큰 비가 오는데 이 시간에 택시를 잡는건 거의 하늘의 별 따기 격이었다.배현수는 무의식간에 다시 한번 백미러로 뒷켠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조유진이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힘겹게 비바람속에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수척한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만 불어도 바로 부러져버릴듯 가냘펐다.배현수의 미간이 더욱 보기좋게 구겨
이때, 의사가 반창고를 가져왔다.“먼저 이거 붙이세요. 상처가 매우 깊숙해서 다 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실 겁니다. 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됩니다.”“네.”조유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의사가 배현수에게 말했다.“여자친구분이 샤워하실 때 방수 반창고를 붙여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몸을 닦아내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한동안은 참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선생님, 제 남...”남자친구라는 호칭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조유진은 옷을 챙겨 이미 뒤돌아 떠난 배현수의 뒤를 따랐다.“의사 선생님께서도 이미 봐주셔서 이제 정말 괜찮아요.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요.”앞에서 걷고 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조유진은 그대로 그에게 부딪힐 뻔했다.배현수는 뒤돌아서더니 강제적으로 키스를 퍼부었다.“데려다주겠다고 했으니 약속 지킬 거야. 난 너처럼 변덕이 심한 사람은 아니야.”“그저... 번거로우실까 봐...”조유진은 시무룩한 채 땅을 쳐다보고 있었다.한번 잘못했으면 무엇을 하든 잘못을 거듭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였다.예전의 조유진이라면 배현수 앞에서 이 정도로 비굴한 사람은 아니었다.배신만 아니었다면 배현수는 얼마든지 그녀가 마음대로 애교부리고 떼쓰는 모습을 받아줄수 있었다.조유진이 직접 자신을 향한 사랑을 짓밟은 것이다.차에 올라타고, 주소를 알려주었다.가는 길 내내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동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조유진이 갑자기 물었다.“만약 제가 죽는다고 해도 저를 미워할 거예요?”배현수는 멈칫하더니 비웃었다.“다 죽게 되는 마당에 내가 미워하든 말든 너랑 뭔 상관이야. 어차피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조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일리가 있네요.”다만 욕심일 수도 있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었으면 했다.그러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죽어도 여한이 있으면 또 뭐 어때? 죽으면 그만인데.’하지만 그래도 욕심이 났다. 어차
조유진이 집으로 들어가자 조선유가 안방에서 달려오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엄마, 방금 엄마 데려다준 차 엄청나게 멋있던데. 누구야?”현관에 서 있던 조유진은 멈칫하고 말았다.“그걸 봤어?”“응! 잠깐 게임을 하고 창가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그 차에서 내리는 걸 봤어. 혹시 그 멋진 아저씨야?”조유진은 씻은 손으로 조선유를 안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우리 선유 언제 이렇게 호기심이 많아졌지?”“그저 엄마를 관심하고 있는 거지!”조유진은 조선유의 귀여운 얼굴을 쳐다보며 인정했다.“맞아. 선유가 좋아하는 그 멋진 아저씨가 엄마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어.”조선유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진짜? 엄마, 아저씨랑 연애하는 거야?”“선유는... 그 멋진 아저씨랑 함께 살고 싶어?”“엄마, 아저씨랑 결혼하게?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아저씨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랑 결혼한다고 해도 난 찬성이야.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어.”그들의 생활에 곧 자신은 없을 거라는 의미였다.조유진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선유야, 아빠 찾으러 가고 싶지 않아?”“찾으러 가고 싶지. 그런데 아빠 이제는 안 계시잖아.”“아직 살아계셔. 엄마도... 최근에야 알았어.”언제든 알게 될 사실을 더는 숨기지 않으려고 했다.“응?”조선유는 입을 쩍 벌린 채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엄마, 그러면 우리 멋진 아저씨랑 같이 살아야 해 아니면 아빠 찾으러 가야 해?”조선유는 고민되는지 두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엄마, 아빠가 왜 다시 살아난 거야? 설마 좀비야?”비록 슬펐지만, 딸의 이 한마디에 웃음이 터질뻔했다.조선유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만약에, 선유가 좋아하는 그 멋진 아저씨가 아빠라면 좋을 것 같아?”놀란 조선유는 입을 더욱 크게 벌리더니 두 손으로 조유진의 이마를 짚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파? 왜 그런 말을 해? 엄마, 진심이야? 정말?”조선유는 믿기지 않아 재차
“아마도, 다음 주일 거야.”조선유를 등지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딸이 엄마의 옷도 챙겨오는 모습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조유진은 몰래 자신의 옷을 꺼내면서 특별히 당부했다.“선유야, 아빠 집에 도착하면 말 잘 들어야 해. 맨날 침대에 누워 태블릿 PC로 게임을하지 말고. 시력이 나빠져.”“엄마, 아빠 집은 어때?”“엄청나게 큰 별장이야. 벽면 하나가 온통 책이고 수영장도 있고 잔디도 있어.”“와~ 아빠 벼락부자야? 와이프가 여러 명인 건 아니겠지? 엄마, 만약 와이프도 많고 아이도 많으면 찾으러 가지 말자!”조선유의 순진한 말에 웃고 말았다.“아니, 아이는 너 하나야.”배현수를 벼락부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자수성가하여 천천히 1세대 부자로 거듭났기 때문에 벼락부자는 아니었다.조선유는 조유진에게 저녁 내내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12시가 넘어서야 졸린 지 조유진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아빠 집에 가면 엄마 이제는 고생하지 않겠네...”조유진은 울음을 터뜨릴까 봐 입을 꾹 막고 있었다.‘선유가 아빠 집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엄마가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이내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아파 났고, 가슴 한쪽에 꽉 막혀있던 찡하고 아쉬운 마음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조유진은 고개를 숙여 조선유의 이마에 뽀뽀하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정리했다.캐리어에는 그저 조선유의 물건만 가득했다.딸이 더 나은 생활 하러 가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배현수는 조유진 못지않게 조선유를 공주처럼 예뻐하고 아껴줄 것이 뻔했다.이때 다이어리를 꺼냈다.다이어리의 한 페이지에는 세 가지 소원이 적혀있었다.두 번째 소원에 줄을 그었다.조선유와 안정희를 데리고 대제주시를 떠나고 싶은 소원은 이룰 수가 없었다.눈물이 다이어리에 떨어져 글씨가 얼룩졌다.이 밤, 조유진은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동안, 조유진은 다친 관계로 연차를 냈다.
배현수는 생각에 빠진 육지율을 팔꿈치로 툭 쳤다.“왜, 말문이 막힌 거야? 가자.”그제야 정신 차린 육지율은 이미 멀리 간 조유진의 뒷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배현수의 손목을 잡았다.“현수야...”자신의 손을 잡은 육지율의 손을 보더니 싫증 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둘 사이 스캔들이 모자라서 그래?”“뭐? 그게, 할 말이 있어...”배현수는 육지율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1호 건물로 걸어갔다.SY 그룹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배현수와 육지율과 같이 잘생긴 두 사람이 맨날 붙어서 함께 일도 하고 사이도 좋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심지어 누군가는 배현수가 육지율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했다.상남자인 배현수와 동창사이로 오래 알고 지내면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배현수가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그래서 배현수를 얻지 못해 상처받은 육지율이 집안 환경이 비슷한 남 씨 가문의 딸 남초윤과 결혼한 뒤로도 뒤에서 묵묵히 배현수를 지켜주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었다.SY 그룹 직원들은 심지어 육지율과 형식적으로 결혼한 남 씨 가문의 따님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정작 당사자인 남초윤은 한밤중에 이불속에 숨어 SY 그룹 사내 게시판을 보면서 자신의 남편과 배현수 커플의 스캔들을 즐기고 있었다.금욕 중인 도도 배현수VS 막무가내 바람둥이 육지율, 남초윤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즐길 뿐이었다.사무실로 돌아간 육지율은 머리를 굴렸다.그날의 세부적인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면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 아이는 초윤 씨의 아이가 아닐 거야. 초윤 씨의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고 매혹적이야. 그 아이의 얼굴과 조유진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많이 닮았단 말이지!’육지율은 차 키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스타 잡지사.“헉, 아래에 롤스로이스 차가 있어! 너무 멋진데?”“나 방금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그 아이, 도대체 누구 아이예요?”“말했잖아요. 저랑 성혁 씨의...”육지율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거짓말하지 마세요. 조유진이 분명 나한테 그 아이가 초윤 씨 아이가 아니라고 했어요!”남초윤은 의아한 표정을 하더니 간절히 빌었다.“유진이 알려줬어요? 이 일 절대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면 안 돼요. 제발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배 대표님한테 말씀드리면 아이 양육권을 뺏어갈 거란 말이에요!”육지율은 눈썹을 움찔했다.“그러니까, 아이가 정말 조유진의 아이였어요?”“...!”남초윤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지율 씨, 어떻게 저를 속일 수 있어요?”육지율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그래서, 아이가 여섯 살이에요?”“...”남초윤은 혼란에 빠졌다.“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요? 지율 씨, 제가 뭐 부탁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일은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요?”육지율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왜 비밀로 해야 되죠?”육지율은 조유진의 친구가 아니라 배현수의 친구였고 또 사심이 가득한 사람이라 절대 팔이 밖으로 굽는 사람이 아니었다.남초윤은 이를 꽉 깨물더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었다.“코스플레이 어때요?”“...”하지만 육지율은 꿈쩍하지도 않았다.남초윤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또 말했다.“횟수 제한 없이요!”육지율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남초윤은 풀이 죽은 채 잡지사로 들어갔다.그러더니 묵묵히 핸드폰 주소록을 열어 육지율을 ‘유명무실 법적 남편’으로부터 ‘유명유실 법적 남편’으로 고쳤다.이 둘은 결혼생활 2년 동안 정말 부부 같은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조유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이 둘의 우정은 매우 깊었다.남초윤은 머리가 아파 나는 느낌에 이마를 두드렸다....오후 고위층 회의가 열리던 중, 육지율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배현수는 펜으로 테이블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육 변호사님, 충남 공주 여행 개발 건에 대해
배현수는 아주 객관적으로 말했다.“만약에란 없어. 어떻게 애가 있겠어.”“그냥 만약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배현수는 이상한 눈빛으로 육지율을 쳐다보았다.“그럴 가능성도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만약에... 아니다, 네 사전에는 만약이라는 단어가 없긴 하지.”육지율은 멀어져가는 배현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아까 진실을 말해주려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약 조유진이 아이를 핑계 삼아 무슨 짓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눈빛이 차가워졌다....퇴근 후, 조유진이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 입구로 걸어가던 중, 한대의 하얀색 롤스로이스 차량이 그녀의 옆에 멈추었다.경적이 울리고, 내려간 차창 사이로 육지율이 보였다.“육 변호사님, 저한테 무슨 보실 일이라도 있으세요?”“타, 할 말이 있어.”조유진은 그와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저는 육 변호사님한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지하철 타러 가야 해서요.”조유진이 앞으로 걸어가자 육지율의 롤스로이스 차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육지율은 한번 물면 절대 놓치 않는 사람이었다.결국, 조유진은 어쩔 수 없이 차에 탔다.“육 변호사님께서 계속 저를 괴롭히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알아요. 근데 이제 곧 퇴사할 거라서 제가 SY 그룹을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퇴사하든 말든 관심 없어. 네가 SY 그룹을 떠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결정권이 너도, 나도 아닌 현수 손에 달려있다는 거 너도 알잖아.”조유진은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았다.‘퇴사하고 어디 숨어 있으면 현수 씨가 날 찾아내서 출근시키기라도 할까 봐? 곧 죽을 건데 출근하든 말든, 어디서 출근하든 내가 알아서 해.’“대표님께서 이제 저를 놔주기로 하셨습니다. 더는 제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말에 숨은 뜻은 배현수와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