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이틀 동안, 강하영이 병원에 갈 때 뒤에 경호원 두 명이 따라왔다.아직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반감이 생기거나 하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산부인과에 가서 산전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강하영은 우인나에게 도움을 구했다. [인나야, 좀 도와줄 수 있어?”]우인나에게서 아주 빨리 대답이 왔다.[무슨 일인데?]강하영은 사건의 경위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그럼 내가 지금 갈까?][응, 괜찮아?][물론이야, 10시에 병원 앞에서 만나.]시간이 이미 9시인 것을 보고, 강하영은 옷을 갈아입고 외출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한 우인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강하영 뒤에 있는 기골이 장대한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사장님의 눈은 정말 정확해.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겠다……”강하영은 한숨을 쉬었다.“들어가자.”우인나가 검사받는데 자신이 같이 가준다는 핑계를 대고, 강하영은 순조롭게 의사와 만나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점심에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경호원은 문 앞에 서서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말할 기회가 생겼다.우인나는 강하영의 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하영아, 의사가 3개월 후에는 임신한 것이 드러날 거라고 했잖아. 사장님께 말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강하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나는 그럴 생각 없어.”우인나가 말했다. “사장님이 아이를 위해 너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너 정말 그동안 사장님한테 한 번도 마음이 흔들린 적 없어?”우인나의 질문에 강하영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흔들렸다고 뭐가 달라지나?그녀는 정유준이 그녀를 선택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양다인과 경쟁할 생각은 더더구나 해본 적 없다. 그리고,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할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정유준에게 말할 수는 없다.“하영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수군거림을 받는지 너 알아?너는
전화를 끊은 다음 양다인은 비상구를 나섰다.그녀는 마침 자료를 안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강하영을 발견했다.그녀는 웃으며 강하영 옆으로 다가가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어머, 강비서, 여기 있었네.”강하영은 양다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양다인은 개의치 않고 팔짱을 낀 채 오만한 자세로 말했다. “요즘 몸이 별로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내가 내일 강비서 대신 유준씨 옆에서 술을 마셔줄까?”강하영은 계속 못 들은 체했다. 강하영이 계속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양다인은 체면이 좀 서지 않았다. 그녀는 팔짱을 풀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강하영,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강하영은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불안한가 봐요?”양다인은 이를 악물었다.“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의기양양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일 저녁, 유준씨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될 거야!”강하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꼭 그렇게 싸구려처럼 굴어야겠어요?”정유준은 회사 송년회에서 줄곧 술을 마시지 않았다.설령 마신다 해도, 양다인이 옆에 서 있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양다인은 화가 나서 얼굴색이 벌게졌다.“강하영! 충고하는데, 처신 잘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양다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열렸다.강하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양다인의 눈빛이 더욱 흉악해졌다.네가 얼마나 더 날뛸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금요일, 오후 5시.강하영은 송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따뜻하면서도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정유준은 이미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언제나 그렇듯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존귀하고 냉담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잘생긴 얼굴에는 침착한 자제력이 배어 있었다.강하영은 그를 흘낏 본 후, 시선을 거두고 앞으로 걸어갔다.“준비 다 됐어요.”남자는 눈을 들어 그녀를 훑어보더니, 노출이 조금도 없는
강하영을 정유준 옆으로 데려간 배현욱이 양다인에게 말했다.“양다인씨, 이런 힘든 일은 강비서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어요.”“……?”왜 꼭 이런 힘들고 험한 일은 그녀가 해야 하는 걸까?강하영은 겨우 반 시간 만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정유준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도대체 정유준에게 술을 얼마나 먹인 거지?양다인은 순간 멍하게 서 있었다. 배현욱이 강하영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그녀는 마음속의 불쾌함을 감추며 웃음을 터뜨렸다.“배 사장님, 유준씨는 그냥 저에게 맡기세요. 강비서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아요.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양다인씨, 유준이는 술을 마신 후 조심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물론이죠.”“…….”강하영은 배현욱이 왜 굳이 자신을 끌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정유준과 양다인은 조만간 사귀게 될 것이다. 빠져야 할 사람은 자신이다. 배현욱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강하영이 입을 열었다. “배 사장님! 양부팀장에게 돌보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가 볼게요!”배현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돌아서서 가는 강하영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곧 그녀를 따라갔다.“강비서, 유준이가 거위 고기에 알러지 있는 거 알지? 방금 양다인씨가 그 녀석한테 거위 고기를 먹였어!직업의식 투철한 우리 강비서는 틀림없이 알러지 약을 가지고 있겠지? 유준이한테 약을 먹이고, 의사가 올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겠어?”“…….” 강하영이 침묵하는 사이에 배현욱이 다시 말했다. “물론 강비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상사의 생사를 나 몰라라 하는 비서를 뽑은 유준이의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지 뭐!”말을 마친 배현욱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강하영은 그 자리에 서서 잠깐 고민했다.가봐야 할까?그녀가 가지 않는다면 정유준은 분명 몹시 괴로울 것이다. 그녀는 그가 알러지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간다면, 그와 양다인이 함께 있는 시간을
양다인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잠든 남자를 확인한 그녀는 옷을 벗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조심스럽게 침대로 올라갔다.아침 7시.정유준은 위가 불편한 느낌 때문에 잠에서 깼다. 자신이 호텔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음……유준씨, 깼어?”정유준은 소리나는 쪽으로 휙 돌아보았다. 양다인이 잠에 취한 몽롱한 눈을 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순식간에 어젯밤의 화면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그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다.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었고, 그 사람을 방으로 끌어들였다.강하영인 줄 알았는데, 양다인이었구나!정유준은 초조한 마음에 얼른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양다인은 재빨리 일어나 앉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준씨는 나하고 자고 싶지 않았던 거야?”정유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양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유준씨를 데려다줄 수 없어서, 그냥 여기로 데려왔어.중간에 꿀물을 구해서 해장을 해주고 싶었는데, 주방이 다 퇴근하고 없더라.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유준씨가 갑자기 날 잡아끌더니, 그런 짓을 하고…….유준씨, 내가 싫으면……그냥 없었던 일로 해도 돼.”양다인은 CCTV 화면을 생각하며, 억울한 척 거짓말을 했다.정유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다인아,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반드시 사과를 하든 책임을 지든 할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정유준의 말에 양다인은 몰래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강하영이 왔었다는 것만 기억 못 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요구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한 양부모의 귀국만 기다리면, 있어야 할 것을 모두 가지게 된다!…………정유준이 집에 돌아왔을 때, 강하영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정유준을 마주친 강하영은 무의식중에 그의 머리가 아직 아픈지 물어보려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입을 떼
양부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다인이 왔구나. 어서, 어서 앉아라.”양어머니는 정유준에게 시선을 주며 모르는 척 물었다. “다인아, 이분은?”양다인은 약간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엄마, 제가 자주 말했죠? 유준 씨예요.”양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사장님이었군요. 어서 앉아요.”자리에 앉은 정유준은 담담하게 앞에 선 부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물을 따라 주기도 하고 수저를 놓아주기도 하며 그를 살뜰히 챙겼다.그들은 마지막으로 종업원에게 주문한 음식을 내오라고 말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다인아, 정 사장님은 딱 봐도 믿을 만한 사람이야. 네가 정사장님과 사귄다고 하면 우리는 외국에 있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구나.”“맞아, 맞아!” 양어머니가 맞장구를 치며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정사장님, 우리 다인이와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정유준은 물티슈로 느릿느릿 손을 닦았다. 그가 무심하고 냉담한 말투로 물었다.“앞으로 어떻게 하다니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양어머니가 말했다. “당연히 결혼을 말하는 거죠.”“아직 그런 걸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 제가 아직 해결 못한 일도 있고!”정유준이 냉정하게 대답했다.양다인이 배려하며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유준씨 정말 바빠요. 엄마 아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이제 막 남자 친구가 됐을 뿐인데!”양다인의 이 말에 정유준의 머릿속에는 문득 불륜녀가 되지 않을 거라던 강하영의 말이 떠올랐다. 마음이 갑자기 초조해진 정유준은 물티슈를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섰다.“식사 천천히 하십시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정유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양다인이 급히 뒤쫓아 나왔다. “유준씨! 화났어?”정유준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그녀를 돌아보았다.“양다인, 너한테 심한 말 하고 싶지 않아.”양다인은 눈시울을 붉혔다.“우리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남자 친구도 아니야?”“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무슨 결정을 내릴 권리는 없어.”말을 마친 정유준이 몸을 돌려
양운희의 안색이 굳어졌다. 화가 난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말도 안 돼! 당신 이거 명예훼손이야! 내가 당장 고소할 수도 있다고.”양다인은 화난 척하며 일어섰다.“아주머니, 제 말을 못 믿겠으면, 강하영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저는 할 말 다 했어요. 강하영에게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전해주세요!”말을 마친 양다인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병실을 나섰다.마음이 불안해진 양운희의 귓가에 양다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생각할수록 마음속의 의혹과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 양운희는 결국 휴대전화를 들고 강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간 난원, 정유준의 방 안에서 두 사람은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 소리를 들은 강하영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어 침대 협탁을 보았다.그녀는 정유준의 가슴을 두드렸다.“전화 왔……음…….”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정유준은 몸을 숙여 강하영의 매혹적인 입술에 키스했다.결국 강하영은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관계가 끝난 후, 강하영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가, 휴대전화를 들고 욕실로 향했다.어머니에게서 여러 차례 부재중 전화가 걸려 온 것을 보고 강하영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그녀가 전화를 걸자 어머니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하영아, 너 방금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아?”양운희의 말투가 엄숙했다.어머니의 목소리를 확인한 강하영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직 관계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았던 강하영은 말할 때, 숨이 좀 거칠었다. “엄마, 방금 샤워하느라 전화 벨 소리를 못 들었어요.”양운희는 강하영의 숨소리를 알아채고 다시 엄하게 물었다.“너 지금 어디야?”강하영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욕실 문이 열렸다.정유준이 냉정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누구 전화야?”정유준이 입을 여는 순간 강하영은 놀라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강하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엄마 전화예요. 다음에는 들어오기 전에 노크 좀 해줄래요?”정유준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빨리 비켜, 그녀에게 에이즈가 있을지도 몰라.”“염치없이! 돈을 위해 이런 짓을 하다니! 파렴치해!”“꺼져!!! 다 꺼져!!!”갑자기 양운희의 가슴을 찢는 것만 같은 고함소리가 병실에서 흘러나왔다.강하영은 이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얼른 사람들을 해치고 문을 열고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병실은 온통 난장판이었고 여기저기에 깨진 유리 부스러기가 널려있었다.강하영은 목구멍을 솜 덩어리로 막아놓은 것처럼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그녀는 병상에 앉아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큰 소리로 숨을 몰아쉬는 양운희을 천천히 바라보았다.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엄마……”“날 부르지 마!!”양운희는 노발대발하며 강하영을 향해 소리쳤다.강하영은 온몸을 떨며 목이 메어 말했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제 설명을 들어줄래요?”양운희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강하영을 가리키며 물었다.“너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강하영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엄마,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진정하시고 우리 대화해 볼까요? 네?”“강하영! 너…… 너!”이야기를 반쯤 하던 양운희는 갑자기 두 눈을 뒤집으며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엄마!!”강하영은 급히 앞으로 달려들어 양운희의 몸을 잡고 바깥을 향해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간호사! 간호사!!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곧이어 간호사가 병실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2분도 안 되어 의사도 급히 달려왔다.그들은 강하영을 문밖으로 밀어내고 응급 치료를 시작했다.원래 병실 문 밖에서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이때 이미 자취를 감췄다.텅 비고 고요한 복도는 심연의 깊은 못처럼 사람을 점점 질식시키고 가라앉게 한다.강하영은 병실 밖 벤치에 주저앉아 텅 빈 눈으로 초점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어젯밤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달려왔다면 오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진작 발견했어야 했다.지난번에 그녀를 치어 죽이려 했던 사람이 잡히지 않았으니, 다른 행동이 있을 게 분
강하영은 입술이 가늘게 꿈틀거리는 양운희를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귓가에 있는 기계에서 ‘띠’하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강하영의 마음도 덩달아 싸늘해졌다……정유준이 병실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강하영의 가슴을 찢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고 발걸음도 따라서 빨라졌다.그러나 들어가기도 전에 부진석이 강하영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았다.옆으로 떨어진 두 손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마음속의 애석함은 분노로 대체되었다.정유준의 얼굴은 굳어졌고 허시원은 이런 정유준을 보자 가슴이 떨렸다.“사장님, 들어가시겠어요?”허시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정유준은 눈썹을 깔고 차가운 목소리고 지시했다.“조사해! 누가 했는지 알아봐!”허시원이 대답하며 몸을 돌리던 참에 정유준이 또 분부했다.“몇 명을 빈소에 안배하여 더는 차질이 없게 지키고 있어.”양운희는 친우가 많지 않기에 장례를 간단히 치르기로 했다.우인나와 부진석은 특별히 휴가를 내어 강하영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3일 동안 강하영은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잠도 3, 4시간밖에 자지 못하였다.이런 강하영이 안쓰러워 우인나는 위로했다.“하영아, 가서 뭐 좀 먹고 자. 여긴 우리가 지킬게.”강하영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우인나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앉으려는데 갑자기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고개를 돌려보니 양다인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우인나의 안색이 대번에 변하였다.양다인은 혼자 왔다. 빈소로 발을 들여놓자 우인나가 앞길을 막았다.“왜 왔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양다인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유준 씨를 대신해서 와도 안 되나요?”우인나는 무의식중에 강하영을 바라보았고 그의 표정이 여전한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양다인에게 경고를 했다.“함부로 굴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테야!”양다인은 웃으며 손을 뻗어 우인나를 밀쳤다. 그는 강하영과 옆에 있는 부진석을 번갈아 바라보았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