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준이 배현욱을 노려보자, 배현욱은 어깨를 으쓱했다.“사실을 얘기했을 뿐이야.”정유준은 이를 악물었다. 방금 강하영의 상태를 못 본 것도 아니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정유준은 정희민을 안고 강하영의 뒤를 쫓아갔고, 배현욱도 그런 정유준의 뒤를 따랐다.20분 후.강하영이 항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홍수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죽고 싶어? 왜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거야?”“나 혼자 왔는데, 무슨 사람이 있다는 거야?”“입구에 또 검은 차 두 대가 도착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강하영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그 말에 몸을 돌려 보니, 정유준과 배현욱의 차가 오고 있었다.‘저 두 사람은 왜 따라온 거야?’“형사가 아니라 아이 아빠야!”“그래 좋아! 괜히 거짓말했다가 지금 바로 밧줄을 끊어버릴 테니까!”홍수혁이 노골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밧줄?’서둘러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니, 항구에서 가장 높은 크레인 위에 작은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고, 그 아래는 시멘트 도로가 있었는데 수십 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강하영은 두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렸다.“홍, 홍수혁! 내 아들 당장 내려줘! 제발 부탁이야!”강하영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강하영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린 우인나가 강하영의 시선을 따라 위를 바라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세준아! 세준이가 위에 있어!”우인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도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섭기 마련인데 어린아이는 어떻겠는가?강세희는 세준이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전화기 너머로 홍수혁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들을 구하고 싶으면 가져온 물건을 전부 이쪽으로 넘겨!”“줄게! 다 줄게! 차 어디 세웠어? 2억 어떻게 전해주면 돼?”“저기 크레인 밑에 있는 작은 집 보여? 차를 이쪽으로 몰고 와서 차 키는 집안에 둬!”“
강하영은 정유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당신을 속인다고 생각해요?”“그게 아니면 뭐야!”정유준의 반문에 강하영은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정유준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는 실망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정유준을 향해 쏘아붙였다.“정유준 씨! 오늘 했던 말 꼭 기억하길 바랄게요! 언젠간 오늘 당신의 한 말과 행동에 후회하는 날이 올 테니까!”말을 마친 강하영은 곧장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작은 집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우인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세희를 안고 제자리에 서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상사를 혐오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 대표님, 이번엔 제대로 하영이한테 상처를 주셨네요. 저도 마찬가지로 대표님의 세계관에 제대로 충격받았네요.”말을 마친 우인나는 몸을 돌려 강하영의 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배현욱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앞으로 다가왔다.“유준아, 방금 강하영 씨 모습 연기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정유준은 서늘한 표정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작은 그림자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내가 직접 조사한 결과가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아.”낮은 집.강하영은 차 키를 집 안에 있는 탁자 위에 놓고 홍수혁의 카드에 2억을 입금한 뒤, 급히 홍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입금 확인했으니까, 여기서 먼 곳에 떨어져 있어. 내가 먼저 떠날 테니까.”“그럼 내 아들은?”“내가 떠난 뒤에 구하면 되잖아.”강하영의 떨리는 목소리에 홍수혁이 불쾌한 말투로 대답하자, 강하영도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홍수혁의 말대로 몸을 돌려 집에서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몇 분도 채 안 되어 강하영은 홍수혁이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강하영은 홍수혁이 차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 귀청을 찌르는 듯한 사이렌 소리에 강하영은 몸을 흠칫 떨었다.‘뭐야, 경찰이야? 그럼 홍수혁은…….’“X발, 이년들이 감
순간 강하영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세준아, 정말 우리 세준이 맞아?”강하영은 아들이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세준이는 분명 높은 곳에서 추락했잖아…….’“엄마.”강세준의 작은 얼굴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아니면 또 누구겠어요?”확실한 대답을 들은 강하영은 얼른 눈물을 닦았다.“아니야, 세준아. 엄마가 잠시 헛소리했나 봐. 지금 갈게.”“어서 와요, 엄마.”강하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세준한테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세준이 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세준아…….”“엄마, 왜 그렇게 느려요? 빨리 와요.”강하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세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만, 앞으로 달려갈수록 세준의 그림자는 더욱 멀어졌다.“엄마…….”세준의 검은 눈동자에는 실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엄마, 왜 아직도 안 와요?”“엄마가 갈게! 움직이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엄마, 너무 늦었어요…….”세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작은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졌다.“세준아?”“세준아!”병실 안.강하영이 비명을 지르며 병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떨면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였고, 하영의 비명에 소파에 있던 우인나도 잠에서 깼다.“하영아, 정신이 들어? 혹시 악몽이라도 꿨어?”우인나의 목소리에 강하영은 점차 악몽에서 벗어나 뻣뻣하게 고개를 들어 우인나를 바라보았다.“우인나…….”강하영이 입을 열려는 순간 머릿속에 세준이 참혹하게 죽어있는 모습이 떠올라 눈동자가 커지더니, 재빨리 우인나의 팔을 잡았다.“세준이는? 지금 어디 있어?”“하영아, 일단 진정하고 내 얘기 좀 들어봐.”우인나의 위로에도 강하영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우리 세준이 정말 죽은 거야……?”그러다 눈시울을 붉히며 감정이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얼른 대답해 봐! 우리 세준이 죽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정유준 씨가 뭔데 내 아들을 못 보게 막는 거야? 만약 세준이가 죽었다면 평생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당신이 매정하게 죽는 걸 보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잖아!”정유준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발견한 우인나가 얼른 앞으로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하영아, 일단 진정 좀 해. 내가 세준이 보여줄게.”우인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배현욱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현욱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무슨 일이죠?”“하영이가 볼 수 있게 카메라를 세준이한테, 엇?”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영이 휴대폰을 빼앗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배현욱이 화면을 돌려 병상에 조용히 누워있는 강세준을 비추는 순간 강하영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세준이가 죽지 않았어…….’몸에 거즈나 산소마스크도 없었고, 그저 작은 손등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세준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다량의 마취제 때문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거야.”우인나가 한숨을 쉬며 설명하자, 강하영은 조마조마한 심정이 안정을 되찾고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그럼 떨어진 사람은 누구야?”“그냥 모래로 가득 채운 인형에 세준이 옷을 입혔던 거야. 튀어나온 피는 사실 닭피였고.”당시 우인나도 몹시 놀랐지만, 앞으로 달려가 인형이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사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 대표님은 과연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진작에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진짜 세준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강하영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찰도 정유준이 부른 것이었다. 정유준은 홍수혁에게 무척 아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홍수혁이 정말 살인은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왜냐하면 홍수혁의 아들도 혈육이라곤 홍수혁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미리 꿰뚫고, 홍수혁이 도망가려고 할 때 경찰이 그를 체포하도록 했다.유일하게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가짜 세준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은 하영이 쓰러졌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참지 못한 강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정유준은 뒤에 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그 자태는 무척이나 고귀하고 우아해 보였다.“우리 얘기 좀 해.”강하영은 그런 정유준의 눈빛을 피했다.“우리 사이에 더 나눌 얘기가 있었나요?”“그래? 그럼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던 말 설명해 봐. 왜 그런 말을 했지?”“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나간 것이었어요.”정유준의 느릿느릿한 질문에 강하영은 변명했고, 정유준은 담담한 표정은 강하영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 다만 희민이 일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강하영은 정유준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희민이 우리 아이잖아.”“그게 어쨌다는 거죠?”강하영도 더 이상 빙빙 돌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다시는 너와 희민이를 만나게 할 생각이 없어.”“왜 희민이를 만나지 못하는데요?”“네가 희민이 엄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정유준의 냉정한 말투에 강하영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희민이가 유준 씨만의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유준 씨는 희민이와 내가 만나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어요! 법적으로 나한테도 희민이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요!”“너도 희민이가 네 아들인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희민이가 독차지해야 할 엄마 사랑을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생아한테 나눠준 거야?”‘사생아?’강하영은 순간 숨이 멎는 것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비록 애들의 출생 비밀을 지키려는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 두 아이를 사생아라고 부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정유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정유준이 손을 들어 강하영의 손목을 잡고 싸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강하영을 응시했다.“왜? 내가 정곡을 찔러서 부끄럽고 화가 났어?”“정유준 씨!
“알았어.”강하영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오빠가 예전에 해줬던 말도 맞았다. 만약 하영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세준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형사한테 물어보니 교통사고도 홍수혁이 계획한 거라고 했어. 다른 아이는 건드리지도 않고 강세준만 노리고 있었다더군. 이 일을 사주한 사람도 자백했는데 양다인이었어. 양다인도 지금 경찰서에 있고 할아버지도 도와줄 생각이 없으신가 봐.”“대체 어떤 년이야? 내가 죽여버릴 거야!”캐리의 분노에 소예준은 캐리를 힐끗 쳐다봤다.“양다인은 지금 소씨 집안사람인데, 정말 갈 거야?”소예준의 말에 캐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록 금방 이곳에 왔지만 김제의 3대 가문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혼자서 유서 깊은 소씨 가문을 건드렸다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캐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을 움츠렸다.“어, 그게, 걱정할 필요 없어. 일단 계획부터 세워야지, 계획.”강하영의 눈가에 한기가 스쳤다.‘양다인, 내가 너의 잔인함을 얕잡아 봤구나! 희민이도 부족해서 이제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세준이까지 해치려 해?’강하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오빠, 나 경찰서에 다녀올게.”“그래, 내가 너 대신 세준이 지키고 있을게.”강하영은 몸을 일으키며 캐리를 바라보았다.“캐리, 운전해 줄 수 있어?”“가자.”경찰서.양다인은 취조실에 갇힌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경찰서로 끌려온 지 벌써 반나절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아직도 변호사를 데리고 도와주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홍수혁 이 멍청한 자식! 유학생이라 해서 머리 좀 쓸 줄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멍청하게 다 불어버릴 줄이야!’그때 갑자기 취조실 문이 열렸다.“양다인 씨, 누가 찾아왔어요.”형사의 말에 양다인은 기쁜 기색을 보였다.‘분명 할아버지가 오신 거야!’양다인은 몸을 일으켜 경멸의 눈빛으로 형사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러게 내가 사람 함부로 잡아들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다 직장을 잃
강하영이 차로 돌아오자 캐리가 흥분한 듯 묻기 시작했다.“어때? 그 여자 실형을 선고받을 것 같아?”강하영은 안전벨트를 하며,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했다.“응? 대체 왜?”캐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왜…… 라는 질문에 꼬박 3박 3일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하영이 양다인에게 손을 쓰려 해도 소 노인이 어떻게든 양다인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양다인한테 그 정도로 겁을 줬으니 적어도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겠지.“설명하자면 길어.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하영은 캐리까지 복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다음날.임수진이 서류들을 챙겨 강하영의 사인을 받으러 병원에 오면서 신선한 과일 한 바구니를 사 왔고, 강하영도 굳이 마다하지 않고 과일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생각해 줘서 고마워. 공장 쪽에 며칠만 나 대신 상황을 좀 지켜봐 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문자하고.”“네, 대표님. 여기 두 가지 서류만 검토하시고 사인해 주세요.”강하영이 서류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는 중에 우인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하영아, 나 왔어.”강하영은 우인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나 이것만 사인 좀 하고.”“나 신경 쓰지 마.”우인나는 옆에 앉아 휴대폰을 만졌다.10여 분 후 서류를 전부 훑어본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이 원고 누가 그렸어?”임수진이 원고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부사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이에요”“6년 전 MK에것 나온 디자인인데, 약간만 수정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봐?”MK가 언급되자 우인나도 관심이 생겨,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영한테 다가갔다.“나도 보여줘.”강하영은 디자인 원고를 우인나에게 건네주었고, 우인나는 한눈에 보자마자 혀를 찼다.“이게 뭐야? 이거 우리 부서 직원이 직접 디자인했던 거야! 아무리 수정을 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하영아, 이런 직원은 회사에 남겨 두면 안 돼.”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영은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임수진이 아니었으며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하영은 시선을 돌려 임수진을 바라보자, 임수진의 팔에 기다란 상처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임수진 씨, 우리 병원부터 가!”강하영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임수진은 강하영의 시선을 따라 상처를 힐끗 쳐다보고 마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듯이 눈살도 찌푸리지 않았다.“작은 상처라 괜찮아요.”“이건 작은 상처 정도가 아니잖아! 어서 병원으로 가!”데스크에서 접수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다.임수진의 팔은 10바늘이나 꿰매고 CT를 찍으니 팔꿈치의 뼈가 부서졌다. 그 모습에 강하영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임수진 씨, 유급휴가 줄 테니까,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오늘 일은 잊지 않을게, 정말 고마워요.”“대표님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셀 수도 없네요. 휴식할 필요 없으니 굳이 휴가 주지 않으셔도 돼요.”“안 돼! 이러고 출근할 수는 없잖아.”“그렇다고 제가 집에서 일하는 것까진 막을 수는 없잖아요.”‘일벌레…….’강하영의 머릿속에 이 세글자가 맴돌았다. 지금까지 임수진처럼 일에 이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오히려 하영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유능한 인재기도 하니 강하영은 임수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그럼 재택근무하도록 해. 회사 일도 알아서 하고.”“네.”임수진을 데리고 약을 처방받고 함께 밥을 먹은 뒤, 강하영은 임수진의 요구에 따라 회사로 돌려보냈다.그리고 경호원에게 반드시 임수진을 집에 데려다주라고 분부한 뒤 병원으로 돌아오니 우인나가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너 거북이야?”강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점심에 일어난 일을 우인나에게 얘기해 줬고, 우인나는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세상에, 또 누가 너를 해치려고 한 거야?”“그건 아닌 것 같아. 차주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거든.”“안 되겠어. 네 덕분에 피해망상증이라도 걸린 것 같아.”우인나는 겁에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