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정유준 씨가 뭔데 내 아들을 못 보게 막는 거야? 만약 세준이가 죽었다면 평생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당신이 매정하게 죽는 걸 보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잖아!”정유준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발견한 우인나가 얼른 앞으로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하영아, 일단 진정 좀 해. 내가 세준이 보여줄게.”우인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배현욱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현욱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무슨 일이죠?”“하영이가 볼 수 있게 카메라를 세준이한테, 엇?”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영이 휴대폰을 빼앗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배현욱이 화면을 돌려 병상에 조용히 누워있는 강세준을 비추는 순간 강하영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세준이가 죽지 않았어…….’몸에 거즈나 산소마스크도 없었고, 그저 작은 손등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세준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다량의 마취제 때문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거야.”우인나가 한숨을 쉬며 설명하자, 강하영은 조마조마한 심정이 안정을 되찾고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그럼 떨어진 사람은 누구야?”“그냥 모래로 가득 채운 인형에 세준이 옷을 입혔던 거야. 튀어나온 피는 사실 닭피였고.”당시 우인나도 몹시 놀랐지만, 앞으로 달려가 인형이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사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 대표님은 과연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진작에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진짜 세준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강하영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찰도 정유준이 부른 것이었다. 정유준은 홍수혁에게 무척 아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홍수혁이 정말 살인은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왜냐하면 홍수혁의 아들도 혈육이라곤 홍수혁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미리 꿰뚫고, 홍수혁이 도망가려고 할 때 경찰이 그를 체포하도록 했다.유일하게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가짜 세준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은 하영이 쓰러졌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참지 못한 강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정유준은 뒤에 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그 자태는 무척이나 고귀하고 우아해 보였다.“우리 얘기 좀 해.”강하영은 그런 정유준의 눈빛을 피했다.“우리 사이에 더 나눌 얘기가 있었나요?”“그래? 그럼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던 말 설명해 봐. 왜 그런 말을 했지?”“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나간 것이었어요.”정유준의 느릿느릿한 질문에 강하영은 변명했고, 정유준은 담담한 표정은 강하영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 다만 희민이 일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강하영은 정유준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희민이 우리 아이잖아.”“그게 어쨌다는 거죠?”강하영도 더 이상 빙빙 돌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다시는 너와 희민이를 만나게 할 생각이 없어.”“왜 희민이를 만나지 못하는데요?”“네가 희민이 엄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정유준의 냉정한 말투에 강하영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희민이가 유준 씨만의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유준 씨는 희민이와 내가 만나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어요! 법적으로 나한테도 희민이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요!”“너도 희민이가 네 아들인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희민이가 독차지해야 할 엄마 사랑을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생아한테 나눠준 거야?”‘사생아?’강하영은 순간 숨이 멎는 것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비록 애들의 출생 비밀을 지키려는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 두 아이를 사생아라고 부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정유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정유준이 손을 들어 강하영의 손목을 잡고 싸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강하영을 응시했다.“왜? 내가 정곡을 찔러서 부끄럽고 화가 났어?”“정유준 씨!
“알았어.”강하영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오빠가 예전에 해줬던 말도 맞았다. 만약 하영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세준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형사한테 물어보니 교통사고도 홍수혁이 계획한 거라고 했어. 다른 아이는 건드리지도 않고 강세준만 노리고 있었다더군. 이 일을 사주한 사람도 자백했는데 양다인이었어. 양다인도 지금 경찰서에 있고 할아버지도 도와줄 생각이 없으신가 봐.”“대체 어떤 년이야? 내가 죽여버릴 거야!”캐리의 분노에 소예준은 캐리를 힐끗 쳐다봤다.“양다인은 지금 소씨 집안사람인데, 정말 갈 거야?”소예준의 말에 캐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록 금방 이곳에 왔지만 김제의 3대 가문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혼자서 유서 깊은 소씨 가문을 건드렸다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캐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을 움츠렸다.“어, 그게, 걱정할 필요 없어. 일단 계획부터 세워야지, 계획.”강하영의 눈가에 한기가 스쳤다.‘양다인, 내가 너의 잔인함을 얕잡아 봤구나! 희민이도 부족해서 이제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세준이까지 해치려 해?’강하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오빠, 나 경찰서에 다녀올게.”“그래, 내가 너 대신 세준이 지키고 있을게.”강하영은 몸을 일으키며 캐리를 바라보았다.“캐리, 운전해 줄 수 있어?”“가자.”경찰서.양다인은 취조실에 갇힌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경찰서로 끌려온 지 벌써 반나절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아직도 변호사를 데리고 도와주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홍수혁 이 멍청한 자식! 유학생이라 해서 머리 좀 쓸 줄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멍청하게 다 불어버릴 줄이야!’그때 갑자기 취조실 문이 열렸다.“양다인 씨, 누가 찾아왔어요.”형사의 말에 양다인은 기쁜 기색을 보였다.‘분명 할아버지가 오신 거야!’양다인은 몸을 일으켜 경멸의 눈빛으로 형사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러게 내가 사람 함부로 잡아들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다 직장을 잃
강하영이 차로 돌아오자 캐리가 흥분한 듯 묻기 시작했다.“어때? 그 여자 실형을 선고받을 것 같아?”강하영은 안전벨트를 하며,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했다.“응? 대체 왜?”캐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왜…… 라는 질문에 꼬박 3박 3일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하영이 양다인에게 손을 쓰려 해도 소 노인이 어떻게든 양다인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양다인한테 그 정도로 겁을 줬으니 적어도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겠지.“설명하자면 길어.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하영은 캐리까지 복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다음날.임수진이 서류들을 챙겨 강하영의 사인을 받으러 병원에 오면서 신선한 과일 한 바구니를 사 왔고, 강하영도 굳이 마다하지 않고 과일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생각해 줘서 고마워. 공장 쪽에 며칠만 나 대신 상황을 좀 지켜봐 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문자하고.”“네, 대표님. 여기 두 가지 서류만 검토하시고 사인해 주세요.”강하영이 서류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는 중에 우인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하영아, 나 왔어.”강하영은 우인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나 이것만 사인 좀 하고.”“나 신경 쓰지 마.”우인나는 옆에 앉아 휴대폰을 만졌다.10여 분 후 서류를 전부 훑어본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이 원고 누가 그렸어?”임수진이 원고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부사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이에요”“6년 전 MK에것 나온 디자인인데, 약간만 수정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봐?”MK가 언급되자 우인나도 관심이 생겨,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영한테 다가갔다.“나도 보여줘.”강하영은 디자인 원고를 우인나에게 건네주었고, 우인나는 한눈에 보자마자 혀를 찼다.“이게 뭐야? 이거 우리 부서 직원이 직접 디자인했던 거야! 아무리 수정을 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하영아, 이런 직원은 회사에 남겨 두면 안 돼.”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영은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임수진이 아니었으며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하영은 시선을 돌려 임수진을 바라보자, 임수진의 팔에 기다란 상처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임수진 씨, 우리 병원부터 가!”강하영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임수진은 강하영의 시선을 따라 상처를 힐끗 쳐다보고 마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듯이 눈살도 찌푸리지 않았다.“작은 상처라 괜찮아요.”“이건 작은 상처 정도가 아니잖아! 어서 병원으로 가!”데스크에서 접수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다.임수진의 팔은 10바늘이나 꿰매고 CT를 찍으니 팔꿈치의 뼈가 부서졌다. 그 모습에 강하영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임수진 씨, 유급휴가 줄 테니까,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오늘 일은 잊지 않을게, 정말 고마워요.”“대표님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셀 수도 없네요. 휴식할 필요 없으니 굳이 휴가 주지 않으셔도 돼요.”“안 돼! 이러고 출근할 수는 없잖아.”“그렇다고 제가 집에서 일하는 것까진 막을 수는 없잖아요.”‘일벌레…….’강하영의 머릿속에 이 세글자가 맴돌았다. 지금까지 임수진처럼 일에 이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오히려 하영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유능한 인재기도 하니 강하영은 임수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그럼 재택근무하도록 해. 회사 일도 알아서 하고.”“네.”임수진을 데리고 약을 처방받고 함께 밥을 먹은 뒤, 강하영은 임수진의 요구에 따라 회사로 돌려보냈다.그리고 경호원에게 반드시 임수진을 집에 데려다주라고 분부한 뒤 병원으로 돌아오니 우인나가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너 거북이야?”강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점심에 일어난 일을 우인나에게 얘기해 줬고, 우인나는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세상에, 또 누가 너를 해치려고 한 거야?”“그건 아닌 것 같아. 차주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거든.”“안 되겠어. 네 덕분에 피해망상증이라도 걸린 것 같아.”우인나는 겁에 질
“나도 세희가 보고싶지만 엄마가 그러시는 이유도 네가 많이 놀라서 집에서 쉬라고 그러시는 거야.”정희민은 세희를 위해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응! 나도 알아. 오빠는 어때?”세희는 볼을 부풀리고 화난 말투로 물었다.“그 사람이 요며칠 오빠한테 특별히 잘해줘?”정희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래.”라고 대답했다.이때 정희민은 컴퓨터 앞에 앉아 어두운 얼굴로 서재의 CC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요 며칠 집에 돌아와 함께 식사한 뒤로 자신을 서재에 가두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거의 늦은 밤까지 일에 몰두하고 계셨다.“오빠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면 나도 안심이야. 나 그림그리러 갈 테니까 오빠도 일찍 자. 잘 자”강세희의 귀여운 말투에 희민의 답답하던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응, 세희도 잘 자.”전화를 끊은 뒤 강세희는 휴대폰을 부진석에게 돌려주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진석 아빠,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그에 진석은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우리 세희, 뭐가 궁금해?”“만약 그 남자가 제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빠 노릇을 한다면 진석 아빠는 기분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부진석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나는 세희랑 엄마가 슬퍼하지 않으면, 나도 마찬가지야. 어찌됐든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니까.”“만약 그 남자가 엄마와 다시 함께하고 싶다고 하면요?”“그럼 축복해 줘야지.”세희는 부진석 품을 파고듦녀 말했다.“진석 아빠가 훨씬 더 좋아요. 진석 아빠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부진석은 미소 띈 얼굴로 세희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진석의 맑은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영이가 다시 그 남자한테 돌아갈까?’같은 시각.정희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빠도, 엄마도 두 분 모두 안타까웠다.어떤 일들은 아빠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세준이와 세희를 빼앗아 가서, 엄마 혼자
경호원은 고개를 저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심각하게 싸우고 있습니다.”강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국자를 내려놓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주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배현욱 씨,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죠? 내 차가 그쪽 심기라도 건드렸습니까?”“우인나 씨가 갑자기 후진해서 박은 거지, 내가 일부러 앞으로 가면서 부딪친 게 아니잖아요.”화가 나 소리 지르는 우인나를 향해 배현욱이 참을성 있게 설명하자 우인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차라리 나를 장님이라고 욕하지 그래요?”“기어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네요.”“배현욱 씨가 할 일 없이 여기로 오지 않았다면 부딪치는 일도 없었잖아요!”“나는 부탁을 받고 세준이 보러 온 겁니다.”“누군지 이름도 밝히지 못하면서 웬 쓸데없는 관심이에요!”두 사람이 쉬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 모습에 강하영은 머리가 아파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납게 싸우네요.”강하영이 고개를 돌리니 지영 언니가 어느새 뒤에 서서 원망이 담긴 미묘한 눈빛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강하영은 혹시라도 두 사람의 말다툼에 지영 언니의 병이 도질까 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지영 언니, 저 두 사람은 제 친구니까 걱정말고 어서 들어가요. 제가 두 사람 말릴게요.”“그렇군요.”백지영이 다시 별장으로 들어가려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을 느낀 배현욱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배현욱이 익숙한 그림자를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여자는 어느새 하영의 뒤에 가려졌고, 배현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저 여자 옆모습이 왠지 유준이 어머님을 닮았는데?’그러나 이내 이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유준이 엄마가 강하영 씨를 알 리가 없잖아.’배현욱이 황당한 생각을 접었을 때, 마침 강하영이 다가와 싸움을 말렸다.“밖에서 싸우지 마. 넓은 집을 두고 왜 굳이 구경거리가 되려는 거야?”우인나는
“…….”너무 충격적인 얘기에 강하영은 너무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처음 알았다.“그래서 책임지길 원하는 거야? 그게 중요하잖아.”“배현욱 씨한테 여자가 많다는 얘기 들었어. 그런데 그런 사람이랑 사귀게 되면 매일 상간녀를 잡으러 다녀야 하잖아!”“인나야,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오히려 배현욱 씨가 너를 책임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는 것 같아.”강하영은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됐어. 그냥 개한테 물린 셈 치면 되지.”“사람 감정이라는 게 정확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네 모습은 배현욱 씨한테 푹 빠진 것 같아.”“내가? 그럴 리가 없어! 절대 아니야!”우인나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강하영은 그런 우인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당사자는 알지 못한다는 건 바로 우인나를 두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우인나가 상처받지 않게 배현욱 씨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지.’……배현욱은 아크로빌을 떠나 난원으로 정유준을 찾으러 갔다. 현욱은 거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유준아, 강하영 아들은 이미 회복된 것 같아.”정유준이 휴대폰을 뒤적이며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그래.”라고 대답하자 배현욱은 어깨를 으쓱했다.“뭐, 네가 확신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내 직감은 늘 틀리는 법이 없거든. 게다가 요즘 해킹 기술이 좋아서 누군가 DNA를 조작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그 일은 둘째치고 또 한가지 사실이 있어.”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배현욱을 쳐다보았다.“요즘 자꾸 강하영 편을 드는 것 같다?”정유준의 말에 배현욱은 웃음을 터뜨렸다.“얘기도 못 해?”“믿을 만한 얘긴지 누가 알겠어?”“그렇게 얘기하면 나 상처받는 거 알지? 일단 내 얘기 끝까지 들어봐.”정유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오므린 채 배현욱의 다음말을 기다렸다.“오늘 아크로빌에 갔을 때, 강하영 집에서 어떤 여자를 봤거든? 근데 그 여자 옆모습이 네 어머니랑 닮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