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강하영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세준아, 정말 우리 세준이 맞아?”강하영은 아들이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세준이는 분명 높은 곳에서 추락했잖아…….’“엄마.”강세준의 작은 얼굴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아니면 또 누구겠어요?”확실한 대답을 들은 강하영은 얼른 눈물을 닦았다.“아니야, 세준아. 엄마가 잠시 헛소리했나 봐. 지금 갈게.”“어서 와요, 엄마.”강하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세준한테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세준이 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세준아…….”“엄마, 왜 그렇게 느려요? 빨리 와요.”강하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세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만, 앞으로 달려갈수록 세준의 그림자는 더욱 멀어졌다.“엄마…….”세준의 검은 눈동자에는 실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엄마, 왜 아직도 안 와요?”“엄마가 갈게! 움직이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엄마, 너무 늦었어요…….”세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작은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졌다.“세준아?”“세준아!”병실 안.강하영이 비명을 지르며 병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떨면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였고, 하영의 비명에 소파에 있던 우인나도 잠에서 깼다.“하영아, 정신이 들어? 혹시 악몽이라도 꿨어?”우인나의 목소리에 강하영은 점차 악몽에서 벗어나 뻣뻣하게 고개를 들어 우인나를 바라보았다.“우인나…….”강하영이 입을 열려는 순간 머릿속에 세준이 참혹하게 죽어있는 모습이 떠올라 눈동자가 커지더니, 재빨리 우인나의 팔을 잡았다.“세준이는? 지금 어디 있어?”“하영아, 일단 진정하고 내 얘기 좀 들어봐.”우인나의 위로에도 강하영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우리 세준이 정말 죽은 거야……?”그러다 눈시울을 붉히며 감정이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얼른 대답해 봐! 우리 세준이 죽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정유준 씨가 뭔데 내 아들을 못 보게 막는 거야? 만약 세준이가 죽었다면 평생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당신이 매정하게 죽는 걸 보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잖아!”정유준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발견한 우인나가 얼른 앞으로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하영아, 일단 진정 좀 해. 내가 세준이 보여줄게.”우인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배현욱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현욱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무슨 일이죠?”“하영이가 볼 수 있게 카메라를 세준이한테, 엇?”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하영이 휴대폰을 빼앗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배현욱이 화면을 돌려 병상에 조용히 누워있는 강세준을 비추는 순간 강하영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세준이가 죽지 않았어…….’몸에 거즈나 산소마스크도 없었고, 그저 작은 손등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세준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다량의 마취제 때문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거야.”우인나가 한숨을 쉬며 설명하자, 강하영은 조마조마한 심정이 안정을 되찾고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그럼 떨어진 사람은 누구야?”“그냥 모래로 가득 채운 인형에 세준이 옷을 입혔던 거야. 튀어나온 피는 사실 닭피였고.”당시 우인나도 몹시 놀랐지만, 앞으로 달려가 인형이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사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 대표님은 과연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진작에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진짜 세준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강하영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찰도 정유준이 부른 것이었다. 정유준은 홍수혁에게 무척 아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홍수혁이 정말 살인은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왜냐하면 홍수혁의 아들도 혈육이라곤 홍수혁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미리 꿰뚫고, 홍수혁이 도망가려고 할 때 경찰이 그를 체포하도록 했다.유일하게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가짜 세준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은 하영이 쓰러졌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참지 못한 강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정유준은 뒤에 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그 자태는 무척이나 고귀하고 우아해 보였다.“우리 얘기 좀 해.”강하영은 그런 정유준의 눈빛을 피했다.“우리 사이에 더 나눌 얘기가 있었나요?”“그래? 그럼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던 말 설명해 봐. 왜 그런 말을 했지?”“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나간 것이었어요.”정유준의 느릿느릿한 질문에 강하영은 변명했고, 정유준은 담담한 표정은 강하영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 다만 희민이 일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강하영은 정유준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희민이 우리 아이잖아.”“그게 어쨌다는 거죠?”강하영도 더 이상 빙빙 돌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다시는 너와 희민이를 만나게 할 생각이 없어.”“왜 희민이를 만나지 못하는데요?”“네가 희민이 엄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정유준의 냉정한 말투에 강하영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희민이가 유준 씨만의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유준 씨는 희민이와 내가 만나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어요! 법적으로 나한테도 희민이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요!”“너도 희민이가 네 아들인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희민이가 독차지해야 할 엄마 사랑을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생아한테 나눠준 거야?”‘사생아?’강하영은 순간 숨이 멎는 것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비록 애들의 출생 비밀을 지키려는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 두 아이를 사생아라고 부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정유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정유준이 손을 들어 강하영의 손목을 잡고 싸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강하영을 응시했다.“왜? 내가 정곡을 찔러서 부끄럽고 화가 났어?”“정유준 씨!
“알았어.”강하영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오빠가 예전에 해줬던 말도 맞았다. 만약 하영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세준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형사한테 물어보니 교통사고도 홍수혁이 계획한 거라고 했어. 다른 아이는 건드리지도 않고 강세준만 노리고 있었다더군. 이 일을 사주한 사람도 자백했는데 양다인이었어. 양다인도 지금 경찰서에 있고 할아버지도 도와줄 생각이 없으신가 봐.”“대체 어떤 년이야? 내가 죽여버릴 거야!”캐리의 분노에 소예준은 캐리를 힐끗 쳐다봤다.“양다인은 지금 소씨 집안사람인데, 정말 갈 거야?”소예준의 말에 캐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록 금방 이곳에 왔지만 김제의 3대 가문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혼자서 유서 깊은 소씨 가문을 건드렸다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캐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을 움츠렸다.“어, 그게, 걱정할 필요 없어. 일단 계획부터 세워야지, 계획.”강하영의 눈가에 한기가 스쳤다.‘양다인, 내가 너의 잔인함을 얕잡아 봤구나! 희민이도 부족해서 이제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세준이까지 해치려 해?’강하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오빠, 나 경찰서에 다녀올게.”“그래, 내가 너 대신 세준이 지키고 있을게.”강하영은 몸을 일으키며 캐리를 바라보았다.“캐리, 운전해 줄 수 있어?”“가자.”경찰서.양다인은 취조실에 갇힌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경찰서로 끌려온 지 벌써 반나절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아직도 변호사를 데리고 도와주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홍수혁 이 멍청한 자식! 유학생이라 해서 머리 좀 쓸 줄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멍청하게 다 불어버릴 줄이야!’그때 갑자기 취조실 문이 열렸다.“양다인 씨, 누가 찾아왔어요.”형사의 말에 양다인은 기쁜 기색을 보였다.‘분명 할아버지가 오신 거야!’양다인은 몸을 일으켜 경멸의 눈빛으로 형사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러게 내가 사람 함부로 잡아들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다 직장을 잃
강하영이 차로 돌아오자 캐리가 흥분한 듯 묻기 시작했다.“어때? 그 여자 실형을 선고받을 것 같아?”강하영은 안전벨트를 하며,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했다.“응? 대체 왜?”캐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왜…… 라는 질문에 꼬박 3박 3일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하영이 양다인에게 손을 쓰려 해도 소 노인이 어떻게든 양다인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양다인한테 그 정도로 겁을 줬으니 적어도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겠지.“설명하자면 길어.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하영은 캐리까지 복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다음날.임수진이 서류들을 챙겨 강하영의 사인을 받으러 병원에 오면서 신선한 과일 한 바구니를 사 왔고, 강하영도 굳이 마다하지 않고 과일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생각해 줘서 고마워. 공장 쪽에 며칠만 나 대신 상황을 좀 지켜봐 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문자하고.”“네, 대표님. 여기 두 가지 서류만 검토하시고 사인해 주세요.”강하영이 서류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는 중에 우인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하영아, 나 왔어.”강하영은 우인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나 이것만 사인 좀 하고.”“나 신경 쓰지 마.”우인나는 옆에 앉아 휴대폰을 만졌다.10여 분 후 서류를 전부 훑어본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이 원고 누가 그렸어?”임수진이 원고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부사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이에요”“6년 전 MK에것 나온 디자인인데, 약간만 수정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봐?”MK가 언급되자 우인나도 관심이 생겨,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영한테 다가갔다.“나도 보여줘.”강하영은 디자인 원고를 우인나에게 건네주었고, 우인나는 한눈에 보자마자 혀를 찼다.“이게 뭐야? 이거 우리 부서 직원이 직접 디자인했던 거야! 아무리 수정을 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하영아, 이런 직원은 회사에 남겨 두면 안 돼.”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영은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임수진이 아니었으며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하영은 시선을 돌려 임수진을 바라보자, 임수진의 팔에 기다란 상처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임수진 씨, 우리 병원부터 가!”강하영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임수진은 강하영의 시선을 따라 상처를 힐끗 쳐다보고 마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듯이 눈살도 찌푸리지 않았다.“작은 상처라 괜찮아요.”“이건 작은 상처 정도가 아니잖아! 어서 병원으로 가!”데스크에서 접수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다.임수진의 팔은 10바늘이나 꿰매고 CT를 찍으니 팔꿈치의 뼈가 부서졌다. 그 모습에 강하영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임수진 씨, 유급휴가 줄 테니까,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오늘 일은 잊지 않을게, 정말 고마워요.”“대표님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셀 수도 없네요. 휴식할 필요 없으니 굳이 휴가 주지 않으셔도 돼요.”“안 돼! 이러고 출근할 수는 없잖아.”“그렇다고 제가 집에서 일하는 것까진 막을 수는 없잖아요.”‘일벌레…….’강하영의 머릿속에 이 세글자가 맴돌았다. 지금까지 임수진처럼 일에 이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오히려 하영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유능한 인재기도 하니 강하영은 임수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그럼 재택근무하도록 해. 회사 일도 알아서 하고.”“네.”임수진을 데리고 약을 처방받고 함께 밥을 먹은 뒤, 강하영은 임수진의 요구에 따라 회사로 돌려보냈다.그리고 경호원에게 반드시 임수진을 집에 데려다주라고 분부한 뒤 병원으로 돌아오니 우인나가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너 거북이야?”강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점심에 일어난 일을 우인나에게 얘기해 줬고, 우인나는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세상에, 또 누가 너를 해치려고 한 거야?”“그건 아닌 것 같아. 차주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거든.”“안 되겠어. 네 덕분에 피해망상증이라도 걸린 것 같아.”우인나는 겁에 질
“나도 세희가 보고싶지만 엄마가 그러시는 이유도 네가 많이 놀라서 집에서 쉬라고 그러시는 거야.”정희민은 세희를 위해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응! 나도 알아. 오빠는 어때?”세희는 볼을 부풀리고 화난 말투로 물었다.“그 사람이 요며칠 오빠한테 특별히 잘해줘?”정희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래.”라고 대답했다.이때 정희민은 컴퓨터 앞에 앉아 어두운 얼굴로 서재의 CC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요 며칠 집에 돌아와 함께 식사한 뒤로 자신을 서재에 가두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거의 늦은 밤까지 일에 몰두하고 계셨다.“오빠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면 나도 안심이야. 나 그림그리러 갈 테니까 오빠도 일찍 자. 잘 자”강세희의 귀여운 말투에 희민의 답답하던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응, 세희도 잘 자.”전화를 끊은 뒤 강세희는 휴대폰을 부진석에게 돌려주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진석 아빠,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그에 진석은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우리 세희, 뭐가 궁금해?”“만약 그 남자가 제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빠 노릇을 한다면 진석 아빠는 기분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부진석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나는 세희랑 엄마가 슬퍼하지 않으면, 나도 마찬가지야. 어찌됐든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니까.”“만약 그 남자가 엄마와 다시 함께하고 싶다고 하면요?”“그럼 축복해 줘야지.”세희는 부진석 품을 파고듦녀 말했다.“진석 아빠가 훨씬 더 좋아요. 진석 아빠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부진석은 미소 띈 얼굴로 세희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진석의 맑은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영이가 다시 그 남자한테 돌아갈까?’같은 시각.정희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빠도, 엄마도 두 분 모두 안타까웠다.어떤 일들은 아빠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세준이와 세희를 빼앗아 가서, 엄마 혼자
경호원은 고개를 저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심각하게 싸우고 있습니다.”강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국자를 내려놓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주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배현욱 씨,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죠? 내 차가 그쪽 심기라도 건드렸습니까?”“우인나 씨가 갑자기 후진해서 박은 거지, 내가 일부러 앞으로 가면서 부딪친 게 아니잖아요.”화가 나 소리 지르는 우인나를 향해 배현욱이 참을성 있게 설명하자 우인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차라리 나를 장님이라고 욕하지 그래요?”“기어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네요.”“배현욱 씨가 할 일 없이 여기로 오지 않았다면 부딪치는 일도 없었잖아요!”“나는 부탁을 받고 세준이 보러 온 겁니다.”“누군지 이름도 밝히지 못하면서 웬 쓸데없는 관심이에요!”두 사람이 쉬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 모습에 강하영은 머리가 아파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납게 싸우네요.”강하영이 고개를 돌리니 지영 언니가 어느새 뒤에 서서 원망이 담긴 미묘한 눈빛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강하영은 혹시라도 두 사람의 말다툼에 지영 언니의 병이 도질까 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지영 언니, 저 두 사람은 제 친구니까 걱정말고 어서 들어가요. 제가 두 사람 말릴게요.”“그렇군요.”백지영이 다시 별장으로 들어가려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을 느낀 배현욱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배현욱이 익숙한 그림자를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여자는 어느새 하영의 뒤에 가려졌고, 배현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저 여자 옆모습이 왠지 유준이 어머님을 닮았는데?’그러나 이내 이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유준이 엄마가 강하영 씨를 알 리가 없잖아.’배현욱이 황당한 생각을 접었을 때, 마침 강하영이 다가와 싸움을 말렸다.“밖에서 싸우지 마. 넓은 집을 두고 왜 굳이 구경거리가 되려는 거야?”우인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