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은 고개를 저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심각하게 싸우고 있습니다.”강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국자를 내려놓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주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배현욱 씨,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죠? 내 차가 그쪽 심기라도 건드렸습니까?”“우인나 씨가 갑자기 후진해서 박은 거지, 내가 일부러 앞으로 가면서 부딪친 게 아니잖아요.”화가 나 소리 지르는 우인나를 향해 배현욱이 참을성 있게 설명하자 우인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차라리 나를 장님이라고 욕하지 그래요?”“기어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네요.”“배현욱 씨가 할 일 없이 여기로 오지 않았다면 부딪치는 일도 없었잖아요!”“나는 부탁을 받고 세준이 보러 온 겁니다.”“누군지 이름도 밝히지 못하면서 웬 쓸데없는 관심이에요!”두 사람이 쉬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 모습에 강하영은 머리가 아파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납게 싸우네요.”강하영이 고개를 돌리니 지영 언니가 어느새 뒤에 서서 원망이 담긴 미묘한 눈빛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강하영은 혹시라도 두 사람의 말다툼에 지영 언니의 병이 도질까 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지영 언니, 저 두 사람은 제 친구니까 걱정말고 어서 들어가요. 제가 두 사람 말릴게요.”“그렇군요.”백지영이 다시 별장으로 들어가려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을 느낀 배현욱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배현욱이 익숙한 그림자를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여자는 어느새 하영의 뒤에 가려졌고, 배현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저 여자 옆모습이 왠지 유준이 어머님을 닮았는데?’그러나 이내 이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유준이 엄마가 강하영 씨를 알 리가 없잖아.’배현욱이 황당한 생각을 접었을 때, 마침 강하영이 다가와 싸움을 말렸다.“밖에서 싸우지 마. 넓은 집을 두고 왜 굳이 구경거리가 되려는 거야?”우인나는
“…….”너무 충격적인 얘기에 강하영은 너무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처음 알았다.“그래서 책임지길 원하는 거야? 그게 중요하잖아.”“배현욱 씨한테 여자가 많다는 얘기 들었어. 그런데 그런 사람이랑 사귀게 되면 매일 상간녀를 잡으러 다녀야 하잖아!”“인나야,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오히려 배현욱 씨가 너를 책임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는 것 같아.”강하영은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됐어. 그냥 개한테 물린 셈 치면 되지.”“사람 감정이라는 게 정확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네 모습은 배현욱 씨한테 푹 빠진 것 같아.”“내가? 그럴 리가 없어! 절대 아니야!”우인나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강하영은 그런 우인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당사자는 알지 못한다는 건 바로 우인나를 두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우인나가 상처받지 않게 배현욱 씨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지.’……배현욱은 아크로빌을 떠나 난원으로 정유준을 찾으러 갔다. 현욱은 거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유준아, 강하영 아들은 이미 회복된 것 같아.”정유준이 휴대폰을 뒤적이며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그래.”라고 대답하자 배현욱은 어깨를 으쓱했다.“뭐, 네가 확신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내 직감은 늘 틀리는 법이 없거든. 게다가 요즘 해킹 기술이 좋아서 누군가 DNA를 조작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그 일은 둘째치고 또 한가지 사실이 있어.”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배현욱을 쳐다보았다.“요즘 자꾸 강하영 편을 드는 것 같다?”정유준의 말에 배현욱은 웃음을 터뜨렸다.“얘기도 못 해?”“믿을 만한 얘긴지 누가 알겠어?”“그렇게 얘기하면 나 상처받는 거 알지? 일단 내 얘기 끝까지 들어봐.”정유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오므린 채 배현욱의 다음말을 기다렸다.“오늘 아크로빌에 갔을 때, 강하영 집에서 어떤 여자를 봤거든? 근데 그 여자 옆모습이 네 어머니랑 닮
소 노인의 말에 양다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런 게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주신 것과 제힘으로 번 돈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저도 이제 컸는데 계속 할아버지한테서 용돈 받고 사는 것도 마음이 불편해요.”소 노인은 흐뭇한 마음으로 양다인을 바라보았다.“그래서 뭘 하고 싶어? 얘기만 하면 내가 지지해 줄게.”그때 양다인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저 회사 차리고 싶어요. 패션 디자인 회사요.”“어려운 일도 아니구나. 내가 투자해 줄 테니까, 나는 그냥 너만 행복하면 돼.”소 노인은 양다인을 아끼는 마음으로 양다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최고!”양다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강하영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어! 게다가 나는 도와줄 사람도 있잖아. 일단 회사를 차리기만 하면 얼마 지니자 않아 강하영 너를 내 발밑에 짓밟아 줄게. 이제 TYC 따위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강하영이 기어이 자신과 맞먹으려 한다면, 양다인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월요일.경호원들은 강하영 뒤를 따라 강세준과 강세희를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로 원장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정중히 사과하시면서 학교 보안도 강화했다.강하영은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회사로 향했는데, 회사에 들어가 프론트 데스크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손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는데, 이미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뭐야? 직원들은 시간 개념도 없는 거야?’엘리베이터가 강하영 사무실 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 순간, “펑!”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현란한 색종이가 공중에서 휘날리는 것을 보고 강하영은 깜짝 놀랐다.“서프라이즈!”캐리가 꽃다발을 들고 갑자기 나타나자, 직원들도 캐리의 뒤를 따라 강하영 앞에 서서 플래카드를 펼쳤고 위에는 금빛 찬란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MK 첫 번째 예약 판매의 대박을 기원합니다!”강하영은 그 광경에 너무 놀
그 말을 들은 허시원은 몰래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아무리 강하영 씨한테 화가 나도 역시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주는구나.’이어지는 며칠 동안 강하영은 회의를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틈만 나면 고객들의 댓글을 확인했다.캐리가 문을 열고 들어와 강하영이 여전히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G, 그만 좀 봐. 발품 한 날 말고도 벌써 3일째 호평이 쏟아지고 있잖아.”강하영은 캐리를 흘겨보았다.“공장에 가서 지켜보지는 않고, 왜 굳이 여기 와서 나 놀리는 거야?’“같이 점심 먹으러 왔징.”캐리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좀 정상인처럼 굴었으면 좋겠어.”강하영은 참지 못하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성인 남자가 앞에서 애교를 떠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그럼 밥 먹으러 갈까?”회사에서 나온 두 사람은 가까운 중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캐리는 오늘따라 유독 약을 잘못 먹은 것처럼 온종일 강하영한테 들러붙어 있었다.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틀림없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하영은 캐리에게 물었다.“나한테 할 얘기가 있지?”캐리는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 며칠 휴가 내고 싶어.”“휴가 내고 싶으면 이럴 필요 없이 바로 얘기하면 되잖아, 어차피 캐리가 부사장인데.”강하영의 말에 캐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당분간이면 상관없지만, 이번엔 영국에 가 봐야 하거든. 우리 어머니가 결혼하신대.”강하영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멈췄다.“이게 벌써 다섯 번째인 것 같은데……?”“맞아. 그래서 적어도 보름 정도는 걸릴 것 같아. 같이 준비해야 할 게 많거든.”강하영은 캐리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성격이 무척 밝은 여성이었고, 혼자서 캐리를 키우신 것도 쉽지 않으니 캐리가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강하영은 통쾌하게 머리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가야지. 나 대신 축의금이랑 축복 인사 전해줘. 언제 갈 거
“G, 사실 너한테 너무 미안해.”강하영은 갑자기 캐리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갑자기 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캐리는 쓸쓸한 표정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금방 돌아올게!”강하영은 캐리가 보안검사 통로로 들어가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돌아갔다.저녁.강하영이 두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우인나가 갑자기 들이닥쳤다.“이모!”강세희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얼른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우인나의 품속으로 뛰어들었고, 우인나는 세희의 작은 얼굴을 잡고 한바탕 뽀뽀 세례를 한 뒤에 고개를 돌려 강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나 너한테 할 얘기 있어.”“아직 밥 안 먹었지?”우인나는 세희의 손을 잡고 식탁앞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이따가 술자리 약속 있어서 밥은 됐어.”우인나는 자주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기 때문에 강하영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무슨 얘기야?”“오늘 우리 부서 직원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양다인이 회사를 차리려고 준비 중이래. 이미 장소까지 다 정해뒀고.”우인나는 말을 하며 과일 한 조각을 집었다.“회사를 차린다고?”‘돈이 부족해서 회사를 차리는 거야?’“맞아. 문제는 회사 주소가 네가 있는 옆 빌딩이라는 거야. 내가 봤을 때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어!”옆 건물에 있던 과학기술 회사는 그런대로 꽤 발전이 좋았는데, 양다인이 이렇게 빨리 인수한 것을 보면 소 노인이 가운데서 손을 쓴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이렇게 쉽게 좋은 위치를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으니까.“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양다인의 어설픈 실력으로 너랑 겨룬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우인나가 강하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가로챘지만, 강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양다인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분명 충분한 준비를 했다는 뜻이니까. 충분히 회장님 자리에 앉아 소 어르신의 인맥을 이용해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고용할 수 있거든.”“하지만 국내와 해외를 통
알고 보니 양다인이 바로 자기를 납치하게 시킨 주범이었다. 양다인 때문에 엄마가 자신을 위해 뛰어다니다가 결국 기절까지 했던 것이다.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세준은 줄곧 그 나쁜 여자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제 발로 찾아온 이상 개업선물을 준비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다음 날.강하영은 애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회사로 향했는데, 지나가는 길에 많은 노동자들이 피곤한 얼굴로 회사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됐다.하영은 휴대폰을 들어 천천히 사진을 찍었고, 양다인의 회사 이름이 걸린 YN이라는 간판도 함께 찍었다.그리고 회사에 도착해 회의를 열고 또다시 의류 공장으로 향했다.10시 30분, 공장.강하영은 사무실에 들어가 임수진의 상처를 살펴보려 했는데 사무실에 임수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시 작업장으로 발길을 돌렸다.들어가자마자 팔에 깁스를 한 임수진이 몇 명의 수리기사와 함께 설비 앞에서 뭔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고, 강하영이 앞으로 다가가자 임수진도 마침 몸을 돌려 강하영을 발견했다.“대표님.”강하영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임수진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하영과 자주 공장에 다녀왔기 때문이다.강하영은 임수진의 팔을 보며 물었다.“수진 씨, 다친 팔은 좀 괜찮아?”“많이 좋아졌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설비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강하영의 물음에 수리 기사가 몸을 돌렸다.“대표님 비서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눈에 옷감의 미세한 손상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작동을 멈춘 지 10분 만에 문제점을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뾰족한 물건이 기계 사이에 끼어 있었어요.”강하영은 놀란 얼굴로 임수진을 바라본 다음 파손된 옷감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런 미세한 스크래치는 전혀 발견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런 세심한 관찰력에 강하영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것들이 고객 손에 들어간다면 회사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강하영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저녁.강하영은 병원에 임씨 아주머니를 만나러 병원에 갔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뜻밖에도 의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정유준을 발견했다.강하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하영을 발견한 듯한 남자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정유준 곁을 스쳐 지나갈 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저기, 잠시만요.”갑자기 정유준과 이야기하던 의사가 유창하지 않은 중국어로 하영을 불러세웠다.“무슨 일이죠?”의사는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보고서를 강하영에게 건네주었다.“이건 임연수 씨 검사 결과 보고서입니다. 여기 계신 정유준 씨가 저더러 개두 수술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지 보호자 분과 상의하라고 하셨어요.”강하영이 보고서를 받아보니 위에는 전부 독일어로 적혀있었다.‘이걸 어떻게 보라는 거야?’강하영이 고개를 들어 정유준을 쳐다보니, 정유은 뭔가 재미있다는 듯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의사한테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보고서로 상의하라고 했구나. 내가 독일어를 모르니까 당연히 자기한테 물어볼 줄 알고?’강하영은 한사코 뜻대로 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직접 의사에게 물었다.“이건 제가 알아볼 수 없네요! 대충 어떤 상환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왜 다시 수술해야 하는 거죠?”곁에 있던 정유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나한테 묻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의사가 한 말이 보고서에 적힌 말과 다르면 어쩌려고?’“논리적으로 임연수 씨는 식물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CT에도 문제가 없고요. 그래서 더 정밀 조사로 원인을 찾고 싶어요.”“위험 부담은 얼마나 될까요? 아주머니가 깨어날 수 있어요?”“위험은 분명히 있습니다. 깨어날 수 있을지도 아직 보장할 수 없고요.”“보수적인 치료는 어때요?”하영의 말에 의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보호자도 보셨다시피 아직도 아무런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강하영 씨,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누가 수술을
“강하영 씨, 아니…….”의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정유준 씨가 임연수 씨한테 얼마나 신경 쓰는지 모르시죠? 그런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누구라도 실망하게 될 겁니다.”강하영의 표정이 여전히 구겨져 있는 것을 보던 의사가 또 말을 이었다.“임연수 씨의 병세는 정말 이상하거든요. 어떤 외과 의사든 간단하게 완수할 수 있는 수술이니까요. 이치대로라면 이런 상황이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강하영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원인일 가능성은 없나요?”하영의 말에 의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럴 확률은 상당히 낮아요.”강하영은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보수적인 치료를 받을게요.”의사는 더는 강하영을 설득할 수 없게 되자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고, 강하영은 아주머니의 병실에 들어가 백지장처럼 창백한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며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엔 부진석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잠시 후 부진석이 전화를 받았고, 강하영은 휴게실로 들어가 입을 열었다.“진석 씨, 임씨 아주머니 수술 진석 씨가 맡았어?”“나는 그저 조수 역할만 했지, 집도는 하지 않았어. 왜? 무슨 일 생긴 거야?”강하영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연세 병원의 외국인 의사가 임씨 아주머니한테 개두술을 한 번 더 권유했거든. 진석 씨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 방면엔 잘 몰라서 진석 씨 생각을 듣고 싶어.”“의사가 그렇게 건의했을 땐 분명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을 거야. 아주머니께서 하루빨리 깨어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그래 알았어. 볼일 봐.”“그래.”강하영은 전화를 끊고 나서 방금 정유준에게 했던 가시 돋친 말들이 생각났다. 부진석이 집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유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러니 방금 하영이 했던 말들은 분명 듣기 싫었겠지. 하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정유준의 번호를 찾아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방금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해요. 그리고 아주머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