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식탁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힐끗 보았지만, 유준은 아직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바빠서 그런 가봐.”주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아직 12시가 되려면 멀었으니, 좀 더 기다려요.”하영은 주희와 함께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했고, 예준은 세희를 안고 거실에 앉아 한담을 나누었다.“세희야, 여기 예쁘지 않아? 아늑하지?” 예준의 눈에는 온정이 담겨 있었고, 천천히 별장을 둘러보았다.세희의 시선은 2층에 떨어졌다.그녀는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려 예준에게 물었다.“삼촌, 사실 듣고 싶어요?”예준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세희의 작은 코를 만졌다.“그럼.”세희의 표정은 점차 엄숙해졌다.“예쁘지만 아늑하지가 않아요. 음기가 너무 심하거든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데다, 할머니는 여기서 자살했고, 아무도 저승으로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음기는 전부 2층에 모였고, 그곳은 너무 추워서 몸이 절로 떨려요.”예준은 점차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하영에게서 세희가 이번에 돌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어머니... 줄곧 위층에서 머무시며 떠나지 못하신 거예요?’예준은 코끝이 찡해졌다.“세희야, 지금 그곳에... 사람이 있는 거야?”“항상 있었죠.” 세희가 대답했다.“단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에요. 죽은 첫날부터 줄곧 여기에 있었어요.”예준은 목이 멨다.“저녁에 할머니를 볼 수 있을까?”“그건 할머니가 삼촌에게 보여주고 싶은지에 달렸어요.” 세희가 바로 잡았다.예준은 고통을 느꼈다. 그동안 소주영은 그의 꿈에 나타난 적이 없었고, 예준은 별장에 셀 수 없이 찾아왔지만,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이번에 어머니는 날 만나러 나오실까?’‘한 번이라도 좋아, 말 한 마디만 해도 좋아.’예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세희는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서 위로했다.“삼촌, 괜찮아요.”“응?”“할머니가 날 찾아 도움을 청한 것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서
유준은 문에 들어서자, 예준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세희는 벽시계를 주시하다가, 10시가 될 때,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모두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그녀는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계단 모퉁이에 들어서자, 하얀 잠옷과 비슷한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세희 앞에 앉아 있었다. 그 긴 곱슬머리는 폭포처럼 허리에 흩어졌고, 이목구비는 하영과 거의 똑같았지만, 하영보다 더 부드러웠다.세희를 보자, 여자는 몸을 곧게 펴더니 예쁜 두 눈을 살짝 구부렸다.“세희야, 또 만났네.”소주영의 부드러운 말은 흐르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세희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할머니.”소주영은 세희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지만, 전혀 닿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실망을 느꼈다.“미안해, 할머니는 널 안아줄 수가 없네.”“괜찮아요. 이번에 엄마, 삼촌과 같이 왔는데, 불편해하시는 거 아니에요?”소주영은 웃으며 말했다.“난 세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기에, 불편해할 리가 없어.”말하면서 소주영은 계단 틈을 통해 하영과 예준을 바라보았다.“떠날 수 있는 이상, 마지막 인사도 잘 해야겠지...”“할머니, 지금 올라온 이유는, 상의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세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소주영은 시선을 돌려 가볍게 웃었다.“하영과 정유준이 결혼할 일에 관한 거 맞지?”세희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난 다 알고 있단다. 유준은 좋은 아이야. 하영에게도 잘 해주고. 할머니는 네 엄마를 유준에게 맡겨도 안심할 수 있어.”“그런데 할머니, 엄마는 지금 아빠랑 결혼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세희는 서글프게 말했다.“지철 할아버지께선 할머니가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엄마가 마음이 움직일지 모르겠어요.”소주영은 세희의 근심으로 가득 찬 작은 얼굴을 쳐다보며, 눈빛은 무척 부드러웠다.“꼭 그럴 거야. 세희야, 이제 시간도 다 됐으니, 그들 모두 불러와.”세희는 얼른 일
유준이 용기를 주었기 때문인지, 하영은 그제야 심호흡을 하며 소주영 앞으로 걸어갔다.소주영의 시선은 두 사람의 얼굴에 떨어지며 흐뭇하게 말했다.“다 잘 컸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찾았고.”예준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흐느꼈다.하영과 유준 및 주희는 예준이 이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하영아.” 소주영은 하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엄마 옆에 와서 같이 좀 앉자.”하영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영의 곁에 가서 앉았다.소주영은 어여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여전히 어색하구나.”하영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눈을 드리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면, 마음속으로 엄마를 원망하고 있는 거야?” 소주영이 다시 물었다.“아니에요!” 하영은 얼른 부인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여태껏 원망한 적이 없어요.”“하지만 확실히 엄마의 잘못이야. 너희들 아빠를 찾아가려고, 아직 어린 너희들을 버렸지.”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당시 유준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하영도 그를 따라 이 세상을 떠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하영도 소주영을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소주영은 고개를 들어 유준과 주희를 바라보았다.“너희들이 앞으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더 이상 아쉬움이 없는 것 같아. 하영아, 예준아, 엄마는 너희들이 엄청 부러워. 다른 사람의 확고한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동시에, 수많은 반대를 받지 않아서. 나와 너희들 아빠는 달랐어. 처음부터 축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했지.”예준은 눈물을 닦았다.“어머니, 저희의 일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지금의 난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귀신이기에 많은 일을 전해들을 수 있거든.”말이 끝나자 소주영은 계속 말했다.“내가 세희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너희들에게 좋은 일이 곧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너희들에게 의지할 수
이 말을 듣고, 하영은 그제야 오늘 저녁에 찾아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소주영을 본 다음, 세희를 바라보았다.세희는 이미 그녀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향과 촛불을 놓았다. 손에는 작은 공책과 부적이 있었는데, 하영은 읽을 수 있었지만 알아볼 수 없었다.세희는 부적을 두 손가락에 끼운 다음,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소주영에게 말했다.“할머니, 오늘은 세희가 보내드릴게요.”말을 마치자, 그녀는 작은 입을 벌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후에 하영은 소주영의 그림자가 갈수록 옅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하영은 갑자기 강렬한 아쉬움을 느꼈다.‘오늘 밤 이후로 다시는 내 친어머니를 볼 수 없다니.’하영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어머니...”소주영은 고개를 돌려 하영을 바라보았다. 하영과 거의 똑같은 눈동자에도 슬픔과 고통이 가득 찼다. 그녀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억지로 웃음을 짜내려고 노력했다.“하영아, 엄마는 널 믿어. 넌 꼭 엄마를 대신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이제 정말 안녕이네, 하영아...”소주영의 목소리가 떨어지면서 그녀의 희미한 그림자도 가장 먼저 하영의 앞에서 사라졌다.하영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본능적으로 소주영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에 꽉 잡힌 건 공기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눈물이 소리 없이 하영의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소주영을 보낸 다음, 세희의 작은 얼굴에도 졸음과 피로가 가득했다. 그녀는 흔들거리는 두 다리로 열심히 하영의 곁으로 간 다음, 그녀의 손을 잡았다.“엄마, 안심해요. 할머니는 마음 편히 가셨어요.” 세희는 하품을 했다. “엄마, 세희 졸려요...”세희의 힘없는 소리에, 하영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하기도 전에 세희는 두 눈을 감더니 작은 몸이 나른해졌다.하영은 얼른 세희를 안았다. “세희야??”세희는 고른 숨소리를 냈지만,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하영은 놀라서 얼른
인나는 하영의 손을 꼭 잡았다.“1월 1일에 결혼하는데, 넌 어떻게 이렇게 태연한 거야?현욱 씨가 그랬는데, 정유준은 너희들의 결혼식으로 바빠서, 아예 숨을 쉴 틈조차 없다잖아. 너도 정신 좀 차려. 이제 곧 신부가 될 거라고!”“내가 싫은 게 아니야.”하영이 말했다.“나 정말 피곤해서 그래. 인나야, 회사 일도 가득 쌓였고, 이쪽도 만만치가 않다니.”인나는 하영을 놓아주었다.“하영아, 회사에 내가 있지 않니? 처음부터 그랬잖아, 넌 너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면 된다고. 약혼식은 큰비가 계속 내려서 거행되지 않았으니, 결혼식에 신경을 좀 써!”하영은 인나의 말에 한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결혼식 일주일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인나는 어쩜 나보다 더 조급해하는 거지?’“이틀 뒤에 다시 오자, 약속할게. 그때 난 절대로 미루지 않을 거야, 응?”“하영아, 너 아직도 무서워하는 거 아니야?” 인나는 참을 수 없었다.“너 도대체 뭐가 무서운 거야?”“그런 거 아니야.”하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나 정말 피곤해서 그래. 매일 자도 자도 졸린다니깐.”인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자도 자도 졸린다고?”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응, 요즘 계속 힘이 없어. 집에 돌아가도 바로 잠이 들었고.”인나의 눈빛은 의심 대신 점차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녀는 흥분해하며 하영의 곁에 앉아 눈빛을 반짝였다.“하영아, 너 요즘 식량이 많이 늘었지?”하영은 생각했다.“이전보다 좀 많아진 것 같아. 입맛이 확실히 좋아졌지.”“그럼 토하고 싶진 않았어?”인나는 계속 물었다.“아니.”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 “토하면 밥을 못 먹잖아. 그걸 왜 물어?”인나는 하영의 손을 잡고, 그녀를 데리고 문앞으로 걸어갔다.“하영아, 우리 어디 좀 가자!”15분 후, 하영은 인나에게 끌려 병원에 도착했다.하영은 병원을 바라보며 인나에게 물었다.“왜 날
하영은 웃으며 위로했다.“유준 씨도 왜 인나처럼 긴장하고 그래요?”유준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결혼식이 두 주일밖에 남지 않았어. 일찍 웨딩드레스를 입어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능한 한 빨리 네 취향에 따라 고칠 수 있지.]하영은 인나가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난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없어서요. 만약 정말 마음에 드는 드레스가 없다면, 나 혼자 디자인하면 되죠.”말을 마치자마자, 하영은 인나가 엄숙한 표정으로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하영은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설마 안 좋은 결과라도 나온 건가?’핸드폰에서, 유준은 여전히 말을 하고 있었지만, 하영은 이미 들을 마음이 없었다.인나가 하영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인나야? 보고서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하영은 불안하게 물었다.“나에게 무슨 병이라도 생긴 거야?”전화기 너머에 있던 유준은 말을 뚝 그쳤다. 하영의 말을 듣자, 그도 따라서 마음이 조여졌다.[무슨 일 생겼어?]유준이 물었지만, 오히려 인나와 하영의 대화가 들려왔다.“하영아.” 인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몸에 뭐가 하나 더 생겼어.”‘뭐가 더 생겨?’유준은 얼른 자료를 내려놓았고, 안색도 점차 보기 흉해졌다.하영의 표정도 유준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잔뜩 긴장했다.“심각한 거야?”인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응, 아주 심각해. 평생 너에게 영향을 가져다줄 거라고. 앞으로 넌 더 이상 회사에 갈 수 없으니까 그냥 집에서 푹 쉬고 있어.”하영은 얼른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섰다.“보고서 좀 줘봐.”“하영아.” 인나는 주지 않고 엄숙하게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이건 자랄수록 커질 거야. 말기에 이르면 심지어 꺼내야 돼.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점점 커질 때, 넌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거야.”하영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안 좋은 거라면 건 빨리 꺼내면 되잖아. 왜 잘
“세상에, 사람들은 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이에 아기를 가진 거야.”인나는 하영을 끌고 진료실로 걸어갔다.“이렇게 널 찾아온 이상, 우리도 즐겁게 이 아이를 맞이하자고. 너 이상한 생각하지 마. 이 아이를 나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만약 지우려 한다면, 나 절대로 너 용서 못 해...”이때, 아직도 하영과 통화 중인 유준은 두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유준은 고운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하영이 지금 핸드폰을 두고 간 거야??’그는 얼른 인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이어 몇 번을 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잘생긴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 유준은 일어나서 사무실을 떠나려 했다. 외투를 입은 순간, 현욱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유준이 떠나려는 것을 보자, 현욱은 영문을 몰랐다.“유준아, 어디 가려고?”유준은 현욱을 무시했다.“병원!”“병원에 간다고?” 현욱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병원에는 왜? 어디 아파?”유준이 쏜살같이 떠나는 것을 보고, 현욱은 얼른 손에 든 계약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서둘러 유준의 발걸음을 따라잡았다.주차장에서.현욱은 유준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그를 내팽개칠까 봐 급히 조수석의 문을 열고 차에 뛰어올랐다.문을 닫자, 현욱은 숨을 헐떡이며 유준을 노려보았다.“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유준은 한 손으로 방향을 틀며 대답했다.“하영이 임신했어.”“어, 임신했구나.” 현욱은 한동안 반응을 하지 못했다.유준은 고개를 홱 돌리며 현욱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바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못 알아들었어?”“뭘?”유준은 현욱을 비웃었다.“하영이 임신했다고!”그제야 똑똑히 들은 현욱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하영 씨가?! 또 임신을 했다고?!”유준은 입술을 구부렸고, 눈 밑에도 미소가 떠올랐다.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현욱은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야! 유준아, 너도 정말 동작이 빠르구나! 너무 잘됐네! 이제 나와 인나 씨가 너희들의 아이를 책임질게. 안심해, 내가 잘 챙겨
“너 여기서 빈정대지 마.”유준은 현욱을 노려보았다.”“하영이 건망증이 있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지? 넌 아이의 아빠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어?”현욱은 그제야 반응했다.“맞네! 하영 씨 지금 무사해야 돼!”그러자 현욱은 당황한 듯 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하영은 이미 인나에게 끌려 백화점으로 갔다.아직 뱃속의 아이의 성별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인나는 이미 미친 듯이 쇼핑하기 시작했다.카트에 가득 담긴 유아용품을 보면서 하영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 거야?”“기분이 좋아서 그래!”인나는 그야말로 싱글벙글했다.“어차피 집도 크니까, 너희들도 따로 유아용품을 보관하는 방 한 칸 마련해!”인나가 이렇게 신이 난 것을 보고, 하영도 뭐라 하지 않고 그렇게 내버려두었다.다 고른 다음, 인나는 계산하러 갔는데, 핸드폰을 꺼내자, 현욱에게서 온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인나는 멍하니 있다가 현욱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울리자마자, 현욱은 즉시 받았고, 인나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인나 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내 아들은요?”“잠깐, 잠깐!” 인나는 의아해했다.“아들이라뇨?”“하영 씨가 임신했잖아요. 그건 우리가 미리 예약해둔 아들 아니에요? 지금 내 아들을 어디로 데려간 거예요?”“뭐라고요!” 인나는 계산대에 기대었다.“누가 당신에게 아들이라고 했어요? 만약 딸이라면요?”“딸이면 딸이죠. 아들도 나쁘지 않고요!”현욱이 말했다.“지금 어디에요? 나랑 유준이 찾으러 왔는데. 하영 씨도 참. 유준이랑 전화하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니?? 우리 병원에서 한참이나 찾았단 말이에요.”인나는 의자에 앉아 이미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하영을 바라보았다.“주소 보내 텐니까 일단 여기로 와요.”“그래요.”전화를 끊은 후, 인나는 서둘러 계산했다. 쇼핑 가방을 한가득 들고, 그녀는 하영의 곁에 앉았다.“하영이, 정유준과 현욱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