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남기가 얘기하지 않아도 방동진은 서강빈을 봐서라도 빨리 권씨 가문의 진료소에게 허가를 내려줄 예정이었다.“그래, 좋아.”우남기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서강빈에게 말했다.“강빈아, 저번에 내 고질병을 고쳐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계속 잔병치레가 많구나. 강효 그룹 아래에 있는 병원에서 내가 장기적으로 요양할 수 있는 병실을 하나 줬으면 하는데 그럴 수 있겠어?”이 말을 들은 백도현과 진기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남기의 모습을 보면 정말 생기가 넘치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픈 사람 같은가? 이건 분명 이를 빌미로 서강빈을 지지하는 것이다.“저 망할 놈의 서강빈!”백도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욕을 퍼부었고 죽일듯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병원에 오시는 건 저희의 영광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우남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져서는 고개를 돌려 백도현에게 말했다.“방금 들은 건데 누가 강빈이를 협박하고 송주에서 강효 그룹을 고립시킨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명성 그룹이 송주에 발을 붙이는 것은 송주 시민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상도덕이 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건 용국의 법률이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제혁아, 요즘 이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 잘 조사해봐.”김제혁은 이 말을 듣고 다급하게 차려자세를 취하고 말했다.“네! 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서에서는 송주의 깨끗한 사업 질서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습니다.”연이은 타격에 백도현은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다. ‘우남기 저 영감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고작 서강빈을 위해 백씨 가문을 억압한다고?’“도현아, 사실 나는 네 할아버지와 알고 지낸 지 오래란다. 어른으로서 나는 네가 나쁜 길로 들어서는 걸 원치 않아. 어떤 일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야. 강빈이한테 사과하라고 하는 건 그렇게 과분한 요구가 아니겠지?”우남기는
“여봐라, 도현 도련님을 도와서 화환을 차에 실어!”황규성은 차가운 웃음을 띠고 명령했다. 두 명의 경호원이 빠르게 다가가서 화환을 들어서는 백도현의 차 앞에 세워두었다.자신의 운전석 앞에 화환이 하나 놓인 모습은 마치 죽은 사람을 운반하는 차량 같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백도현은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면서 피를 왈칵 토해냈다.“서강빈, 오늘의 치욕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을 거야!”백도현은 몸을 비틀거렸고 다행히 진기준이 부축해줘서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저는 오늘 이렇게 도현 도련님과 헤어지면서 한마디 해야겠어요.”서강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돌아가서는 다 바꾸고 새로 시작하세요.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화환은 쓸데가 생길 겁니다.”백도현은 이를 악물고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기억하고 있을게. 가자!”백도현 일행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우남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르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백도현이 떠난 후, 서강빈은 앞으로 와서 우남기의 팔을 부축하며 안으로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권효정과 주민정도 다급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효 그룹의 큰 회의실로 들어갔다.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회의실은 오늘 아름다운 조명들을 설치하여 간단한 연회장으로 변하였다.서강빈과 권효정은 우남기 어르신을 중앙에 있는 자리에 모시고 본인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앉았다.강지원은 앞으로 다가와서 은행카드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서강빈 씨, 이 안에는 20억이 들어있습니다. 우선 예전에 할아버지를 위해 고질병을 치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또 할아버지께서 올해부터 강효 그룹에서 요양할 데 드는 비용입니다. 저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강지원이 건넨 카드를 받고는 강지원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강지원은 차 문을 열다가 고개를 돌려 서강빈에게 말했다.“서강빈 씨, 백씨 가문과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씨 가문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
하지만 고작 이것들로 서강빈이 백씨 가문과 맞설 수 있단 말인가? 한참 고민하던 송해인은 결국 빠르게 서강빈에게로 다가갔다.“서강빈, 잠깐만!”서강빈은 뒤돌아 가려던 참에 송해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멈췄다. 그는 송해인을 등진 채 물었다.“송 대표, 할 말 있어?”‘송 대표?’딱딱한 호칭에 송해인은 마음이 찌릿 아팠다.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난 후에야 기분을 추스른 송해인이 다시 말을 건넸다.“서강빈, 너랑 정용 어르신이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남기 어르신은 너한테 감사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오신 거야. 설마 우남기 어르신이 너를 위해서 백씨 가문을 등진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백씨 가문의 세력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천주에서 온 이 명문가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몰라! 방금 설립한 강효 그룹은 물론이고 자산이 2000억이 넘는 비오 그룹도 그 사람들의 눈에는 개미와 다를 바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도현 도련님이랑 화해해. 마스크팩의 제조법 하나 때문에 목숨까지 바칠 필요 없잖아.”서강빈은 쓴웃음을 짓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말 다 했어?”“서강빈, 나는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이혼한 건 내 잘못이야, 인정할게. 하지만 나는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잖아.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나눴던 감정을 봐서라도 나를 한번 믿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서강빈, 내 말 들어. 제조법을 내줘. 너는 백씨 가문을 이기지 못해. 그리고 권효정 씨도 이미 빈털터리로 권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너를 도울 수가 없고 너한테 짐만 될 거야. 그리고 약속할게. 네가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비오 그룹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비오 그룹의 부대표 자리를 너한테 줄 수 있어.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같이 회사를 키워가자. 응?”서강빈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송 대표, 동정해줘서 고마워. 내가 죽든지 말든지는 송 대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나는 비오 그룹에 흥미가 없어. 항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강효 그룹의 연회장 안에서는 황규성 등 사람들이 재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갑자기 대문이 열리더니 총을 든 네 명의 전사가 들어와서 일제히 차려자세를 취했다.“경례!”이 말에 연회장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젊은 남자는 뒷짐을 쥐고 반짝이는 군화로 대리석 바닥을 밟으면서 상쾌한 발걸음 소리를 냈다. 고정용과 황규성,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허공에 들려있던 컵을 서서히 내려놓은 황규성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 뒤에 있는 부하에게 서둘러 작은 소리로 명령했다. 그 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홀 내부에 있는 방안으로 달려갔다.이때, 서강빈은 우남기 어르신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서강빈이 금방 자리에 앉자마자 그 부하가 들어왔다.“서... 서 선생님, 큰일... 큰일 났습니다. 지금...”그 부하는 중앙 자리에 앉아있는 우남기 어르신을 한번 보고 말을 삼켰다.“알겠어. 나가봐.”서강빈은 손짓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우남기 어르신에게 말했다.“어르신, 효정 씨랑 얘기 나누고 계세요. 저는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금방 나갔다가 올게요.”서강빈은 이렇게 말하고 권효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방을 나섰다.그 젊은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마침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당신이 바로 서강빈이지?”젊은 남자는 서강빈을 훑어보며 물었는데 그 말투 속에는 도도한 기세가 다분했다.“맞아. 그쪽은?”서강빈은 평온한 얼굴로 젊은 남자를 쳐다보았다.“임호.”젊은 남자는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기며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 따라와.”‘응?’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디 가?”“특전사 요양원. 내 할아버지의 병을 봐줘.”임호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여기로 오기 전에 임호는 방동진 등 사람들한테 서강빈의 과거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방동진이 신의라고 무척 떠받들고 있는 게 너무 과장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특히 서강빈에 관한 얘기를
방동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방 청장님, 서강빈 이 사람한테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이 말을 들은 방동진의 이마에는 땀이 삐질삐질 맺혔다. 임호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지만 서강빈의 심기는 더 건드릴 게 못 된다.“네 할아버지가 누구든 너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해. 다른 사람한테 예의를 차려야 된다고 할아버지가 안 가르쳤나 봐?”“너!”서강빈의 말에 임호는 눈빛이 굳어지고 당장이라도 공격하려는 태세였다.“임호 도련님, 화 푸세요!”방동진은 다급하게 임호를 붙잡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은 오늘 바쁘신 게 확실합니다...”“이거 놔!”임호는 옷깃을 세게 뿌리쳤고 방동진은 밀려나서 곁에 있던 테이블에 부딪혔고 컵과 접시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불쑥 돌려서 임호를 쳐다보았다.“왜 이렇게 시끄러워.”이때, 우남기 어르신의 목소리가 서강빈의 뒤에서 들려왔다.임호도 따라서 서강빈의 뒤를 쳐다보았다. 그는 우남기 어르신이 권효정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우남기 사령관님!”임호는 차려자세를 하고 우남기 어르신한테 경례했다. 하지만 우남기 어르신은 바닥에 넘어져 있는 방동진을 보고는 미간이 살짝 찡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임호야, 네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가르쳤던 거야?”임호는 이 말을 듣고 다급하게 우남기 어르신한테 사과했다.“어르신, 어르신도 아실 테지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네 할아버지는 옛날 나의 오랜 전우야. 그러니 나는 믿어. 아무리 그이가 지금 병들었다고 해도 이렇게 무례할 리는 없어!”우남기 어르신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다.“네.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임호는 이렇게 말하고 방동진의 앞으로 와서 그를 부축하고는 성심성의껏 사과를 했다.“방 청장님, 죄송합니다. 방금은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
“강빈 씨, 어르신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시죠.”권효정은 분위기가 어색한 것을 느끼고 얼른 분위기를 풀려고 이렇게 얘기하고는 우남기 어르신한테 찻물을 건넸다. 서강빈은 잠깐 망설이다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우남기에게 말했다.“어르신, 하실 말씀이 있으면 편히 하십시오. 저는 귀담아듣겠습니다.”서강빈이 이렇게 말하자 우남기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띠었다.“강빈아, 사실은 말이야...”사실 임호의 할아버지는 우남기 어르신의 오랜 전우였는데 고질병이 도진 바람에 천주의 여러 대학병원을 다 방문했지만,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요즘에야 성회의 요양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요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임성진 어르신은 우남기 어르신한테 여러 번 얘기했었다. 자신이 만약 죽는다면 고향으로 와서 마지막을 보내겠다고 말이다.요즘 우남기도 계속 서강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고질병도 서강빈이 직접 치료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임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신체 상황에 대해서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외국의 전문가들도 다 찾아가 봤는데 모두 그의 병세에 대해서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특히 서강빈의 나이가 스물이 넘는 나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임성진은 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우남기 어르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강빈은 정말 너무 젊었다.만약 3일 전에 방동진이 요양원으로 임성진의 병문안을 왔을 때 다시 서강빈의 이름을 꺼낸 일이 없었다면 임호는 절대 직접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우남기 어르신의 말을 듣고 난 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을 봐서라도 절대 모른 체하고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호는 반드시 예의가 바르게 부탁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우남기 어르신은 이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면서 서강빈의 차는 이미 납작한 철 덩어리가 되었다. 이때,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서강빈에게는 무척 익숙한 소리였다. 바로 저격용 총이었다.머릿속에 번뜩 생각이 든 서강빈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다리를 벗어나야 했다. 다리에는 숨을 곳이 전혀 없으므로 자신은 아주 쉽게 멀리 있는 저격수의 표적이 될 것이다.이때, 로드 롤러와 화물차의 기사도 동시에 총을 꺼내서는 서강빈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쏘아댔다. 하지만 서강빈의 몸이 너무 빠른 탓에 그들은 잔영만 볼 수 있을 뿐이었고 무수한 총알들이 서강빈의 볼 가까이에서 스쳐 지나갔다.서강빈은 더 머물 수가 없었는데 멀리서 붉은 빛줄기가 세 개나 그를 향해 비췄기 때문이다. 저격수가 세 명이었다. 서강빈은 두 기사를 해치울 새도 없이 전속력으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눈 깜짝할 새에 서강빈은 다리에서 빠져나왔지만 세 줄기의 붉은 빛은 여전히 멀리서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총소리가 여러 번 울려 퍼지고 총알 여러 개가 서강빈의 옷깃을 스치고 날아갔다. 형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저격수의 총알이 이토록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야간 장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서강빈을 제일 골치 아프게 하는 부분이었다. 도로의 한쪽은 깔끔한 벼랑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찔한 절벽이었기에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서강빈이 총알을 피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 번뿐일 수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계속 서강빈의 편을 들어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서강빈이 성제 고속도로로 도망간 것을 보고 화물차의 기사는 뛰어 내려와서 볼멘소리를 쳤다.“저 자식을 놓쳤어?”저격용 총이 세 대나 되는데 서강빈은 어떻게 도망친 거란 말인가? 이때, 서강빈은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이상하다. 두 사람이 쫓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앞에 매복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컸고 이는 무척 위험한 함정일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서
“고작 쾌도문 사람들의 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서강빈은 차갑게 웃으며 곽수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곽수철은 세상에서 제일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은 듯 박장대소를 했다.“네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말해줄게. 오늘 너를 죽이려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야. 너는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너무 많이 건드렸어.”곽수철은 말하며 몸을 비켰다. 그러자 마흔 살이 넘은 중년 남자가 곽수철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와 서강빈의 앞에 섰다.“저번에는 최백기를 제압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할 거야.”이 목소리를 들은 서강빈은 머릿속에서 백독문의 제자 한 명을 떠올렸다. 자세히 훑어보니 전에 그 남자랑 체형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백독문의 이천우?”서강빈의 머릿속에서는 불쑥 이 이름을 떠올렸다.“오? 나를 아네? 그래도 별수 없어. 너는 최백기 어르신의 단전을 망가뜨렸어. 우리 백독문은 무조건 복수를 해야 하거든. 오늘은 누가 온다고 해도 너는 못 벗어나!”중년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동시에 그의 뒤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세 개 나타났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기이한 향이 코끝에 풍겨오는 것을 보니 세 사람도 백독문의 제자가 확실했다.서강빈은 곽수철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문파와 엮여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의 상황은 확실히 서강빈에게 아주 불리했다.이천우와 세 명의 백독문 제자는 막론하고 칼을 들고 서 있는 검은 옷의 사람들과 실력 좋은 노인만으로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살짝 털어 소매에 은침 세 개를 감췄다.“서강빈, 지금 무릎 꿇고 나한테 열 번 절을 한 다음 잘못했다고 빌어. 그렇다면 네 주변의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곽수철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서강빈은 연민의 눈빛으로 곽수철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는 지금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거야.”말을 마친 서강빈은 체내 진기의 유동으로 하여 몸을 움직였고 칼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