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앞에 있던 경호원이 앞으로 다가가서 서강빈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고 그의 곁에 있는 두 명은 권효정을 향해 갔다.“왜, 좋게 말해서 안 되니까 대놓고 뺏으려고? 내 것을 뺏으려 들다니,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야!”말을 마친 서강빈은 손을 휙 저었고 세 개의 은침이 소매로부터 날아갔다. 차가운 빛이 번쩍이고 세 명의 경호원은 영문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줄줄이 바닥에 쓰러졌다.곽수철은 다가가서 서강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참이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앞으로 내밀었던 발을 다시 후퇴했다.“젊은이, 네가 무술을 아는 사람일 줄 몰랐네.”이때, 흰색 도복을 입은 노인이 경호원들의 뒤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강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 노인을 훑어보았다. 예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노인은 자태가 늠름하고 두 눈이 불을 켠 듯 이글거렸다. 더욱이 그 주위에서는 무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는 곽씨 가문에서 모시는 무술 고수였는데 남성에서 명실상부한 대종의 고수인 최백기였다.“백기 어르신, 저 자식을 막아요!”곽수철은 최백기에게 명령했다. 최백기는 한 손을 뒷짐을 지고 도도하게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젊은이, 네가 어려서 아직 뭘 모르는 걸 참작해줄 테니 가서 곽 대표한테 사과하고 제조법을 내놔. 그렇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줄게.”“어디서 튀어나온 늙은이지?”서강빈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이, 내가 누군지 아나?”최백기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두 눈에서는 불을 내뿜을 듯했다.“꺼져!”서강빈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무식한 젊은이구나. 내가 누군지...”“당신이 누군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말을 마친 서강빈은 앞으로 다가가서 최백기의 아랫배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서강빈이 자신에게 공격하려는 것을 본 최백기는 차갑게 웃고는 말했다.“오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죽으려고 자초하니 어쩔 수가 없겠구나!”최백기는 이렇게 말하며 똑같이 앞으로 나가서 서강빈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서강빈이 떠난 후, 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백도현은 빠르게 몇 마디 하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연회장을 나섰다. 호텔 방안으로 돌아가자마자 곽수철은 욕을 퍼부었다.“서강빈, 감히 내 뺨을 쳐?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백도현은 고개를 돌려 곽수철을 한번 보더니 음산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곽 대표님, 저는 미리 얘기했습니다. 서강빈 그 녀석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녀석이에요.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흥!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봐야겠어요!”이 말을 남기고 곽수철은 자리를 떴다. 곽수철의 뒷모습을 한번 보더니 찰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현 도련님, 지금 저 사람을 이용하려는 거죠? 근데 도련님께서 죽이고 싶은 건 서강빈입니까, 곽수철입니까?”백도현은 술잔을 들어 찰스와 건배하면서 웃기만 하다가 말을 돌렸다.“찰스 씨, 분석 결과는 어떻습니까?”“아주 훌륭합니다. 그 마스크팩은 흉터를 치료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복제에는 실패하고 있어 반드시 제조법을 손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상회의 회장님께서도 여기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저희의 예상대로라면 만약 유럽 대륙에서 팔기 시작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유럽의 70%가 되는 마스크팩 시장을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연간 이윤을 예상해보면 적어도 100억 유로 정도 됩니다.”말을 마친 찰스는 고개를 들어 와인을 크게 한입 마셨고 두 눈에는 탐욕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백도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명성 그룹의 부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도현 도련님.”전화에서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주의 모든 공급 업체와 판매 업체, 그리고 약재 업체까지 효정 그룹과의 모든 합작을 중단하라고 해. 간단히 말하면 정빈 마스크팩의 유통을 금지하라는 거야. 내일 아침부터 시장에서 이 마스크팩이 보이지 않았으면 해.”백도현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서강빈과 권효정이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주민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강빈 씨, 큰일 났
여기까지 들은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권씨 가문에서는 효정 씨를 내칠 생각이에요?”권효정은 굳은 눈빛으로 얼굴을 들고 말했다.“내가 빈털터리가 된다고 해도 절대 천주로 돌아가지 않을 거고 더욱이 백서준과 결혼을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송주에 있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강빈 씨처럼 이렇게 큰 나무에 기대서 작은 성과를 이룰지도 모르잖아요.”이렇게 말하는 권효정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송주에 있는 권씨 가문의 산업들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얘기했을 것이다. 그 말인즉 권 어르신은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서강빈이 잘해보게 할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강빈은 이미 어르신의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이다.엄마가 반대하더라도 자신과 서강빈이 좋은 성과를 이루게 되면 앞으로 권씨 가문에서는 두 사람의 혼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내 회사의 마스크팩도 전국에서 금지당한 마당에 효정 씨가 기댈 큰 나무가 나라는 게 확실해요?”서강빈은 미소를 띤 채 장난스레 말했다.“그런 건 상관 안 해요. 어차피 나는 지금 빈털터리이고 강빈 씨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갈 데가 없어요.”권효정은 일부러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권효정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진료소는 괜찮지만, 회관은 상황이 복잡해요. 효정 씨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거예요.”권효정은 예전에도 서강빈과 말한 적이 있는데 송주에서 권씨 가문의 회관은 장씨 성을 가진 총괄 매니저가 경영하고 있었고 권효정은 이 분야의 산업에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다. 아무래도 회관을 경영하면서 온갖 일들에 다 맞닥뜨릴 것이고 마주하는 사람들도 복잡해서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그래서 방금 갑자기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권효정은 번뜩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무슨 방법이요?”권효정은 미간을 찌푸
초청장을 쓰고 있던 권효정도 이 기사를 보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소식은 그다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권효정을 더는 물러설 곳이 없게 만든 것이다.권씨 가문의 보호와 지지가 없이 송주에 있는 권효정의 진료소와 회관은 더는 기댈 곳이 없었다. 여자의 몸으로 송주에서 발을 붙이려고 하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사인펜을 누르고 있는 권효정의 손가락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 서강빈은 마음이 아파서 한마디 했다.“너무 무리인 것 같으면 천주로 돌아가요. 권씨 가문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잖아요. 천주로 돌아가지 않으면 효정 씨와 연을 끊는다고 하는데 정말 권 씨 가문을 떠날 생각이에요?”권효정은 주먹을 쥐며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제 둘째 삼촌과 엄마가 내린 결정일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수단으로 저를 굴복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권씨 가문이 없으면 뭐 어때요, 저는 강빈 씨만 있으면 돼요.”말하면서 권효정은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서강빈은 작게 기침을 하고는 다급하게 권효정의 시선을 피하였다.“히히! 강빈 씨 쑥스러워하기도 해요?”권효정은 웃는 얼굴로 서강빈의 곁에 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강빈을 훑어보았다. 서강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일부러 권효정을 피하였다.권효정은 서강빈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는 뒤돌아 완성한 초대장을 염지아에게 주면서 말했다.“지아 씨, 이것들을 보내주세요.”“알겠어요.”염지아는 대답하고는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흑호 도장의 사람이 직접 초대장을 건네는데 누가 감히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진기준은 초대장을 받고는 꺼내서 한번 훑어보더니 다급하게 백도현이 있는 호텔로 갔다.“도현 도련님, 효정 그룹에서 송주의 다른 두 회사와 합병한답니다. 이것 보세요.”백도현은 진기준이 건네는 초대장을 대충 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합병한다고? 개업식? 흥! 꿈 깨라고 해! 여봐라!”백도현의 말에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문을 열고 들
하여 많은 사람이 이 회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권씨 가문의 위엄으로 하여 사람들도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명월 회관은 권씨 가문의 보호가 없어졌기에 순식간에 각 가문에서 다투어 차지하려는 처지가 되어버렸다.하여 진웅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승낙하였고 3일 내로 좋은 구경이 있을 것이라고 백도현에게 약속했다. 전화를 끊고 진웅은 곁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서강빈, 3일 이내에 나보고 가서 사과하라고? 그럼 우리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말을 마친 진웅은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여봐라!”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남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권씨 가문에서 더는 명월 회관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서 소문내. 생각이 있는 사람은 빨리 서두르라고.”말을 마친 진웅은 곁에 있는 여자를 안고 룸안으로 들어갔다....이때, 명월 회관의 대표 사무실 안에서는 권효정이 한창 총괄 매니저인 장명훈과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권효정 씨, 사실 여자의 몸으로 회관을 경영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곳은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효정 씨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장명훈은 서류에 사인하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권효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장명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장 대표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충고일 뿐입니다. 만약 권효정 씨가 순조롭게 경영해나가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게 좋다는 말이죠.”장명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손에 들렸던 신문을 천천히 내리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장명훈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래요? 당신의 말을 들어보면 적절한 사람이 있나 보네요?”“한성 그룹의 이 대표님과 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곤형이라는 사람이 사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만약 권효정 씨가 주식을 조금이라도 양도할 수 있
어깨에서 따스함이 느껴지자 권효정은 고개를 들어 서강빈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나서야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권씨 가문에서 이렇게까지 단칼에 잘라낼 줄 몰랐어요. 우리는 아마 앞으로 평온하게 지내기는 글렀나 봐요.”장명훈의 태도는 사실 권씨 가문의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그가 권씨 가문을 위해 지금까지 일하면서 진작에 권영준의 오른팔이 되어있었다. 그 말인즉 다른 사람들이 명월 회관에 눈독을 들이지 않더라도 권영준이 나서서 명월 회관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의미였다.“제가 있다고 얘기했잖아요.”권효정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면서 말을 돌렸다.“내일의 개업식에 강빈 씨도 갈 거예요?”“네.”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보지 않아도 내일의 개업식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백씨 가문과 명월 회관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은 절대 강효 그룹을 제압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서강빈이 동의하는 것을 보자 권효정도 마음이 많이 놓였다. 지금 비오 그룹의 사무실에서는 이세영이 초조한 얼굴로 설득하고 있었다.“송 대표님, 도현 도련님께서 얘기했잖아요. 강효 그룹의 개업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백씨 가문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보겠다고요. 서강빈, 그 쓰레기 같은 남자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회사 이름까지도 그 자식이랑 권효정 그 미친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이건 부부 기업이 아니고 뭐겠어요?”부부 기업이라는 말은 송해인의 마음을 찔렀다.“닥쳐!”송해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세영을 노려보다가 그녀의 손에서 초청장을 빼앗으며 말했다.“이 비서, 당신은 그저 당신 일이나 잘하면 돼. 다른 것들은 당신의 직권을 벗어난 것들이야.”말을 마친 송해인은 멍하니 서 있는 이세영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세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다급하게 진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송해인이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고 난 뒤로부터 이세영은 송해인이 자신의 말을 그렇게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그러니까 오늘은 아무도 안 올 거야. 나는 지난 3년 동안의 시간을 생각해서 너한테 얘기해주려고 일부러 온 거야. 강효 그룹이 당장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도현 도련님한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해.”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송해인에게 말했다.“오늘 아무도 안 온다고 누가 그래?”“서강빈, 너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지금 나는 너를 위해서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잖아. 송주에서 백씨 가문은 누구나 다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건 생각 안 해? 백씨 가문의 산업 중의 하나인 명성 그룹만으로도 송주 뷰티 업계를 점령할 수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거야? 그리고 사과 한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하나 더 얘기할게. 권효정 씨는 이미 권 씨 가문에게 쫓겨났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어. 권효정 씨는 더는 너를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한테 짐이 될 수 있다는 거 알아, 몰라?”송해인은 다급해질수록 목소리도 더 커졌다.“내 일에 대해서는 송 대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강빈은 차갑게 말했다.“서강빈, 나는 다른 뜻은 없어. 그저 너를 걱정하고 있는 거야.”송해인은 서강빈의 차가운 표정을 보면서 무언가가 가슴을 찌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비싼 차들이 강효 그룹의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도현 도련님, 서두르지 마시고 조심하십시오.”차 문이 열리자마자 진기준은 빠르게 뒷좌석으로 달려가서는 고개를 숙이며 차 문을 열었다.백도현은 차에서 내려 성큼 다가와서는 먼저 문 앞에 서서 강효 그룹의 사무실을 몇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입고 온 명품 정장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앞으로 계속 다가가서 비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아이고, 참 적적한 모양이네요. 송주 사람들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서강빈 씨와 권효정 씨의 체면을 이렇게 안 봐주는 거예요? 진 대표, 우리가 가지고 온 축하 선물들을 가져와.”진기준은 얼른 웃으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진기준은 트렁크를 열어 안에서 화환을 하나 꺼내서는
“나는 오늘 서 선생을 축하하러 온 겁니다.”말하며 황규성은 성큼성큼 백도현과 진기준을 지나쳐서는 서강빈의 앞으로 와서 공손하게 말했다.“서 선생, 개업을 축하드립니다.”그는 이렇게 말하고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네 명의 부하들이 강효 그룹의 문 앞에 화환을 두 개 놓았다. 이윽고 뒤에 벤츠 차량이 몇 대가 도착하고 차 문이 열리자 송주 비즈니스 업계의 어르신들이 열 명 넘게 내려왔다. 그들은 백도현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서강빈의 앞으로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서강빈 씨, 보신 단약이 제 목숨을 구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구태빈은 서강빈 씨를 응원하겠습니다. 빈주에 있는 저희 그룹의 백화점에서 무료로 정빈 마스크팩을 판매하고 싶습니다. 이건 협력 계약서이니 주 매니저가 잘 검토하길 바랍니다.”그중 재벌 한 명이 두 손으로 계약서를 주민정에게 건넸다.“그리고 송주에 있는 저희 그룹의 백화점에서도 정빈 마스크팩을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주민정은 손에 들린 열몇 건의 계약서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곁에 있는 백도현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는 강효 그룹의 개업식에 오는 사람은 백씨 가문을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 정신 나간 사람들은 개업식에 참석한 것도 모자라 강효 그룹에게 마스크팩의 판매 경로까지 열어주었다. 이 사람들의 행동은 누가 봐도 백도현의 체면을 말이 아니게 만드는 행동이었다.“당신들 정말 백씨 가문이 두렵지 않은 거야? 강효 그룹과 합작한다는 것은 우리 명성 그룹과 적이 된다는 것인데.”백도현은 서늘한 얼굴을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협박했다. 구태빈은 몸을 곧게 펴고 서강빈의 뒤에 가서 서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당신들 백씨 가문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안 믿어.”곁에 있던 다른 한 명의 재벌도 두 손을 뒷짐 지고 차가운 눈으로 백도현을 보면서 말했다.“맞아. 우리는 서강빈 씨를 지지할 거야! 백씨 가문을 등진다고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