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검은 슈트를 입은 잘생긴 젊은 청년이 냉랭한 얼굴로 백도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저 사람은 누구야?”“그러게, 진 대표님이 얼마나 맞는 말을 했어. 평등하게 일한 만큼 분배를 하겠다고 하는 데 뭐가 불만이길래 저렇게 대놓고 반대하는 거야?”“어? 저 사람 곁에 있는 여자는 권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야?”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백도현은 차갑게 웃음을 짓고 서강빈을 보며 말했다.“서강빈 씨, 나는 진 대표의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은데요. 모두 같은 업종에 몸담은 마당에 우리끼리의 경쟁을 줄여야 더 넓은 시장을 확보할 수 있잖아요. 그게 뭐가 안 좋다는 거죠? 서강빈 씨는 우리랑 함께 성장하고 다 같이 이익을 보는 게 싫은가 보네요.”백도현은 한마디 말로 서강빈을 모든 이의 대척점으로 밀어냈다. 한순간에 적대시하는 시선들이 서강빈에게로 향했다.“다 함께 성장한다고요? 죄송하지만 우리 효정 회사는 관심 없어요. 다른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도록 할게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곁에 있던 송해인이 다급하게 서강빈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서강빈, 너 뭐 하는 거야? 여기가 그렇게 네 마음대로 성질부려도 되는 곳인 줄 알아?”물론 서강빈과 권효정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송해인은 마음이 언짢았지만, 그녀는 서강빈이 사람들의 공격대상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권효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말했다.“송 대표님, 저는 강빈 씨가 지금 성질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효정 회사는 물론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병탄 당할 생각은 없어요.”말하며 권효정은 고개를 들어 백도현을 바라보았다.“권효정 씨, 서강빈 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명성 그룹은 국내의 뷰티 업계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마스크팩의 생산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아요. 병탄한
비오 그룹이 무슨 능력으로 천억 자산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과 적이 될 수 있겠는가?“진 대표님, 우리 비오 그룹은 흔쾌히 명성 그룹과 협력하겠습니다.”이세영이 일어서면서 웃는 얼굴을 하고 백도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백도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서강빈 씨, 제가 알기로는 정빈 마스크팩의 실제 판매량은 비오 그룹과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만약 서강빈 씨가 저희의 업계 연맹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효정 그룹은 국내의 많은 판매 경로와 홍보 자원을 포기하게 될 거예요.”이건 명백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백씨 가문에서는 이렇게 사업을 진행하는 건가요? 숨기지도 않고 이렇게 대놓고 빼앗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수작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서강빈의 말은 백도현의 뺨을 내리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백도현의 얼굴에 나타났던 웃음기도 순식간에 굳어지고 서강빈을 노려보면서 두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서강빈!”진기준은 책상을 치며 일어나서 소리쳤다.“도현 도련님께서 너희들을 연회에 부른 것만으로도 체면을 충분히 세워줬어. 효정 회사가 정말 무슨 대단한 회사라도 되는 줄 알아? 송주에서만 보더라도 효정 회사는 아무것도 아니야. 도현 도련님은 한마디 말로 너희 회사의 정빈 마스크팩을 전국에서 판매를 금지할 수 있어. 좋은 말로 할 때 자존심을 내려놓지 그래.”서강빈은 차갑게 웃으며 백도현에게 쌀쌀하게 말했다.“도현 도련님, 당신의 개를 잘 관리하세요. 함부로 사람을 물다가는 백씨 가문에게 화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너 지금 누구를 개라고 하는 거야!”진기준은 발끈하면서 서강빈의 뺨을 때리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뺨을 맞은 건 진기준이었고 그는 서강빈에게 맞아서 밀려난 것도 모자라 앞니까지 빠졌다.“나 건드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서강빈은 책상 위에 놓인 휴지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화가 나서 얼굴이
“너... 너 감히 나를 쳤어?”곽수철은 통증이 느껴지는 얼굴을 부여잡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용국 의약 회사에서 누가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가? 곽수철의 말 한마디면 그 어떤 회사라도 공급 업체와의 연락을 끊어버릴 수 있었다.백도현은 사전에 약속했었다. 정빈 마스크팩의 제조법을 알아낸 뒤 이국의 회사에 생산을 맡기고 그에게 절반의 이익을 주겠다고 말이다.그의 눈에 서강빈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작은 사장일 뿐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그는 순순히 진기준에게 사과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빌려 서강빈을 협박하여 정빈 마스크팩의 제조법을 내놓으라고 하면 그는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하지만 곽수철은 서강빈이 예상을 빗나가게 행동할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고 심지어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의 뺨을 칠 줄은 더 예상 못 했다.“당신을 쳤다고?”서강빈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고는 곽수철 등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들 사전에 얘기가 된 거죠? 업계 연회라는 이름을 내세운 오늘 이 자리도 정빈 마스크팩 제조법을 뺏으려고 만든 자리인 거죠? 나한테서 그걸 빼앗으려고 계획했다면 얻어맞을 준비도 함께 했어야죠.”서강빈이 이렇게 말하자 백도현과 곽수철 등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였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도현 도련님은 물론이고 우리 몇 명만 보더라도 몇천억의 자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우리가 너의 그 쓰레기 같은 마스크팩의 제조법을 빼앗으려 한다고?”자신들의 목적이 서강빈한테 들켜서 까발려진 것을 보고 차준성과 장동현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했다. 그들의 몸값이 몇천억이 되는 건 거짓이 아니지만, 정빈 마스크팩의 잠재력은 몇천억을 뛰어넘어 몇조까지 될 것이다.유럽 시장을 열 수만 있다면 뚜렷한 미백 효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될 것이다.서강빈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고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냉랭한 얼굴로 백도현에게 말했다.“백씨 가문에서
제일 앞에 있던 경호원이 앞으로 다가가서 서강빈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고 그의 곁에 있는 두 명은 권효정을 향해 갔다.“왜, 좋게 말해서 안 되니까 대놓고 뺏으려고? 내 것을 뺏으려 들다니,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야!”말을 마친 서강빈은 손을 휙 저었고 세 개의 은침이 소매로부터 날아갔다. 차가운 빛이 번쩍이고 세 명의 경호원은 영문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줄줄이 바닥에 쓰러졌다.곽수철은 다가가서 서강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참이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앞으로 내밀었던 발을 다시 후퇴했다.“젊은이, 네가 무술을 아는 사람일 줄 몰랐네.”이때, 흰색 도복을 입은 노인이 경호원들의 뒤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강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 노인을 훑어보았다. 예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노인은 자태가 늠름하고 두 눈이 불을 켠 듯 이글거렸다. 더욱이 그 주위에서는 무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는 곽씨 가문에서 모시는 무술 고수였는데 남성에서 명실상부한 대종의 고수인 최백기였다.“백기 어르신, 저 자식을 막아요!”곽수철은 최백기에게 명령했다. 최백기는 한 손을 뒷짐을 지고 도도하게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젊은이, 네가 어려서 아직 뭘 모르는 걸 참작해줄 테니 가서 곽 대표한테 사과하고 제조법을 내놔. 그렇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줄게.”“어디서 튀어나온 늙은이지?”서강빈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이, 내가 누군지 아나?”최백기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두 눈에서는 불을 내뿜을 듯했다.“꺼져!”서강빈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무식한 젊은이구나. 내가 누군지...”“당신이 누군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말을 마친 서강빈은 앞으로 다가가서 최백기의 아랫배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서강빈이 자신에게 공격하려는 것을 본 최백기는 차갑게 웃고는 말했다.“오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죽으려고 자초하니 어쩔 수가 없겠구나!”최백기는 이렇게 말하며 똑같이 앞으로 나가서 서강빈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서강빈이 떠난 후, 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백도현은 빠르게 몇 마디 하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연회장을 나섰다. 호텔 방안으로 돌아가자마자 곽수철은 욕을 퍼부었다.“서강빈, 감히 내 뺨을 쳐?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백도현은 고개를 돌려 곽수철을 한번 보더니 음산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곽 대표님, 저는 미리 얘기했습니다. 서강빈 그 녀석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녀석이에요.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흥!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봐야겠어요!”이 말을 남기고 곽수철은 자리를 떴다. 곽수철의 뒷모습을 한번 보더니 찰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현 도련님, 지금 저 사람을 이용하려는 거죠? 근데 도련님께서 죽이고 싶은 건 서강빈입니까, 곽수철입니까?”백도현은 술잔을 들어 찰스와 건배하면서 웃기만 하다가 말을 돌렸다.“찰스 씨, 분석 결과는 어떻습니까?”“아주 훌륭합니다. 그 마스크팩은 흉터를 치료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복제에는 실패하고 있어 반드시 제조법을 손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상회의 회장님께서도 여기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저희의 예상대로라면 만약 유럽 대륙에서 팔기 시작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유럽의 70%가 되는 마스크팩 시장을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연간 이윤을 예상해보면 적어도 100억 유로 정도 됩니다.”말을 마친 찰스는 고개를 들어 와인을 크게 한입 마셨고 두 눈에는 탐욕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백도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명성 그룹의 부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도현 도련님.”전화에서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주의 모든 공급 업체와 판매 업체, 그리고 약재 업체까지 효정 그룹과의 모든 합작을 중단하라고 해. 간단히 말하면 정빈 마스크팩의 유통을 금지하라는 거야. 내일 아침부터 시장에서 이 마스크팩이 보이지 않았으면 해.”백도현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서강빈과 권효정이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주민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강빈 씨, 큰일 났
여기까지 들은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권씨 가문에서는 효정 씨를 내칠 생각이에요?”권효정은 굳은 눈빛으로 얼굴을 들고 말했다.“내가 빈털터리가 된다고 해도 절대 천주로 돌아가지 않을 거고 더욱이 백서준과 결혼을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송주에 있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강빈 씨처럼 이렇게 큰 나무에 기대서 작은 성과를 이룰지도 모르잖아요.”이렇게 말하는 권효정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송주에 있는 권씨 가문의 산업들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얘기했을 것이다. 그 말인즉 권 어르신은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서강빈이 잘해보게 할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강빈은 이미 어르신의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이다.엄마가 반대하더라도 자신과 서강빈이 좋은 성과를 이루게 되면 앞으로 권씨 가문에서는 두 사람의 혼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내 회사의 마스크팩도 전국에서 금지당한 마당에 효정 씨가 기댈 큰 나무가 나라는 게 확실해요?”서강빈은 미소를 띤 채 장난스레 말했다.“그런 건 상관 안 해요. 어차피 나는 지금 빈털터리이고 강빈 씨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갈 데가 없어요.”권효정은 일부러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권효정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진료소는 괜찮지만, 회관은 상황이 복잡해요. 효정 씨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거예요.”권효정은 예전에도 서강빈과 말한 적이 있는데 송주에서 권씨 가문의 회관은 장씨 성을 가진 총괄 매니저가 경영하고 있었고 권효정은 이 분야의 산업에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다. 아무래도 회관을 경영하면서 온갖 일들에 다 맞닥뜨릴 것이고 마주하는 사람들도 복잡해서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그래서 방금 갑자기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권효정은 번뜩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무슨 방법이요?”권효정은 미간을 찌푸
초청장을 쓰고 있던 권효정도 이 기사를 보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소식은 그다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권효정을 더는 물러설 곳이 없게 만든 것이다.권씨 가문의 보호와 지지가 없이 송주에 있는 권효정의 진료소와 회관은 더는 기댈 곳이 없었다. 여자의 몸으로 송주에서 발을 붙이려고 하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사인펜을 누르고 있는 권효정의 손가락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 서강빈은 마음이 아파서 한마디 했다.“너무 무리인 것 같으면 천주로 돌아가요. 권씨 가문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잖아요. 천주로 돌아가지 않으면 효정 씨와 연을 끊는다고 하는데 정말 권 씨 가문을 떠날 생각이에요?”권효정은 주먹을 쥐며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제 둘째 삼촌과 엄마가 내린 결정일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수단으로 저를 굴복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권씨 가문이 없으면 뭐 어때요, 저는 강빈 씨만 있으면 돼요.”말하면서 권효정은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서강빈은 작게 기침을 하고는 다급하게 권효정의 시선을 피하였다.“히히! 강빈 씨 쑥스러워하기도 해요?”권효정은 웃는 얼굴로 서강빈의 곁에 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강빈을 훑어보았다. 서강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일부러 권효정을 피하였다.권효정은 서강빈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는 뒤돌아 완성한 초대장을 염지아에게 주면서 말했다.“지아 씨, 이것들을 보내주세요.”“알겠어요.”염지아는 대답하고는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흑호 도장의 사람이 직접 초대장을 건네는데 누가 감히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진기준은 초대장을 받고는 꺼내서 한번 훑어보더니 다급하게 백도현이 있는 호텔로 갔다.“도현 도련님, 효정 그룹에서 송주의 다른 두 회사와 합병한답니다. 이것 보세요.”백도현은 진기준이 건네는 초대장을 대충 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합병한다고? 개업식? 흥! 꿈 깨라고 해! 여봐라!”백도현의 말에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문을 열고 들
하여 많은 사람이 이 회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권씨 가문의 위엄으로 하여 사람들도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명월 회관은 권씨 가문의 보호가 없어졌기에 순식간에 각 가문에서 다투어 차지하려는 처지가 되어버렸다.하여 진웅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승낙하였고 3일 내로 좋은 구경이 있을 것이라고 백도현에게 약속했다. 전화를 끊고 진웅은 곁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서강빈, 3일 이내에 나보고 가서 사과하라고? 그럼 우리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말을 마친 진웅은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여봐라!”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남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권씨 가문에서 더는 명월 회관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서 소문내. 생각이 있는 사람은 빨리 서두르라고.”말을 마친 진웅은 곁에 있는 여자를 안고 룸안으로 들어갔다....이때, 명월 회관의 대표 사무실 안에서는 권효정이 한창 총괄 매니저인 장명훈과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권효정 씨, 사실 여자의 몸으로 회관을 경영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곳은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효정 씨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장명훈은 서류에 사인하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권효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장명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장 대표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충고일 뿐입니다. 만약 권효정 씨가 순조롭게 경영해나가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게 좋다는 말이죠.”장명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손에 들렸던 신문을 천천히 내리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장명훈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래요? 당신의 말을 들어보면 적절한 사람이 있나 보네요?”“한성 그룹의 이 대표님과 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곤형이라는 사람이 사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만약 권효정 씨가 주식을 조금이라도 양도할 수 있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