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은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방동진이 자신에게 준 약 처방전이 맞지만, 서강빈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진이 이세영한테 있는 건지?“서강빈, 네가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건 알고 있어. 나도 너를 믿지 않는 게 아니야. 하지만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아무리 뭐라고 해도 가짜잖아. 나는...”송해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아니야, 강빈아, 내 뜻은 그게 아니라...”송해인이 다급하게 말했다.“송 대표, 다른 볼 일이 없다면 돌아가. 우리 사이에 더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나 바빠.”서강빈의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3년 동안 자신이 그렇게나 많은 희생을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송해인은 고작 사진 한 장으로 지금 자신에게 따지러 왔다. 3년 동안의 희생으로 송해인의 믿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서 서강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에 대해서는 희생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송해인 씨, 어떨 때는 눈에 보이는 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어요. 당신이 아무리 변명한다고 해도 강빈 씨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고작 사진 한 장뿐인데 뭘 설명할 수 있어요? 강빈 씨의 실력은 사진 한정으로 모함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권효정은 이렇게 말하고 일어나서 수저를 정리했다. 서강빈도 송해인과 이세영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뒤돌아 진열대로 가서 노란색 부적과 주사를 꺼냈다.“아직도 안 떠나고 뭐 하고 있어요? 내쫓아야 갈 거예요?”권효정은 차가운 얼굴로 송해인을 바라보며 쌀쌀하게 말했다.“강빈아, 나는 너를 의심하는 게 아니야. 나는...”말이 목구멍까지 왔지만, 송해인은 내뱉지 못했다. 그녀는 서강빈이 전국 대회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꼼수를 써서 가진 답안지로 얻은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물으세요.”흰색 정장을 입은 잘생긴 청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백도현이었고 백서준의 이복형제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백씨 가문의 가정부인 탓에 어렸을 때부터 백씨 가문 사람들의 무시를 받았었다. 한편으로는 굴욕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이 지금 백도현의 음침하고 악랄한 성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백형만은 백도현의 말을 듣고 꿈에서 방금 깨어난 사람처럼 백경수에게 다가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아버지, 서준이가...”“우리 손주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백경수는 침대에 누워있는 손자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백서준만이 친손주였고 백씨 가문의 미래를 이어받을 후계자였다. 백도현은 보잘것없는 여자의 몸에서 나온 미천한 놈일 뿐, 능력이 좋은 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백씨 가문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의사 말이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해도 서준이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백형만은 착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서준이 입원한 다음 날부터 백씨 가문은 국내외의 유명한 전문의들을 모셔왔지만, 백서준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국내외에서 제일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의를 모셔서 X레이를 살펴봐도 연신 고개를 젓기만 했다. 백서준의 뼈는 부러진 게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제일 선진적인 기계와 최고의 전문의가 직접 집도한다고 해도 백서준을 다치기 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뭐라고!”백경수는 벌컥 화를 내면서 손에 들린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벌겋게 된 얼굴로 소리쳤다.“누구야, 누가 내 손주를 이렇게 만든 거야! 죽여버려, 그놈의 가족을 다 죽일 거야! 여봐라, 정예병을 소집하여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범인 찾아내서 우리 손주의 복수를 해야 해!”백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기세가 꺾여있는 것을 보고 백경수의 흰 눈썹이 찡그려지더니 차갑게 호통쳤다.“가만히 서서 뭐해! 가
“3개월 이내에 그놈을 망하게 하고 동생 앞에 무릎을 꿇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백도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무슨 일에 부딪히면 화를 낼 줄밖에 모르는 백서준처럼 무능하지 않다. 용천에서 백도현은 천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사람으로 음침하고 악랄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의 수단에 대해 많은 기성세대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백도현이 이번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백서준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는 건 핑계일 뿐이었다. 천주에는 백씨 가문의 눈이 너무 많아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에 버거웠다. 그는 하루빨리 백씨 가문의 손을 빌려 자신의 비즈니스제국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여야만 백경수가 그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앞으로 백형만을 대신해 백씨 가문의 가주가 될 수 있었다.“좋아요. 저는 도현이를 믿습니다.”백형만과 비슷한 용모를 가진 중년 남자가 사람들 속에서 나와 웃는 얼굴로 백경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며 백형만에게 말했다.“형님, 제 생각에 이 일은 도현이한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무대가 필요하잖습니까, 도현이한테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백형만은 미간을 찌푸리고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 중년 남자를 보았다. 그는 백형만의 이복동생이었는데 지금까지 백형만한테 무조건 복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백형만의 권력을 빼앗고 싶어 호시탐탐하고 있다.백형만이 대답하기도 전에 백경수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도현아, 이번에 네가 우리 백씨 가문의 복수에 성공한다면 동남 구역의 열몇 개 회사는 네가 관리하도록 해!”이 말을 들은 백도현은 눈이 반짝이며 서둘러 맹세했다.“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복수하도록 하겠습니다!”“아직 내 말 안 끝났어.”백경수는 두 눈을 가늘게 떴고 눈동자에서는 차가운 빛을 내뿜으며 말했다.“내 손주를 폭행한 놈의 사지를 부러뜨리고 천주로 데리고 와서 우리 손주가 직접 숨통을 끊게 해야겠다. 너, 알아들었어?”백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 망
송해인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번에는 우리 스스로 해낼 거야!”명성 그룹과의 합작은 비오 그룹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명성 그룹같이 대단한 회사는 누군가의 체면 때문에 비오 그룹을 편애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실력만이 비오 그룹의 유일한 방법이었다.“송 대표님, 하지만 만약 이번 기회를 잃게 된다면 저희가 어렵게 얻은 시장 점유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되잖아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라고 했는데 효정 그룹에서는 이미 입장권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건 분명 권씨 가문 그 미친년이...”“닥쳐!”송해인은 이세영이 말을 마치기 전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이 비서, 단어사용을 항상 조심해! 권씨 가문의 권효정 씨는 미친년이 아니라 우리의 비즈니스 파트너야. 이 점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면 해!”이세영은 표정이 굳으며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네! 송 대표님, 이 기회를 우리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효정 그룹은 방금 설립한 작은 회사인데 왜 우리 비오 그룹보다 먼저 입장권을 가지는 겁니까? 진 대표님한테 전화를 걸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권효정은 오래도록 망설이다가 결국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진기준은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렸고 다시 여러 번을 걸어도 똑같은 결과였다. 그러자 송해인의 표정도 일그러졌다.“됐어. 먼저 나가봐. 내가 방법을 더 생각해볼게.”이세영은 그제야 들고 왔던 서류를 내려놓고 뒤돌아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송수 중심의 고급 호텔에서는 백도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에게 허리를 굽히고 있는 진기준을 개 보듯 쳐다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진 대표, 우리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어. 그러니 길게 말 안 해도 진 대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겠지? 성공하면 진씨 가문은 명성 그룹이 송주에서의 유일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거야. 하지만!”말을 이어가던 백도현은 표정이 살짝 쌀쌀해지며 입가에는 서늘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만약 진씨 가문에서 나를 실망하게 한
“정말이야?”전화에서 송해인의 말투가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해인아, 이번에는 경쟁이 아주 치열해. 명성 그룹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너도 알잖아. 그래서 백씨 가문 도련님이 아직 나한테 명확한 대답은 주지 않았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진기준은 자신만만하게 맹세했다.“알겠어. 그럼... 그럼 진 대표한테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대할게.”송해인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진기준은 휴대폰을 한번 쳐다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어렵게 얻은 입장권을 너한테 준다고? 정말 헛된 망상이야!’지난번에 송해인이 파혼을 한 뒤로부터 진기준은 마음속에 송해인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었다. 비오 그룹이 입장권을 얻게 하느니 차라리 백씨 가문의 손을 빌려 비오 그룹을 먹어버릴 것이다.그때가 되면 송씨 가문을 위해서라도 송해인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진기준의 눈동자에는 악랄한 빛이 비쳤다....전화를 끊은 송해인은 긴장된 기분으로 주먹을 쥐며 사무실을 초조하게 돌아다녔다. 진기준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알아봤는데 송주의 절반 이상이 되는 의약 회사에서 이미 입장권을 손에 넣었다고 했다. 연회가 개막하기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만약 아직도 입장권을 얻지 못한다면 명성 그룹에서 그냥 넘겨버렸다고 확정할 수 있다.비오 그룹을 위해, 비즈니스 퀸의 꿈을 위해 그녀는 이미 많은 것들을 희생했다. 만약 연회에 참가하는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면 비오 그룹도 여기서 끝일 것이다.명성 그룹이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로 봐서는 몇천억의 시가를 보유하고 있는 큰 회사가 자신의 눈앞에서 시장점유율을 빼앗는 꼴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이것이야말로 송해인이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명성 그룹의 전면적인 통제에 마주하면 비오 그룹은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고 순식간에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먹혀버릴 것이다.“송 대표님, 마음 놓으세요. 진 대표님이 도와준다고 얘기하지 않으셨습
송해인은 백도현의 물음에 멈칫했다. 여기로 오기 전에 송해인은 충분한 준비를 했는데 비엘 마스크팩의 제품소개와 시장정보에 대해 모두 서류로 프린트를 해왔다. 하지만 백도현이 금오단에 관심을 가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잠깐의 공백 후, 송해인은 머리를 넘기면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백 대표님, 제품은 연구 개발에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올 때 급히 오느라 챙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서 갖고 오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송해인은 서둘러 이세영에게 말했다.“이 비서, 얼른 회사로 가서 정윤이한테 업그레이드된 금오단을 갖고 이리로 오라고 해!”이세영은 알겠다며 대답하고 빠르게 방을 나섰다. 송해인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백 대표님, 명성 그룹에서는 의약 업계도 섭렵할 생각을 하고 있으십니까?”백도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젓더니 손가락으로 찻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송 대표가 오해했어. 요즘 할아버지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금오단이 시장에 나왔을 때부터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어. 이번에 송주에 온 이유도 한편으로는 가문의 사업확장을 위해서이고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야.”송해인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좀 있다가 저희의 개량판 금오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제 친구한테 얘기하겠습니다. 대표님께서 반드시 만족하실 겁니다.”백도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별말을 더 하지 않았다.어색한 침묵이 방안 전체를 메워 긴장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송해인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는데 이는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백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송해인을 보더니 얼굴에는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그는 여자를 만나기만 하면 돈을 쏟아붓는 못난 남자가 아니다. 여자를 정복하려면 먼저 그녀에게 두 사람의 지위에 대한 큰 차이를 느끼게 해야 한다. 충분한 압력을 가한 뒤, 가끔 관심을 주면
백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무성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무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도련님, 지금 저들은 도련님을 속이고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도정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송해인도 가슴이 철렁했다. 백도현의 곁에 있는 노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세영은 굽어들지 않고 말했다.“어르신, 그 말에 근거가 있습니까?”“근거?”무성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당신들의 연구 개발팀한테 500년을 더 줘도 이렇게 오묘한 처방은 만들어 내지 못해!”이렇게 말하며 무성은 뒤돌아 백도현에게 말했다.“도련님, 이 금오단의 최초 처방전은 한의학 분야의 큰 성과들을 다 모은 것입니다. 천년 정도 이어져 내려온 의학 가문의 문파가 아니라면 이렇게 오묘한 처방전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백도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송해인을 보면서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송 대표, 그쪽 회사에서 이 정도의 믿음도 줄 수 없다면 우리의 합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말하며 백도현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이세영은 넋이 나갔고 도정윤도 놀랐다. 송해인은 용기를 내 일어나서 말했다.“백 대표님,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금오단의 최초 처방전은 우리 회사에서 연구 개발한 게 아니고... 제 전남편이 만든 것입니다.”마지막 마디를 송해인은 입술을 꼭 깨물고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도정윤은 송해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해인아, 네 말은... 금오단을 개발해낸 사람이 서강빈 그 쓰레기 같은 놈이란 말이야?”이 소식에 도정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랐다. 그녀가 생각했을 때 서강빈은 아무 쓸모도 없고 송해인에게 짐이 되는 못난 놈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서강빈이 송해인과 이혼을 하자마자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는 쓰레기 같은 남자이고 후안무치하다는
호텔에 돌아온 백도현은 손에 들린 금오단을 만지작거리면서 진지한 눈길로 그 단약을 보며 말했다“무성 어르신, 어르신의 말은 그 서강빈이 의학 종가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까?”“의학 종가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천의문의 후계자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이 말을 하는 무성의 눈동자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 그는 무의문 출신이었는데 예전에는 무의문의 장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천의문이 내린 명령으로 하여 수십 개의 종가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고 백 년 동안 이어져 왔던 문파는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그때 그는 뒷산의 한담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운 좋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그해의 참상을 떠올릴 때마다 무성은 천의문의 사람들을 다 몰살해버리고 싶었다....한편, 권효정은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서강빈을 차에 태워서 시 중심으로 갔다. 그리고는 서강빈을 끌고 최고급 남성 의류 브랜드 가게로 향했다.30분 후, 서강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이런 옷들은 정말 습관이 안 되네요. 너무 불편해요.”이건 서강빈의 진실한 마음이었다. 세상의 이러한 명예와 이익에 대해서 서강빈은 항상 덤덤했다. 하여 옷을 입는 것도 캐주얼한 스타일로 편하게 입었다.“자주 입으면 습관 될 거예요.”권효정은 만족스럽게 서강빈을 훑어보며 말했다.“그리고 당신은 효정 회사의 진짜 사장인데 며칠 뒤 연회에 다른 사람이 대신 참가하라고 할 건 아니죠? 대표님이면 대표님다운 분위기가 있어야죠.”서강빈의 키와 몸매, 그리고 멋진 외모에 최고급 브랜드의 정장을 입으니 아주 고귀하고 점잖고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서강빈은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권효정이 뜻을 굽히지 않자 서강빈도 더 뭐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드림 레스토랑을 예약했어요. 함께 가서 양식을 먹는 게 어때요?”권효정은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서강빈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한 쌍의 선남선녀는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에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