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확 굳어진 허선봉이 흰 눈썹을 꿈틀거리며 서강빈을 노려보았다. 문득 그의 표정이 변하더니 눈앞의 서강빈이 누군가를 닮은 듯 낯익다는 느낌이 들어 미간을 세게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이런 느낌도 눈 녹듯 사라졌다.“젊은이, 우리 허씨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온 허준 19침이 틀렸다고 자네가 그렇게 말했어?”허선봉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엄숙하게 물었다. 송해인과 양이솔은 지금 방송에서 볼 수 있었던 허선봉을 직접 눈앞에서 볼 줄 예상치 못해서 깜짝 놀랐다.신의 허선봉, 그는 용국 한의학 영역의 거장 중 한 분이고 허준의 후대이며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허선봉은 용국의 의학계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난치병을 치료한 전적이 많았고 많은 유명인사가 존경하는 귀빈이었다. 그의 명성은 한때 용국의 곳곳에 전해지기도 했다. 허선봉의 한마디 말이면 인간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사 염라대왕이라고 해도 허선봉에게 양보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이름을 떨친 허선봉이라는 신의가 지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강빈! 당장 허 신의께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않고 뭐해!”양이솔이 불쑥 나서서 서강빈을 질타했다. 양이솔의 생각에 허선봉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다. 만약 허선봉을 건드리게 되면 이 도시에서 제일가는 부자라고 해도 그 후폭풍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송해인도 긴장된 모습으로 서강빈의 곁으로 가서 그의 팔을 잡아끌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강빈아, 그냥 사과해. 허선봉이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하지만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음을 짓고는 허선봉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래. 내가 말했어. 무슨 문제 있어?”서강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졌고 구성준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놈이 감히 우리 사부님 앞에서도 건방지게 그런 얘기를 지껄이네. 정말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자기 주제를 모르는 놈이야!”양이솔도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구성준과
마치 엄청난 아량을 베푸는 듯한 이 말에 서강빈은 웃음을 터뜨렸고 구성준이 나서서 그를 꾸짖었다.“미친놈이 웃긴 뭘 웃어?”사부님 앞에서 감히 저렇게 웃다니, 이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허씨 가문의 수준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네. 용국 한의학 영역에서 발언권이 좀 있다고 이렇게 독단적이어도 되는 거야? 허선봉 씨, 4년 전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저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던 일은 기억 못 하나 봐?”서강빈의 말은 병실에 커다란 소란을 몰고 왔고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말이지? 허선봉이 4년 전에 서강빈의 앞에서 무릎 꿇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고?’시선을 마주친 오수연과 양이솔은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허 신의님, 이게, 이건 저 자식이 한 말입니다. 저희랑은 상관이 없어요...”“서강빈, 너 미쳤어? 감히 그런 미친 소리를 해? 우리도 같이 망하게 하고 싶어?”양이솔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송해인도 눈동자가 떨려오며 겁먹은 얼굴로 황급히 서강빈의 옷깃을 잡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서강빈, 얼른 허 신의께 사과해.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됐어.”하지만 서강빈은 두려움이 없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구성준은 크게 화를 내며 서강빈에게 욕을 퍼부었다.“미친놈! 네가 방금 뭐라고 한지 알기나 해? 우리 사부님이 너 까짓걸 스승으로 모셨다고? 네가 말하고도 그 말이 참 우습다고 생각되지 않아?”구성준은 또 허선봉에게 말했다.“사부님, 저 자식은 너무 건방집니다. 바로 죽이는 게 어떻습니까? 혹은 허씨 가문의 인맥을 이용하여 저 자식을 망가뜨리고 평생 다시는 의술을 쓰지 못하게 하고 말도 못 하게 만드는 겁니다!”구성준은 아주 분노했다. 허선봉은 그의 사부님이고 용국 한의학 영역의 거장 중 한 사람이었다. 만약 허선봉이 4년 전에 서강빈을 스승으로 모셨다면 저 자식은 구성준의 사조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지금 허선봉의 표정도 크게 변하였고 그는 흰 눈썹을 치켜들며 흐릿한 눈
사조님이라는 말에 표정이 확 변한 구성준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앞의 서강빈을 보았다. 서강빈이 정말 자신의 사조님이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구성준이 멍하니 서있는 모습을 본 허선봉은 일어나서 구성준의 뺨을 치며 꾸짖었다.“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꿇어!”구성준은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털썩 무릎을 꿇고는 울며 겨자먹기로 서강빈에게 인사를 올렸다.“사조님, 사손이 인사 올리겠습니다.”그러나 서강빈은 차갑게 대꾸했다.“너는 나한테 인사를 올릴 자격이 없어.”구성준은 억지로 올린 인사가 거절을 당하자 억울한 표정으로 허선봉을 쳐다보았다. 허선봉은 얼른 서강빈에게 공손하게 말했다.“스승님, 제가 이 자식을 대신해서 사과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 자식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서강빈은 차가운 눈길로 허선봉을 보았다. 이 장면을 본 오수연, 양이솔과 송해인은 놀랍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허선봉마저도 서강빈에게 무릎을 꿇으며 스승이라고 칭한다면 서강빈의 의술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허선봉은 아직도 서강빈을 설득하며 구성준을 위해 좋은 소리를 했다. 서강빈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말했다.“됐어. 일어나.”이 말을 들은 구성준은 그제야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무척 공손한 태도로 구부정하게 곁에 서서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허선봉도 이제야 한숨을 내쉬고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스승님, 방금 허준 19침이 틀렸다고 하셨잖습니까?”“그래.”서강빈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허선봉은 다급하게 손을 모으며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그렇다면 부디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십시오. 저희 허씨 가문은 스승님께서 허준 19침을 제대로 수정해준 큰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서강빈도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바로 허준 19침이 틀린 곳을 지적해주었다. 허선봉은 서강빈의 말을 듣고 난 후 큰 깨달음을 얻었다.“우리 허씨 가문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허준 19침이 틀린 침술이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녹색의 지프 몇 대가 갑자기 돌진해오더니 서강빈과 송해인의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끊겼다. 지프들은 위엄이 넘쳤다. 차 문이 열리고 특수한 복장을 한 남자들이 사나운 기세로 내려왔고 앞장선 사람은 다름 아닌 변준호였다.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서강빈을 향해 걸어오더니 차갑게 말했다.“또 만났네.”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송해인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변준호 부관이네. 왜, 볼일 있어?”서강빈은 알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송해인은 겁을 먹고 긴장된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서강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저 사람들은 누구야?”“너랑 상관없으니 먼저 가.”서강빈이 쌀쌀하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변준호가 차갑게 명령했다.“얘들아, 저 자식을 잡아!”드래곤 팀 두 팀의 팀원들이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 서강빈을 끌어가려고 했다. 다급해진 송해인이 서강빈의 앞을 막아서며 변준호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들 누구예요?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잡아가도 되는 거예요?”변준호는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송해인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우리는 드래곤 팀의 사람들이고 지금 긴급임무를 수행하는 중입니다. 비키세요. 아니면 당신까지 함께 끌고 갈 것입니다.”드래곤 팀이라는 말에 송해인의 표정이 크게 요동쳤다. 그녀는 이 조직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는 기밀조직에 속하는데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이들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서강빈은 어찌하여 이런 조직의 사람들에게 걸리게 되었는지, 서강빈이 도대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송해인은 긴장되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서강빈이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강경하게 말했다.“아무리 당신들이 드래곤 팀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사람을 잡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어두운 표정을 지은 변준호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드래곤 팀에서 사람을 잡는 데는 이유가 필요했던 적
변준호는 그 물음이 우습다는 듯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야 이 자식아, 누구의 뜻이든 여기에 왔으면 네 마음대로 안 될 거야! 여봐라, 저 자식을 묶어놔!”그 말을 들은 두 팀원이 다가와 서강빈의 손을 십자가로 된 철 기둥에 묶어놓았다. 이윽고 변준호는 불구덩이에서 세게 달궈져 불꽃이 튕기는 납땜인두를 꺼내 들고 차갑게 웃으며 서강빈을 보고 말했다.“이거 한번 해볼래?”서강빈은 태연한 얼굴로 변준호의 손에 들린 납땜인두를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궁금한 게 있어. 드래곤 팀에서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고문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돼?”변준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에는 비아냥과 업신여기는 뜻이 다분했다.“독단적으로 고문을 한다고? 내가 함부로 고문한다고 누가 그래? 방금 너는 드래곤 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드래곤 팀의 팀원과 무력충돌이 있었으며 국가를 배신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죄명으로 잡혀 온 거야.”변준호는 서늘한 눈빛으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서강빈도 무척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인제 보니 드래곤 팀은 이런 식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었네.”“야 이 자식아,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여기로 온 이상 너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변준호가 차갑게 말했다.“근데 나는 조건을 제시하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해. 네가 권효정 씨의 곁에서 떠나준다면 너를 놓아줄 수도 있어.”서강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고는 말했다.“미안하지만 그 조건은 내가 들어줄 수 없어.”“기회를 줘도 스스로 저버리다니, 네가 죽고 싶은 거구나!”변준호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벌겋게 달아오른 철 덩어리를 들고 서강빈을 향해 다가갔다. 변준호의 손에 들린 철 덩어리는 그대로 서강빈의 가슴팍으로 날아갔다.하지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힘에 밀려난 변준호는 멀리 날아갔고 손에 있던 납땜인두도 함께 날아올랐다가 변준호의 얼굴로 떨어졌다.치지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순식간에 철판에 올려진 고기처럼 변준호의
이 모습을 본 변준호는 겁을 먹고 뒤돌아 도망가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서강빈은 곁에 있던 쇠못이 달린 긴 채찍을 들고 문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변준호를 향해 내리쳤다.“악!”변준호는 비명을 질렀다. 그 채찍은 변준호의 등을 세게 내리쳤고 열 개가 넘는 쇠못이 등에 박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변준호는 채찍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분노가 서린 고통스러운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악을 썼다.“네가 감히 대놓고 드래곤 팀의 팀원을 공격해? 이건 3대가 멸할 죽을죄야!”그러나 서강빈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뭐?”말을 마친 서강빈은 다시 채찍을 들고 내리쳤다.“악...”변준호는 또 한 번 비명을 질렀고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이 한대는 당신이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함부로 사람을 잡아들인 벌이고.”변준호는 옷이 찢어지고 피가 낭자했다. 채찍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퍼졌다.“이 한대는 당신이 마음대로 법을 집행하고 사사로이 형벌과 고문을 행하는 데 대한 벌이야!”“아악... 미친놈, 미친놈! 너는 반드시 비참하게 죽게 될 거야!”변준호는 비명을 지르고 호통치면서 바닥에 쓰러진 채로 힘겹게 형벌방을 나가려고 했다. 채찍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이 한대는 당신이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이야!”이윽고 이 채찍 소리는 15분 정도 더 울려 퍼졌다. 서강빈이 멈췄을 때, 바닥에 쓰러진 변준호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온몸이 피로 뒤덮였고 몸에는 쇠못이 박혔다가 사라진 구멍이 가득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서강빈은 피가 흥건한 채찍을 바닥에 버리고는 숨이 겨우 붙어있는 변준호를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말해. 오늘 일은 네 뜻이야, 진민석의 뜻이야.”“허허...”변준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힘겹게 말했다.“너한테 말하면 어찌할 건데? 우리 진 팀장님은 드래곤 팀의 팀장이야! 네가 감히 팀장님의 몸에 손을 댄다면 그건 공공연
서강빈은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고는 냉랭한 눈빛으로 진민석을 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진 팀장, 송주 드래곤 팀에서는 당신이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진민석은 비아냥거리듯 차갑게 웃고는 말했다.“서강빈, 솔직히 말할게. 네 말대로 여기는 내 구역이야! 왜, 그게 불만이야? 불만이어도 참아! 지금 네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나는 드래곤 팀의 법대로 너에게 심판을 진행할 거야!”“심판?”서강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침착하고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진 팀장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나 모르겠네.”“웃겨! 여기서는 내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나를 통제할 수 없어. 너같이 빽도 세력도 없는 자식을 상대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진민석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고 서강빈은 알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그럼 우리 두고 보자.”이 말을 들은 진민석은 비웃는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네 말을 들어보면 네가 무슨 특별한 인맥이라도 있는 것 같다?”“좀 있긴 하지.”서강빈이 담담하게 대답했고 진민석은 웃으며 물었다.“그래? 그럼 정말 궁금하네. 네가 말한 인맥이라는 게 누군지, 너를 여기서 무사히 꺼내줄 수 있는지 말이야.”“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서강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한편, 안절부절못하는 송해인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 서강빈의 소식을 물어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지인들은 드래곤 팀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지레 겁을 먹고 전화를 끊었다. 드래곤 팀은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되는 특수한 부대였으므로 이는 완전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이었다. 그러니 누가 감히 드래곤 팀의 사람을 건드린다면 염라대왕을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어떡해, 어떡해...”초조한 송해인은 결국 어쩔수 없이 도정윤에게 연락했다.“정윤아, 너 드래곤 팀에 아는 사람 있지?”송해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정윤은 지금 비오 그룹의 제약 연구실에서 금오단을 연구하고 마스크 팩의 제조법을 개량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
도정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참 후, 그녀는 체념한듯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전화를 걸어 차갑게 말했다.“좋아, 그렇게 할게.”“말해. 무슨 일이야?”“드래곤 팀에서 사람을 한 명 풀어줘.”도정윤이 말했다.“이름이 뭐야?”남자가 물었다.“서강빈.”도정윤은 차갑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한편, 전화 저편의 넓고 엄숙한 사무실 내에서는 진하고 용맹한 이목구비에 군복을 입고 어깨에 황금별을 두 개가 반짝이며 위엄 있는 포스를 풍기는 중년 남자가 곁에 있는 부관에게 말했다.“드래곤 팀에게 연락해서 서강빈이라는 사람을 찾아.”“네, 장군님!”부관은 대답하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다.“잠깐만!”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자식에 대해 조사도 해봐.”“네, 알겠습니다!”부관은 다시 대답하고 신속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중년 남자는 뒷짐을 지고 뒤돌아 유리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정윤이가 황보민과의 약혼을 승낙한 거로 봐서 서강빈, 이 자식과 정윤의 관계가 보통이 아닌 것 같네.”한편, 황규성은 서강빈이 드래곤 팀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뭐라고? 서 선생이 드래곤 팀한테 잡혀갔다고?”황규성은 깜짝 놀라 이렇게 소리 지르며 거실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드래곤 팀의 사람이라니, 큰일 났다. 황규성이 송주 어둠의 왕으로서 만 명의 타자들을 거느린다고 해도 함부로 드래곤 팀의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규성 어르신, 어떡할까요? 사람들을 소집해서 서 선생님을 구하러 갈가요?”부하가 물었다. 황규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마지막에 우뚝 서서 굳은 얼굴로 명령했다.“사람들을 소집해! 서 선생을 구하러 드래곤 팀으로 가자!”황규성은 드래곤 팀과 싸움이 나더라도 서강빈을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규성 어르신, 그래도 드래곤 팀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부하가 귀띔했다. 황규성은 뒤돌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하를 보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