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서강빈은 그 생각을 버렸다. 마침 수행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한 서강빈은 전태산에게 선물 받은 은령초를 꺼내 들었다. “파경단을 하나 제조해보자.”혼잣말하면서 일어난 서강빈은 만물상점을 나가 주변에 있는 약국에서 약재를 사려고 했다. 마침 문을 나섰을 때, 그는 진천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진천호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서강빈 씨, 연명 단약은 다 되었습니까?”서강빈은 그제야 진천호에게 연명 단약을 하나 제조해주겠다던 일이 기억났다.“죄송합니다, 진 회장님. 요즘 바쁜 일이 좀 있어서 잊어버렸네요. 이따가 바로 제조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서강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진천호도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하하하, 괜찮습니다. 서강빈 씨처럼 대단한 분은 당연히 바쁘시겠죠. 저는 급하지 않습니다.”“아닙니다, 진 회장님. 한 시간 내로 연명 단약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서강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진천호도 얼른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강빈 씨.”전화를 끊고 서강빈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얼른 주변에 있는 약국으로 가서 약재를 사와 연명 단약을 한 알 제조했다. 그 과정은 반 시간 정도 걸렸다. 다 만든 후, 서강빈은 작은 비단함에 연명 단약을 넣어 택시를 타고 진천호가 있는 정원으로 갔다.“진 회장님, 연명 단약을 가지고 왔습니다.”거실에서 서강빈은 웃으며 진천호에게 비단함을 건넸다. 진천호는 서둘러 일어서서 받아들고는 웃으며 말했다.“서강빈 씨, 직접 갖고 오시기까지 하고 정말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서강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진천호의 혈색과 몸 상태는 확연히 좋아졌다.“진 회장님, 별다른 일이 없으면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서강빈의 말에 진천호는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서강빈 씨, 잠시만요. 사적인 일이 하나 있는데 서강빈 씨에게 부탁을 좀 해야겠습니다.”“얘기하시죠.”서강빈이 이렇게 대답하자 진천호도 더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말했다.“오늘 저녁에 이벤트가
진천호가 웃으며 말했다.“이분 삼절 도장은 신현 지역에서 제일가는 거장입니다. 이 천록염주가 바로 삼절 도장이 제조한 것이고 사악한 기운과 화를 쫓고 풍수를 조절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죠. 50억의 경매 시작 가격은 전혀 높은 가격이 아닙니다.”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진 회장님, 설마 오늘 밤에 낙찰하려고 하는 물건이 이 천록염주는 아니죠?”“정말 서강빈 씨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맞아요. 제 목표가 바로 이 천록염주입니다. 화첩에 있는 기타 영기들에서 서강빈 씨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다 저한테 말씀하세요. 모두 낙찰해드리겠습니다.”진천호는 호기롭게 말했고 서강빈은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그 천록염주를 여러 번 훑어보았다. 도장이라는 사람이 염주 같은 영기도 만들 수 있다니 흥미가 돋았다. 역시 이 늙은 도장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닳고 닳은 사람이었다. 이 염주가 진천호의 말처럼 그런 효능을 가질지 서강빈은 지금 판단할 수 없고 직접 보아야만 알수 있었다. 서강빈은 화첩을 계속하여 넘겨보았고 화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영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옥으로 된 검은색 단지였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에 온통 검은색인 단지 표면에는 알기 어려운 부호와 도안들이 있었고 사악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곁에는 이 영기를 소개하는 작은 글이 한 줄 있었다.삼킬 탄에 하늘 천, 탄천병이라고 고려 시대의 물건이고 어디에 쓰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야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 때 기를 단련하는 사람들이 수행하던 영기라고 하는데 봉인을 풀면 하늘과 땅을 삼킬 수 있는 거대한 영기라고 했다. 이게 바로 스승님이 얘기했던 탄천병이라니, 서강빈의 마음속에는 경악의 물결이 일렀다. 이건 고려 시대에 삼천 수도자들을 재난의 길로 이끈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는 일반적인 영기가 아니라 완전히 영기의 영역을 벗어나 천지 사이의 각종 죽은 이의 영혼과 사악한 기운뿐만 아니라 일부분의 하늘과 땅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면 500년 전에 탄천병이 한번
진천호와 서강빈이 자리에 앉자 멀지 않은 곳 앞자리에 앉아있던 성숙한 차림새의 권효정이 마침 서강빈을 발견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의 곁에는 마흔 살이 넘은 중년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그는 권효정의 표정 변화를 보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저 사람이 바로 그 소문 속의 남자친구야?”권효정은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정 아저씨,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저는 저 사람 몰라요.”정 아저씨라 불린 그 중년 남자는 웃음을 짓더니 다 안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싸웠어?”“아니요. 저는 저런 쓰레기 같은 자식이랑 안 싸워요.”권효정은 씩씩거리며 대답했고 정 아저씨도 웃을 뿐 더 얘기하지 않았다. 경매는 빠르게 시작되었고 사람들 속에서도 잔잔한 소란이 일었다. 키가 크고 몸매가 좋은 여자 진행자가 전문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 개회사를 하면서 경매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서강빈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마음에 들어 하던 탄천병이 첫 경매품으로 나왔다. 아마도 그 탄천병이 보기에 특별한 점이 없고 경매 시작 가격도 낮았기에 현장에서는 가격을 부르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진천호가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서강빈 씨, 갖고 싶으면 바로 가격을 부르세요. 마지막에 제가 결산하면 됩니다.”웃어 보인 서강빈은 사양하지 않고 팻말을 들어 가격을 말했다.“2억 5000만이요.”매번 가격을 더 하는 폭이 5000만 원이므로 서강빈은 사전에 나온 가격에 5000만 원을 더했다. 서강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 속에서 잇따라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3억!”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 늙은 도장, 삼절 도장이었다. 상대방도 서강빈을 발견하고는 불쾌하다는 듯 서강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지금 삼절 도장의 곁에는 몸값이 대단한 어르신들이 몇 명 앉아서 그를 신처럼 모시고 있었다. 진천호도 누군가 값을 부르는 것을 듣고 고개를 돌려 삼절 도장이라는 것을 보더니 바로 놀란 소리를 내었다
서강빈의 말에 현장이 시끄러워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저 자식이 감히 삼절 도장이 사기꾼이라고 한 거야?’모두 서강빈이 미쳤다고 생각했다.“저 자식은 누구야? 처음 보는데 저렇게 건방져?”“감히 삼절 도장을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은 저 자식이 처음이야.”“멍청한 놈, 단번에 현장에 있는 절반이 되는 어르신들을 욕보였어.”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서강빈을 보는 눈빛에는 분노, 비웃음과 불만이 서려 있었다. 권효정은 주변의 반응에 미간을 찡그리고 서강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는 절반이 넘는 재벌들은 삼절 도장을 신처럼 모시고 있었는데 물론 권효정도 이 늙은 도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가 지금 말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저 자식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저 얘기를 하는 거야.”권효정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았다. 곁에 있던 정 아저씨가 웃으며 물었다.“왜, 걱정돼?”“걱정은 무슨 걱정이에요...”권효정은 새침하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편, 진천호는 서강빈이 바로 이렇게 말할 줄을 몰라 몸을 퍼뜩 떨었다. 삼절 도장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큰일이다. 한쪽은 삼절 도장이고 한쪽은 자신을 구해준 서강빈이기에 진천호는 무척 망설여졌다. 결국, 어쩔수 없이 진천호는 그저 모른 척했다. 삼절 도장도 표정이 무지하게 어두워졌고 꽉 쥔 주먹은 서강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했다. 그는 이 자식이 오래도록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를 망치게 둘 수 없어 그 재벌에게 말했다.“됐어요. 탄천병은 저 자식에게 양보하죠.”삼절 도장은 이미 계획이 있었다. 서강빈이 탄천병을 손에 넣게 되면 뺏으면 될 일이었다. 이런 장소에서 저 자식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다. 앞으로 경매에 나올 천록염주야말로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재벌은 삼절 도장의 말을 듣고 서강빈을 노려보면서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꾸짖었다.“건방진 녀석! 삼절 도장
종업원이 빨간 천에 뒤덮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빨간 천에 덮여서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모두 그 안에 있는 물건이 바로 천록염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 진행자는 천록염주를 보려고 고개를 빼든 재벌 어르신들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여러분,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곧 시작됩니다. 모두 마지막 영기가 무엇인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삼절 도장의 명성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현장에 있는 절반의 재벌 어르신들이 다 삼절 도장의 은혜를 받으셨죠. 이 천록염주는 삼절 도장이 3년의 세월을 들여서 제조한 최상급의 영기입니다. 사악한 기운과 화를 내쫓고 풍수를 조절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운세를 바꾸고 대운이 트는 등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여자 진행자가 천록염주의 효능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는 많은 사람이 소리치기 시작했다.“그만그만, 다 알고 있으니 얼른 꺼내서 천록염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자고!”여자 진행자는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신비로운 천록염주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죠.”말을 마친 그녀가 손을 뻗어 쟁반 위에 있던 빨간 천을 벗기자 금색의 빛이 순식간에 가닥가닥 비쳐 사람들을 눈부시게 했다. 그 순간, 천록염주는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몸을 비추면서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슬이 온통 금빛을 띠고 옥처럼 매끄러웠으며 금빛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영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사람이라고 해도 지금은 이 천록염주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세상에! 이게 바로 천록염주인건가, 너무 예쁘다...”“너무 신기한 느낌이야. 한번 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몸이 가뿐해져.”“젠장! 이 염주는 내가 꼭 손에 넣어야겠어! 얼마가 됐든 반드시 낙찰할 거야!”현장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모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가까이 가서 그 천록염주를 보려고 했고 그 신성한 빛이 자신에게로 비추게 했다. 여자 진행자가 웃으며 말했다.“모두 천록염주의 모습을 보았으니
진천호는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가짜라고요? 서강빈 씨, 장난하시는 거 아니죠?”진천호는 망설여졌다. 서강빈은 그가 데리고 와서 진위를 판단해달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런 서강빈이 가짜라고 하니 살짝 위축되기는 했다.“가짜입니다.”서강빈이 태연하게 말했다. 방금 빨간 천을 거뒀을 때 서강빈도 거기에서 뿜어나오는 금빛을 보고 진짜라고 믿을뻔했는데 자세히 보니 천록염주라는 게 그저 색을 입힌 일반 구슬일 뿐이었다. 오묘한 분위기의 이유는 구슬 내부에 설치한 작은 구영진에 있었는데 아마도 내부에 주입한 금색의 전구까지 더해졌기에 그렇게 눈부시고 인체에 이로운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완전 거짓이고 영기를 모르는 재벌 어르신들을 속여서 돈을 빼내려는 것이었다. 서강빈은 늙은 도장의 곁에 있는 몇 명의 재벌 어르신도 그가 일부러 돈을 더 높게 부르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진천호는 영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잠깐 망설이던 진천호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서강빈 씨, 이 천록염주가 가짜라는 게 확실합니까?”“확실합니다. 이 염주는 그저 평범한 구슬입니다.”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하자 진천호는 들고 있던 팻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진천호 스스로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편, 삼절 도장의 곁에 있던 방금 440억을 부른 재벌은 진천호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미간을 치켜들며 도발했다.“왜 그러죠? 진 회장님 480억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440억을 불렀는데 회장님은 480억을 차마 부르지 못하겠는 거예요? 아니면 회장님 돈이 모자랍니까? 돈이 모자라면 얘기를 하지, 제가 빌려드릴 텐데 말이에요.”이 말들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두운 표정의 진천호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을 도발하고 있는 이 뚱뚱한 남자는 주영수라는 사람이었는데 명문가 출신이고 진천호와 오래된 앙숙으로서 항상 서로의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진천호는 주영수가 자신이
“삼절 도장,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600억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게 되겠네요.”주영수는 엄지를 치켜들고 웃으며 말했다. 이에 삼절 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저도 갑자기 생각난 것입니다. 계속 가격을 불러서 700억까지 가죠.”“좋아요!”주영수가 대답했다. 역시 예상대로 현장에 있던 재벌 한 명이 이를 악물고 팻말을 들었다.“600... 610억!”“620억!”“640억!”...가격을 높이는 바람이 한바탕 지나갔다. 마지막에는 주영수가 팻말을 들고 가격을 불렀다.“670억!”그러고 나서 그는 진천호를 보며 도발하는 웃음을 띤 채 말했다.“진 회장, 가격을 못 부르고 있는 거야? 600억이 넘는 이 정도 가격은 진 회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텐데?”진천호는 지금 미간을 찌푸린 채 서강빈과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었고 주영수는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진 회장, 그 자식이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주영수와 말을 섞기 싫은 서강빈은 그를 개의치 않고 진천호한테 말했다.“진 회장님, 이제 알겠어요? 저 주영수라는 사람과 삼절 도장은 한통속입니다.”진천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서강빈 씨, 확실합니까?”“믿지 못하겠어요?”서강빈은 웃음 짓고는 손가락을 진천호의 귀에 가져다 댔고 한줄기 영기가 순식간에 진천호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진천호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각종 소란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랐다.“이게 뭡니까?”진천호는 놀란 얼굴로 물었고 서강빈이 대답했다.“진정하세요. 이건 남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술수를 제가 회장님께 부린 것입니다. 진 회장님, 지금 주영수와 삼절 도장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보세요.”진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영수와 삼절 도장을 보았다. 역시 귓가에는 삼절 도장과 주영수가 속닥이는 소리가 빠르게 흘러들어왔다.“삼절 도장, 도발이 좀 부족한 것일까요? 진천호가 가격을 부르지 않는데 좀 자극해 볼까요?”“네. 계속 자극하세요. 더 높은 가
주영수는 벌떡 일어나 진천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진천호, 왜 값을 더 부르지 않는 거야?”진천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너무 비싸서 돈을 더 부르지 못하겠어. 주 사장처럼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말이야. 690억 거금인데, 주 사장 축하해요.”말을 할수록 진천호의 얼굴에는 주체를 못 하고 웃음이 피었다. 그 순간, 주영수는 자신의 수가 들통났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어 여자 진행자를 향해 소리쳤다.“아니야! 내가 부른 값은 무효야! 690억은 진천호가 부른 값이야!”690억을 주고 가짜 영기를 하나 산다고? 그 물건이 결국 거금을 주고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고 생각하니 주영수는 미칠 지경이었다. 주영수는 한편으로 여자 진행자에게 소리치면서 한편으로 진천호를 닦달했다.“진천호, 당장 700억을 불러! 이 천록염주를 너에게 양보할게. 이거 좋은 물건이야!”다급해진 주영수가 이성을 잃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현장에 있는 재벌 어르신들은 어리둥절해졌다.‘무슨 상황이야? 천록염주가 최고급의 영기라면서 왜 서로 양보하고 있는 거야?’진천호가 웃으며 말했다.“주 사장, 본인이 부른 값을 어떻게 무를 수 있어? 천록염주가 좋은 물건이라며, 그러면 주 사장이 낙찰하면 되잖아.”앞서 서강빈이 청록 염주가 가짜라고 했던 말을 진천호는 지금 거의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주영수가 이렇게 초조해할 리가 없다.“안돼! 당신 무조건 700억 불러야 해!”주영수는 이성을 잃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고 표정이 어두워진 진천호가 불만스럽게 말했다.“주영수, 지금 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기나 해?”“나는...”주영수는 말문이 막혔고 곁에 있던 삼절 도장도 미간을 찌푸린 채 작게 말했다.“주 사장님, 앉으세요.”주영수는 고개 돌려 삼절 도장을 보며 초조하게 말했다.“삼절 도장, 690억입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거잖아요?”곁에 있던 재벌 어르신들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이 확 바뀌었다.“무슨 뜻이야?”“물거품이 됐다고?”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