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식, 빨리 왔네. 내 사람은?”아귀가 어두운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서강빈은 두 손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걸어갔다. 서강빈은 룸 안의 부하들을 쭉 둘러보며 그들의 위치와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무기들을 파악한 뒤, 아귀의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묶어뒀는데.”“팍.”아귀는 화가 난 듯 테이블을 힘껏 내리치며 소리쳤다.“이 자식,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네가 누구든 오늘 밤엔 절대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거야.”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7, 8명의 부하들이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살기등등하게 서강빈을 에워쌌다. 그들은 허리춤에서 서늘한 빛을 번뜩이는 비수를 꺼냈다.서강빈은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반문했다.“아귀라고 했지? 우리 사이에 원한 같은 건 없을 텐데. 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 뒤에 다른 사람이 있지? 기회를 한 번 줄게. 얘기해, 누군지. 그러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떠날게.”“하하하!”아귀는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그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이 자식,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내게 기회를 준다고?”“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긴 팰리스야, 내 구역이라고. 널 죽이고 아무 데나 묻어도 아무도 몰라.”서강빈은 들고 있던 잔을 흔들거리면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은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겠다는 거지?”“탕.”아귀는 테이블 위 술병을 들어 올린 뒤 그것을 바닥에 힘껏 내던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빌어먹을 놈, 내 구역에 와서 큰소리를 쳐? 내가 송주에서 그동안 헛짓거리나 한 줄 알아?”“저놈을 족쳐! 저놈이 무릎 꿇고 나랑 얘기하게 만들어.”아귀가 화를 냈다.그와 이렇게 건방진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죽으려고!’그 순간 7, 8명의 부하들이 비수를 들고 흉악한 표정으로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서강빈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10
서강빈은 차갑게 웃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아귀가 앉았던 곳에 앉으며 물었다.“이제 말할 수 있겠어?”아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님,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저희처럼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 규칙에 따라야 해요. 말한다면 더는 송주에 있을 수 없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십쇼, 형님. 앞으로 형님한테만 복종하며 보답하겠습니다.”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레 말했다.“기억해. 지금부터는 내 말이 규칙이야. 말하지 않겠다면 당장 죽여주겠어. 3분 줄 테니 잘 고민해 봐.”아귀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서강빈에게서 엄청난 살기를 느꼈다.어쩌면 그를 진짜 죽일지도 몰랐다.아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시간은 그렇게 1분 1초 흘러갔다.서강빈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감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쯤, 갑자기 룸 문이 열렸다.곧이어 큰 소리와 함께 룸 안이 소란스러워졌다.“이봐, 젊은이,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면 안 되지. 내 체면을 봐서 쟤를 한 번 봐주는 건 어떻겠나?”서강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노인이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그의 호흡은 흐트러짐 없었고 두 눈은 부리부리했다.게다가 이마 양쪽의 관자놀이가 툭 튀어나온 걸 봐서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고, 실력도 약하지 않은 듯했다.바닥에 엎드려 있던 아귀의 사람들은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외쳤다.“선생님, 구해주세요, 구해주세요!”눈앞의 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송주 현지 천우 도장의 관장 오운학이었다.그는 주먹 한 방에 호랑이를 쓰러뜨릴 수 있는, 진정한 무인이었다.소문에 의하면 실력이 무도 대가급에 이르게 되면 칼도 총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그리고 오운학은 이제 곧 무가에 이를 수 있는 경지였다.송주에서 그의 지위는 아주 드높았다.송주의 양지나,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모두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아귀는 과거 오운학이 손가락 하나로 강
서강빈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으며 차갑게 말했다.“싫은데요.”오운학의 미간에 한기가 서렸다. 그가 호통을 치며 말했다.“굳이 오늘 따끔한 맛을 보겠다 이건가?”“그렇다면요?”서강빈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말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귀는 덜컥 겁이 났다.서강빈은 오운학마저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거만했다.오운학이 입만 움직여도 송주에서 누군가가 영문도 모르고 죽을 수 있었다.그런데 어찌 감히 그런단 말인가?동시에 아귀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서강빈은 오운학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었다.오운학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젊은이, 사람이 너무 거만하면 안 돼. 배운 게 조금 있다고 해서, 실력이 조금 있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 얕보면 안 되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 못 들어봤어? 오늘 내가 젊은이의 스승을 대신해 혼내주지!”말을 마친 뒤 오운학이 선제공격을 했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내 순식간에 사라져서 서강빈의 앞에 나타났다. 귀신 같은 움직임이었다. 곧이어 그는 서강빈의 가슴팍을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그의 주먹은 마치 구렁이 같았고,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다.“죽어!”오운학이 크게 소리 질렀다.몇 년 전의 오운학은 손가락으로 강철로 만들어진 판을 꿰뚫을 수 있었다.그런 그가 사람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면 아마 커다란 구멍이 생길 것이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귀는 그 광경을 본 순간 비릿하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흥,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 오 선생님의 심기를 거슬러? 오 선생님은 주먹으로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다고!’그러나 서강빈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보고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평온했다.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주먹을 휘둘렀다.오운학은 그 모습을 보자 얼굴이 떨렸다. 그는 분노로 가득 찬 표정으로 같잖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청년, 이건
‘헉!’오운학이 서강빈에게 뺨을 맞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광경을 본 아귀는 입술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그의 눈빛은 멍했다. 그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동자로 눈앞의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오운학은 천우 도장의 관장인데 그런 그를 뺨 한 대로 날려버리다니.심지어 오운학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이놈 대체 뭐 하는 놈이야?’한기가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바로 다음 순간, 저승사자처럼 느껴지는 서강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말할 거야?”아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제발 살려주세요. 말하겠습니다, 말할게요...”“제우 그룹의 진기준 대표님이 시키신 일입니다. 제게 4억을 주겠으니 두 손을 자르라고 하셨습니다.”아귀는 겁이 났다.마음속에서부터 공포심이 차올랐다.“진기준?”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진기준이 꾸민 일이었군.’자초지종을 알게 된 서강빈은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아귀는 서강빈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숨을 헐떡거렸다.서강빈은 정말 너무 무시무시했다.“제기랄, 진기준 대표는 저 자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했는데. 왜 저렇게 강한 거야?”아귀는 욕지거리를 했다.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새 휴대전화를 꺼내 진기준에게 연락했다.“진 대표님,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일 저는 못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 찾지 마세요. 전 당분간 숨어 지낼 겁니다.”진기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귀는 전화를 끊었다.그러고는 사람을 불러 본인과 오운학을 병원에 데려가게 했다.이제 막 차에 탔던 진기준은 멍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다가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퍽.”그는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화를 냈다.“빌어먹을, 쓸모없긴. 이런 일도 처리 못 해?”똑똑똑.누군가가 도어를 두드렸다.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진기준은 창문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미
송해인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 그리고 또 다른 일은 없어?”“있어요.”이세영은 품 안에서 서류를 꺼내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건 공진 그룹과의 계약서예요. 그들은 이미 저희에게 3달 치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지금 주지 않는다면 우리 회사는 60억 가까이 손해를 볼 거예요.”송해인은 미간을 좁혔다.공진 그룹과의 협력 프로젝트 때문에 그녀는 석 달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그들은 밀린 비용을 지금까지 갚지 않았고 지금까지 모든 프로젝트 전부 비오 그룹에서 대신 지급했다.몇 번이나 비용을 지급하라고 재촉해 보았으나 그들은 매번 핑계를 댔다.송해인은 화가 났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공진 그룹은 대기업이고 송주의 일류 가문 공씨 가문의 회사였기 때문이다.공씨 가문의 어르신은 아주 무자비한 사람이었다.“방법을 생각해 그쪽 회사의 프로젝트 책임자와 약속을 잡아. 내가 직접 갈 거야.”송해인이 말했다.“알겠습니다.”이세영이 대답했다.“참, 대표님. 오늘 오후 6시 진 대표님이 데리러 올 거라고 했습니다.”이세영이 웃으며 말하자 송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어.”송해인은 보고를 몇 개 보았지만 자꾸만 정신이 딴 데 팔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빌어먹을 서강빈, 아직도 나한테 연락하지 않아?’결국 화가 난 송해인은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었다.그러나 연결음 소리가 두 번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제기랄, 감히 내 전화를 끊어?”송해인은 화가 나서 두 눈을 부릅떴다.그녀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이번에 서강빈은 전화를 끊지 않고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송 대표, 아침부터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서강빈, 내가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못 봤어? 내가 보낸 문자도 못 본 거야?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송해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전화 건너편의 서강빈은 아침 일찍부터 폐허가 된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단약은 서강빈이 예전에 미리 준비했었던 것이다.송해인이 아침에 바빠서 자신이 만든 아침을 먹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송해인은 가슴께를 움켜쥐고 두 손을 덜덜 떨면서 서랍을 열어 작은 병을 꺼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병뚜껑을 열었다.그러나 가슴이 너무 아팠던 탓에 그녀는 부주의로 병을 떨어뜨렸고, 그 바람에 약 십여 알이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송해인은 몸을 떨면서 쭈그리고 앉아 그중 한 알을 주워 삼켰다.서강빈은 뭔가 쏟아지는 소리와 잡음만 들려서 초조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으며 말했다.“해인아, 괜찮아? 어때?”한참 뒤에야 전화 건너편에서 송해인의 호흡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나 괜찮아...”서강빈은 그제야 안도했다.서강빈은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초조해하고 긴장해 했는지 모를 것이다.서강빈은 가게 앞에 멈춰 서서 침묵했고, 송해인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침묵했다.두 사람은 휴대전화를 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숨소리만 들었다.“그...”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뗐다.서강빈은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먼저 얘기해.”송해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당신, 조금 전에 날 해인이라고 불렀어...”서강빈은 멈칫했다. 그는 가게 앞에 서서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조금 전에는 너무 급해서 그랬나 봐, 미안해.”“아냐.”송해인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내며 웃었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송해인은 길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 뒤에야 말했다.“약 고마워.”“그래.”서강빈이 대답했다.“참,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송해인의 질문에 서강빈은 잠깐 고민하다가 덤덤히 말했다.“아무것도 아냐.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잠깐.”송해인은 며칠 동안 꾹 참고 있던 말이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몇
이세영이 황급히 대답했다.“대표님, 금오단에 관한 여론은 전부 잠재웠습니다. 대표님 뜻에 따라 서강빈이 인터넷에 올렸던 금오단 치료에 함께 쓰이는 침구술에 관한 글은 공식 지도 영상으로 제작되어 금오단과 함께 판매될 겁니다.”“그래.”송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들린 약병을 보고 있는 송해인은 정신이 딴 데 팔린 듯했다.이세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대표님... 무슨 생각 하세요?”“아, 아무것도 아니야.”송해인은 싱긋 웃으며 약병을 서랍 안에 넣었다.이세영이 떠보듯 물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 몸이 안 좋으신 거면 병원에 가볼까요? 아무 약이나 드시면 안 돼요.”난 괜찮아. 이건 예전에 서강빈이 날 위해 만들어준 약이야.”송해인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그 말을 들은 이세영은 미간을 좁히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서강빈 씨가 만든 약이라고요? 대표님, 그 약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되지 않으세요?”그 말에 송해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이 비서, 약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그걸 모르겠어?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나가 봐.”송해인은 조금 화가 났다.그녀는 이세영이 서강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서강빈을 헐뜯는 건 견딜 수 없었다.“...네.”이세영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티 내지 않고 몸을 돌려 사무실에서 나갔다.하지만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이세영의 안색이 삽시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유리창 넘어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송해인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의 약이라고?”이세영은 미간을 구기고 차갑게 코웃음 친 뒤 발을 구르고 떠났다.30분 뒤, 송해인은 사무실에서 나와 금오단과 관련된 미팅을 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했다. 이때 이세영이 서류를 들고 몰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빠르게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냈다. 그녀는 병 안에서 약 한 알을 꺼내 자세히 살피고 냄새까지 맡더니 혐오스러운 표
서강빈은 전화를 끊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 잿더미가 된 가게를 청소하기 시작했다.이때 그의 가게 앞에 벤츠 한 대가 멈춰 섰다.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구기며 그것을 바라봤다.차 안에서 4,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내렸다. 그는 흰색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서강빈에게로 달려가서 예를 갖추며 웃어 보였다.“서강빈 씨, 죄송합니다. 제게 친구가 한 명이 있는데 서강빈 씨께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심 회장님이셨군요. 직접 오신 건가요?”서강빈이 웃으며 말했다.심형운이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이라면 예사 인물이 아닐 것이다.“서강빈 씨, 이분은 송주 의사 협회의 김익준 교수님이십니다. 송주 한의학 대회 예선 심사위원장이에요.”심형운이 서둘러 소개했다.그의 옆에는 뒷짐을 진 노인이 서 있었다. 5, 60대로 보이는 그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송주 한의학 대회 예선 심사위원장? 거 참, 타이틀 한 번 거창하구만.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사람에게 옆에 있는 하도운의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눈짓했다심형운은 서둘러 김익준을 안내하며 웃었다.“김 교수님, 이분이 바로 제가 말씀드렸었던 서강빈 선생님이세요. 의술이 아주 뛰어납니다.”“그렇게 대단하다고요? 그러면 서강빈 선생님께서 절 좀 진찰해 주시죠.”김익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진맥해야 하나요?”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뇨. 한의학은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병을 볼 때 무조건 진맥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게다가 김 교수님께서는 병이 없으시네요.머리가 아픈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건 김 교수님께 사악한 기운이 붙었기 때문입니다.”그 말에 가게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사악한 기운이라니.’“그 말이 사실입니까?”김익준은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구겼다.서강빈은 덤덤히 웃으며 김익준이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의 펜던트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