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중영.날이 밝았다.엷은 안개가 천지 사이를 가득 메운 선녀의 망사 치마와 같다.아침 해가 떠오르자 아침 햇살이 옅은 안개를 뚫고 산꼭대기에 있는 이 도시를 비추었다.먼 곳의 고층 빌딩은 마치 구름 위에 서있는 것만 같다.어젯밤의 전투 흔적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었다.잔디밭조차 다시 정비되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진아름은 얇은 잠옷을 입고 창가에 서서 휴대폰을 꼭 쥐고 있다.그녀는 망설이고 고민하며 발버둥치다가 끝내 서현우의 번호를 눌렀다.“지금 거신 번호는 연결이 되지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어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지금 거신 번호는 연결이 되지않아...... .”“지금 거신 번호는...... .”“지금...... .”진아름은 서현우에게 전화를 수차례나 걸었다.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안내소리 뿐이어 가슴이 조여왔다.‘왜 전화 안 받아?’‘무슨 일 있는거 아니야?’‘다친거 아니야?’무력감이 온몸을 뒤덮었다.쏟아지는 아침 햇살에도 그녀는 따뜻함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그때 “쿵쾅-”하고 모터 소리가 울렸다.구불구불한 도로에서 여러 대의 비즈니스차가 천천히 달려왔다.그리고 차들은 별장 밖에 가지런히 세워졌다.차문이 열리자 국례사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진아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커튼을 치고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사모님, 안녕하세요. 휴식하는데 방해가 된건 아니죠?”국례사에서 온 책임자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진아름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책임자는 열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끌고 있는 봉황옷을 가리키며 웃으며 말했다.“괜찮으시다면 피팅 도와드릴게요.”진아름의 눈빛은 거의 모든 여자들이 오매불망으로 그리는 옷에 떨어졌다. 허나 옷의색상이 피와 같은 선홍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묘족 출신지.“내가 말한 모든 건 구구절절 사실입니다.”서현우는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히 말했다.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
서현우는 다소 어이가 없고 어쩔바를 몰랐다.예쁘게 생긴 여인이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른다니 자기주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그리고 서현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의치 않고 동심고로 서현우를 통제하려 한다.이 집안 사람들의 통제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현우 오빠, 입 벌려요.”윤하가 소리쳤다.서현우는 그녀의 손에 시커먼 알약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이거 뭐야?”“동심고 인데요.”윤하는 이어 설명했다.“동심고를 먹으면 우린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요. 저를 떠나려고 한다면 동심고가 오빠의 심장을 먹어버릴 거예요.”“....... .”서현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내가 지금 움직일 수 없어서 그렇지...... 아니면 파워 금강장이 뭔지 보여줄려고 했는데!’“현우 오빠 얼른 입 벌려요. ‘아’ 하세요.”서현우는 입을 꼭 다물었다.그러자 윤하는 직접 손을 써서 서현우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서현우는 부상이 너무 심해 힘이 전혀 없어 여린 소녀가 좌지우지하는 처참한 지경으로 전락했다.그러나 동심고는 맛이 꽤 괜찮았다. 조금 쓰긴 하지만 달콤함도 베어 있었다.사랑의 맛과 같다고 할까?서현우는 삼킬 필요도 없이 동심고를 싸고 있는 뭔가가 녹은 후 벌레 한 마리가 목구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가벼운 통증이 전해지자 서현우는 뭔가가 심장 근처로 달려가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곧이어 이 동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올 때의 길을 따라 억지로 서현우의 입에서 뚫고 나왔다.그것은 지렁이 같은 것인데 온몸이 분홍색이어서 보기에는 징그럽지 않았다.하지만 입에 넣으면 또 다른 느낌이다.“어?”다른 동심고를 먹으려던 윤하는 멍하니 분홍색 동심고를 집어 들고 서현우의 입에 다시 쑤셔 넣었다.서현우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녀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심고가 또 뛰쳐나왔다.윤하도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었는지 한참 동안 망연자실하며 물었다.“현우 오빠, 혹시 사랑하
만약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서현우는 남에게 함부로 침을 놓게 할수 없었을것이다.이건 소꿉장난이 아니라 사람 목숨에 관한 일이다.상대방이 사람을 해칠 마음이 있든 없든 침이 조금만 빗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윤화와의 이야기 속에서 서현우는 오늘이 벌써 10월4일 이라는 것을 알았다.내일 오후 12시 8분이면 국혼이 성행된다!진아름은 서현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천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서 부인이라는 명성을 붙이는 것이다.그리고 내일은 솔이의 여섯 번째 생일이다.만약 서현우가 제때에 달려가지 못한다면 진아름과 솔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뿐만아니라 더우기는 용국의 위엄을 땅에 떨어뜨려 국제적으로 열강의 눈에 웃음거리가 될것이다.다른 건 둘째 치고 단지 진아름과 솔이만으로도 목숨을 걸기엔 충분하다!“준비됐어?”서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윤하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준비됐어요!”서현우의 눈은 갑자기 번쩍이더니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3인치 은침으로 천무혈을 3분의 1 가량 찔러. ”윤하는 무거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3인치 은침을 골라 서현우의 천무혈을 행해 찔렀다.순간 서현우는 인후에서 부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정확하게 찔렀다!서현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5인치 은침으로 단중혈을 절반 가량 찔러.”윤하는 얼른 5인치 은침을 골라 서현우의 단중혈을 절반정도 찔렀다.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우 오빠, 어때요?”단중혈은 큰 혈이자 매우 중요한 혈자리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쉽다.보통 한의사들은 감히 여기에 침을 놓지 못한다.더구나 은침이 반정도 들어갔으니 윤하는 서현우의 상태가 걱정되기 마련이었다.그러자 서현우는 미소로 답했다.두 어르신의 집에는 약초 냄새가 진동을 했고 많은 고충들도 제멋대로 기어다니고 있다.이것은 그들이 묘족의 의사라는 것을 대표하며 또한 약초의 보존과 변별, 그리고 고충의 빛깔 정도로 볼 때 그들은 묘계 지역에
윤하는 걸상에 못이 박힌 것처럼 즉시 일어나 서현우의 몸에 있는 은침을 재빨리 뽑았다.침을 뽑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아 특수한 수법으로 빼내야 한다.윤하가 사용한 수법을 서현우는 본 적이 없지만 그가 알고 있는 방법과는 이곡동공이다.모든 은침을 다 뽑아내자 피처럼 붉어진 사현의 얼굴은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현우 오빠, 어때요?”윤하가 친절하게 물었다.서현우는 또다시 미소로 답했다.그는 이 단순한 여인의 맑은 눈동자에서 가장 순수한 것을 보았고 그녀의 눈빛에는 어떠한 불순물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마워, 윤하야.”서현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윤하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윤하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현우 오빠! 이제 움직일 수 있네요!”“그래, 움직일 수 있어. 근데 아직은 좀 조심해야 돼.”서현우가 말했다.“너무 잘 됐어요!”윤하는 완전히 안심하고 다시 앉아 놀라움을 전했다.“현우 오빠 대단하네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오빠는 겨우 목숨을 건졌고 오랫동안 누워있어야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어요. 근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윤하가 침을 잘 놔준 덕분이야. 아니면 회복하기는커녕 죽었을 지도 몰라.”서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독매미 등 7명의 군신급 강자와 생사를 넘나들며 싸울 때도 그는 이렇게 긴장한 적이 없었다.이건 순전히 자신의 목숨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었다.목숨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맡긴다는 것은 무섭고 고통스럽다.앞으로 이런 일은 궁지에 몰리지 않으면 정말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현우 오빠, 몸이 너무 더러운데 일어날 수 있어요? 윤하가 씻겨드릴게요.”윤하가 말했다.지금의 서현우는 온몸이 검은 피투성이였고 거북한 냄새도 풍겼다.요정처럼 아름다운 윤하와는 완전히 양극이었다.그러나 윤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으며 코를 막지도 않았다.그녀는 매우 진지하고 소박하여 이미 철저히 서현우를 그녀의 아랑으로 여겼다.“아니, 좀 더 누
10월 4일, 정오 무렵.서현우는 온몸에 경락이 뚫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그러나 침대에서 내려오려면 여전히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다.근데 서현우가 걱정하고 있는 건 이것이 아니다.그는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윤하를 잠시 방에서 떠나게 하고 은침을 들고 부상에 대한 회복과 치료를 시작했다.이른바 의난자구라는 것은 서현우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그가 윤하를 보낸 것도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 자구 방식이 귀의문의 전승과 관련되기 때문이다.문밖의 노부부는 여태껏 엿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서현우가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을 훔쳐보지도 았다.거의 한 시간이 걸려 서현우는 검은 피를 토해냈다.무거운 느낌은 사라지고 신선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격세지감만 느꼈다.윤하가 돌아오기 전에 서현우는 샤워하고 윤하가 일찌감치 준비한 묘계족 복식으로 갈아입었다.몸에 딱 맞았다.“현우 오빠, 식사하세요!”윤하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을 때 서현우는 이미 옷을 입고 창가에 서 있었다.서현우가 몸을 돌릴 때, 윤하는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고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조각같은 외모에 훤칠한 기럭지까지 옷을 입든 안 입든 서현우는 한결같이 매력적이었다.묘계족의 복식은 아주 잘 어울렸고 뭔가 말로 표현할 수없는 소탈한 느낌도 있었다.“윤하야, 고마워.”서현우는 활짝 웃으며 걸어왔다.그러자 윤하는 볼에 홍조를 띠며 서현우의 눈을 감히 보지 못했고 음식을 탁자 위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현우 오빠, 벌써 움직일 수 있어요?”“응, 오후에 가려고.”서현우는 이제 겨우 걸을 수 있을 뿐 부상은 여전히 심각하다.현재 행진 속도에 따르면 명용산맥으로 돌아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리고 그는 아직 자신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그러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서현우의 말을 듣고 윤하의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마치 어렸을 때 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묘계족이 아니에요.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서 들었는데아주 오래전에 묘계땅으로 와서 은거하고 있다고 그러셨어요.”“저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손녀 아니에요. 작은 나무 아래에서 저를 주으셨어요.”“나한테 친구들도 많은데..... .”가는 길내내 윤하는 재잘재잘 서현우에게 말을 하고 있다.그녀는 말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명용산맥에 도착하기 전에 행여나 말을 끝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고 더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서현우는 조용히 듣다가 가끔 두마디씩 대꾸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은 듣는 편이었다.그는 상처가 심해 걷는 사이에도 피가 났다. 특히 어깨에서 허리까지 칼에 맞은 부상은 서현우를 두 동강 낼 뻔했다.서현우는 걸음마도 느려서 자연히 말할 힘도 없었다.윤하는 서현우를 부축하고 그의 발걸음에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풀밭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돌다리를 건너고...... .걷는 내내 결코 수월하지 않앗다.독충과 맹수를 모두 만났는데 독충은 윤화가 처리하고 맹수는 서현우가 상대했다.부상이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어 사람과 싸우는 것은 다소 어렵지만 지능지수가 없는 짐승과 싸우는 것은 여전히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남산 십만 대산에서 그는 별의별 맹수를 다 보았었다. 그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 쫓아내거나 참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묘족을 만나기도 했지만 윤하가 있어 무사했다.어느새 날은 어두워졌다.광야에는 밤바람이 솔솔 불고 사방은 캄캄하여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멀리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윤하는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노부부에 의해 잘 보호되어 밤늦게까지 야외를 걷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서현우는 수원과 가까운 평온한 지대에서 멈춰 쉬려고 했다.그러자 윤하는 곧 마른 장작을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火불길이 타오르자 마른 장작이 “탁탁-” 소리를 냈다.서현우는 옷을 풀고 윤화는 그를
“너였어! 하하하.....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이런 행운이 다 있다니!”서현우를 보고 독매미도 흠칫 놀라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요 며칠 그는 줄곧 묘계의 땅을 떠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다만 그는 이곳에 대해서익숙하지 않아 암암리에 여러 묘계족 채약인을 체포하고서야 마침내 명용산맥을 찾았다.떠나기 전에 서현우를 우연히 만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독매미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하늘은 그가 직접 서현우과 같은 절세의 천재를 말살하도록 운명을 지어준갓이라고!“빨리 가!”서현우는 윤하를 뒤로 당겨 손목을 뒤집고 비수는 이미 손에 꼭 쥐어 공격 자세를 취했다.“현우 오빠...... .”윤하는 즉시 머리가 온통 백발이고 유독 푸른 실 한 가닥이 눈썹에서 떨어지는 이 아르신이 서현우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서현우의 부상을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다.서현우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독매미를 바라보며 담담한 살의가 몸에 배어 나왔다.“그래 네 말대로 우연이 맞네 행운이 맞네! 너희 모두 7명이었는데 너 하나만 남았지?혼자서 외롭지 않아? 널 그곳으로 보내줄게! 가서 단란하게 모여봐!”“하하하...... .”독매미는 미친 듯이 계속 웃었다.“서현우, 아직도 날 위협하는 거니? 숨결이 어지럽고 발밑이 허약하며 미간 사이에 옅은 푸른 기운이 있어 보이는데 너 부상이 매우 심각하지? 아직 회복도 되지 않았지?”그러나 서현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그럼, 어디 한번 덤벼 봐.독매미의 웃음은 사라지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그는 서현우를 매우 꺼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현우가 생색을 내는 건지 부상이 회복되었으나 아픈척을 하는건지 일부러 속임수를 쓰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순간 독매미는 경거망동하지 못했다.소위 병사는 사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이렇다.서현우의 눈빛은 고풍스럽지만 마음속으로는 초조함을 참을 수 없었다.교착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
“흥!”노씨 할아버지는 노호하며 손을 떨자 가루약이 서현우의 등 뒤에 뿌려졌고 흐르는 선혈은 재빨리 멈추었다.그리고 민씨 할머니는 알약 하나를 서현우의 입에 넣었고, 동시에 은침 두 개를 손목에 찔렀다.그러자 선혈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무서울 정도로 빨간 선혈이었다.서현우의 상황은 나아지고 있었다.“경맥을 억지로 역전시키고 저 사람과 같이 죽으려고 했다니! 너도 참 독하구나!”민씨 할머니가 꾸짖었다.서현우는 쓴웃음을 지엇다.“자식아, 네 목숨은 내가 구했는데 간다면 가고 버린다면 버려? 나한테 물어나 봤어?”노씨 할아버지는 서현우를 노려보았다.“가야만 하는 이유도 있고 싸워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부끄럽고 죄송합니다.”서현우는 침울하게 말했다.그러자 노씨 할아버지는 분개하여 소리쳤다.“단지 우리한테만 미안한 건 아니지? 네가 미안해야 하는 건 윤하야!”서현우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확실히 윤하한테 제일 미안해야 한다.만약 두 어르신이 제때에 오지 않았다면, 윤하는 위험했을 지도 모른다.그녀는 분명히 아픈 것을 질색하지만 서현우를 살리기 위해 고통을 감수했다.빚진 목숨과 정은 어떻게 갚아야 하는 걸까?“너 못가.”민씨 할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현우에게 말했다.“네 몸은 구멍이 난 대나무통과 같아. 반드시 잘 수양해야 해. 아니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몰라.”서현우는 고개를 저었다.“반드시 가야 합니다.”“목숨을 잃는데도?”“죽어도 가야 합니다.”서현우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독실함은 세 사람을 감동시켰다.“그럼, 꺼져! 어차피 목숨은 네 것이니 죽어도 싸!”노씨 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손을 흔들었다.서현우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절했다.절을 하자마자 등의 선혈이 또 침투하기 시작하여 옷자락에 모여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서현우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 듯 돌아섰다.“현우 오빠!”윤하는 얼른 앞으로 나가 서현우를 끌고 고개를 돌려 두 어르신에게 애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현우 오빠 좀 도와주세요!”“바
서현우와 진아람은 빛줄기가 되어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번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종적을 감췄다.다음 순간, 번산이 서현우의 머리로 돌아왔다.“무슨 일이 일어났어?”“내 여동생이 잡혔어.”“누구한테?”“몰라, 하지만 상대방이 단서를 남겼어...”반나절이 지난 후 번산이 갑자기 말했다.“이 방향은... 큰일이야, 수라곡이야!”“수라곡?”“그곳은 진정한 수라가 존재하는 곳이야, 수라 선조가 뼈를 묻은 땅이지!”“나는 수라 혈맥이고, 극락도 수라 혈맥인데, 설마 우리가 진정한 수라가 아닌 거야?”“우리 모두가 수라 선조의 혈맥을 전승하고 있잖아!”“설마 수라 선조가 죽지 않았단 말이야?”“죽었어, 하지만...”번산의 표정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면서 말했다.“알겠다. 너는 제물이야.”“제물?”서현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자신이 노복의 힘에 침식된 후에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생각했다.“네 여동생은 너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너는 지금 정말 가려는 거야?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죽어야 할 거야!”“당연히 네가 수라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여야 하지 않아?”“하지만 그건 수라 선조야... 수라 선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단을 남겼는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고사하고 역사상의 모든 수라를 포함해서 진짜 극락조차도, 수라곡에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현우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절망감이 생겨났다.‘설마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이야?’‘나영이나 내가 반드시 제물이 되야 하는 건가?’쾅!바로 그때, 멀리서 귀청이 터질 듯한 폭발 소리가 울렸다.하늘에는 핏빛 빛줄기가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끝없는 핏빛은 하늘을 찌를 듯한 거인의 모습을 구축했다.몹시 화가 난 듯이 손을 뻗어서 전방의 허공을 움켜쥐었다.그리고 그 방향에서 핏빛의 형상이 허공을 갈랐다.눈 깜짝할 사이에 서현우 등과는 이미 백 리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나영아!”핏빛의 형상이 혼수상태에 빠진 나영이를 바로 품에 안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야!”혈하신존의 부릅뜬 눈이 터질 듯했다.‘이렇게 많은 중견 역량들이 뜻밖에도 동시에 죽다니!’‘누가 이렇게 할 수 있어?’그리고 그 허황된 모습을 정확하게 보았을 때, 혈하신존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극락 선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극락 선조?”수많은 눈빛이 번산의 몸에 집중되었다.싸움도 멈추었다.몇 초가 지난 뒤...“극락 선조님을 뵙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노도 같은 기세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이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다!극락이라는 이름은 수만 년 동안 더없이 놀라운 이름으로, 전대미문의 인물이다!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극도 등 세 사람은 흥분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위풍당당하신 선조님이시여!”이미 혈하신존 앞에 나타난 번산이 입을 열었다.“혈하성궁은 제명됐어.”“아니야!”혈하신존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네가 극락 선조일 리가 없어! 어떻게 천지의 규칙을 피할 수 있어? 그럴 리 없어!”“중요하지 않아.”번산이 큰 손으로 잡았다.혈하신존은 피하려고 했지만, 온 천지가 억지로 벗겨져서 피할 공간이 전혀 없다는 걸 발견했다.“안 돼!”혈하신존은 다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극락 선조님,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람을 내놓겠습니다!”“너무 늦었어.”번산이 뻗었던 손을 꽉 쥐었다.피식...신의 경지 중기로 최강 전력으로 일컬어지던 혈하신존은 이렇게 허무하게 핏빛 안개로 사라졌다.모든 혈하성궁 소속 사람들은 멍하니 이 장면을 보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이 느꼈다.혈도는 그 자리에 선 채 벌벌 떨면서,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천수 랭킹 1위?’‘이런 강자 앞에서는 여전히 한낱 벌레와 다르지 않아!’“노부는 살육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 항복한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번산이 입을 열었다.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않았다.곧이어 혈하성궁 소속 무자들이 무릎을 꿇고 투항했다.남은 네 명의
“싸우면 싸우는 거야. 극락산은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데, 마침 이 기회를 틈타 일거에 극락산을 멸망시켜야겠어. 극락이 수만 년의 신화를 이어왔는데, 오늘 끝내는 거야!”“그래, 싸우자! 극락산을 멸망시키면 마침 자원을 좀 더 차지할 수 있어!”혈하성궁 소속 사람들은 분분히 전쟁 준비를 했다.경사스러운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멀찌감치 달아난 손님들은 긴장한 채 주목했다.‘이 싸움은 정말 시작될까?’‘극락산은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이야?’“왔다, 왔어! 극락산이 진짜 왔어!”“맙소사... 정말 전쟁 보루야! 극락산 저 자들이 혈하성궁과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게 분명해!”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전쟁을 목격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긴장과 격동 속에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존재한다.‘도대체 왜?’사람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그리고 이 스산한 긴장 속에서, 극락산의 전쟁 보루가 혈하성궁 밖에 도착했다.혈하성궁은 이미 방어진법으로 뒤덮여 있었다.혈하신존을 비롯한 혈하성궁의 고수들은 모두 대진 밖에 선 채 음산하고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극도! 오늘 네가 극락산에서 우리 혈하성궁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끝장을 보겠어. 나 혈하가 너희 극락산을 멸망시킬 것을 맹세하겠어!” 혈하신존이 크게 외쳤다.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설명? 무슨 설명을 해? 우리 극락산 직계 후손의 아내를 빼앗은 너희 혈하성궁에서 해명을 해야지!” 극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와...”떠들썩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모두가 경악했다.‘혈도의 신부가 뜻밖에도 극락산 직계 후계자의 아내야? 이건 너무 엄청난데?’“X자식! 극도 네가 감히 이렇게 우리 혈하성궁을 욕보이다니,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거야?”혈하신존은 크게 노했다.혈도의 안색도 아주 좋지 않았다.자신은 영문도 모른 채 남의 아내를 뺏은 간악한 도적이 된 것이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람을 내놓든지 전쟁을 시작하든지 결정해!”“그럼 싸우자! 혈
모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명령은 이미 하달되었으니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모두 돌아가서 전쟁 준비를 했다.극락산의 분위기는 금세 무거워졌다.그리고 극락산에서 영혼의 수정석을 고가로 사들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혈도의 혼례는 큰 행사다.56개 구역의 무수한 사람들이 이 성대한 혼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송진을 타고 왔다. 그 중에는 영혼의 수정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든 극락산에 아부하기 위해서든 영혼의 수정석을 잇달아 보냈다.하나씩 잇달아 들어왔다.날이 밝기 전까지 모두 800여 개의 영혼의 수정석을 수집했다.성과는 만족스러웠다.물론 극락산에서 지불한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앞으로 5년간의 자원을 모두 썼다고 할 수 있다.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극락산은 무너질 것이다.그러나 극도 등 세 신존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신의 경지 후기인 극락 선조님이 계셔.’‘모든 노력은 가치가 있어.’이 영혼의 수정석이라면 번산이 4, 5 번 손을 쓰기에 충분했다.신의 경지에 이르면, 전기 경지의 10명이 반드시 중기 경지의 한 명을 이길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중기 경지 10명이 후기 경지의 한 명을 이길수 있는 것도 아니다.‘혈하성궁이 아무리 강해도, 신의 경지 후기 한 명과 중기 3사람을 동시에 대처할 수는 없어!’‘이 실력이면 모든 걸 깔아뭉갤 수 있어!’해가 떴다.극락산에 모든 사람이 모이자 스산한 기운이 가득했다.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향해서 극도가 손을 휘저었다.“오늘 이후, 더 이상 혈하성궁은 없다! 우리 극락산이 수라계 1위가 되는 거야! 극락 선조님의 눈부신 무적의 영광을 이어가자!”“무적! 무적!”많은 사람들이 분분히 맞장구를 쳤다.비록 이 늙은이가 술을 마시고 정신이 나갔는지 뭘 잘못 먹고 갑자기 이렇게 자신감이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이미 극락산과 생사를 같이 하는 처지이기에 전혀 관여
세 사람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그리고 급히 대전 뒤쪽의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그림을 보았다.그림 속에는 천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독보적인 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 극... 극락 선조님?”세 사람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자신에게 환각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그게 어떻게 가능해?’‘극락 선조는 수만 년의 인물이야.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규칙의 제한을 벗어날 수는 없어. 절대 지금까지 살 수 없어!’“노부는 바로 극락이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체로 존재하지. 시간의 규칙이 없는 곳에서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이 아이에 의해 깨어나게 되었다.”위엄 있게 입을 연 번산의 모습은 완전히 극락과 똑같았다.그 자체가 극락의 악념의 화신이니, 이 세상에 번산보다 극락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극락 선조님을 뵙습니다!”삼대 신존이 잇달아 무릎을 꿇었다.“너희들이 아직도 나를 조상으로 여기는 거야?”“선조님,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저희 못난 후손들 어떤 점 때문에 선조님께서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세 사람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물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또 미친 듯이 기뻐했다.‘극락 선조님이 여전히 계신다면, 육신이 없더라도 신의 경지 후기인 영혼체는 현재 수라계의 모든 신의 경지 강자들을 쉽게 이길 수 있어.’‘혈하성궁은 개뿔!’‘극락산이 당연히 1위야!’“예전에 노부는 천하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천하무적이었어. 너희 못난 후손들은 오히려 극락산을 이렇게 쇠락한 모습으로 만들었고, 혈하성궁을 두려워하고 있지. 노부가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어?”“선조님, 노여움을 푸세요!” 세 사람은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자신들은 억울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필경 예전의 극락 선조는 정말 무적의 존재였다.한 시대를 짓눌러 버린 것이다그러나 후손들은 극락 선조의 휘황찬란했던 업적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이 아이는 우리 극락산 사람이야. 이 아이의 아내 역시 우리 극락
계속해서 전송진을 통과하면서 반나절도 안 돼 수라계의 핵심 구역인 수라역에 도착했다.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핏빛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하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번화한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어떤 도시에도 큰 짐승이 대지 위에 포복하는 것과 같다. 왕래하는 무자는 가장 약한 자도 모두 생사경의 경지였다.생사경 이하의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서현우는 깊은 시름에 빠진 채 극무 등을 따라 극락산으로 돌아왔다.극락산은 하나의 산맥으로, 주위의 네 개의 약간 낮은 산봉우리가 중간에 있는 아주 높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네 개의 낮은 산은 극락산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제자, 내외문 제자들, 고위 지도층과 장로들, 그리고 극락산과 관계가 있거나 종속된 크고 작은 가문의 거주지이다.중간의 아주 높은 산봉우리는 직계 후계자만 거주할 수 있다.극락노조의 혈맥을 품고 있는 적통만 극락산에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극락산에 올라갈 수는 있지만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서현우의 출현은 극락산을 들끓게 했다.거의 모든 직계 자제들이 서현우를 보러 달려왔고, 궁금해하거나 불만을 내비치면서 서현우와 겨루면서 실력을 한 번 보고 싶어했다.특히 극상 등이 서현우에게 한 수만에 졌다는 소식을 듣자, 손이 근질거리면서 서현우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넘치게 되었다.그러나 극무는 서현우를 데리고 다른 두 신급 강자들을 만나러 갔다.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은 극도라고 하고, 또 체구가 크고 우람한 남자는, 극전이라고 한다.서현우를 훑어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극락노조의 혈맥은 밖에서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는데, 네가 혈맥을 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앞으로 극락산에서 편히 살면서 잘 수련하도록 해라.” 두 사람은 서현우에게 매우 친절했다.아무래도 직계 혈맥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서현우는 예를 갖추면서 물었다.“감히 두 신존에게 여쭙겠습니다. 혈도가 곧 결혼할 상대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극무는 갑자기 흥미를 느꼈
“일이 좀 늦어졌어요. 수확은 그런대로 괜찮았어요.”서현우가 얼버무리며 말했다.“그럼 됐어요.”홍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곧 나갈 거예요. 준비하세요.”서현우도 알았다고 말했다.홍세령이 말한 준비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지금은 갱도 세계의 통로가 닫히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다. 만약 나가는 시간이 지체되어 이 안에서 말살된다면 너무 가치가 없는 일이다.하지만, 나간 뒤에는 확실하지가 않았다.아주 혼란스러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예로부터 이처럼 재물 때문에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윙...곧 문이 열렸다.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무자들이 몰려나왔다.서현우가 뒤를 돌아보니 빛줄기들이 잇달아 스쳐 지나갔다.그것은 신급의 강자들이다.그들의 눈빛에서 분노와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드러났다.11층과 12층을 왔다갔다하면서 찾았다.거의 물샐틈없는 수색이었다.그러나 결국 만령광모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어떻게 그들이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서현우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았다.‘만령광모가 내게 있다는 이 비밀을 끝까지 지켜야 해.’이번 갱도 세계로의 여정에서 최대 승자가 된 서현우가 환고광맥의 중심부로 돌아왔다.짧은 침묵 끝에 싸움이 시작되었다.신급의 강자들은 이에 대해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최고 세력의 대열에서도 감히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주화입마된 자들이 예외적으로 이들을 건드렸지만, 모두 빨리 죽게 되었다.모두들 공중으로 솟아올라서 전쟁처럼 미친 듯이 싸우는 지면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가자, 이제 떠나야지.”극무가 담담하게 말했다.홍세령은 서현우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시간이 있으면 다시 함께 탐험하도록 해요.”“그래요.” 서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지내세요.”“잘 지내세요, 아마도 곧 극락산에 갈 거예요.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안녕히 계세요.”서현우를 보고 또 홍세령을 보
“무슨 뜻이야?” 서현우의 안색이 변했다.“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번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육신이 없어. 일단 손을 써서 공간의 장벽을 열면 령혼체는 순식간에 공간의 역량에 의해 없어지게 돼.”“나한테 빙의하면 안 돼? 그때 극무를 속인 것처럼?” 서현우가 다급하게 말했다.번산이 말했다.“그때는 내 영혼의 힘이 약해서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안 돼. 너의 육신의 강도가 이미 내 영혼의 부착을 지탱하기에 부족해.”서현우의 얼굴은 더없이 일그러졌다.“설마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이야?”“내가 한 신급의 강자에게 공간의 장벽을 열도록 강요할 수는 있어. 그러나 지구의 좌표를 확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그 신급 강자가 너에게 열어준 것이 바로 지구의 공간 장벽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어. 만약 어떤 험악한 곳으로 전송되면, 다시 지구의 좌표점을 찾는 것이 더없이 어려워질 거야.”‘사실 번산은 아주 보수적으로 말한 거야.’‘완전히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면, 지구의 좌표를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게다가 그곳에 신급의 강자가 있는지, 수라계의 공간 장벽을 다시 뚫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아.’‘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억지로 강행한다면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하는 거야.’“방법이 또 있어?” 침묵하던 서현우가 물었다.“그리고.”번산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강제로 내가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깨달음을 너에게 주입할 수 있지만, 반드시 네가 나의 깨달음을 복제해서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야. 너는 사람마다 길이 다르고 깨달음이 다르며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는 방향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게다가, 너의 바탕과 축적된 실력은 신급 경지와 비교해서, 아직 일정한 차이가 있어. 일단 실패하면, 결과는 네가 잘 알 거야.”서현우는 이를 악물었다.비록 가슴이 설렜지만,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나도 내 영혼의 힘을 없애
만령에게 감격한 번산이 웃었다.“고마워, 만령.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오래 걸려야 이 정도로 회복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아빠 말을 들은 거예요.” 서현우의 곁으로 달려간 만령은 한 손을 안고서 의지하는 표정을 지었다.서현우는 만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이 새로 얻은 딸에 대해서도 보호의 정이 더 많아졌다.번산은 활짝 웃으면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얼마나 남았어?” 서현우가 번산에게 물었다.번산과 공생 계약이 있기에 서현우도 번산의 영혼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 사실에 서현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영혼의 수정석은 아주 드물고 얻기 어려워. 정말 밖에서 찾는다면 수라계 전체를 다 찾아도 천 개를 찾을 수 없을 거야.’‘이렇게 많은 양으로도 번산의 영혼체를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했으니 정말 엄청난 거야.’‘그리고 신경 후기인 강자의 영혼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어.’“지금 내 실력은 신의 경지에 막 들어갔다고 할 수 있어. 2천 개만 더 있으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아.”번산이 기대하는 말투로 말했다.서현우는 혀를 내둘렀다.‘말은 편하게 하네.’‘만약 만령이라는 만령광모의 존재가 없었다면, 번산은 평생 영혼체를 복구할 수 없었을 거야.’“완전히 복구되면 신의 경지 후기에 도달할 수 있어?”서현우가 물었다.“그래.”번산은 아주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러나 내가 손을 대면 영혼의 힘을 소모하게 돼. 영혼의 수정석만 이를 보충할 수 있어.”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음을 표시했다.‘육신을 가지고 있는 무자는, 흡수하는 것이 정기든 혈악의 힘이든 모두 천지 사이에서 보충할 수 있어.’‘육신이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지.‘그러나 번산은 영혼체야. 그에게 가장 적합한 악의 몸은 이미 부패하고 소멸되었어. 이 세상에는 아마도 누구의 몸도 지금의 번산을 수용할 수 없을 거야.’‘번산은 영혼체의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야.’‘육신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