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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손화영은 두 사람이 성인의 행위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기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캐리어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

박연준이 온다는 민영빈의 말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빨리 오진 않겠지?

빨리 내려가면 그와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손화영은 망설였지만 곧바로 캐리어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연준과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 서 있는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장자리에 기대어 희미한 불빛에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채 손에는 희미한 담뱃불이 빛을 내고 있었다.

손화영의 발걸음이 무의식적으로 멈춰 섰다.

미간을 찌푸리며 박연준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른 길이 없어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쫓겨났어?”

박연준이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잘생긴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손화영은 그를 피하려고 옆으로 돌아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박연준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손화영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그쪽으로 가서 그녀의 길을 단단히 막았다.

“박연준 씨, 비켜요!”

살짝 화가 난 손화영은 뺨이 다소 붉어져 있었다.

“돌아가든지 나랑 같이 집에 가든지.”

박연준이 말했다.

“지금쯤이면 저 위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가서 확인해 볼래?”

손화영은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았기에 박연준의 말을 듣고 피가 쏠린 듯 얼굴이 붉어졌다.

조금 전 그녀가 내려오기도 전에 민영빈은 그녀 앞에서 대놓고 심나정을 만졌다.

심나정이 털털한 성격이라 뭐든 얘기해서 민영빈의 물건이 아주 크고 밤일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손화영은 자신이 제때 나오지 않았으면 민영빈이 정말로 그녀 앞에서 그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였다.

심나정을 통해 민영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손화영은 민영빈이 심나정 앞에서 다른 여자와 그 짓거리를 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생각에 손화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심나정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게 싫었다.

하지만 심나정과 민영빈 사이의 일은 그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 번은 박연준이 아직 그녀에게 잘해줄 때 박연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박연준은 자신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영빈과 심나정 사이에 일어난 일은 두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해, 정말 올라가서 보고 싶은 거야?”

박연준은 바닥에 담배꽁초를 던져 발끝으로 가볍게 비벼 끄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하얗고 붉은 얼굴에 향했고 그녀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박연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민영빈 이 자식이 진짜 다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망할 놈이 정말 못하는 짓이 없네, 뻔뻔한 자식!

박연준은 눈가에 살짝 분노가 담겼지만 내색하지 않고 입꼬리만 올리며 말했다.

“올라가서 같이 놀까?”

“박연준 씨, 미쳤어요?”

손화영은 다소 화가 났다.

“그렇게 좋으면 집에 가서 나랑 놀아.”

이어 박연준은 아무 말 없이 손화영의 캐리어를 집어 들고는 그대로 차에 실었다.

손화영이 다급하게 쫓아가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물건 돌려줘요. 이혼한다고 했잖아요. 같이 살 수 없어요!”

그녀가 캐리어를 잡으려 했지만 박연준은 트렁크를 닫아버렸다.

“차에 타!”

그는 차 문을 열고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손화영은 그 눈빛에 머리가 쭈뼛 서며 이를 악물고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박연준은 그녀에게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명령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아서 차에 탈래, 아님 내가 안아서 태울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손화영은 한다면 하는 박연준의 성격을 알았기에 곧장 걸어가 차에 타고는 문을 세게 쾅 닫았다.

박연준은 만족한 듯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손화영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돌린 채 박연준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박연준은 운전하면서 이따금 손화영을 돌아보며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손화영, 이제 그만해. 심술 조금 부리는 건 귀엽게 봐줘도 계속 그러면 재미없어. 정말 내가 동생이랑 아버지한테 손 떼길 바라? 이젠 그 사람들 걱정 안 해? 억지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 그렇게 멋대로 구는 사람 아니잖아, 너?”

고개를 돌려 다소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던 손화영은 우습기까지 했다.

억지를 부린다고? 대체 언제?

동생과 아버지한테 손 뗀다고?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지, 진작부터 신경 쓰지 않았으면서?

손화영은 반박할 힘조차 없었고 사랑하지 않으면 죽어도 장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박연준은 정말로 그녀가 장난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박연준을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 바라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오랜 침묵이 흐르고 박연준은 짜증이 났는지 눈가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을 해요?”

손화영은 고개를 돌리며 박연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빌기라도 할까요, 내 동생 병 치료해 주고 아버지 도와달라고?”

“손화영!”

박연준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차를 길가에 멈춰 세우고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전에는 안 그랬잖아!”

박연준을 똑바로 바라보는 손화영의 검고 아름다운 눈동자와 새하얀 얼굴에는 담담함 외에 다른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놀랍도록 평온한 그녀의 모습에 박연준도 한결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그만해, 굳이 설명을 원하는 거면 해줄게. 나랑 임청아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래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손화영이 가볍게 말했다.

“설사 뭔가 있다 해도 상관없어요.”

“손화영.”

박연준은 미간을 깊게 찡그렸고 거의 동시에 박연준의 휴대폰에 불이 켜지고 벨이 울렸다.

손화영의 시선이 전화기로 향했다.

“임청아 씨 전화네요.”

박연준이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무섭도록 빠르게 다시 걸려 오는 전화에 결국 얼굴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받았다.

조수석에 차분히 앉아 있던 손화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임청아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어렴풋이 임청아가 그에게 이리 와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연준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몇 마디 다독이고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나 지금 바쁘니까 일단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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