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성은 손화영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고 그는 다소 의외라는 눈빛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그가 봤던 손화영은 이렇게 성깔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전에도 손화영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화영에게 뭐라고 해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형의 친구라 그런지 잘 보이기 바빴다.그런데 오늘은 손화영이 좀 달라 보였고 게다가 성격까지 있어 보였다.“화약이라도 먹었어요?”도지성은 얼굴을 찡그렸다.“대포알 먹었어요.” 손화영이 눈을 흘겼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박연준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고 그는 손화영을 노려보고 있었다.미간을 찌푸린 걸로 보아 그도 손화영이 이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변한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가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연준 씨, 한마디도 안 할 거야?” 임청아가 옆에서 여우 같은 말투로 말하자 박연준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손화영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누가 여기서 일하라고 했어?”할 일을 마친 손화영이 살짝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제가요.”“화영 씨, 연준 씨도 걱정해서 그러는 거예요. 아까 지성이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여기서 일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임청아는 박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박연준 아내가 여기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정말 비웃을 거예요!”손화영은 임청아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면 그쪽이 박연준 씨 아내 하세요. 전 안 해도 돼요.”그렇게 말한 뒤 손화영은 곧바로 뒤돌아 자리를 떠났고 당황한 임청아는 박연준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연준 씨, 내가 무슨 말실수 했어? 왜 화영 씨가 화난 것 같지? 난 연준 씨를 위해서 그런 거야. 지성이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박연준이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봤다.“내가 창피한지 아닌지 왜 네가 결정해?”“연준 씨...”임청아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내 아내가 뭘 하든 네가 말할 건 아니지.”“내 아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이 말할 차례가 아니잖아
“분명 손화영이 이혼 안 하겠다고 하는 거야.”“그럴 리가, 나 아직 이혼 안 했는데.”임청아는 고개를 숙였다.“연준 씨도 나 때문에 이혼 안 할 거야. 요즘 화영 씨한테 잘해주던데.”“잘해주긴 뭘, 하나도 그런 것 없어. 내가 형을 알아. 형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나야.”임청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도지성을 바라보았다.“그래? 근데 화영 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연준 씨가 괴롭지 않을까?”“맞아, 난 우리 형 괴롭게 두지 않아. 내가 손화영 찾아가서 얘기할 거야. 손화영 참 뻔뻔해, 죽기 살기로 형한테 매달리네.”도지성의 얼굴에는 증오의 표정이 가득했다.동시에 손화영은 박연준에 의해 구석에 가로막혔다.“비켜요, 나 일해야 해요.”손화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박연준에게 단단히 막혔다.“누가 여기서 일하라고 했어?” 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돈이 부족해?”“저는 박연준 씨만큼 능력도 없고 가난해서 돈을 벌어야 해요!” 손화영의 검은 눈동자는 차분했다.“내가 언제 돈 안 준 적 있어, 굶긴 적이라도 있어?”박연준은 서슬 퍼런 얼굴로 손화영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한 손으로 손화영의 손목을 꽉 쥐었다.대체 자신이 못 해준 게 뭐라고 이런 곳에 나와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냥 얌전히 사모님 자리 누리면 안 되는 건가?“박씨 가문에 돈이 부족하기라도 해? 손화영,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언제 안 준 적 있어?”손화영은 박연준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언제 안 줬냐고?대체 언제 줬냐고 묻고 싶었다.아버지 구해달라고, 동생 좀 도와달라고 애걸복걸 그에게 부탁해도 언제 제대로 도와준 적이 있었나?매번 질질 끌기만 했지.이제 그녀가 부탁하지 않으니 이번엔 이런 걸로 위협하기 시작한다.마치 그녀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게 군다는 듯이.손화영은 이 상황이 우스웠다. 그녀가 그리도 비열한 사람인가?그래, 그렇게 못난 사람이라고 하자. 줄곧 그에게 매달리면
“손화영 씨, 또 뭐 하는 거예요!”오연희가 소리를 지르자 손화영은 깜짝 놀랐고 박연준도 순간 멈칫했다.박연준이 한눈판 사이 손화영은 재빨리 박연준에게서 멀어지면서 오연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손화영 씨, 또 남자 꼬시고 있어요?”오연희는 살짝 짜증 섞인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아니요.” 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명했다.“저분께서 사람 잘못 보신 거예요.”“정말요?” 오연희는 다소 의심을 품은 눈빛으로 박연준을 다시 쳐다보았다.그녀는 당연히 박연준을 알고 있었다. 부승그룹 대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다.TV나 경제잡지에도 자주 등장했고 그에 대한 소문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다크 나이트 쪽에서도 박연준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박연준이 매번 등장할 때마다 아무리 대단한 집 도련님이라도 그에게 공손하게 예의를 갖췄으니까.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었다.오연희는 손화영이 박연준 같은 사람을 꼬실 능력이 없는 것 같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어쨌든 너무 쉽게 흔들리는 남자들도 있었으니까.“손화영 씨, 오늘 겨우 첫날이고 내가 한 말 귓등으로 듣지 마요. 다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요. 저런 사람들이 우릴 만나준다고 해도 사모님이 될 수 없어요. 우린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요.”오연희는 거듭 손화영을 훑어보았다.희고 탄력 있는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났다.이런 얼굴을 가지고 돈 많은 사람 하나 못 꼬시겠나.“네, 알아요.”손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전 결혼했고 결혼에 이혼까지 한 돌싱녀를 누가 눈여겨보겠어요. 보통 사람들도 꺼리는데 저렇게 대단하신 분들은 더 그렇죠.”“알면 됐어요!”오연희는 손화영의 말에 만족스러워하며 덧붙였다.“아까 그 사람 모를 수도 있으니까 알려주는데 조심해요.”“네.”“박연준이라는 사람인데 운성에서 손바닥으로 하늘도 가릴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대 저 사람에게 밉보이면 안 돼요! 그리고 꼬실 생각도 마요. 아까 그쪽이
“손화영 씨, 그래도 제때 응급조치를 해서 동생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병원비는 언제쯤 납부할 생각이죠? 벌써 한참이나 밀렸는데 더 내지 않으면 동생분 약도 중단될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약까지 중단하면 언제든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 수술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에요.”손화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쁘게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최선을 다해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선생님, 최대한 빨리 납부할 테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 끌어주세요.”단승철은 동정 어린 눈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에 옷과 장신구도 화려하고 값비싼 것들로 가득해 재벌가 사모님처럼 보이는데 동생의 병원비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이라니.“이미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고 있지만 약값뿐만 아니라 수술비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알다시피... 기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알아요.” 손화영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녀는 누구보다 초조해하고 있었다.“손화영 씨, 정말 안 되면 박 대표님한테 가서 빌어요. 그래도 부부인데 죽는 걸 뻔히 보고 있지만 않겠죠.”단승철은 손화영을 힐끗 쳐다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한 달여 전, 박연준은 갑자기 손화영 남동생의 병원비를 끊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의 의료진까지 철수시켰다.그리고 며칠 전에는 손씨 집안에 큰일이 생겨 손화영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피소됐고 손화영의 남동생은 그 일로 누군가와 갈등을 빚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단승철은 손화영이 대체 남편에게 뭘 잘못했길래 그가 이토록 매정하게 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비밀 결혼이라고 해도 부부 싸움은 말로 잘 달래면 될 것 같았다.강성 최고의 부호이자 부승그룹 대표인 그의 손 틈에서 흘러나온 돈으로도 남동생 병을 치료하기엔 충분했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손화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돈 가져올게요.”그녀와 박연준 사이가 말 몇 마디로 풀릴 거였으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다.박연준.
이틀 후, 손화영은 두 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박연준을 드디어 만났다.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멋있었다. 잘생긴 외모는 연예계에 내놔도 손꼽히는 미남일 것이다.잘 재단된 수트가 그의 완벽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그가 문에 들어섰을 때 손화영은 소파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박연준에 대한 온갖 가십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박연준에 관한 소식은 언제나 연예인 스캔들보다 더 많았다.TV 속 뉴스를 훑어보던 박연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이걸 왜 보는 거야? 나 배고픈데, 오늘 저녁은 뭐 먹어?”손화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난 이미 밥 먹었어요. 먹고 싶으면 아주머니한테 해달라고 해요.”“면이나 한 그릇 삶아줘.”박연준은 잘생긴 눈썹을 다시 한번 찡그리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아주머니, 이 사람 면 먹고 싶다는데 한 그릇 만들어 주세요.”손화영은 무심하게 외치더니 박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다 먹고 얘기 좀 해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박연준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손화영의 불쾌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아무리 속상하거나 화가 나 있어도 그가 돌아오자마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한마디만 하면 서둘러 달려가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가끔 쉬지 않고 쫑알거리다가 그가 짜증을 내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렇게 차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평온함이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다.굳이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직 따지지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등을 돌린다고?손화영을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5년 동안 아내로 곁에 두면서 그녀의 몸은 만족스러웠다. 잠자리도 잘 맞았기에 그녀를 계속 옆에 두면서 자신도 그녀에게 섭섭지 않게 해준다고 생각했다.윤미숙은 재빨리 국수를 만들었다.늘 솜씨가 좋은 윤미숙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분명히 배가 고팠던 박연준은 몇 입 먹고 나서 입맛이 사라졌다.예전처럼 기대에 찬
박연준은 서재에 들어간 지 20분 만에 저택을 떠났다.손화영은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창밖으로 슬프게 바라봤을 텐데 이번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선을 내린 채 계속해서 짐을 챙겼다.그녀의 캐리어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물건을 담기에 충분했다.손화영은 옷장에 있는 옷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그의 아내가 입어야 할 옷이었다. 박연준과 결혼한 이후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연준의 취향대로 차려입었고 대부분 옷도 박연준이 직접 고른 것이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끔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으면 박연준은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 대신 그의 아내로서 입어야 할 옷만 입었다.손화영은 그 옷들은 하나도 챙기지 않고 보석 캐비닛을 열어 결혼반지만 남겨둔 채 남은 보석은 전부 가져갔다.멀쩡한 보석을 왜 안 가져가겠나.어차피 이혼해도 박연준이 그녀에게 재산을 분할해줄 일은 없겠지만 보석은 여자 측 개인 재산이었다.전에는 멍청하게 철저히 구분하며 그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마치 그의 돈을 쓰는 것이 그녀에 대한 사랑을 더럽히기라도 하듯.그래서 그녀는 가진 돈이 없었다. 그의 아내로 있는 동안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결혼생활을 잘 이어 나갈 생각뿐이었고 그를 위해 가정부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자처하면서도 그걸 행복으로 여겼다.시선은 언제나 그에게 향하며 그를 위해 그날 입을 옷을 준비하는 걸로도 하루 종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줄곧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한테 일이 생기고 동생이 아프면서 그가 주치의를 돌려보내고 병원비 납부 고지서가 한 장씩 날아오면서 그제야 벼락을 맞은 듯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돈만 있으면 아버지가 누명 쓴 증거를 찾을 수 있었고 아버지를 위해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으며 동생의 병도 치료할 수 있었다.손화영은 짐 정리를 마친 뒤 이혼서류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미련
박연준은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손화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못 알아봐도 손화영이 자기 옆을 그냥 지나칠 줄은 몰랐다. 한눈에 알아봤을 텐데 손화영은 못 본 척 무시해 버렸다.“손화영!”그는 소리치듯 불렀다.“날 못 본 척하는 거야?”손화영은 이미 그를 지나쳤고 박연준의 외침에 비로소 발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이 휠체어에 앉은 임청아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와 제법 닮아 있었다. 특히 눈썹 위쪽에 있는 작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이번에는 임청아가 입고 있는 드레스로 시선을 옮겼다.눈가엔 조롱 섞인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가슴에는 짙은 아픔이 밀려왔다.박연준은 그녀에게 똑같은 치마를 선물했었다...그가 왜 자신의 옷차림을 그토록 싫어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렇게 입으면 임청아 같지 않으니까.“날 만나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요.”손화영은 시선을 들어 박연준을 바라보았다.“원래 남자들은 아내와 내연녀가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요?”“손화영 씨, 오해에요...”휠체어에 앉은 임청아는 여린 순백의 꽃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쪽한테 한 말 아니에요.”손화영은 임청아의 말을 단호하게 끊고 덤덤한 눈빛으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집에 안 갔나 보네요.”박연준은 손화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그녀가 변했는데 어디가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더 이상 예전처럼 조심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시가 돋쳐 있었다.그 가시가 소나기처럼 박연준의 가슴에 박히며 불쾌하게 만들었다.박연준은 어제부터 줄곧 손화영의 기분이 풀리지 않았고, 어쩌면 어젯밤 임청아의 전화를 받고 말도 없이 급하게 떠난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아내로서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손화영, 난 지금 너 떼쓰는 거 받아줄 시간 없으니까 마음 좀 추슬러.”박연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혼자 진정해.”손화영은 다소 조롱 섞인
“신경 쓰지 마! 자길 먹여 살릴 능력도 없을 텐데. 심나정도 본인 먹고살기 바쁠 텐데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박연준의 눈동자는 옅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는 그의 모습에 진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사모님 쪽은 내버려둘까요?”“신경 쓰지 마, 어차피 돌아와서 애원하게 될 테니까!”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의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도착했어?”“다 왔습니다. 이제 회의실로 가셔도 돼요!”회의실에 들어선 박연준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온몸에 분노를 가득 뿜어내며 회의에 임했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떨면서 더듬거리며 업무 보고를 마쳤다.오늘 누구 하나 죽일 기세인 대표님의 모습에 다들 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썼다....“정말 결정했어?”카페에서 손화영을 바라보던 심나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물었다.“응, 이미 결정했어...”손화영이 피식 웃었다.“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위해 더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난 대역일 뿐이잖아. 이제 나한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우영이의 건강 상태와 아버지 문제야.”그 두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박연준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동안 아내로 지내면서 그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내가 말했잖아, 박연준 개자식은 좋은 놈이 아니라고!”심나정은 욕설을 퍼붓더니 안쓰러운 듯 손화영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안아주려 했다.“착하지, 괜찮아. 아직 내가 있잖아. 동생은 돈이 얼마나 필요해? 내가 알아볼게!”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도 돈이 없는 거 알아. 이미 생각 중이야.”심나정 역시 연예계에 진출했지만 아직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상태라 수입이 많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런 아버지까지 있으니 손화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이미 너무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