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마! 자길 먹여 살릴 능력도 없을 텐데. 심나정도 본인 먹고살기 바쁠 텐데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박연준의 눈동자는 옅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는 그의 모습에 진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사모님 쪽은 내버려둘까요?”“신경 쓰지 마, 어차피 돌아와서 애원하게 될 테니까!”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의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도착했어?”“다 왔습니다. 이제 회의실로 가셔도 돼요!”회의실에 들어선 박연준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온몸에 분노를 가득 뿜어내며 회의에 임했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떨면서 더듬거리며 업무 보고를 마쳤다.오늘 누구 하나 죽일 기세인 대표님의 모습에 다들 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썼다....“정말 결정했어?”카페에서 손화영을 바라보던 심나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물었다.“응, 이미 결정했어...”손화영이 피식 웃었다.“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위해 더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난 대역일 뿐이잖아. 이제 나한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우영이의 건강 상태와 아버지 문제야.”그 두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박연준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동안 아내로 지내면서 그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내가 말했잖아, 박연준 개자식은 좋은 놈이 아니라고!”심나정은 욕설을 퍼붓더니 안쓰러운 듯 손화영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안아주려 했다.“착하지, 괜찮아. 아직 내가 있잖아. 동생은 돈이 얼마나 필요해? 내가 알아볼게!”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도 돈이 없는 거 알아. 이미 생각 중이야.”심나정 역시 연예계에 진출했지만 아직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상태라 수입이 많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런 아버지까지 있으니 손화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이미 너무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녀
“오빠?” 손화영은 그렇게 한참을 꽉 안겨 있었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눈을 마주하자 두 사람 다 눈에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살펴보다가 손을 들어 남자의 눈가를 어루만졌다.코끝이 시큰거리고 심장마저 떨렸다.그가 맞다, 오빠였다!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년 동안 그를 찾아 헤맸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의 행방에 대해 알아봤지만 전혀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이 순간,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고 믿기지 않았다.“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니지?”손화영은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했지만 그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며 이렇게 눈앞에 서 있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전보다 훨씬 키가 크고 성숙해졌고 잘생긴 얼굴에 소년 같은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그대로였다.“나야!”눈앞의 남자는 그녀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에 정장을 입고 있었고 훤칠한 두 다리를 자랑하며 뚜렷한 이목구비가 아주 멋들어졌다.“오빠, 나도 오빠를 계속 찾았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손화영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그녀는 줄곧 그에게 사고가 생겨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니 그는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몸에는 맞춤 정장을 입고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수억짜리였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마음속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화영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윤원우가 부드럽게 물었다.“난 잘 지냈어, 오빠는?”손화영은 윤원우를 바라보았다.그녀와 윤원우는 보육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당시 외톨이로 늘 왕따를 당하던 그녀를 마찬가지로 마르고 약했던 윤원우가 지켜주었다.친오빠가 아니라 같은 시기에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였다.손화영은 어렸을 때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귀엽게
“박연준, 우리 화영이 괴롭히지 마!”심나정이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미친 사람처럼 손화영 앞으로 달려와 손화영을 뒤로 숨기며 보호했다.박연준은 서슬 퍼런 얼굴로 심나정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비켜.”“안 비켜!”심나정은 손화영을 보호하며 고개를 들고 붉은 입술로 비웃음을 터뜨렸다.“왜, 우리 화영이가 이혼하겠다는데 불만 있어?? 박연준, 당신이 우리 화영이 안 좋아하면 우리 화영이도 당신 만날 필요 없어! 당신이 정말 그렇게 대단해서 세상 모든 여자가 당신만 바라보는 줄 알아? 경고하는데 나도 당신 싫어하고 우리 화영이도 당신 같은 스타일 안 좋아해! 사람 괴롭히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박연준은 심나정을 바라보았다.“나랑 손화영 일에 끼어들지 마. 심나정, 본인 일이나 신경 써. 민영빈이 요즘 당신 미친 듯이 찾던데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줄까?”심나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연준, 당신은 여자만 협박하는 거야?”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나정이 뺨을 때리려 하자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그의 힘이 너무 세서 심나정은 온 힘을 다해도 손을 빼지 못했다.그녀는 격분하며 소리쳤다.“이거 놔!”“박연준 씨, 나정이 놔 줘요!”손화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심나정을 보호하려고 다가가면서 박연준을 밀어내려 했지만 두 여자가 달려들어도 힘으로 박연준을 이기지 못했다.박연준은 심나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숨을 헉 들이켰다.보다 못한 손화영이 급한 마음에 박연준의 단단한 팔뚝을 꽉 깨물었고 찌릿한 고통에 박연준은 심나정을 놓아주며 미간을 찌푸린 채 이미 입을 뗀 손화영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팔에 선명하게 남은 이빨 자국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손화영, 너 개야?”손화영은 무심하게 박연준을 쳐다보면서 경고하듯 말했다.“박연준 씨, 나한테는 마음대로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요.”“네가 뭔데 나한테 경고를 해? 손화영, 넌 내 덕에 산다는 것 잊지 마. 나 없으면 네가 살
손화영은 문틀을 붙잡고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그녀와 심나정 모두 상대가 박연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또렷한 이목구비에 강렬한 아우라를 풍겼고 눈빛은 위협적이고 무서웠다.그는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약간 불쾌한 듯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민영빈?”멈칫한 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심나정을 돌아보았고 심나정 역시 민영빈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민영빈은 급하게 온 것 같았고 얼굴에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민영빈 앞을 막아서며 민영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막았다.“민영빈 씨, 여긴 왜 왔어요?”“당연히 빚 받으러 왔지.”가늘게 뜬 눈으로 방 안에 있는 캐리어를 포착한 민영빈은 한눈에 봐도 심나정의 캐리어가 아니었기에 단번에 손화영의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뭐야, 박연준이 찼어?”“내가 박연준 찼어요.”손화영은 민영빈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나정이 오늘 바빠요. 그리고 귀찮게 찾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내가 약속 깨겠다면?”건방진 민영빈의 태도에 손화영은 어이가 없었다.심나정이 다가와서 손화영 옆에 선 채 민영빈을 올려다보았다.“민영빈, 우리 사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오늘은 화영이가 있으니까 당신이랑 얘기할 시간 없어.”“왜?”민영빈은 눈을 지그시 떴다.“내가 안 죽어서 실망했어?”심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내가 내일 만나러 갈게.”민영빈은 그녀를 무시한 채 곧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두 여자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음식 냄새를 맡자 그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나 배고파.”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무슨 왕이라도 되는 듯 심나정을 바라보았다.“나한테 밥 한 끼도 안 차려줄 거야?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심나정은 입술을 깨물었고 손화영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민영빈을 바라보았다.이런 민영빈의 태도를 보니
손화영은 두 사람이 성인의 행위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기 남아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캐리어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박연준이 온다는 민영빈의 말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빨리 오진 않겠지?빨리 내려가면 그와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손화영은 망설였지만 곧바로 캐리어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박연준과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 서 있는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그는 가장자리에 기대어 희미한 불빛에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채 손에는 희미한 담뱃불이 빛을 내고 있었다.손화영의 발걸음이 무의식적으로 멈춰 섰다.미간을 찌푸리며 박연준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른 길이 없어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쫓겨났어?”박연준이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잘생긴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당신이랑 상관없어요.”손화영은 그를 피하려고 옆으로 돌아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박연준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손화영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그쪽으로 가서 그녀의 길을 단단히 막았다.“박연준 씨, 비켜요!”살짝 화가 난 손화영은 뺨이 다소 붉어져 있었다.“돌아가든지 나랑 같이 집에 가든지.”박연준이 말했다.“지금쯤이면 저 위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가서 확인해 볼래?”손화영은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았기에 박연준의 말을 듣고 피가 쏠린 듯 얼굴이 붉어졌다.조금 전 그녀가 내려오기도 전에 민영빈은 그녀 앞에서 대놓고 심나정을 만졌다.심나정이 털털한 성격이라 뭐든 얘기해서 민영빈의 물건이 아주 크고 밤일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손화영은 자신이 제때 나오지 않았으면 민영빈이 정말로 그녀 앞에서 그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였다.심나정을 통해 민영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손화영은 민영빈이 심나정 앞에서 다른 여자와 그 짓거리를 했다는 것도 알았
바람이 세게 분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달빛을 가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다.길가에 서 있던 손화영은 밤이라 쌀쌀한 바람에 손가락을 움츠렸다.이미 예상한 일이라 별 감정 기복은 없었다.그냥 뭔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은근히 전해지는 둔탁한 통증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오랜 세월 마음에 담아둔 첫사랑인데 당연히 임청아를 선택하겠지.대역에 불과한 그녀를 두고 떠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손화영은 옅은 핑크빛 입술로 비스듬히 웃고는 외투를 여민 채 계속 걸어갔다.순간 이 넓은 세상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맸다.아버지와 동생의 상황을 생각하며 손화영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아버지를 구할 방법도 없고 동생에게 수술해 줄 방법도 없었다. 지금 한약으로 시간을 끌고 있지만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당장 돈이 필요했고 동생을 위해 최고의 의사를 찾아야 했다.손화영은 민 교수님을 떠올렸다. 민 교수님께 연락하면 그에게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휴대폰을 찾던 손화영은 휴대폰이 있는 가방을 차에서 놓고 내렸다는 게 생각났다.박연준은 임청아를 찾으러 갔고 그녀는 이제 무일푼에 휴대폰도 없는 상태였다!손화영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고 병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심나정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휴대폰도, 돈도, 아무것도 없이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다.손화영은 길가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손화영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가로등 아래 빗물이 대지를 촘촘히 씻어내는 와중에 도로엔 차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자 박연준은 차 속도를 늦추며 미간을 찌푸린 채 전화기 너머 진태원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집에 데려다주고 아주머니한테 음식 좀
“누가 데리러 오는데?” 정민호가 웃었다.“나 다 들었어. 박연준 집에서 나왔다며, 둘이 이혼한다던데?”“네가 알 바 아니잖아!” 손화영은 얼굴을 찡그렸다.정민호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기더니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왜 나랑 상관 없어. 전에는 날 쳐다보지도 않더니 이젠 버려진 이혼녀가 됐으면 나 같은 건 감지덕지 아니야?”손화영은 못마땅한 얼굴로 정민호를 바라보았다.전에 정민호가 좋다고 그녀를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그의 행실이 바르지 않아 싫어했다.몇 번이나 그가 접근해도 그녀는 거절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전업주부로 일하면서 그와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접점이 없었고 박연준까지 있으니 두 사람 사이엔 더더욱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정민호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더군다나 그는 다소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정민호, 나 아직 이혼 안 했고 아직 박연준 아내야.” 손화영이 말했다.“이혼 얘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박연준이 어떻게 할까 봐 두렵지도 않아?”“박연준이 날 상대할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임청아가 돌아온 후 하루 종일 임청아 주변을 맴돌지 않아?”정민호는 크게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손화영의 턱을 잡았고 손화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나 건드리지 마! 날 건드리면 소리 지를 거야!”“손화영, 봐, 여기 누가 있어?”정민호가 입꼬리를 올렸다.“차에 타, 집에 데려다줄게. 진심이야!”손화영은 정말 정민호의 차에 타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민호가 다가오려 하자 일그러진 얼굴로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정민호의 손에 넘어가면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차라리 빗속으로 뛰어들었다.손화영은 힘차게 달렸지만 체력이 좋지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발이 미끄러져 심하게 넘어졌다.재빨리 따라잡은 정민호가 우산을 들고 그녀 앞에 섰다가 천천히 몸을 웅크렸다.그는 눈
손화영은 서윤성이 건네준 재킷을 재빨리 입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토끼처럼 빨갰다.“고마워요.”말하는데 목소리가 이미 갈라져 있었다.“빚진 거 갚는 거예요.”서윤성의 잘생긴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손화영은 무섭고도 억울한지 눈가가 빨개진 채 서윤성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놀란 그녀는 울기까지 한 탓에 아직도 흐느끼고 있었다.“박연준 씨한테 전화해요. 데리러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줄게요.”서윤성이 다소 짜증스럽게 미간을 구겼다.“데리러 오지 않을 거예요.”손화영은 실망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자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나타나길 바랐을 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아마 지금쯤 임청아와 함께 있느라 그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거다.그가 이곳에 버려두고 갔을 때부터 이미 그녀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그를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가끔 그녀를 생각해 주고 잘해줄 때도 그저 그녀에게서 다른 여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제 주인이 돌아왔는데 한낱 대역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그녀가 산산이 부서지고 찢겨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설령 무슨 일이 생긴 걸 알아도 귀찮다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겠지.“돈 좀 빌려도 될까요?” 손화영은 고개를 들어 애원하는 눈빛으로 서윤성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저 좀 태워다 줄 수 있어요?”갈 곳도 없고, 손우영을 찾으러 병원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민영빈이 아직 있다고 해도 지금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심나정의 곁뿐이었다.“어디로 가요?” 서윤성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를 자신의 차로 이끌었다. “일단 타요.”손화영은 고마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차에 올랐다.차 옆에서 서윤성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서를 보며 소리쳤다.“도진택, 내버려두고 와서 운전해.”“네!” 도진택이 돌아오자 서윤성은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차에 올라탔다.그는 수건을 꺼내 옆에 있던 손화영에게 건넸다.손화영은 흠뻑 젖은 채 헝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