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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화영은 문틀을 붙잡고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녀와 심나정 모두 상대가 박연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또렷한 이목구비에 강렬한 아우라를 풍겼고 눈빛은 위협적이고 무서웠다.

그는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약간 불쾌한 듯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민영빈?”

멈칫한 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심나정을 돌아보았고 심나정 역시 민영빈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민영빈은 급하게 온 것 같았고 얼굴에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민영빈 앞을 막아서며 민영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막았다.

“민영빈 씨, 여긴 왜 왔어요?”

“당연히 빚 받으러 왔지.”

가늘게 뜬 눈으로 방 안에 있는 캐리어를 포착한 민영빈은 한눈에 봐도 심나정의 캐리어가 아니었기에 단번에 손화영의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뭐야, 박연준이 찼어?”

“내가 박연준 찼어요.”

손화영은 민영빈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나정이 오늘 바빠요. 그리고 귀찮게 찾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내가 약속 깨겠다면?”

건방진 민영빈의 태도에 손화영은 어이가 없었다.

심나정이 다가와서 손화영 옆에 선 채 민영빈을 올려다보았다.

“민영빈, 우리 사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오늘은 화영이가 있으니까 당신이랑 얘기할 시간 없어.”

“왜?”

민영빈은 눈을 지그시 떴다.

“내가 안 죽어서 실망했어?”

심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내가 내일 만나러 갈게.”

민영빈은 그녀를 무시한 채 곧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두 여자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음식 냄새를 맡자 그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나 배고파.”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무슨 왕이라도 되는 듯 심나정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밥 한 끼도 안 차려줄 거야?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심나정은 입술을 깨물었고 손화영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민영빈을 바라보았다.

이런 민영빈의 태도를 보니 심나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심나정이 예전에 민영빈을 많이 좋아했고 아버지 때문에 민영빈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민영빈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

“화영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밥 먹어.”

심나정은 민영빈의 성격을 너무 잘 알기에 결국 타협했다.

손화영은 다시 자리를 잡고 심나정이 수저를 가지러 주방으로 간 사이 민영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영빈 씨, 나정이 괴롭히지 마요. 쟨 당신한테 빚진 거 없어요. 다 나쁜 아빠 때문이잖아요.”

“그 나쁜 아빠 내가 만들어줬어?”

민영빈은 진심으로 배가 고팠는지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는 다소 조롱하는 눈빛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자진한 거야. 둘이 그렇게 친하다면서 쟤가 얘기 안 했어?”

“뭘 얘기해요?”

심나정은 민영빈 앞에 앞접시를 놓으며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뭘까?”

민영빈은 정말 배가 고픈지 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심나정의 요리는 매우 훌륭했고 식탁 위에 놓인 여러 가지 요리는 민영빈의 입맛에 맞았다.

민영빈이 폭풍처럼 식탁을 휩쓰는 동안 손화영과 심나정은 별로 먹지 않고 민영빈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민영빈은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과하게 행동했다.

“굶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

심나정이 참지 못하고 한소리했다.

“평생 밥 한 번 못 먹어봤어?”

민영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혀를 찼다.

“너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까지 굶었겠어?”

“... 배불렀으면 이만 가. 오늘은 시간 없어!”

“가라고?”

민영빈은 손화영을 흘깃 쳐다보았다.

“우릴 방해한다는 생각은 안 해?”

“...”

“당신이 우리 사이 방해하는 거지!”

심나정이 손화영의 어깨를 감쌌다.

“나랑 화영이 잘 지내고 있는데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방해했어!”

“쟤랑 뭘 했는데, 나보다 커?”

민영빈이 혀를 찼다.

“비교해 볼까?”

손화영은 건들거리는 민영빈의 모습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심나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영빈은 아니다. 자신이 나가면 민영빈이 심나정을 괴롭힐까 봐 걱정되었다.

그가 심나정에게 상처를 준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감정적으로든 뭐든 민영빈은 심나정을 소중히 여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민영빈이 이런 모습이라면 심나정이 힘들게 분명했다.

“민영빈, 말 좀 가려서 해. 아랫도리가 입에 달렸어? 여자 둘이나 있는 거 안 보여?”

심나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일 찾아간다고 했잖아, 내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까!”

“난 오늘 안 가.”

민영빈은 손화영을 흘깃 쳐다보았다.

“옆에서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뭐, 같이 해도 난 상관없지만.”

손화영은 그 말에 귀가 빨개졌다. 민영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던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민영빈, 내 친구한테 예의 좀 갖추지? 화영아는 내가 아니야. 그런 농담 하지 마!”

심나정이 화가 나서 때리려는데 민영빈이 단번에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

그가 살짝 당기자 심나정은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듯 그의 품에 안겼다.

“오호라, 많이 급한가 봐, 식탁에서 할까?”

민영빈은 심나정의 귓불을 핥더니 거침없이 심나정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민영빈, 너 미쳤어?”

심나정은 몸부림치면서 욕을 했다.

민영빈은 그녀의 몸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무심하게 어루만지자 그녀는 바로 녹아내렸다.

심나정의 얼굴은 목덜미까지 붉어졌고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화영아...”

심나정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 윽... 너 방에 들어가 있어!”

손화영은 감히 그들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뛰쳐나갔다.

민영빈은 심나정을 희롱하면서 손화영을 향해 껄렁한 미소를 보였다.

“손화영, 이미 박연준한테 말했어. 지금 내려가면 아마 그쪽 남편이 와 있을 거야.”

“민영빈, 왜 이래!”

심나정이 민영빈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민영빈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왜 화영이를 건드려!”

“도와주는 거잖아, 가서 남편을 지켜야 하지 않겠어? 남편을 다른 여자한테 뺏기게 생겼는데 내 여자를 뺏을 여유가 있겠어?”

민영빈의 손가락이 심나정의 등을 더듬으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속옷을 꺼내 멀지 않은 곳에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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