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는 사람들 하나같이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라 당신 같은 직원은 눈에 차지도 않아요. 예쁜 얼굴에 관심을 보일지 몰라도 절대 신데렐라 같은 허황한 꿈은 꾸지 마요. 그건 당신이 할 일이 아니에요!”담당 선배인 오연희가 손화영을 훑어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알아요, 전 일하러 왔어요.”손화영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그녀는 오연희가 원래 성격이 안 좋은 건지 일부러 자신에게만 못되게 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말투가 듣기 거북한 게 그녀에게 적대감이 있는 것 같았다.손화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 일이 필요했다. 여기서 일하면 급여도 좋았고 팁도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특히 19층은 성시훈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큰손이라 후하게 팁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심나정과 가까운 사이고 그녀가 돈이 부족하다는 말에 특별히 19층에 보내줬는데 사실 다크 나이트는 19층 직원들에 대해 더 엄격히 굴었다.평범한 직원이 19층에 가려면 외모와 몸매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손화영은 성시훈의 배려 덕분에 첫날 바로 19층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자, 가서 일해요.”오연희는 누가 봐도 손화영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다.손화영이 돌아서서 가려는데 뒤에서 콧방귀를 뀌었다.“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네. 19층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대처 능력도 없이 낙하산으로 와도 소용없지.”손화영은 옷을 갈아입으러 갔고 다 차려입은 뒤 일하기 시작했다.“손화영 씨, 이거 1908호로 보내줘요.”“네.”손화영은 카트를 밀며 곧장 1908호 룸으로 향했다.비록 처음이지만 손화영은 일을 할 때 신중한 편이었고 박연준 곁에 있으면서 이런 일을 적지 않게 해왔었다.그래서 웨이트리스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그런데 1908호 룸에서 윤원우와 마주칠 줄이야.윤원우는 여전히 정장 차림으로 누군가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웨이터 복장을 한 손화영을 보자 그의 눈빛에는
윤원우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화영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돈이 부족한 거야?”손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여기...” 윤원우가 카드를 꺼내 손화영에게 주려는데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오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화영 씨, 뭐 하는 거예요? 여기 바빠요!”손화영은 다급히 윤원우의 손을 붙잡았다.“오빠, 나 일해야 해. 오빠도 사업상 할 얘기 있는 것 같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그래.” 윤원우는 움직임을 멈췄다.“오늘 밤 몇 시에 퇴근해? 이따가 기다릴게!”손화영은 윤원우에게 시간을 알려주었고 오연희가 재촉하는 것을 보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손화영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던 윤원우의 눈빛이 무거웠고 그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손화영은 오연희 옆으로 걸어왔다.“미안해요, 언니. 저 왔어요.”“누가 손님한테 함부로 말 걸라고 했어요? 방금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요?”오연희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했다.“행동 똑바로 해요. 직원으로 일하러 왔으면 주제 파악해야죠.”“알겠습니다.” 손화영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방금 그 사람 쉽게 건드려도 될 상대 아니에요... 입사 첫날부터 남자 꼬시는 직원은 처음이네요!”오연희는 손화영을 훑어보았다.“설마 여기 돈 많은 사람 꼬시러 왔어요?”손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일하러 왔어요.”“일하러 왔으면 열심히 일하든가 아니면 일찍 나가요! 이따가 8번 방 가지 말고 1번 방으로 가요.”“네.”손화영은 거절하지 않았다.“1번 방 안에는 다들 TV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거물들이고 가끔 대스타들도 있으니까 거기 들어갈 때 조심해요. 유혹할 생각은 하지 말고요. 그 사람들은 그쪽 쳐다도 안 봐요. 그 사람들과 결혼하는 건 헛된 망상이라고요. 이런 사람들은 수준이 맞는 사람들과 결혼해요. 그쪽 같은 조건에 자격이 될 것 같아요? 미리 말하는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다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정말 누구 하나 건드렸다가 돈이 생기는
그녀가 들어왔을 때 아무도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녀도 자연스럽게 모르는 척하며 테이블 위에 술을 올려놓았다.그녀가 물건을 하나둘 올려놓는데 도지성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 웨이터 좀 낯이 익은데! 얼굴 좀 들어볼래요, 우리 아는 사이인가?”“...”“고개 들어 보라고, 내 말 안 들려?” 도지성은 고개를 들지 않는 손화영을 보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 이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손화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아야 했다.도지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한 표정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형, 여기 봐. 이 여자 손화영 닮았어!”“...”도지성과 박연준은 가까운 친구 사이였는데 박연준보다 어린 도지성은 어렸을 때부터 박연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항상 박연준을 숭배했기 때문에 박연준과 자주 어울리곤 했고 손화영이 박연준의 아내라는 사실은 도지성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손화영은 도지성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도지성뿐만 아니라 박연준의 친구들도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전에는 박연준이 그녀를 데리고 친구들 모임에 나가는 걸 왜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박연준의 친구들이 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몰랐다.나중에야 그들은 모두 임청아와 아는 사이였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라 자기만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보육원에서 자랐고 손씨 가문으로 다시 입양된 후에도 부잣집 도련님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니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박연준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으니 당연히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꺼렸다.박연준의 친구들도 당연히 임청아를 더 좋아했다.그 친구들 눈에 임청아와 박연준은 완벽한 커플이고 자신은 이를 방해하는 악역이었다.박연준과 임청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손화영에게로 향했다.손화영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박연준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유심히 살핀 후 눈
도지성은 손화영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고 그는 다소 의외라는 눈빛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그가 봤던 손화영은 이렇게 성깔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전에도 손화영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화영에게 뭐라고 해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형의 친구라 그런지 잘 보이기 바빴다.그런데 오늘은 손화영이 좀 달라 보였고 게다가 성격까지 있어 보였다.“화약이라도 먹었어요?”도지성은 얼굴을 찡그렸다.“대포알 먹었어요.” 손화영이 눈을 흘겼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박연준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고 그는 손화영을 노려보고 있었다.미간을 찌푸린 걸로 보아 그도 손화영이 이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변한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가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연준 씨, 한마디도 안 할 거야?” 임청아가 옆에서 여우 같은 말투로 말하자 박연준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손화영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누가 여기서 일하라고 했어?”할 일을 마친 손화영이 살짝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제가요.”“화영 씨, 연준 씨도 걱정해서 그러는 거예요. 아까 지성이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여기서 일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임청아는 박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박연준 아내가 여기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정말 비웃을 거예요!”손화영은 임청아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면 그쪽이 박연준 씨 아내 하세요. 전 안 해도 돼요.”그렇게 말한 뒤 손화영은 곧바로 뒤돌아 자리를 떠났고 당황한 임청아는 박연준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연준 씨, 내가 무슨 말실수 했어? 왜 화영 씨가 화난 것 같지? 난 연준 씨를 위해서 그런 거야. 지성이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박연준이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봤다.“내가 창피한지 아닌지 왜 네가 결정해?”“연준 씨...”임청아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내 아내가 뭘 하든 네가 말할 건 아니지.”“내 아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이 말할 차례가 아니잖아
“분명 손화영이 이혼 안 하겠다고 하는 거야.”“그럴 리가, 나 아직 이혼 안 했는데.”임청아는 고개를 숙였다.“연준 씨도 나 때문에 이혼 안 할 거야. 요즘 화영 씨한테 잘해주던데.”“잘해주긴 뭘, 하나도 그런 것 없어. 내가 형을 알아. 형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나야.”임청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도지성을 바라보았다.“그래? 근데 화영 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연준 씨가 괴롭지 않을까?”“맞아, 난 우리 형 괴롭게 두지 않아. 내가 손화영 찾아가서 얘기할 거야. 손화영 참 뻔뻔해, 죽기 살기로 형한테 매달리네.”도지성의 얼굴에는 증오의 표정이 가득했다.동시에 손화영은 박연준에 의해 구석에 가로막혔다.“비켜요, 나 일해야 해요.”손화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박연준에게 단단히 막혔다.“누가 여기서 일하라고 했어?” 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돈이 부족해?”“저는 박연준 씨만큼 능력도 없고 가난해서 돈을 벌어야 해요!” 손화영의 검은 눈동자는 차분했다.“내가 언제 돈 안 준 적 있어, 굶긴 적이라도 있어?”박연준은 서슬 퍼런 얼굴로 손화영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한 손으로 손화영의 손목을 꽉 쥐었다.대체 자신이 못 해준 게 뭐라고 이런 곳에 나와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냥 얌전히 사모님 자리 누리면 안 되는 건가?“박씨 가문에 돈이 부족하기라도 해? 손화영,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언제 안 준 적 있어?”손화영은 박연준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언제 안 줬냐고?대체 언제 줬냐고 묻고 싶었다.아버지 구해달라고, 동생 좀 도와달라고 애걸복걸 그에게 부탁해도 언제 제대로 도와준 적이 있었나?매번 질질 끌기만 했지.이제 그녀가 부탁하지 않으니 이번엔 이런 걸로 위협하기 시작한다.마치 그녀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게 군다는 듯이.손화영은 이 상황이 우스웠다. 그녀가 그리도 비열한 사람인가?그래, 그렇게 못난 사람이라고 하자. 줄곧 그에게 매달리면
“손화영 씨, 또 뭐 하는 거예요!”오연희가 소리를 지르자 손화영은 깜짝 놀랐고 박연준도 순간 멈칫했다.박연준이 한눈판 사이 손화영은 재빨리 박연준에게서 멀어지면서 오연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손화영 씨, 또 남자 꼬시고 있어요?”오연희는 살짝 짜증 섞인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아니요.” 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명했다.“저분께서 사람 잘못 보신 거예요.”“정말요?” 오연희는 다소 의심을 품은 눈빛으로 박연준을 다시 쳐다보았다.그녀는 당연히 박연준을 알고 있었다. 부승그룹 대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다.TV나 경제잡지에도 자주 등장했고 그에 대한 소문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다크 나이트 쪽에서도 박연준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박연준이 매번 등장할 때마다 아무리 대단한 집 도련님이라도 그에게 공손하게 예의를 갖췄으니까.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었다.오연희는 손화영이 박연준 같은 사람을 꼬실 능력이 없는 것 같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어쨌든 너무 쉽게 흔들리는 남자들도 있었으니까.“손화영 씨, 오늘 겨우 첫날이고 내가 한 말 귓등으로 듣지 마요. 다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요. 저런 사람들이 우릴 만나준다고 해도 사모님이 될 수 없어요. 우린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요.”오연희는 거듭 손화영을 훑어보았다.희고 탄력 있는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났다.이런 얼굴을 가지고 돈 많은 사람 하나 못 꼬시겠나.“네, 알아요.”손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전 결혼했고 결혼에 이혼까지 한 돌싱녀를 누가 눈여겨보겠어요. 보통 사람들도 꺼리는데 저렇게 대단하신 분들은 더 그렇죠.”“알면 됐어요!”오연희는 손화영의 말에 만족스러워하며 덧붙였다.“아까 그 사람 모를 수도 있으니까 알려주는데 조심해요.”“네.”“박연준이라는 사람인데 운성에서 손바닥으로 하늘도 가릴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대 저 사람에게 밉보이면 안 돼요! 그리고 꼬실 생각도 마요. 아까 그쪽이
“손화영 씨, 그래도 제때 응급조치를 해서 동생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병원비는 언제쯤 납부할 생각이죠? 벌써 한참이나 밀렸는데 더 내지 않으면 동생분 약도 중단될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약까지 중단하면 언제든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 수술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에요.”손화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쁘게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최선을 다해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선생님, 최대한 빨리 납부할 테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 끌어주세요.”단승철은 동정 어린 눈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에 옷과 장신구도 화려하고 값비싼 것들로 가득해 재벌가 사모님처럼 보이는데 동생의 병원비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이라니.“이미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고 있지만 약값뿐만 아니라 수술비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알다시피... 기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알아요.” 손화영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녀는 누구보다 초조해하고 있었다.“손화영 씨, 정말 안 되면 박 대표님한테 가서 빌어요. 그래도 부부인데 죽는 걸 뻔히 보고 있지만 않겠죠.”단승철은 손화영을 힐끗 쳐다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한 달여 전, 박연준은 갑자기 손화영 남동생의 병원비를 끊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의 의료진까지 철수시켰다.그리고 며칠 전에는 손씨 집안에 큰일이 생겨 손화영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피소됐고 손화영의 남동생은 그 일로 누군가와 갈등을 빚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단승철은 손화영이 대체 남편에게 뭘 잘못했길래 그가 이토록 매정하게 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비밀 결혼이라고 해도 부부 싸움은 말로 잘 달래면 될 것 같았다.강성 최고의 부호이자 부승그룹 대표인 그의 손 틈에서 흘러나온 돈으로도 남동생 병을 치료하기엔 충분했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손화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돈 가져올게요.”그녀와 박연준 사이가 말 몇 마디로 풀릴 거였으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다.박연준.
이틀 후, 손화영은 두 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박연준을 드디어 만났다.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멋있었다. 잘생긴 외모는 연예계에 내놔도 손꼽히는 미남일 것이다.잘 재단된 수트가 그의 완벽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그가 문에 들어섰을 때 손화영은 소파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박연준에 대한 온갖 가십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박연준에 관한 소식은 언제나 연예인 스캔들보다 더 많았다.TV 속 뉴스를 훑어보던 박연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이걸 왜 보는 거야? 나 배고픈데, 오늘 저녁은 뭐 먹어?”손화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난 이미 밥 먹었어요. 먹고 싶으면 아주머니한테 해달라고 해요.”“면이나 한 그릇 삶아줘.”박연준은 잘생긴 눈썹을 다시 한번 찡그리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아주머니, 이 사람 면 먹고 싶다는데 한 그릇 만들어 주세요.”손화영은 무심하게 외치더니 박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다 먹고 얘기 좀 해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박연준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손화영의 불쾌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아무리 속상하거나 화가 나 있어도 그가 돌아오자마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한마디만 하면 서둘러 달려가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가끔 쉬지 않고 쫑알거리다가 그가 짜증을 내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렇게 차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평온함이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다.굳이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직 따지지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등을 돌린다고?손화영을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5년 동안 아내로 곁에 두면서 그녀의 몸은 만족스러웠다. 잠자리도 잘 맞았기에 그녀를 계속 옆에 두면서 자신도 그녀에게 섭섭지 않게 해준다고 생각했다.윤미숙은 재빨리 국수를 만들었다.늘 솜씨가 좋은 윤미숙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분명히 배가 고팠던 박연준은 몇 입 먹고 나서 입맛이 사라졌다.예전처럼 기대에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