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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신경 쓰지 마! 자길 먹여 살릴 능력도 없을 텐데. 심나정도 본인 먹고살기 바쁠 텐데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박연준의 눈동자는 옅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는 그의 모습에 진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럼 사모님 쪽은 내버려둘까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돌아와서 애원하게 될 테니까!”

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도착했어?”

“다 왔습니다. 이제 회의실로 가셔도 돼요!”

회의실에 들어선 박연준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온몸에 분노를 가득 뿜어내며 회의에 임했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떨면서 더듬거리며 업무 보고를 마쳤다.

오늘 누구 하나 죽일 기세인 대표님의 모습에 다들 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

“정말 결정했어?”

카페에서 손화영을 바라보던 심나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물었다.

“응, 이미 결정했어...”

손화영이 피식 웃었다.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위해 더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난 대역일 뿐이잖아. 이제 나한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우영이의 건강 상태와 아버지 문제야.”

그 두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

박연준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동안 아내로 지내면서 그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내가 말했잖아, 박연준 개자식은 좋은 놈이 아니라고!”

심나정은 욕설을 퍼붓더니 안쓰러운 듯 손화영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안아주려 했다.

“착하지, 괜찮아. 아직 내가 있잖아. 동생은 돈이 얼마나 필요해? 내가 알아볼게!”

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도 돈이 없는 거 알아. 이미 생각 중이야.”

심나정 역시 연예계에 진출했지만 아직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상태라 수입이 많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아버지까지 있으니 손화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녀가 도와준다고 해도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내 상황 걱정해 주는 건 알지만 멍청한 사채업자들이 날 쫓아와도 내가 돈이 없으면 어쩌지 못해. 날 죽이면 오히려 본인들이 손해니까 오히려 날 돈 벌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한테 아무 짓 못 해. 하지만 넌 달라. 우영이 쪽 상황이 급하고 생사가 걸린 문제잖아.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네가 내 목숨 살려줬는데 왜 나한테 예의를 차려?”

심나정의 예쁜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했다.

“우선 우영이 수술비부터 모으고 다른 건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카드 하나를 꺼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인데 일단 가져가. 비밀번호 알지? 우선 급한 돈은 이걸로 막고 내가 빌릴 방법을 생각해 볼게. 동생 병부터 치료해야지!”

손화영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누구보다 심나정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도우려 했다.

박연준과 전혀 다른 모습에 다소 우습기까지 했다.

자신은 잘해주려 애를 쓰는데 그는 한 번도 그녀나 그녀의 가족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고개를 든 손화영은 심나정의 마음을 받았다.

“이건 받을 테니까 더 이상 돈 빌리지 마! 네 형편이 어떤지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는데 또 어디서 돈을 빌려!”

“내가 어디서 빌리든 상관하지 말고 어차피 동생 수술해야 하는데 내 목숨 걸고서라도 도와야지!”

심나정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손화영은 심나정에게 알바 몇 개를 뛸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몇 년 동안 전업주부로 일하다 다시 나와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손우영의 병 치료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이제 박연준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바닥났다.

지금 그의 눈에는 임청아만 있을 뿐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참, 너 일하고 싶으면 내가 월급 꽤 잘 주는 친구 하나 알아. 일은 좀 힘들지만 벌이가 좋아. 그걸로 일단 시작하는 게 어때?”

일 얘기로 저녁에 심나정은 손화영을 데리고 친구가 있는 클럽 하우스로 갔다.

심나정의 친구는 이 클럽하우스의 책임자였다.

젊고 유능하고 반듯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손화영을 훑어보았다.

“어때?”

심나정이 물었다.

“내 친구 여기서 일해도 되지? 직원 필요하다며, 여기 돈 많이 주는 거 알아. 얘는 지금 돈이 절실히 필요해!”

“손화영 씨는 모든 조건이 우리 클럽하우스에 딱 맞아.”

성시훈은 안경을 슥 올리며 말했다.

“19층에서 일할 수는 있지만 웨이트리스 일은 쉽지 않고 무척 힘들다는 거 알아둬요. 특히 19층 손님들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분들이죠. 화를 참을 수 있어야 해요. 물론 이곳 손님들은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 특별히 과도한 행동을 하지 않고 기분이 좋을 때는 팁도 많이 줘요.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면 한번 해 봐요.”

이어서 성시훈은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해야 할 일과 급여에 관해 이야기했다.

심나정은 손화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때?”

“해보고 싶어.”

손화영이 말했다.

그녀는 진작 예전의 손씨 집안 아가씨가 아니었고 아직은 더 나은 곳이 없으니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는 당분간 이 일을 해도 괜찮았다.

성시훈의 말에 따르면 이 일은 힘들긴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수입도 괜찮다고 한다.

“되는 거지?”

심나정은 성시훈을 바라보았다.

“난 당연히 환영이지.”

성시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한테 맡길게!”

심나정은 성시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명심해, 얘는 그냥 직원일 뿐이야. 다른 일은 안 해. 얘한테 쓸데없는 일 시키면 너 내가 가만 안 둬!”

“걱정하지 마, 너 이미 여러 번 경고했어.”

성시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우리 클럽하우스도 나름대로 입지가 있는데 평범한 직원 건드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손화영은 성시훈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출근 여부를 결정한 뒤 성시훈은 볼일을 보러 갔다.

손화영과 심나정은 룸에서 나갔고 심나정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손화영에게 기다려달라고 했다.

손화영은 가만히 서서 심나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놀라움과 의아함이 섞인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영이?”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화영은 고개를 홱 돌렸고 두 눈에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이 들어왔다.

사람을 홀릴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는데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거의 동시에 굳어버렸다.

“진짜 너였구나! 화영아... 정말 너구나, 그동안 너를 찾아 헤맸는데 드디어 찾았어!”

남자는 흥분한 듯 성큼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고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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