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곧바로 후회했다. 얽히고설킨 세 사람 중에 안서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안유진에게 그녀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면서 배 속의 아이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김주혁에게 매달리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도록 놓아주었다.‘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피해?’운전기사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요?”“허리가 아파서 누우려고요.”“의사예요?”“네.”“어쩐지. 의사들은 계속 서서 수술하는데 허리가 안 아프면 이상하죠. 누워있어요. 교통경찰이 앞에서 지휘하니까 곧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네.”그 시각 김주혁과 안유진이 유리창 옆으로 지나갔다. 다행히 그녀를 보진 못했다.두 사람은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 길가의 나무 그늘 밑에 섰다. 김주혁이 휴지를 꺼내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택시 안이 하도 조용해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내가 데리러 갈 때까지 집에서 기다릴 거지. 왜 혼자 힘들게 왔어?”안유진이 김주혁의 품에서 환하게 웃었다.“회사가 반대쪽에 있어서 집까지 데리러 오려면 번거롭잖아. 그냥 병원 앞에서 만나도 되는데.”“이쪽으로 와. 머리 아직 젖었어.”안유진이 몸을 돌리자 김주혁은 반대쪽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다.“주혁아.”“응?”“걱정하지 마. 난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 출퇴근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돼. 나 혼자서 할 수 있어.”“알았어...”“종일 일하느라 힘들잖아. 그리고 한솔 그룹 대표를 운전기사처럼 부려먹을 순 없지. 자질구레한 일에 힘 뺄 필요 없어.”김주혁은 그녀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유진이 계속하여 말했다.“감정이 없으니까 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야. 최근 몇 년 사이에 이혼 사건 많이 맡았는데 다 이러했어. 와이프가 잘난 체하면서 남편을 심하게 괴롭힌 거야. 그런데도 만족하는 법을 몰라. 결국에는 남편이 참지 못하고 이혼하겠다고 하거든. 그러면 와이프는 그제야 울면서 남편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아무튼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고
안서희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의자 등받이를 다시 원래대로 조절한 후 창밖을 내다보았다.김주혁은 나무 그늘에 서서 안유진의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다.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후 걱정스럽게 물었다.“오늘도 허리 아팠어?”안유진이 원망을 쏟아냈다.“임신한 후로 가끔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파. 특히 비 오는 날에는 더 심해. 아 참, 예전에 마사지 배웠었지? 집에 가서 마사지해줘.”“응. 알았어.”“주혁아, 물어볼 거 있어.”안유진이 애교 반 강요 반인 말투로 물었다.“그때 고3 수능 치기 전이었나? 네가 시간 내서 마사지까지 배웠잖아. 혹시 나 때문이야?”김주혁이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하필 그때 어깨가 아프다고 했잖아. 수능이 코앞인데 그러다가 수능 잘 못 보면 어떡해.”안유진이 입을 삐죽거렸다.“나랑 그렇게 신성대에 같이 가고 싶었어?”김주혁이 눈을 희번덕거렸다.“당연한 거 아니야?”“근데 너 알고 있었잖아. 어깨가 아프지 않아도 내가 붙지 못한다는 거.”김주혁이 말했다.“네가 신성대에 붙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어. 그냥 너도 신성시에 있는 대학교로 붙길 바랐어. 너랑 함께 신성시에 있고 싶었어.”안유진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우리가 함께 학교 다니던 그때가 그리워. 어리고 활기차고. 근데 이젠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응.”“근데 괜찮아.”안유진이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품에 안겼다.“돌고 돌아 결국에는 함께했잖아.”빵빵.귀청을 째는 듯한 클랙슨 소리에 안서희는 저도 모르게 귀를 움켜쥐었다. 중년 아저씨인 운전기사는 살짝 난폭운전 증세를 보이면서 앞차를 재촉했다.“빨리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지체하면 이따가 또 막히는데.”앞차가 그의 원망 소리를 들었는지 차에 천천히 시동을 걸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택시 운전기사는 재빨리 따라붙어 가장 빠른 속도로 병원 앞을 떠났다. 병원 앞을 벗어나니 도로가 뻥 뚫렸고 운전기사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빠져나왔네요. 앞으로 다
권진아는 다른 설명 없이 주소 하나만 보냈다.그녀는 말을 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항상 차분했고 조급해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녀가 당황해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건 진짜 큰일이 났을 가능성이 컸다.안서희도 자세히 묻지 않고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천호 빌딩으로 가주세요.”안서희가 천호 빌딩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렸을 때 주변에 사람이 몰린 곳이 없이 모든 게 다 정상이었다. 그녀는 권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아야, 어디야?”“별스타 커피, 들어와서 왼쪽에 첫 번째 테이블.”천호 빌딩 1층에 별스타 커피가 있었다. 안서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권진아가 어떤 젊은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진아야.”안서희를 본 순간 권진아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젊은 남자에게 말했다.“봤죠? 내가 거짓말한 거 아니죠?”안서희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어떻게 된 거야?”권진아는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낸 후 손을 흔들면서 남자에게 말했다.“돌아가서 이대로 전해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면 돼요.”젊은 남자는 웃으면서 안서희와 권진아를 번갈아 보았다.“권진아 씨, 지금 나랑 장난해요?”안서희는 힘을 주어 허리를 잡고 있는 권진아의 손을 겨우 떼어냈다.“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줄래?”“서희야, 나...”“제가 설명할게요.”젊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세상을 우습게 보는 듯한 태도였다.“집에서 권진아 씨랑 맞선 자리를 마련했는데 진아 씨가 자신은 여자만 좋아하는 동성연애자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못 믿겠다고 여자 친구를 부르라고 했어요.”안서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권진아가 연애도 싫어하고 결혼은 더더욱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거절하면 되지, 이런 황당한 이유를 댄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권진아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아무튼 봤죠? 얘랑 사이 엄청 좋으니까 그쪽이랑은 불가능해요.”젊은 남자는 팔짱을 끼고 가볍게 말했다.“불가능한 건 두
권진아는 종업원에게 따뜻한 물 한잔을 달라고 한 후 안서희에게 건넸다.“병원 가자.”안서희도 따라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커피숍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권진아가 시동을 걸고 차를 돌리려 하자 안서희가 말렸다.“병원 갈 필요 없어.”권진아가 허락하지 않았다.“지금 얼굴이 얼마나 창백한지 볼래? 고집부리지 마.”“내가 산부인과 의사인데 병원에 가서 뭐 해?”권진아는 흠칫하다가 할 말을 잃었다.“하긴. 당직 서는 의사 실력이 너보다 못할 수도 있겠어.”안서희가 웃으며 말했다.“가자, 집에.”“정말 괜찮아? 억지로 버티지 마. 많이 아프면 병원 가서 진통제라도 맞고.”“진아야, 나 병원 가고 싶지 않아.”“알아. 일하는 직장이니까 퇴근 후에는 들어가고 싶지도 않겠지. 근데 꾹 참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주혁 씨랑 유진 씨가 병원에 들어가는 거 봤어.”권진아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다시 꾹 삼켜버렸다. 안서희가 말을 이었다.“그냥 위가 아파서 그래. 약국에 가서 위약하고 진통제 사면 돼.”“위가 갑자기 왜 아파?”“아까 비를 맞으면서 몸살 났나 봐.”권진아도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알았어.”권진아는 가는 길에 차를 세우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온 후 약을 배달시켰다.안서희는 약을 먹고 한잠 푹 잤다. 얼마나 잤을까,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그녀가 깼다.“안녕하세요. 혹시 안서희 씨인가요?”“네. 누구세요?”“안서희 씨 택배 도착했어요. 혹시 가지러 내려올 수 있나요?”안서희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평소 인터넷 쇼핑을 즐기지 않았고 최근에 산 것도 없었다. 예전에 무엇을 샀는지 까먹었다고 해도 아마 예전 아파트 주소를 적었을 것이다. 하여 택배를 찾으려면 김주혁네 집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다.“죄송한데 지금 집에 없어요. 반송해 주세요.”“여러 개 되는데 전부 반송하실 건가요?”‘여러 개?’안서희는 그녀가 산 게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뭔가 필요할 때만 쇼핑했지, 한꺼
권진아네 집으로 급히 오는 바람에 갈아입을 옷 몇 개와 가방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오늘 병원에서 나올 때 가방으로 피를 막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젖고 말았고 머리카락도 조금 젖었다.평소 가죽 가방보다 클로스 백을 자주 들고 다녔다. 천이라 비를 막을 수 있긴 했지만 가방이 다 젖어서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 마르긴 어려울 것 같았다.다른 물건은 다 쉽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이 가방은 명품 가방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 가게에서 산 것이었다. 김주혁은 무슨 수로 똑같은 가방을 구했을까?피곤했던 안서희는 그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에 대한 죄책감이든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든 아무튼 그녀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오늘 안유진이 했던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안서희는 다시는 두 사람의 대화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권진아가 물었다.“하던 대로 그냥 돌려보낼까?”“버려.”권진아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돌려보내지 않고?”“돌려보냈다가 안유진 씨가 보면 귀찮아져.”권진아는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다.“지난번에 그 여자를 먼 곳에서 봤었어.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더라고.”사실 따지고 보면 안서희와 안유진 사이에는 그렇게 큰 원한은 없었다. 안유진의 공세는 김주혁에게 향했었고 마지막 선택을 한 것도 김주혁이었다. 결국에는 그녀와 김주혁 두 사람의 일이었다.안서희는 권진아와 함께 박스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고는 권진아에게 보냈다.권진아는 그녀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지금 당장 SNS에 올릴게. 아, 글은 뭐 쓸까? ‘이딴 거 필요 없어’ 어때?”“글은 쓸 필요 없고 사진만 올리면 돼.”“알았어.”권진아가 사진을 올리자마자 주호민이 좋아요를 눌렀다.“이 자식은 휴대폰을 쥐고 사나. 1분도 안 됐는데 벌써 좋아요를 눌렀어.”안서희가 말했다.“됐어. 삭제해.”“벌써?”“봐야 할 사람이 봤으니까 그럼 됐어.”권진아는 안서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역시
그날 오후, 김주혁과 안유진이 함께 찾아왔다.안유진은 한 손으로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볼록 나온 배를 어루만졌다. 널찍하고 편한 임산부 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도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임신하면 얼굴이 붓기 마련이었다. 원래 V라인이었던 안유진은 살이 오르니까 오히려 더 나아 보였다. 안색도 좋은 걸 보니 옆에서 잘 생겨준 모양이다.김주혁이 옆에서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그녀를 감싸주었고 왼손에는 여자 가방을 들고 있었다.그리고 보냉백도 들고 있었는데 도시락통 같은 게 들어있었다.임수경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어제 왔는데 오늘 왜 또 왔대요...”안서희는 병원에 온 그들을 내쫓을 수가 없었다. 이미 온 이상 상황에 맞춰 대책을 세우면 되었다.안유진은 배를 잡고 안서희의 앞에 앉더니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오랜만이에요, 선생님.”안서희는 그녀와 김주혁을 번갈아 보았다. 김주혁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컴퓨터에서 안유진의 진료 차트를 꺼냈다.“어디 안 좋아요?”“아니요. 주혁이가 잘 챙겨줘서 괜찮아요. 어제저녁에 검사했는데 나랑 아기 다 건강하대요.”안서희가 피식 웃었다.‘멀쩡한데 왜 왔대? 자랑하려고?’안유진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선생님, 오늘은 사과하러 왔어요.”안서희가 문 쪽을 가리켰다.“사과는 필요 없고 불편한 데 없으면 나가주세요. 밖에 다른 산모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다른 사람들 시간 지체해선 안 되죠.”“주혁이한테 접수하라고 했어요. 이거 영수증이에요.”“접수만 하고 검사는 받지 않고.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안유진 씨?”“선생님, 날 너무 적대하지 말아요. 선생님이랑 주혁이는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게 어디 내 탓인가요?”안서희는 피곤이 밀려와 김주혁을 보며 말했다.“계속 빙빙 돌리기만 하는데 주혁 씨가 말할래요?”김주혁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서희야, 난...”“내가 얘기할게요.”안유진이 가볍게 말했
안유진은 김주혁이 더는 말이 없자 다시 돌아앉아 안서희에게 말했다.“선생님,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주혁이는 어릴 적부터 항상 그랬어요. 남을 걱정하기 좋아해서 오해도 많이 받았거든요. 내가 집에 가서 얘기 잘할 테니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세요.”“오해요?”“주혁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더라고요.”안유진이 더 환하게 웃었다.“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어떤 여학생이 우산이 없어서 주혁이가 우산을 줬는데 그 여학생은 주혁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했지 뭐예요? 그 바람에 그 여학생이 아까운 청춘을 몇 년이나 낭비했어요. 좋은 마음으로 챙겨줬는데 결국에는 나쁜 결과뿐이고. 안 그래요, 선생님?”안서희가 고개를 숙이고 코웃음을 쳤다. 안유진이 또 이어서 물었다.“선생님,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죠?”“네.”“그럼 다행이고요. 역시 똑똑한 사람이랑 말이 잘 통해요. 한번 말하면 딱 알아들으니까.”안서희가 피식 웃었다.“얘기 다 끝났나요?”“네. 거의요.”“얘기 끝났으면 그만 가세요. 자, 다음 산모분.”안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도시락통을 안서희 앞으로 밀었다.“선생님, 따뜻할 때 얼른 마셔요. 식으면 효과 없어요.”안서희가 싸늘하게 말했다.“주혁 씨한테 언제 이혼할 건지 물어봐 줄래요? 얼른 사인해서 이혼절차 마무리하자고 해요.”안유진은 억울한 척 설명했다.“오해했어요, 선생님. 정말 단지 그냥 선생님 가져다주려고 온 거예요. 이혼을 다그치려는 뜻은 없었어요.”“그런 뜻인지 아닌지 유진 씨는 잘 알겠죠.”김주혁이 안유진을 잡아당겼다.“가자.”안유진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자리에 앉자 안서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할 얘기 더 남았나요?”안유진은 웃으면서 배를 가볍게 어루만졌다.“선생님 카톡 추가해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엄마는 처음이라서 그래요. 이 아이 전에도 큰일이 날 뻔해서 무섭단 말이에요. 혹시 무슨 상황이 생기면 바로 카톡으로 연락하고 좋잖아요.”안서희
“알았어요.”안서희는 큐알코드를 스캔하여 안유진의 카톡을 추가했다.프로필 사진이 김주혁의 사진이었다. 교복을 입고 있어 그런지 지금처럼 그리 성숙돼 보이지 않았고 풋풋한 소년미가 넘쳤다. 그런데 귀티는 여전했다.안서희의 카톡 닉네임은 그리움이었다.‘주혁 씨를 그리워한다는 건가?’안서희는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다시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안유진은 맞은 편에 앉아 안서희가 본 걸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주혁이 프로필 사진도 나예요. 커플 프로필 사진이 예쁜 게 없어서 서로의 사진을 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나면 자꾸 상대가 보고 싶고 그러잖아요. 나랑 주혁이 이젠 30살인데도 같이 있을 땐 유치하게...”더는 참다못한 김주혁이 안유진을 잡아당겼다.“됐어. 그만 가자.”“잠깐만요.”안서희가 부르자 김주혁이 발걸음을 멈추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서희야.”“미안해할 거 없어요. 이거 가져가요.”안서희는 테이블 위의 도시락통을 가리켰다.“병원에 환자가 주는 걸 함부로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피해 주지 말고 가져가요.”김주혁이 머뭇거리는 사이 임수경은 도시락통을 김주혁에게 건네고는 진료실을 나가 줄을 서 있는 임산부에게 말했다.“그쪽 차례예요. 들어가 봐요.”그다음 임산부가 들어간 후 임수경은 문을 쾅 하고 닫았다.안서희는 그런 그녀를 힐끗거렸고 임수경이 문 쪽을 향해 눈을 희번덕거렸다.“미친 거 아니에요? 요즘 내연녀들은 다 저렇게 건방져요?”“콜록콜록.”안서희가 마른기침하며 귀띔했다.“수경 씨, 산모 있어요.”임수경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지만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되레 검사받으러 온 산모가 웃으면서 말했다.“산부인과 의사들은 어이없는 일 많이 보죠?”임수경의 두 눈이 반짝였다.“네! 산부인과 진료실이 막장 드라마 못지않게 난장판이에요.”“그만 해요, 수경 씨.”임수경이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눈 깜짝할 사이에 바쁜 오후가 지났다.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