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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이거 태우고 싶어

안유진은 그가 오늘 왜 이토록 이상한 건지 드디어 알아챘다.

그녀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네가 사랑한 사람은 나잖아. 아니야?”

“...”

“우린 나중에 결혼할 사이야. 그 아이가 있으면 우리 행복한 삶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아이 갖고 싶은 게 소원이면 그건 너무 쉽지!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길 테고 너랑 같은 김씨 성을 따를 거잖아.”

“...”

“너도 너무 깊게 생각할 거 없어. 서희 씨 고작 임신 4주라며. 그건 아예 아이라고 할 수도 없지. 한 수정란, 세포, 아니 심지어 그냥 핏물일 뿐이야...”

“됐어, 그만해.”

김주혁의 머릿속에 핏물로 물든 종이 뭉치가 떠올랐다. 빨갛게 물든 종이가 그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체 언제 올 거냐고? 이따가 함께 저녁 먹어.”

“나 좀 혼자 있고 싶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

...

산부인과에서 의료폐기물 처리센터까지 고작 200미터 남짓한 거리이다.

수년간 의사로 지내오며 발이 닳게 다녔던 곳이라 평소에는 2분 안에 왕복으로 달려올 거리인데 오늘은 무려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것도 권진아의 부축을 받으면서 말이다.

간헐적 복통이 발작할 때면 너무 아파 식은땀이 마구 맺히고 하는 수 없이 멈춰 서서 숨을 깊게 몰아쉬어야 했다.

권진아는 그 모습이 너무 속상해 고개를 돌리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진아야.”

권진아는 얼른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물었다.

“응? 왜 그래?”

“라이터 있어?”

“나 담배 안 피워서 당연히 없지. 라이터는 갑자기 왜?”

“이거 태우고 싶어.”

안서희는 손에 쥔 종이 뭉치를 쳐다봤다.

“의료폐기물은 대부분 분쇄, 매립으로 처리되는데 이것까지 그 악취 나는 물건들이랑 함께 묻혀두고 싶지는 않아서.”

권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서 빌려올게.”

“누구한테 빌리게?”

“물어봐야지. 여기서 잠깐만 쉬고 있어.”

안서희가 그녀를 붙잡았다.

“병원은 금연이라 경비원들도 없을 거야.”

권진아는 문득 뭔가 생각났다.

“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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