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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임신 4주, 태아 상태 정상

김주혁은 31년 동안 살아오면서 아이에 관한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단지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말랑말랑한 아기가 품에 안겨있는 모습이거나 장난꾸러기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만 연상될 뿐이다.

자신의 아이가 그 언젠가 작은 핏덩이가 되어 싸구려 휴지에 싸인 채 쓰레기통에 버려질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무덤에 함께 버려질 줄이야.

안서희는 권진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저 멀리 걸어갔다.

권진아가 머리를 돌려 그를 힐긋 바라보자 안서희가 손등을 톡톡 치면서 더는 보지 말라고 곁눈질했다.

김주혁은 그녀와 알고 지낸 지 3년이 넘었지만 이토록 냉정하고 단호한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서희는 늘 얌전하고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 매번 전교 1등을 차지한 공부 천재였고 선배님들 앞에서 순순히 말을 잘 듣는 편이지만 뼛속에는 지기 싫어하는 아집을 갖고 있다.

아쉽게도 김주혁은 온화하고 다정한 그녀의 겉모습만 봐왔을 뿐 이토록 단호하게 무언가를 결정하는 모습은 처음 겪었다.

안서희가 방금 했던 말은 김주혁도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걸 꼼꼼하게 고려했다. 아이의 심신 건강과 두 사람 각자의 인생, 심지어 몇 년 뒤에 있을 재산 상속까지 철저하게 고려했다.

애초에 이 아이의 거취를 고려할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그녀는 줄곧 이해득실을 따지며 심사숙고해왔다.

김주혁은 애써 회상해보았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일을 계기로 이런 결심을 내린 걸까?

안유진이 한사코 그들과 함께 리조트로 놀러 가겠다고 했을 때?

아니면 오늘 아침 김주혁이 그녀를 찾아가 이혼을 언급했을 때?

안서희는 심지어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김주혁에게 알릴 생각조차 안 했다.

오늘 종업원이 마침 그녀의 지갑을 줍지 않았다면, 또 그가 마침 지갑을 열고 안에 담긴 임신 진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자신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김주혁과 안서희는 종래로 서로의 물건을 뒤지는 습관이 없다. 각자의 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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