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진강을 보며 물었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싫어하죠? 그래서 아빠가 엄마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싫어 하는 거 맞죠?” “그리고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아빠가 엄마 배 속에 아기를 넣은 거예요? 그럼 이젠 지안이는 언니가 되는 거예요?” 손녀딸의 황당한 질문에 어쩔 바를 몰라 하는 안진강 대신 서연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지안을 불렀다. “지안아, 할머니한테로 와. 이리로 오렴.” 윤지안은 쪼르르 할머니 서연우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손녀딸을 꼭 끌어안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지안이, 언니가 되고 싶어?” “네!” 주저하지 않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윤지안의 두 눈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동생들이 태어나면 지안이는 너무 기쁠것 같아요. 또 동생들이 크면 지안이랑 놀이도 할 수 있고 지안이의 바비인형들보다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윤지안은 바비인형에게 정신이 팔렸다. 식사를 마친 뒤. 서연우는 윤지안을 씻기고 함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물었다. “지안아, 자기 전에 할머니가 재미나는 동화책 읽어줄까?” “괜찮아요. 이젠 지안이 혼자서도 잘 수 있으니 할머니도 일찍 들어가 주무세요.” 인형 같은 얼굴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윤지안은 단호하게 서연우의 말을 거절했다. “오냐.” 서연우는 윤지안의 이마를 쓰다듬고 이불을 덮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윤지안은 핸드폰을 꺼내 침대에 엎드려 오빠 강하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할아버지 가셨어?」 서연우는 윤지안을 돌보고 있었고 안진강은 강하성을 돌보고 있었다. 「응, 가셨어.」 강하성의 대답을 본 윤지안은 방을 뛰쳐나와 오빠 방으로 달려가 말했다. “오빠, 나 잠이 안 와.”“왜?” 강하성의 물음에 윤지안이 입을 삐쭉거렸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물음에 대답했다. “오빠, 엄마랑 아빠 사이에 또 아기가 생겨도 우리를 사랑할까? 아빠는 아직도 내가 친딸이라는 사실을
강주환이 윤성아의 마음만 돌려놓는다면 그들은 정식으로 법적 부부가 될 수가 있다. 또 아이를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그때가 되면 아이를 하나 입양해서 오면 되는 것이었다. “아빠가 꼭 우리 지안이 동생 만들어줄게.” 강주환은 웃으며 말했다.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복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주환 씨, 안 대표님이 찾으십니다.” 강주환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안진강한테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강주환을 보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 “겁도 없이 감히 내 딸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다니, 너의 그 두 다리를 내가 분질러 줄까?” 강주환은 자신의 장인어른이 될 안진강이 하는 말을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다.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야? 이러면 내가 널 가만히 놔둘 것 같았어?” 흥분한 안진강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이어서 책상에 놓여 있던 물건들도 하나둘씩 내 던져졌다. “당장 꺼져, 그리고 너 같은 것을 우리 사위로 인정 못 해.” 강주환이 말하려고 하자 안진강은 그의 말을 가로 잘라 말했다. “네가 강씨 가문을 떠난다고 해도 넌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잔머리 굴리지 마! 다시 속을 일은 없을 테니까.” 안진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오래전 강주환의 말을 믿고 그를 이용해 먹으려 하였지만 도리어 자신의 꾀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었다. “만약 진짜 강씨 가문과 호진 그룹을 떠났다면 넌 빈털터리와 다름이 없잖아.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우리 딸한테 청혼해? 빈털터리가 된 네 놈에게 우리 딸을 줄 수 없어!” 이날, 강주환이 안 씨 저택에서 쫓겨난 사실을 알게 된 윤성아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는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나 쫓겨났어.” “쌤통이네.” 윤성아는 강주환이 하나도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여보...” “누가 당신 여보야?” “너! 그리고 어제밤 그 오디오는 내가 이미 저장했지. 듣고 보니 알겠더라고 당신이 얼마나 나
남숙자는 아무말 도 하지 않는 안효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그녀는 화가 난 나머지 안효연의 팔을 꽉 움켜쥐고 소리쳤다. “우리 아들이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넌 우리 아들의 대를 끊어야만 속 시원 한 거야? 이런 독한 년을 보았나!” 안효주가 건강상의 문제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숙자는 계속 이 일로 꼬투리를 잡아 그녀가 나엽을 떠나게끔 했다. “어머님, 그이도 저를 사랑하고 저도 그이를 사랑해요.” 남숙자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말했다. “사랑? 그래 너 말 잘했어. 나엽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넌 더 이상 그 애의 옆에 붙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나엽이도 왜 아이가 갖고 싶지 않겠어? 네가 정녕 우리 아들을 사랑한다면 제발 그 애의 곁에서 떠나.” 시어머니의 말을 들은 안효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을뿐더러 아이를 아예 갖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너 하고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남숙자는 상처 주는 말만 골라 했다. “이혼하기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지. 너 때문에 우리 가문의 대가 끊어질 수는 없으니, 이렇게 하자꾸나.” “나엽이가 밖에서 다른 여자와 애를 만들어 오는 거야...” 안효연은 시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했다. 이 일로 그들의 고부갈등은 끝없이 커졌다. “너...” 자기 성화에 못이긴 남숙자는 뒷목을 잡고 주저앉았고 때마침 나엽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이고, 며느리가 나 잡네!” 이 상황을 단번에 알아차린 나엽은 배시시 웃으면서 남숙자에게 말했다. “효연이가 또 우리 남 여사 화나게 했네, 나중에 내가 대신 혼낼 테니 화 풀어.” “자식새끼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자기 와이프 편이나 들고.” 안효연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엽이 말을 이었다. “우리 와이프 편 안 들면 누구 편 들어? 그리고 난 엄마 편이기도 해,
나엽은 안효연을 꼭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달콤한 키스를 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잠자리에 누운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보, 사실 약 먹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배 아픈 증상을 낫게 할 수 있어.” “무슨 방법인데?” 나엽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기 하나만 낳아줘.” “여보, 생각해 봐 아기만 가지면 9개월 동안은 마법에 걸리지 않잖아.” “그럼 9개월 후에는?” 안효연의 물음에 나엽은 대답하지 못했다. 와이프가 아이를 낳으며 고통스러워할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너무나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여보, 한 번만 아프면 돼. 성별은 상관없으니 아이 하나만 낳아줘.” 나엽은 안효연을 어루르고 달래며 말했다. 아이가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그날 저녁, 그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꿈도 꿨다. 잠을 이루지 못한 안효연은 자기 몸 상태를 나엽에게 알려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잠든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 병원에서 불임 판정을 받지는 않았으나 안효연의 몸 상태로임신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했다. 하여 그녀는 하루빨리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예쁜 아기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수요일이 되었다. 윤성아는 곧 꿈에서도 그리던 베일드를 만날 수 있었고 XC 그룹의 일도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에 미리 하루 전 영주시에 도착했다. 그 시각, 막 영주시로 도착한 강주환은 Z그룹으로 향했다. 오후 5시가 되니 그는 XC 그룹의 진짜 대표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던 도중 강주환한테 전화 한 통이걸려 왔다. “주환 씨, 영주시에 왔다는 소식 들었는데 잠깐 얼굴이나 볼까요?” 강주환은 상대방을 차갑게 대했다. “난 당신이랑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럴 시간도 없고.” “주환 씨, 우리 사이에 이
우양주는 강주환을 대신해 예약한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섰다. 일찍 온 탓인지 XC 그룹의 사람들은 아직 한 명도 오지 않았다.우양주는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한 시각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했다. 기다리다 짜증이 나 기다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쳐댈 때, 방문이 열렸다.윤성아가 걸어들어왔다.오늘 윤성아는 롤모델을 만날 생각에 신경 써 차려입고 왔다. 더없이 정상적인 검은 오피스룩을 그녀는 매혹적인 분위기로 소화했다. 살짝 풀어헤쳐진 셔츠의 단추 사이로 언뜻언뜻 그녀의 목선이 보였다. 무릎을 금방 덮는 치마는 그녀의 곧고 하얀 다리를 가렸다. 몸매가 너무나도 좋았다!옅은 화장을 한 얼굴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성아 씨?"우양주는 과거 윤성아가 강주환의 비서였을 때, 강주환의 친구 신분으로 윤성아를 본 적이 있었다. 최근 그녀에 대한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리 신경 쓰지는 않았었다. 강주환이 만취했을 때 그의 입에서 몇 마디 들은 게 다였다."당신이 어떻게..."우양주도 매우 놀랐다. 그의 따뜻한 시선이 윤성아에게 가 닿았다."XC 그룹의 대표라고 하지 않았나요?"윤성아도 우양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녀가 숭배하던 투자계의 거물인 줄은 몰랐다. 그녀는 우양주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되물었다."양주 씨가 베일드였던 거예요?"우양주도 웃었다. 날렵한 눈매가 반짝였다."성아 씨, 제가 먼저 물어봤을 텐데요."윤성아는 비즈니스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우양주에게 손을 내밀었다."네, 제가 XC 그룹의 대표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베일드 님."우양주도 매우 놀랐다.전부터 윤성아의 능력을 눈여겨봤기에 그녀가 고작 강주환의 비서이자 애인인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대단했다니!XC그룹은 투자계의 떠오르는 혜성이었다. 반년 전 갑자기 귀국할 때만 해도 윤성아는 안씨 가문에 받아들여지지도, 한연 그룹 대표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한연 그룹 없
"주환아, 엄마가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아름이는 무슨 일을 했대도 엄마가 낳은 친딸이야! 네가 평생 지켜줘, 잘 먹고 잘살 수 있게."강주환은 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아내를 지키겠다 약속했다."그녀가 내 한계를 건드리지 않는 한, 내가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먹고살 걱정은 없게 할게요.”고은희는 송아름을 쳐다보았다.강주환이 자신의 조건에 동의하기만 하면 호진 그룹를 강주환에게 돌려달라고 송아름에게 빌겠다 생각했다. 강주환 없는 호진은 이제 부도날 지경이었다.그러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어휴.”고은희는 또 한숨을 쉬었다. 송아름에게 호진 그룹을 강주환에게 돌려주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주환아,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아름이가 호진 그룹을 주지 않았으니 지금 넌 가진 게 없어. 호진이 부도가 나면 모든 것이 끝장인데, 그때가 되면 어떻게 주혜와 아름이를 책임질 건데? 엄마는 더 이상 너한테 결혼하라고 하지 않아. 엄마한테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 안 돼?"강주환은 검은 눈동자로 고은희를 쳐다보며 말했다."지금 몸이 좋지 않으니, 병원에 갑시다""아니."고은희는 거절하였다.처음 병이 들었을 때, 강주혜가 병원에 데리고 가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그녀는 무사했다. 단지 생명이 조금씩 소모되고 있어 곧 죽게 될 뿐이다. 피곤했던 그녀는 강주환과 몇 마디 하고 나서 지쳐 잠이 들었다.강주환과 송아름은 고은희의 방을 나왔다."엄마께서 병이 든 지 얼마나 됐어?""벌써 한 달 남짓 됐어요."강주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병원에 호송하여 다시 정밀검사를 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였다.“병원에 가기 싫어하세요. 여러 번 진찰을 받은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심리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대요. 주환 씨, 돌아와요. 호진 그룹과 어머니는 모두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저도요. 당신만 돌아와서 나와 결혼한다면 어머님의 건강이 좋아질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호진
그녀가 고은희의 방에 꽂아둔 꽃향기와 혼합되어야만 독이 고은희의 몸속에 남아 독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독소가 나올 수 없었다. 그러므로 병원에서도 검사해 내지 못했다.고은희는 중독 초기 별 반응이 없었다. 이상함을 눈치챘을 때 강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주혜는 한달음에 달려와 송아름을 째려보았다.“네가 우리 엄마에게 무슨 짓 한 거 아니야? 여우 같은 여자, 우리 엄마에게 독약을 먹인 건 아니겠지?”“그럴 리 없어!”고은희는 강주혜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뿐 송아름을 의심하지 않았다.“사실인지 아닌지는 병원에 가 검사해 보면 알게 되겠지!”강주혜는 고은희를 병원에 데리고 가 정밀검사를 했다. 송아름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결과가 나오자, 송아름은 차가운 눈길로 강주혜를 쳐다보며 말했다.“이제 날 믿겠지?”“지금은 아무 이상 없다 해도 네 결백은 증명할 수 없어!”그날, 병원 복도에서 두 사람은 크게 싸웠다. 고은희는 강주혜더러 사과하라 했지만 강주혜는 사과 하려려 하지 않았다. 화난 고은희는 강주혜를 때리기까지 했다.강주혜는 억울하고 화가 나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엄마, 얘 그냥 여우야. 왜 이렇게 감싸고도는 건데? 얘가 하성이와 성아 언니를 망친 거야! 윤미 이모의 딸이라면 뭐가 달라지는데? 정말 엄마를 해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는데!”“아름이는 날 해칠 수 없어!”고은희와 강주혜도 말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이 격해졌을 때 고은희는 강주혜에게 외쳤다.“가, 내가 죽는대도 네 알 바 아니야!”강주혜는 씩씩거리며 떠났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은희는 강주혜의 친엄마였다. 아무리 싸워도 강주혜는 고은희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날 싸운 뒤 강주혜는 본가에 두 번 찾아왔다. 한번은 고은희를 설득해 또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두 번째로 본가에 갔을 때, 강주혜는 고은희에게 자신과 함께 살자 했지만 거절당했다. 고은희는 죽어도 본가에서 죽겠다고 못을 박았다.그 후 지
그는 보기에도 많이 다운돼 있었다. 술잔을 들고 안에 든 술을 단숨에 훅 들이마시고서야 말을 꺼냈다.“송아름이 전화가 왔는데 하성이는 안효주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고 했어. 그 여자는 하성이의 친모가 누구인지 아는 걸까?”“제길!”옆에 있던 우양주가 못 참고 욕설을 뱉었다. 전에 강주환과 우양주, 두 사람 다 안효주가 하성이의 친모가 아닐 거라고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누구일까. 우양주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누구야? 도대체 누가 하성이의 친모인 거야. 설마 윤 비서는 아니겠지? 설마 처음부터 안효주는 윤성아가 낳은 아이를 뺏은 것은 아니겠지?”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우양주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또 한 번 욕설이 나왔다. “젠장! 윤성아의 신분을 빼앗고 번번이 네 뒤통수치고, 그러다 윤성아가 임신했단 사실을 알게 되고 윤성아가 너를 위해 낳은 아이를 훔쳐 가고...”“아니야! 그 여자는 진즉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야.”“그럼 어떻게 된 거야?”우양주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는 강주환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송아름이 너한테 알려준 하성이의 친모는 누군데? 네가 잤던 여자들 기억 안 나는 여자가 몇 사람이나 돼?”어두워진 얼굴의 강주환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윤성아와만 잠을 잤다.“말하지 않았어.”“무슨 뜻이야?”어리둥절한 우양주에게 강주환이 말했다.“나더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와 결혼을 해야 말해주겠다고 하더라고.”“하, 그 여자처럼 젊은 나이부터 나쁜 것만 배워서 M 국에서 술집 아가씨까지 했던 여자를, 사람을 가리지 않는 나도 마다하게 되는데 너는 어떨까?”냉랭하게 웃으며 말하던 우양주는 말을 다 하고 난 뒤에서야 자신의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강주환의 일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는데 말하다 보니 같이 섞여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꼴이 되었다.강주환은 슬쩍 우양주를 쳐다보았고 우양주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말이야, 요새 너랑 윤 비서 어때?”“괜찮아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