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니 왕예나는 내가 10살 되던 해에, 나를 데리고 학교를 빠지고 놀러 나갔던 그 날에 죽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언니의 죽음을 나 때문이라고 여기고, 그 원망을 내게로 돌렸다. 엄마는 나를 마치 집안일하는 하녀처럼 대했으며, 언니를 대신할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을 입양했다. 엄마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빼앗아 그 딸에게 주는 것도 모자라, 엄마가 아끼는 수양딸에게 신장까지 기증할 것을 강요했다. “그래요, 엄마. 엄마가 원한다면, 이 목숨까지 다 드릴게요!” 내가 죽기 직전까지,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View More나는 공중에서 그 잔혹한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누가 더 비참한지 봐라!” 민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내 말을 들었더라면, 왕예은이 죽기 전에 신장을 나한테 기증했을 텐데...”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려 팔뚝에 남아 있는 주삿바늘 자국을 보여주었다. “이걸 봐! 매일 투석을 받는 건 지옥에서 사는 것과 똑같다고.” 그리고 다시 야구방망이를 들어 더 강하게 휘둘렀다. 매번 방망이를 내리칠 때마다 민지는 모든 증오를 힘으로 변환해 엄마에게 쏟아부었다. “이게 당신이 받아 마땅한 벌이야!” 그녀는 소리쳤다. 엄마는 그렇게 잔인하게 맞으면서도, 힘겹게 왕민지에게 기어가며 말했다. “넌 내 딸을 죽였어...” 그 목소리는 미약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민지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민지는 높은 구두의 뒷굽으로 엄마의 손가락을 짓밟아 피와 살이 뒤엉켰다. “이 늙은이가 아직도 반항이야? 힘이 아직도 남았나?” 왕민지는 히스테리컬하게 웃으며 외쳤다. “오늘은 널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지!” 방 안은 마치 어둠이 마지막 한 조각의 빛마저 삼켜버린 듯, 절망과 분노, 증오가 얽혀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이때, 경찰의 발소리가 지하실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졌다. 경찰의 발소리가 마치 민지의 심장을 짓밟는 듯했다. 철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눈 부신 빛과 함께 경찰들이 그 음산한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 강력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민지는 충격에 휩싸여 몸을 떨었고, 그동안 오만했던 눈에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엄마는 바닥에 버려진 폐기물처럼 쓰러져 있었고,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공중에서 여전히 복잡한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를 찾았지?” 민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
[30억,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이지. 돈을 주면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걸 전부 말해주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왕민지의 아버지 왕태산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몹시 차갑고 계산적인 목소리였다. 엄마는 핸드폰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 엄마는 거의 울부짖듯 외쳤다. [양심?] 왕태산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듯 비웃었다. [돈 앞에서 양심 따위는 진작에 사라졌지.] 엄마는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이 벽에 기대어 속삭였다. “좋아... 알겠어. 그 돈 줄게. 하지만 먼저 진실부터 말해.” 두 사람이 거래는 한 낡은 공장 앞에서 이루어졌다. ...해는 기울어져 더럽고 얼룩진 벽을 비추었고, 공기에는 철과 습한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왕태산은 큰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타났다. 엄마는 직접 고용한 몇몇 경호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돈은 가져왔나?” 왕태산은 서두르며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경호원들은 돈이 든 가방을 밀어 그에게 건넸다. “이제 말해.” 왕태산은 돈을 확인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딸이 열 살 되던 해 그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어.” 왕태산은 그날, 예나 언니가 죽은 사건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왕민지가 우리 집안이 부자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꾸민 계략이었다.민지는 우리 예나 언니가 담을 넘는 순간 일부러 다리를 잡아당겨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바닥에는 못이 박혀 있었으니 언니는 그 자리에서 못에 찔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예나 언니가 죽은 후, 민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설득해 가족과 연을 끊고, 우리 집에 들어와 예나 언니와 비슷한 외모를 이용해 예나 언니의 삶을 대신 살기로 계획했다. 왕태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엄마의 가슴에 무
“그동안 너를 위해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네 눈에는 그저 족쇄이고 악의로만 보인 거니?” 엄마는 마침내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민지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스쳤다. 어쩌면 패배한 자에게 승자가 느끼는 미약한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을 기억해 둬.”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다. “네가 스스로 말한 사랑과 기대에 무너졌을 때 느꼈던 그 굴욕과 무력함을 잊지 마.”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 안은 다시금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엄마는 바닥에 앉아 머리를 감싸며 울고 있었고, 떨리는 몸과 끊임없는 흐느낌이 이 집안에서 너무도 낯설게 들렸다. “예은... 예은아...” 엄마는 내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그 이름마다 자신의 가장 깊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는 듯했다. “예은아, 엄마가 미안해...” 민지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후회가 돼? 이제 와서 잘못을 인정하려고?” 민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왕민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 내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이제 와서 뉘우친다고?” 민지는 엄마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비웃었다. “‘미안해’라는 말 몇 마디로 과거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말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기라도 해?” “적어도 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어!”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적어도 나는 바뀌려고 노력해! 네가 이렇게 남을 차갑게 비난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니?” 민지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반성? 하하!” 그녀는 비웃음으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나에
민지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마치 큰돈을 손에 쥔 듯 자랑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민지 씨, 도대체 왜 당신 어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일군 회사를 직접 무너뜨리려는 거죠?”민지의 눈에는 경멸이 스쳤다. “그 아줌마가 내 어머니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 줄 알아?” 이 말은 마치 망치처럼 문밖에서 엿듣고 있던 엄마의 가슴을 세차게 내리쳤다. 분노와 실망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던 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민지!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로 우리 가업을 파멸로 몰아가려는 거냐?”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민지는 더 이상 순수하고 착했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엄마를 차갑게 비웃었다. “어머나, 우리 착한‘엄마’왔구나.” 민지는 일부러 말을 끌며 엄마를 비꼬았다. “혹시 내가 회사 기밀을 팔아넘겼다는 증거라도 있나? 빈말로만 그러면 안 되잖아.” 딸의 이토록 차갑고 비정한 태도에, 그나마 남아 있던 희망마저 산산조각난 엄마는 망연자실했다. “왕민지! 설마 그동안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너에게는 모두 족쇄와 악의로만 느껴진 거였니?” “하하하!” 민지는 비웃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이라고? 웃기지 마. 만약 당신이 왕예은한테 그렇게 잔인하지 않았다면, 난 이미 신장 이식받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거야.” 민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공기와 침묵을 가르며 칼처럼 날카롭게 내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엄마를 향해 가차 없이 말했다. “이 멍청한 늙은이!” 민지의 이 말은 엄마의 자존심을 짓밟아 진흙 속에 던져버렸다. 레스토랑 안의 공기는 얼어붙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집 안은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무겁고 숨이 막혔다. 엄마는 분노에 휩싸여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고, 부딪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치고 발버둥 쳐도, 내 영혼은 공기를 가를 뿐이었다.한때 따스하고 행복했던 집은 이제 음산하고 두려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더 기괴하고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집 안 구석구석이 마치 이곳에서 일어난 죄악과 배신을 속삭이는 듯했다. 내 언니 예나는 정말로 억울하게 죽었다. 언니는 단지 새 친구를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새 친구’라는 사람이 바로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왕민지였다. 그리고 나는 왕민지 대신, 언니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내가 예나 언니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언니가 죽은 것이다. 언니가 죽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나를 이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악독한 왕민지를 소중히 여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왕민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고, 왕민지가 영원히 고통받기를 바랐다! ...며칠이 지나자,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엄마의 회사는 시장에서 상위권을 유지해 왔지만, 민지가 자신의 증오심을 회사에 퍼뜨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나빠졌다. 민지는 몰래 회사의 핵심 기밀을 팔아넘겼으며, 경쟁사에도 여러 번 중요한 정보를 흘렸다. 밤이 되면 민지는 방 안에서 몰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교활한 눈빛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번에도 큰돈을 벌 수 있겠군.” 민지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혼잣말을 지껄였다. 나는 여전히 공중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동안 엄마는 더 이상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끊임없이 실패하는 프로젝트들과 연이은 계약 위반으로 인해 회사는 파산 직전에 몰렸고, 엄마는 낮에는 회사의 위기를 수습하느라, 밤에는 민지에게 맞는 신장 이식자를 찾느라 지쳐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도, 엄마는 딸이 신장을 제때 이식 받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저녁 민지는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민지는 마치 도둑처럼 방에서 살며시 나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서재로 걸어가더니,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빠르게 금고를 열고, 서류를 꺼내 사진으로 찍어 저장했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흘러갔다. 다음 날 아침, “엄마... 저 오늘 투석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해요.” 민지는 힘없는 척하며 엄마에게 말했다. “1억만 더 보내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엄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며 바로 송금을 완료했다. 그 후 민지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근처 고급 쇼핑몰로 향했다. 그녀는 최신 유행하는 가방을 몇 개 고른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여기 가방들이 정말 예뻐요! 그런데 내가 이 가방들을 얼마 못 쓰고 끝나버릴 것 같아 슬퍼요...” “우리 딸, 속상해하지 마!” 엄마는 즉시 왕민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거 그냥 다 사! 돈 걱정은 하지 말고.]민지는 가방을 결제한 후, 곧바로 가게로 돌아가 그 가방들을 반품하고, 그 돈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일부러 힘겨운 모습으로 천천히 걸었다. 마치 병에 걸린 듯한 피곤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민지 집에 도착한 후, 엄마는 새로 구입한 약품들을 민지에게 보여주며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민지야, 여기 이 약들을 한번 써보자. 네 상태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몰라.” “엄마! 정말 감사해요...” 민지는 눈물을 글썽였지만, 그 말속에는 뻔한 냉소와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어떻게 되든 간에, 엄마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이 순간, 나는 한 구석에서 조용히 모든 것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화하는 거래 규칙 속에서 젊음과 희망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민지는 침실로 돌아와 문을 닫더니,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침대 머리맡
엄마는 영안실을 나서며 한마디 남겼다. “처리 다 끝나면 알려줘.” 그 순간에도 엄마는 전혀 슬픔이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의 답을 확인한 듯, 차분하고 해방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홀로 남겨진 민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로 복잡한 감정 속에 휘말려 있었지만, 그 감정을 어디에도 쏟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공중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처럼 흔들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가 간절히 바라왔던 엄마의 사랑은 끝내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민지는 아마 영원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가야,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엄마의 목소리에는 오랜만에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이런 장면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엄마... 나, 나 배 안 고파요.”민지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는데,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말하고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조명 아래서 쓸쓸하게 보였다. 나는 민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민지는 문을 꼭 닫더니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맞아! 왕예은 죽었어! 이제 믿을 만한 신장 이식자가 없다고!” 핸드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민지는 분노와 무력감에 휩싸인 듯했다. “너 그거 알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내가 다시 투석해야 한다는 뜻이야! 한 주에 세 번씩이나! 그 기분이 어떤지 알기나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을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나는 엄마와 민지에게 그저 이용 가치가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 그래! 맞아!” 민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었다. “내가 착한 척, 고분고분 순종적인 척했던 이유가 뭐였겠어? 이 집 조건이 좋
엄마는 핸드폰을 붙잡고 잠시 침묵하더니, 더 큰 분노를 폭발시켰다. “죽었다고? 거짓말하지 마! 그 애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 예나가 죽었을 때도 죽을 생각을 안 했던 애가 이제 와서 죽었을 리가 없잖아!” 엄마는 이성을 잃은 듯 고함을 질렀고, 민지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아줌마한테 방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해! 분명 책임을 피하려고 죽은 척하는 거야.” 아줌마는 겁에 질렸지만, 엄마의 말을 따르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철저히 확인했다. 그리고 확실히 확인한 후 다시 보고했다. [사모님... 정말로 틀림없어요. 못 믿으시겠다면 119에 전화해 보세요!]아줌마의 목소리는 텅 빈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한동안 핸드폰 너머에서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건 다 연기야! 죽은 척하는 거라고. 내가 직접 가서 119를 부를 거야!” 잔인한 말들이, 내가 죽은 뒤에도 엄마가 나를 평가하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119가 도착했을 때도, 엄마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저희 집 아주머니가 집에서 사람 하나 죽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구급대원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사모님. 사망자는 외상으로 인해 뇌종양이 터져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그게 말이 돼요? 멀쩡히 살아 있던 애가 갑자기 뇌종양 때문에 죽을 리가 없잖아요!”엄마의 목소리는 호텔 복도에 메아리치며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뭔가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민지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속으로는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럼... 예은이 정말 죽은 거예요? 제 신장은...” 민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엄마는 민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입 다물어! 지금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엄마는 다시 지금 우리 집에서 서 있는 의사에게 따졌다. “당신들, 제대로 확인이나 해본 거예요? 뇌종양이라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 의사는 차분히
나는 공중에서 두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내 신장은 민지에게 이식이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즉, 이제 내가 민지에게 신장을 기증할 수 있다는 통보였다. 엄마는 수술 준비를 하라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민지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나는 받지 않았다. 내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전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엄마, 예은이 계속 전화를 안 받아요! 나한테 신장 주기 싫은가 봐요. 엄마, 엉엉...” 민지는 그 순간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는 척했다. “이 쓸모없는 것! 전화 하나 못 받냐? 어디서 죽어 있길래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내가 그 망할 년을 찾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엄마의 분노가 바다에 있는 리조트의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마는 내 번호를 계속해서 눌렀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음성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엄마의 분노는 더 커졌다. “그년이 이제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민지는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 예은이 정말 화가 나서 나한테 신장을 안 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엄마는 매서운 눈초리로 왕민지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다고? 걔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 그 애가 우리 집에서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렇게 큰 집에서 살면서, 더 바랄 게 뭐 있어? 그 년이 예나를 죽이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엄마도 자신이 곧 떠올릴 그 끔찍한 과거를 의식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다시 엄마의 표정은 냉정함과 분노로 변했다. “어쨌든, 이번에 예은이 네 수술을 방해라도 하면 나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 아가. 엄마가 널 꼭 치료해 줄게. 엄마한테 자식이라고는 이제 너 하나뿐이니까!” 민지는 엄마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요즘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가끔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희귀질환인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당장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내 인생이 이제 고작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니... 이 소식을 엄마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무거운 마음으로 집, 아니 허울뿐인 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와 양딸 왕민지가 다정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피를 나눈 모녀처럼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친딸인 나는 이 집에서 그저 외딴섬 같은 존재였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냐? 너는 네 언니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냐? 너희 언니 몸 안 좋은 거 몰라? 당장 가서 밥 안 차려?” “알았어요, 엄마.” 엄마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약봉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설령 봤다고 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었겠지. 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손에 쥔 주걱마저도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냄비 안의 음식물을 한 번 휘젓는 것조차 내 모든 기운을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왕민지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가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나에게 마치 바늘로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왕민지가 소리도 없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목에는 새로 산 팔찌가 반짝였다. 불빛 아래서 유난히 빛나는 팔찌였다. “왕예은, 이거 봐. 엄마가 나에게 사준 팔찌야. 400만 원짜리야! 부럽지?” 민지는 도발적으로 손목을 흔들었다. “네가 엄마 친딸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결국 가사 도우미처럼 우리한테 구는 게 고작이잖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400만 원... 그건 내 수술비였는데...’ 내가 살아남기 위해, 겨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수년간 집에서는 일하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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