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재와 나는 10년을 함께 했다. 내가 고열에 시달리며 그의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던 그때 그는 실연당한 유연아와 술을 마시며 그녀를 위로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나는 그 순간에도 유연아의 생리통을 걱정하며 그녀 곁에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유연아의 졸업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들었다. 결국 나는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허문재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붉어진 눈으로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View More이제 다시 그와 마주했을 때 나는 그가 아부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허문재는 나를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아름아, 네가 다시는 나를 만나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새 게임 파일 준비됐어요?”나는 그의 말을 받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허문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그는 내내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애쓰며 말했다.“아이엔테크의 새 게임 네가 개발한 거라면서? 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네!”내가 개발한 그 게임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게임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칭찬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 그렇게 친하지 않잖아요. 허 대표님, 그냥 저를 이 팀장이라고 부르세요.”다시 그를 만났을 때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담담할 줄은 몰랐다.허문재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삼키고는 나를 작업실로 데려갔다.유연아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예전에 내가 허문재와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오해를 살까 봐 피하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함께 일하게 될 때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뭐,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유연아가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내가 작업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 달려오더니 커피를 들고 나를 향해 쏟으려 했다.김윤후가 재빨리 커피를 빼앗아 그녀에게 모두 끼얹었다.그는 냉소적으로 말했다.“허 대표님, 이 천박한 여자는 어디서 굴러들어온 거예요?”“죄송합니다.”허문재는 얼굴이 흐려지며 사과하고, 유연아를 끌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들끓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내 쪽으로 계속 소리쳤다.“지금 문재 오빠의 공식 여자친구는 나야! 그가 너한테 다시 잘해보자고 애원했을 때는 안 받아주더니, 이제 와서 질질 끌어? 정말 뻔뻔하네!”유연아의 행동을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과거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나도 이렇게 우스꽝스러웠나?’“두 사람 결국 사귀게 됐
밤이 깊고 조용해지면 지나간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그 일들이 내 기분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도록 나는 더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우리 팀 새 팀장이 나를 보며 농담을 했다.“아름 누나, 우리까지 끌어들이지 말아요. 머리카락도 아껴야죠.”그자의 이름은 김윤후이고 나보다 다섯 살 어리고 키도 크고 잘생겼다. 동료들 말로는 집안 배경이 좋아서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얘기가 많았다.하지만 석 달이 지나고 나서 그런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김윤후는 성격이 좋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가끔씩 맛있는 것도 사주고, 무엇보다도 능력이 뛰어났다....“아름 누나, 오늘 밤 놀러 가요!”갑자기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김윤후였다.그는 다른 건 괜찮은데 딱 하나 단점이 있다. 바로 성격이 너무 급하다는 거였다. 특히 사람을 뒤에서 놀래키는 걸 좋아했다.나는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르겠다.만약 내 팀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그의 머리를 한 대 쳤을 것이다.그날 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김윤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나갔다.나는 원래 이런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밀쳐내려고 했지만 회사 앞에 허문재가 서 있는 걸 보고는 손을 그냥 내려놨다.지난 석 달 동안, 그는 술에 취한 채로 내가 사는 집 앞에 몇 번이나 찾아온 적이 있었다.나는 그를 보러 나가지 않았고, 모른 척했다.그런데 오늘은 직접 찾아온 걸 보니 좀 의외였다.“아는 사람이에요?”김윤후는 여전히 내 어깨를 감싼 채 물었다.“네, 전 남친.”“추억 좀 나누고 갈래요?”“그럴 필요 없어요.”나는 허문재와 할 말이 없었다.김윤후는 웃으면서 대답하더니 자신의 화려한 스포츠카 문을 열었다.내가 차에 타려던 순간 허문재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그 사람, 네 새 남자친구야?”“아니야.”“그럼 왜 저렇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
허문재가 보냈다. [우리 얘기 좀 하자.] 나는 차갑게 답했다. [얘기할 것도 없어. 우린 끝났어.] 허문재의 카톡을 차단하고 연락처도 삭제했다.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드린 뒤 나는 고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일을 미룰 수 없어 해열 패치를 붙이고 회사를 버텨 나갔다. 퇴근길에 허문재가 길목을 막고 서 있었다. 그는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온몸에 찌든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평소와 달리 초라하고 지쳐 보였다. “미안해, 아름아.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일주일 전이 네 생일이었다는 것도 몰랐어.”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결혼을 미룬 게 아니야.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면서 나도 결혼이 두려웠을 뿐이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혼인신고하러 가자.” 허문재는 붉은 장미 한 다발을 내밀었다. 어쩌면 슬픈 일이었다. 10년을 사귀면서 처음 받은 꽃이 이렇게 헤어짐의 순간이었다. 나는 꽃을 받지 않고 그저 물었다. “내가 수십 통의 전화를 했을 때, 왜 받지 않았어?”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 “연아가 네가 내가 졸업식이나 졸업 여행에 오지 않았으면 해서 내 핸드폰을 가져갔어. 네가 정말 급한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 앞으로는 절대 핸드폰을 남에게 넘기지 않을게.” 연아. 또 유연아이다. 10년 동안 우리는 그녀 때문에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허문재, 나 이제 지쳤어. 아플 때도, 회사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도, 친구와 다퉜을 때도, 넌 항상 다른 사람 곁에 있었어.” “일이 바빠서였다는 거짓말은 하지 마.” “그냥 나한테 질렸다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알아서 떠나줄 텐데, 나 너한테 집착 안 해.” 허문재는 잠시 멍해지더니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변명했다. “널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기분을 생각해서라면서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회의를 미루면서까지 유연아와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야
나는 그를 무심히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발코니 문이 닫히는 순간 빗소리가 밖으로 차단되며, 모든 바람과 비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침대 위에서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알림이 떴다. 허문재의 전화였다. 이 몇 년 동안, 우리가 싸운 후에 그가 나에게 전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허문재가 어느 날 나에게 먼저 사과하면 나는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나는 용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마음만 복잡하다. 그리고 쓴맛이 서서히 몸 안으로 퍼져나갔다. 왠지 옛날 일이 떠올랐다. ... 허문재 어머니가 몇 년 전, 우리 마을에 여행을 왔다. 그때는 홍수 시즌이었고, 작은 개울이 몇 초 만에 넓은 홍수로 변했다. 그녀는 피할 수 없었고, 홍수에 휩쓸려갔다. 그때 아버지는 산에 있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했지만 그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다. 허문재 어머니는 미안해하며,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걸 보고, 나를 도시로 보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만약 계속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 대학에 갈 가능성은 희박했다. 부모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도시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지하철역에서 표를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고, 커피가 몇 가지 종류인지도 몰랐으며, KFC와 맥도날드를 헷갈려 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손발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지어 말도 사투리가 자꾸 나오곤 못했다. 김연홍이 준비해 준 옷을 입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지만 나는 여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반 친구들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그때 허문재가 나를 도와줬다. 내 성적은 마을 학교에서는 상위권에 있었지만 여기서는 뒤처졌다.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 계단에서 몰래 울고 있을 때도
유연아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참을 수 있었다.하지만 내 가족을 건드리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유연아는 부은 뺨을 감싸고 울음을 터트렸다.허문재는 그 모습을 보고 표정이 차가워졌다.“아름아, 어떻게 사람을 때려, 너무 심한 거 아니야?”나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더는 말다툴 힘도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그는 언제나 유인아를 감싸왔고, 난 이미 익숙해졌다.하지만 아빠는 참지 못했다.“허문재, 대체 넌 쟤랑 사귀는 거야, 아니면 내 딸이랑 사귀는 거야?”“아름이 엄마 장례식에 너는 왜 오지도 않았어? 아름이가 네가 바빠서 못 온다고 하면서 울던 그때부터 알아챘어. 네가 아름이한테 미안한 짓을 한걸.”“봐, 내 예상이 맞았잖아!”“오랫동안 사귀고도 결혼 안 하는 이유가 결국 밖에 다른 여자가 있어서였던 거지?”“너희 집안 형편이 좋다지만 아름이도 우리가 소중하게 키운 딸이야. 네가 이렇게 대하는 건 말이 안 돼! 내 눈앞에서까지 바람피우는 걸 감싸다니, 그럼 내가 안 보는 데서 우리 딸을 얼마나 더 괴롭혔을지 상상이 가.”“이제 그만 헤여져. 난 너희 둘 반대야!”허문재의 어머니는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을 보고 몹시 당황해하며 말을 꺼냈다.“사모님이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저는 전혀 소식을 못 들었어요...”허문재도 멍해졌다. 그는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평소와는 다르게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나는 허문재의 시선을 피했다. 허문재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늘 유연아보다 덜 중요했다.그런 사랑이라면 더는 받고 싶지 않았다.아빠가 말했다.“내 아내가 세상을 떠난 건 그쪽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당신들 베푼 은혜도 이제 다 갚았으니 앞으로는 서로 빚지고 살지 맙시다.”아빠는 내 팔을 단단히 잡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허문재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의 손을 피했다.일주일 동안이나 나는 매일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허문재가 오기
우리는 함께한 지 10년이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항상 앉아서 허문재와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지, 한 번도 헤어지자고 심한 말을 한 적은 없었다.허문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불쾌한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아름아, 헤어지자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이번엔 못 들은 걸로 할게.”유연아가 기분이 안 좋으면 그는 늘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하지만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냉정하게 나에게 감정을 조절하라고만 했다.지금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는데도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넘겼다. 마치 내가 늘 괜히 트집을 잡는 사람처럼 보였다.나는 더 이상 불평만 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허문재의 이중적인 태도는 너무 분명했다. 눈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그런데 그 순간 유연아가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문재 오빠, 아름 언니를 좀 달래줘요. 언니는 원래 저를 좋아하지 않잖아요. 오빠가 내 졸업식에 가느라 언니 생일을 못 챙겼으니 당연히 화났겠죠!”허문재는 유연아를 보며 순간적으로 표정이 달라졌다.그는 내 쪽을 힐끗 보더니 내가 불쾌해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하지만 그는 나를 너무 잘못 생각했다. 이제 나는 유연아 때문에 허문재와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다.“허문재, 우리 헤어져!”나는 그의 손에 들린 우산을 밀어내고, 온몸을 비에 내맡겼다.허문재는 내 손목을 단단히 잡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생일 하나 때문에 왜 이러는 거야? 앞으로는 네 생일 꼭 기억할게.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생일?’그가 유연아와 얘기하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걸 잊었을 것이다.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목구멍에 뭔가가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아빠가 다리를 절며 달려 나왔다.그는 허문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분노했다.“이 자식!”나는 길 내내 멍하니
유연아는 허문재의 집안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나보다 7살 어리다.어릴 때부터 허문재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랐고, 그에게 무척 의지하는 모습이었다.유연아는 외모도 예쁘고 성격도 밝고 명랑해서 모두에게 사랑받았다.처음엔 나도 그녀를 좋아했고 친동생처럼 여겼다.하지만 어느 날 유연아가 내 드레스에 커피를 엎지르고, 내가 선물한 물건을 뒤에서 버리고, 허문재의 어머니께서 내게 선물하신 옥 팔찌를 일부러 깨뜨리는 일을 겪으면서 그녀가 나를 향해 품고 있는 적의를 깨달았다.이 일을 허문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투정처럼 흘려 말한 건데 허문재는 나를 꾸짖었다.“아름아, 넌 어른인데 어린애랑 이렇게까지 따지고 드는 게 말이 돼?”그때 우리는 스무 살, 유연아는 겨우 열셋이었다.미성년자인 그녀와 내가 다투는 건 나조차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녀가 조금 더 성장하면 이런 일이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유연아가 자라면서 노골적으로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은 줄었지만 대신 더욱 교묘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내가 허문재와 데이트하는 날에도 빠지지 않았고, 내 앞에서 그의 목에 팔을 걸치고 애교를 부렸다.친구들과 식사 자리에서는 허문재와 같은 컵으로 물을 마셨고, 그의 컵에는 선명한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심지어 내가 허문재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유연아는 더러워진 옷을 벗어버리고 그의 티셔츠를 잠옷 치마로 입었다.나는 이 일들로 허문재와 여러 차례 다투었다.하지만 실상은 다툼이라기보다 내가 혼자 화를 내고 소리치는 쪽에 가까웠다.“여자는 나이가 들면 아버지라도 일정한 거리를 둬야 돼. 걔는 네 이웃 동생이고 16살이야. 아직도 네 목에 팔을 걸치고 애교를 부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네 여자친구는 나야. 네가 내 앞에서 걔와 같은 잔으로 물을 마시고 병뚜껑을 따주는 게 괜찮다고 생각해?”“유연아는 네 친여동생도 아니잖아. 옷이 더러우면 네 어머니 옷을 입은 되지 왜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빗물이 온몸을 적셔 눈을 뜰 수도 없었고, 머리는 점점 무거워졌다.이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나는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 허문재라는 세 글자가 보이는 순간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허문재와 나는 10년 동안 연애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차가운 사람이었다.나는 그의 곁을 지키며 언젠가는 철벽 같은 그의 마음도 따뜻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사랑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끝없는 소모를 견딜 수는 없었다.7일 전, 나는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엄마가 임종 직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 결혼 문제였다.“아름아, 너랑 문재가 사귄 지도 오래 됐는데 아직 결혼 얘기가 없는 거니? 듣기 싫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우리 집이랑 문재네 집은 애초에 맞지 않아. 그래도 문재가 너를 아끼고 챙겨준다면야 괜찮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만 혼자 애쓰고 있는 것 같아. 엄마는 네가 결혼하고 나서도 고생할까 봐 걱정돼.”나는 작은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허문재 부모님은 모두 대학 교수였다. 두 집안의 격차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나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문재 어머니는 집안 배경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세요. 오히려 저를 좋아하신다니까요. 문재도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 거지 곧 결혼할 거예요.”하지만 곧 진행하는 결혼이 언제 될 건지는 나조차도 몰랐다.일이 바쁘다는 건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중요한 건 허문재 어머니가 아니라 문재 자신의 마음이었다.나는 은근히 허문재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마침 유연아도 옆에 있었다.그녀는 비웃듯 말했다.“아름 언니, 가난하게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빨리 허 집안에 시집가고 싶은 거야? 굳이 결혼 안 해도 돼. 언니 어머니 치료비 몇 천만 원쯤이야 문재 오빠가 그냥 줄 텐데?”내 가정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나는 대학 졸업 후 게임 회사에 취직해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엄마의 치료비도 허리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빗물이 온몸을 적셔 눈을 뜰 수도 없었고, 머리는 점점 무거워졌다.이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나는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 허문재라는 세 글자가 보이는 순간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허문재와 나는 10년 동안 연애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차가운 사람이었다.나는 그의 곁을 지키며 언젠가는 철벽 같은 그의 마음도 따뜻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사랑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끝없는 소모를 견딜 수는 없었다.7일 전, 나는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엄마가 임종 직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 결혼 문제였다.“아름아, 너랑 문재가 사귄 지도 오래 됐는데 아직 결혼 얘기가 없는 거니? 듣기 싫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우리 집이랑 문재네 집은 애초에 맞지 않아. 그래도 문재가 너를 아끼고 챙겨준다면야 괜찮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만 혼자 애쓰고 있는 것 같아. 엄마는 네가 결혼하고 나서도 고생할까 봐 걱정돼.”나는 작은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허문재 부모님은 모두 대학 교수였다. 두 집안의 격차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나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문재 어머니는 집안 배경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세요. 오히려 저를 좋아하신다니까요. 문재도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 거지 곧 결혼할 거예요.”하지만 곧 진행하는 결혼이 언제 될 건지는 나조차도 몰랐다.일이 바쁘다는 건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중요한 건 허문재 어머니가 아니라 문재 자신의 마음이었다.나는 은근히 허문재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마침 유연아도 옆에 있었다.그녀는 비웃듯 말했다.“아름 언니, 가난하게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빨리 허 집안에 시집가고 싶은 거야? 굳이 결혼 안 해도 돼. 언니 어머니 치료비 몇 천만 원쯤이야 문재 오빠가 그냥 줄 텐데?”내 가정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나는 대학 졸업 후 게임 회사에 취직해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엄마의 치료비도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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