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를 위해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네 눈에는 그저 족쇄이고 악의로만 보인 거니?” 엄마는 마침내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민지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스쳤다. 어쩌면 패배한 자에게 승자가 느끼는 미약한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을 기억해 둬.”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다. “네가 스스로 말한 사랑과 기대에 무너졌을 때 느꼈던 그 굴욕과 무력함을 잊지 마.”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 안은 다시금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엄마는 바닥에 앉아 머리를 감싸며 울고 있었고, 떨리는 몸과 끊임없는 흐느낌이 이 집안에서 너무도 낯설게 들렸다. “예은... 예은아...” 엄마는 내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그 이름마다 자신의 가장 깊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는 듯했다. “예은아, 엄마가 미안해...” 민지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후회가 돼? 이제 와서 잘못을 인정하려고?” 민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왕민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 내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이제 와서 뉘우친다고?” 민지는 엄마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비웃었다. “‘미안해’라는 말 몇 마디로 과거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말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기라도 해?” “적어도 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어!”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적어도 나는 바뀌려고 노력해! 네가 이렇게 남을 차갑게 비난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니?” 민지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반성? 하하!” 그녀는 비웃음으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나에
[30억,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이지. 돈을 주면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걸 전부 말해주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왕민지의 아버지 왕태산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몹시 차갑고 계산적인 목소리였다. 엄마는 핸드폰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 엄마는 거의 울부짖듯 외쳤다. [양심?] 왕태산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듯 비웃었다. [돈 앞에서 양심 따위는 진작에 사라졌지.] 엄마는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이 벽에 기대어 속삭였다. “좋아... 알겠어. 그 돈 줄게. 하지만 먼저 진실부터 말해.” 두 사람이 거래는 한 낡은 공장 앞에서 이루어졌다. ...해는 기울어져 더럽고 얼룩진 벽을 비추었고, 공기에는 철과 습한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왕태산은 큰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타났다. 엄마는 직접 고용한 몇몇 경호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돈은 가져왔나?” 왕태산은 서두르며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경호원들은 돈이 든 가방을 밀어 그에게 건넸다. “이제 말해.” 왕태산은 돈을 확인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딸이 열 살 되던 해 그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어.” 왕태산은 그날, 예나 언니가 죽은 사건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왕민지가 우리 집안이 부자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꾸민 계략이었다.민지는 우리 예나 언니가 담을 넘는 순간 일부러 다리를 잡아당겨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바닥에는 못이 박혀 있었으니 언니는 그 자리에서 못에 찔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예나 언니가 죽은 후, 민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설득해 가족과 연을 끊고, 우리 집에 들어와 예나 언니와 비슷한 외모를 이용해 예나 언니의 삶을 대신 살기로 계획했다. 왕태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엄마의 가슴에 무
나는 공중에서 그 잔혹한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누가 더 비참한지 봐라!” 민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내 말을 들었더라면, 왕예은이 죽기 전에 신장을 나한테 기증했을 텐데...”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려 팔뚝에 남아 있는 주삿바늘 자국을 보여주었다. “이걸 봐! 매일 투석을 받는 건 지옥에서 사는 것과 똑같다고.” 그리고 다시 야구방망이를 들어 더 강하게 휘둘렀다. 매번 방망이를 내리칠 때마다 민지는 모든 증오를 힘으로 변환해 엄마에게 쏟아부었다. “이게 당신이 받아 마땅한 벌이야!” 그녀는 소리쳤다. 엄마는 그렇게 잔인하게 맞으면서도, 힘겹게 왕민지에게 기어가며 말했다. “넌 내 딸을 죽였어...” 그 목소리는 미약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민지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민지는 높은 구두의 뒷굽으로 엄마의 손가락을 짓밟아 피와 살이 뒤엉켰다. “이 늙은이가 아직도 반항이야? 힘이 아직도 남았나?” 왕민지는 히스테리컬하게 웃으며 외쳤다. “오늘은 널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지!” 방 안은 마치 어둠이 마지막 한 조각의 빛마저 삼켜버린 듯, 절망과 분노, 증오가 얽혀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이때, 경찰의 발소리가 지하실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졌다. 경찰의 발소리가 마치 민지의 심장을 짓밟는 듯했다. 철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눈 부신 빛과 함께 경찰들이 그 음산한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 강력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민지는 충격에 휩싸여 몸을 떨었고, 그동안 오만했던 눈에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엄마는 바닥에 버려진 폐기물처럼 쓰러져 있었고,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공중에서 여전히 복잡한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를 찾았지?” 민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
나는 요즘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가끔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희귀질환인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당장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내 인생이 이제 고작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니... 이 소식을 엄마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무거운 마음으로 집, 아니 허울뿐인 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와 양딸 왕민지가 다정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피를 나눈 모녀처럼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친딸인 나는 이 집에서 그저 외딴섬 같은 존재였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냐? 너는 네 언니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냐? 너희 언니 몸 안 좋은 거 몰라? 당장 가서 밥 안 차려?” “알았어요, 엄마.” 엄마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약봉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설령 봤다고 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었겠지. 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손에 쥔 주걱마저도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냄비 안의 음식물을 한 번 휘젓는 것조차 내 모든 기운을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왕민지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가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나에게 마치 바늘로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왕민지가 소리도 없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목에는 새로 산 팔찌가 반짝였다. 불빛 아래서 유난히 빛나는 팔찌였다. “왕예은, 이거 봐. 엄마가 나에게 사준 팔찌야. 400만 원짜리야! 부럽지?” 민지는 도발적으로 손목을 흔들었다. “네가 엄마 친딸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결국 가사 도우미처럼 우리한테 구는 게 고작이잖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400만 원... 그건 내 수술비였는데...’ 내가 살아남기 위해, 겨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수년간 집에서는 일하고, 밖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지하실에 있는 가사도우미가 썼던 방에 던져져 있었다. 바닥에는 스며 나온 물이 고여 있고, 벽지는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이 차갑고 습한 공간, 하나하나의 벽돌과, 거기에 맺힌 물방울들이 마치 내 운명을 조롱하는 듯했다. 맞다, 친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나는 이 집에서 마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왕민지는 금은보화로 치장한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한때 내 것이었던 호화로운 방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반면 나는, 병이 든 상태여도 기본적인 치료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왕민지는 내가 신장을 이식해 주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동안 아끼고 아껴 모아둔 돈을 꺼냈다. 땀과 눈물이 묻은 지폐들, 그것을 꼭 쥔 채 첫 번째 치료비를 냈다. ...치료 후 이틀간 병원에 머물렀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린 것은 나의 안부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맞이한 것은 더욱더 심해진 독설과 폭력이었다. “이 더러운 년아, 어디서 뒹굴다 왔어? 또 어딜 나가서 지랄하고 다닌 거야?” 엄마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가리키며 마치 칼날처럼 내 몸을 찢을 듯했다. “너 만약 우리 왕씨 집안을 팔아먹고 나가서 뭔 짓거리라도 했다간...”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지가 옆에서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엄마, 저것 봐요. 저렇게 병약한 걸 보니 아마 어디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고 온 것 같아요. 곧 죽을 토끼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고, 곧바로 헬스장에 들어가더니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왔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방망이를 내 등 위로 내리쳤다. “으악! 너무 아파요! 엄마, 제발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그러나 바람과 현실은 언제나 너무나도 달랐다. 엄마는 나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방망이로 연이어 내 등과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하지만 엄마는 몰랐다. 이번에는 내가 그 축축한 지하실에 갇힌 뒤,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것을. 내 영혼은 이 세상을 가볍게 떠돌았다. 마치 연기처럼, 소리도 없이. 나는 엄마와 민지가 함께 바닷가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햇빛은 둘에게 따스한 축복을 내리쬐고 있었다. 반면 나는, 마치 세상에서 이미 잊힌 먼지 같은 존재로, 그 따스한 햇살조차 닿지 않았다. “우리 아가, 이 목걸이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들면 사거라.” 엄마는 민지를 애지중지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햇빛 아래서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목걸이는 더욱 빛났다. “고마워요, 엄마!” 민지는 기쁘게 목걸이를 받아들었고,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했다. “맞다, 엄마. 예은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 영상통화라도 해서 바닷가의 멋진 풍경을 보여줄까요?” 민지의 천진난만한 제안 속에는 분명히 나에 대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또 한 번 아프게 조여왔다. 그러나 더 잔인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 애한테 무슨 전화를 해! 쓸모없는 년! 예은이만 생각하면 우리 불쌍한 예나가 떠올라. 예은이가 우리 예나랑 같이 학교에서 도망치다 우리 예나를 죽게 하지 않았니? 그래도 내가 예은이를 집에 두는 건, 내 핏줄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엄마의 목소리에는 깊은 혐오와 냉정함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는 예은이보다 네가 진짜 구세주야. 널 입양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해.”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내 영혼을 뚫고 지나갔다. “차라리 그때 예은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망할 년을...” 엄마는 덧붙였다. 눈물로 내 시야가 흐려졌다. 비록 영혼은 눈물을 흘릴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수천 개의 화살의 과녁이 된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모든 기억이 물밀 듯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언니 예나가 나를 데리고 학교에서 도망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그날...어린 나는
나는 공중에서 두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내 신장은 민지에게 이식이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즉, 이제 내가 민지에게 신장을 기증할 수 있다는 통보였다. 엄마는 수술 준비를 하라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민지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나는 받지 않았다. 내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전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엄마, 예은이 계속 전화를 안 받아요! 나한테 신장 주기 싫은가 봐요. 엄마, 엉엉...” 민지는 그 순간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는 척했다. “이 쓸모없는 것! 전화 하나 못 받냐? 어디서 죽어 있길래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내가 그 망할 년을 찾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엄마의 분노가 바다에 있는 리조트의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마는 내 번호를 계속해서 눌렀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음성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엄마의 분노는 더 커졌다. “그년이 이제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민지는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 예은이 정말 화가 나서 나한테 신장을 안 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엄마는 매서운 눈초리로 왕민지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다고? 걔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 그 애가 우리 집에서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렇게 큰 집에서 살면서, 더 바랄 게 뭐 있어? 그 년이 예나를 죽이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엄마도 자신이 곧 떠올릴 그 끔찍한 과거를 의식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다시 엄마의 표정은 냉정함과 분노로 변했다. “어쨌든, 이번에 예은이 네 수술을 방해라도 하면 나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 아가. 엄마가 널 꼭 치료해 줄게. 엄마한테 자식이라고는 이제 너 하나뿐이니까!” 민지는 엄마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는 핸드폰을 붙잡고 잠시 침묵하더니, 더 큰 분노를 폭발시켰다. “죽었다고? 거짓말하지 마! 그 애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 예나가 죽었을 때도 죽을 생각을 안 했던 애가 이제 와서 죽었을 리가 없잖아!” 엄마는 이성을 잃은 듯 고함을 질렀고, 민지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아줌마한테 방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해! 분명 책임을 피하려고 죽은 척하는 거야.” 아줌마는 겁에 질렸지만, 엄마의 말을 따르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철저히 확인했다. 그리고 확실히 확인한 후 다시 보고했다. [사모님... 정말로 틀림없어요. 못 믿으시겠다면 119에 전화해 보세요!]아줌마의 목소리는 텅 빈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한동안 핸드폰 너머에서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건 다 연기야! 죽은 척하는 거라고. 내가 직접 가서 119를 부를 거야!” 잔인한 말들이, 내가 죽은 뒤에도 엄마가 나를 평가하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119가 도착했을 때도, 엄마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저희 집 아주머니가 집에서 사람 하나 죽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구급대원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사모님. 사망자는 외상으로 인해 뇌종양이 터져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그게 말이 돼요? 멀쩡히 살아 있던 애가 갑자기 뇌종양 때문에 죽을 리가 없잖아요!”엄마의 목소리는 호텔 복도에 메아리치며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뭔가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민지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속으로는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럼... 예은이 정말 죽은 거예요? 제 신장은...” 민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엄마는 민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입 다물어! 지금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엄마는 다시 지금 우리 집에서 서 있는 의사에게 따졌다. “당신들, 제대로 확인이나 해본 거예요? 뇌종양이라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 의사는 차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