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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온하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차우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싫어하는 여자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한테 상처 주고 싶어?”

차우빈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남편한테 다른 여자랑 결혼하라고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가 다시 뱉었다.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자욱해졌다. 얼핏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지면서 참으로 살벌했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때면 각진 얼굴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고집불통인 그의 모습에 온하나가 말했다.

“할 얘기 없으면 그만 나가. 그리고 이혼 합의서에 이미 사인했으니까 차 대표도 최대한 빨리 사인해.”

그러고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차우빈이 손목을 꽉 잡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쓰읍... 이거 놔, 차우빈. 계속 이러면 신고할 거야.”

차우빈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는 온하나를 품에 확 잡아당겼다. 옅은 담배 연기가 온하나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더 세게 끌어안았다.

‘오늘 내 생일을 까먹은 건 그렇다 쳐도 또 날 모욕하려고?’

온하나는 터져 나오는 억울함과 분노를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차우빈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잘생긴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졌고 하얀 피부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온하나, 죽고 싶어?”

기안시에서 차우빈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반박 한마디를 하더라도 망하진 않을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했다.

온하나는 차우빈의 성난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차우빈, 오늘부터 난 두려울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어.”

그녀는 발끝을 들어 그의 얼굴에 가까이했다.

“차 대표, 정신과에 가보는 게 어때? 날 못살게 굴면서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정신 분열증일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러다가 자해라도 하면 큰일이야.”

그러고는 차우빈의 목을 확 깨물었다. 차우빈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밀어버렸다.

“온하나...”

차우빈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온하나는 여전히 허리를 곧게 편 채 전혀 피하지 않았고 눈빛도 아주 확고했다.

“자해는 좀 그러니까 내가 도와줬어.”

차우빈은 온하나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차마 손찌검까지 하진 못했다. 결국 분노를 터트리면서 집을 나갔다.

온하나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

일요일, 온하나는 아침을 먹은 후 집으로 갔다. 오늘은 오빠 온서후의 생일이었다.

간병인이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봤고 어머니 나희경은 맨날 온서후와 함께 재활을 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도 거의 없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부모에게는 돈이 별로 없었다. 온서후는 차우빈의 도움으로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체계적인 재활 훈련에 들어갔다. 그 덕에 예전보다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하나 왔어? 우빈이 출장 갔다 왔어?”

나희경은 온하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온하나는 차우빈 얘기는 꺼내지 않고 케이크를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오빠는요?”

“글 쓰는 훈련 중이야. 네가 사준 연습장 거의 다 써.”

“다 쓰면 또 사줄게요.”

온하나가 입술을 적시면서 시선을 늘어뜨렸다.

“엄마, 지금 가진 돈 아끼면서 써요. 당분간은 돈을 드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 또한 오늘 그녀가 온 목적 중 하나였다. 심명희가 보상으로 돈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온하나는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원하는 건 진짜로 집이라는 따뜻함을 느꼈던 신비 캐슬의 집이었다.

“무슨 일 있어?”

나희경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아니요. 그냥 뭐든지 다 차우빈한테 기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온하나의 말에 나희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최근 2년 동안 온하나를 대하는 차우빈의 태도가 어땠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혼하지 않는 한 나희경은 차우빈의 장모님이었고 돈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친척들 앞에서도 체면이 섰다.

“하나야,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는 없어. 네 사촌 언니 남편 봐봐. 작은 회사 다니는 과장인데도 밖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거. 재주 없는 남자도 이런데 우빈이 같은 남자는 오죽하겠어?”

“엄마, 이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오빠한테 가볼게요.”

온하나는 어머니의 뜻을 알고 있었다. 더는 그녀와 이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나야, 잘 생각해. 이혼하더라도 받을 건 다 받아야 해. 돈이 많은 집안이라서 그 사람들한테는 보잘것없는 돈이라도 우리한테는 평생 먹고살 돈이야.”

온하나는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온서후의 안방으로 향했다.

2년간의 재활 훈련 끝에 온서후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혼자서 일상적인 생활도 가능해졌다. 최근에 온하나는 그에게 글쓰기 훈련을 하라고 했고 온서후도 열심히 훈련했다.

온하나를 본 온서후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직접 쓴 글씨를 자랑했다.

“하나야, 내가 썼어.”

온서후가 지적장애는 있어도 어릴 적부터 온하나에게 아주 잘해줬다. 누가 여동생을 괴롭히면 바로 나서서 감싸주었다.

“오빠, 점점 잘하고 있어.”

온하나는 온서후를 쳐다보았다. 가끔 오빠가 부럽기도 했다. 평생 걱정 없이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점심에 오빠와 케이크를 먹은 후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참는 나희경을 보면서 바로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어쨌거나 아끼면서 살다가 사치를 부리는 건 쉬워도 사치를 부리다가 아끼면서 사는 건 어려우니까.

2년 동안 차우빈 덕에 그들은 돈 걱정 없이 살았다. 하여 다시 예전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건 너무도 싫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온하나가 차우빈의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자 나희경은 근심이 점점 깊어졌다.

나희경은 온하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는 건 되돌릴 여지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온씨 가문을 나설 때 나희경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당부했다. 어리석게 굴지 말고 고상한 척하지 말고 울어야 할 땐 울기도 하라고 했다. 어쨌거나 돈이 손에 들어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나희경은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이혼하지 않기를 바랐다.

온하나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 집에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적금이 꽤 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러자 나희경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돈으로 얼마나 버틴다고. 네 아빠랑 오빠가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 몰라서 그래? 네 한 달 월급이 얼만데? 네 오빠가 쓸 돈은 모아야 할 거 아니야. 나중에 나랑 네 아빠가 죽었을 때 돈이 없으면 네 오빠 어떡해?”

온하나는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걱정 속에 온하나는 항상 없었다.

예전에 다른 친척과 얘기를 나눌 때 친척이 온하나를 걱정했었다.

“뇌성 마비인 오빠가 있어서 하나가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요?”

그때 나희경은 이렇게 말했었다.

“하나는 얼굴이 예뻐서 데려가는 사람이 꼭 있을 거예요. 오빠는 하나 가족인데 당연히 버려선 안 되죠.”

오빠는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라는 걸 온하나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온하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나희경을 달랬다.

“엄마, 먼저 가볼게요. 괜한 생각 하지 말고요.”

집에서 나온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차가운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발걸음도 더욱 확고해졌다.

차우빈은 온하나가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이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온하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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