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카드에 있던 아빠 병원비가 왜 동결됐어요?”집 안 청소를 하던 나희경은 온하나의 말에 걸레도 던져 버리고 휴대폰을 열었다. 온하나에게 40만 원을 송금하려 했지만 은행 카드가 정지되었다는 메시지가 뜨자 나희경은 미쳐버렸다.“어떻게 된 거야, 카드를 도난당한 거야?”온하나가 짐을 싸서 돌아온 날 이미 카드에서 대부분의 돈을 이체했지만 아직 카드에는 몇백만 원이 남아있었다.그래도 자기 남편이고 온하나도 차우빈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지 매정하게 굴지 않았다.온하나는 나희경의 이런 속셈도 모른 채 부드럽게 달랬다.“엄마, 조급해하지 말고 은행에 가서 물어봐요. 난 병원 입원 병동에 가서 며칠 늦출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그녀가 막 병원에 돈을 냈는데 나희경의 전화가 걸려 왔다.“엄마, 무슨 일이에요?”“하나야, 은행에서 신고가 들어와서 아직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 어떡해?”온하나의 마음에 서늘한 기운이 몰아쳤다. 누가 이유도 없이 엄마의 계좌를 신고하겠나.차우빈 말고는 소리 소문 없이 나희경의 통장을 동결할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엄마,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알아볼게요.”온하나는 전화를 끊고 망할 남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애인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뒤에서 그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그 시각 막 신비 캐슬로 돌아온 차우빈은 점심 모임 때 술을 많이 마셔 속이 괴로웠다.온하나의 전화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여자가 드디어 남편을 떠올렸나 보다.전화벨이 몇 초간 울리더니 연결이 되고 술에 취한 차우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돌아와. 나 집에 있어.”상대를 찾지 못해 짜증이 나 있던 온하나는 곧바로 차를 몰고 신비 캐슬로 향했고 가정부가 그녀를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취하셨어요. 방금 끓인 해장국인데 갖고 가서 마시라고 하세요. 안 그러면 두통이 올 거예요.”차우빈은 덩치만 크지 쓸모가 없었다.
차우빈은 얼굴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위를 꾹 눌렀다.“온하나, 내가 착한 사람으로 보여?”“차우빈, 경고하는데 우리 둘 사이에 내 가족을 끌어들이지 마. 나한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어. 하루 종일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명분도 안 주는 건 너무 쓰레기 짓 아니야?”온하나는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늘 소원했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온씨 집안은 온하나에게 이타적인 사랑을 베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온하나에게 온전한 집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운명을 바꿀 수 있게 해줬다.특히 온대훈은 나희경 몰래 그녀에게 애정을 베풀어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온하나는 감사할 따름이었다.차우빈의 창백한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질투가 나면 대놓고 말해도 돼.”온하나는 기가 막혔다.“허, 차 대표님 본인을 참 과대평가하시네. 나보고 매정한 사람이라며.”차우빈은 늘 자기 앞에서는 상냥하고 다정하고 작은 걸로도 기뻐하던 사람이 이제는 위협을 받은 복어처럼 굴자 화가 났지만 두통과 함께 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머리 아프니까 화나게 하지 마. 위 아파, 약 가져다줘.”“난 너 챙겨줄 의무 없으니까 가서 도우미한테 말해.”온하나가 막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양지원의 나긋한 목소리가 다급한 발걸음과 함께 들려왔다.“오빠, 좀 괜찮아?”낮에 있었던 모임에서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떠날 때 조금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던 차우빈의 모습을 본 양지원은 기억하고 있다가 숙취해소제를 들고 부랴부랴 찾아왔다.“숙취해소제 사 왔어.”온하나는 그 목소리에 다시 뒤돌아가 차우빈 옆에 누워 몸을 기대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가슴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며 살짝 올라가 눈꼬리가 사람을 낚으려는 갈고리 같았다.차우빈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순간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와 은근한 눈빛에 멈칫했다.온하나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물었다. 금방 결혼했을 때 서로 잘 알지 못
차우빈의 얼굴이 검게 일그러졌다. 그 앞에서 부실하다는 말로 대놓고 창피를 주다니.그리고 부부 사이 일을 왜 외부인에게 말하지? 이전의 온하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온하나는 차우빈이 노려보자 삐딱하게 말했다.“왜, 내 말이 틀려? 아니면 내가 따로 침대 마련해 줄 테니 네 보배둥이랑 해볼래?”“하나 언니, 나에 대해 편견이 있는 건 알지만 난 단지 오빠가 걱정돼서 그래. 힘들게 서로를 찾았는데 최대한 오빠한테 잘해주고 싶어서”양지원의 말을 듣고 온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럼 다정한 두 남매 사이 방해하지 않을게. 듣기만 해도 역겨운 게 떠오르거든, 근친상간.”말끝마다 오빠, 오빠 거리는 게 듣기 역겨웠다.떠나는 온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차우빈은 눈썹을 찡그렸다. “약 내려놓고 가. 난 좀 자야겠어.”양지원은 그의 안색이 좋지 않자 내키지 않았지만 얌전히 숙취해소제를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마당으로 나오자 온하나가 차를 몰고 가려는 모습을 보고 한걸음에 다가가 막고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양지원, 난 동물 싫어해.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 특히 불여우는. 그러니까 내려.”양지원은 오늘 온하나의 행동에 정말 놀랐다.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거침없이 욕설을 뱉을 수 있을까.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차우빈을 제외하고 차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특히 심명희는 그녀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기에 양지원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하나 언니, 우빈 오빠가 언니 안 좋아하는데 더 이상 뻔뻔하게 매달리지 마. 언니 미워하는 거 몰라? 안 그러면 일부러 전화해서 언니 엄마 통장 동결시키지도 않았을 거야. 괴롭히고 모욕하기 위해 곁에 두는 건데 이런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야?”“알려줘서 고마운데 네가 오해하는 게 있어, 양지원. 차우빈이 사인을 안 하는 거야. 못 기다리겠으면 당장 사인하라고 해. 너한테 그럴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욱은 상사의 지시를 받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황을 알아보고는 바로 다시 차우빈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은행장 말로는 여사님께서 시켰다면서 나희경 씨 계좌에 몇백만 원밖에 없어서 별문제는 없대요. 제가 이미 은행장에게 정지 풀라고 했어요.”차우빈은 별로 놀랍지 않은 결과에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카드가 병원에 연동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대표님, 확인할 필요 없이 은행장이 병원에 연동되어 있다고 말했어요.”늘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진욱이 이걸 물어보지 않을 리가 없었고 차우빈은 의심했다.‘고작 몇백만 원밖에 없다고?’그동안 온하나가 그에게서 받은 돈은 두 사람에게 나눠줬고 나희경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어떻게 몇백만밖에 없을까.“나희경 명의의 다른 통장도 확인해 봐.”지시를 마친 차우빈은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숙취해소제를 흘끗 쳐다보고는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청소하고 있던 안영자는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물건을 정리했다.“대표님, 몸이 안 좋으세요?”“집안 어른이시니까 상황 파악은 하실 줄 알겠죠? 본분을 지키고 집안에 아무나 들이지 마세요.”안영자는 의아해했다. “대표님,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가 말하는 아무나가 누구를 말하는지 몰랐던 안영자가 작게 중얼거리자 안 그래도 굳어 있던 차우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 집 주인이 누구죠?” “당연히 대표님이시죠.”“등본에 제 이름만 적혀 있나요? 내가 여기 이사 왔을 때도 얘기한 것 같은데요.”안영자도 바보가 아니었다. 등본에는 온하나 이름이 있었지만 심명희는 분명 둘이 곧 이혼한다고 했었다.게다가 2년 동안 차우빈은 눈에 띄게 온하나를 싫어하고 여기저기 양지원을 데리고 다녔기에 순간 안영자도 혼란스러웠다.원래도 화가 났던 차우빈은 술기운에 몸도 불편해지자 더 짜증이 났다.“나와 온하나를 챙기라고 부른 거지 다른 일에 멋대로 나서서 결정하지 마세요. 못 하겠으면 그만두고요.”안영자는 차씨 가문에 들어온 지 10년이 다 되었고
온하나는 병원 근처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때때로 변하는 차우빈에 태도를 짐작하고 싶지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다.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은성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멀리서부터 하나 씨인 줄 알았어요.”“반 선생님, 오늘 당직이세요?”“네, 왜 여기 앉아 계세요?”온하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날씨가 좋아서 여기 잠깐 앉았다가 아빠 보러 가려고요.”“아버님 상태는 무척 안정적이고 간병인도 있으니까 걱정 없이 쉬셔도 돼요.”반은성은 온대훈의 주치의로 그동안 온하나도 잘 챙겨주었다.“반 선생님, 고마워요.”“하나 씨, 우린 동료잖아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사실 아버님 같은 상황에서는 더 버틸 이유가 없어요.”3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내면서 전혀 미동이 없었고 인공호흡기와 영양 수액에 의존해 버티고 있었는데 여러 신체 기관은 이미 각기 다른 정도로 무너진 데다가 매달 생명 부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현재의 온대훈은 심장 박동만 살아있는 시체라고 할 수 있으며 깨어날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이를 온하나도 알고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온씨 집안에서 온대훈의 각별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나희경은 그녀가 학교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그녀는 더더욱 없었을 거다.가족에 대한 이해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온대훈 덕분이었다. 양아버지는 외로웠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려주었다.“호의는 알지만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제가 능력이 있으니까 하루라도 더 버티고 싶어요.”반은성은 온하나의 고집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모습은 3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돈은 제가 마련할 테니 제발 우리 아빠 목숨만 살려주세요.”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녀는 단호하고 힘차게 말했고 가냘픈 아가씨의 눈에는 무시할 수 없는 확고함이 담겨 있었다.지금까지도 반은성은 온하나를 볼 때마다 그날 밤 온하나의 단호하고 확신에
“엄마, 저 바보 아니에요. 매달 드리는 돈도 다 알고 있어요. 2년 동안 손에 적어도 4, 6억은 있어야 하잖아요.”“온하나, 내가 머리 검은 짐승을 키웠네. 네 말대로면 난 돈 한 푼 쓰지 말라는 얘기니?”온하나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나희경의 얼굴을 보면서 꾹 참고 말했다.“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건 우리 아빠 병원비잖아요.”“차우빈 돈이 그렇게 많은데 네 아빠 병원비가 걔 옷보다 비싸겠어? 그런 남자한테 시집간 여자는 평생 놀고먹어도 되는데 넌 이혼이나 하겠다고 난리야. 얼굴 좀 예쁜 것 말고 네가 가진 게 뭐야? 가서 잘 구슬려서 조금씩 뜯어내는 것만 해도 네가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온하나는 나희경의 태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자기 양어머니조차 이런 말을 한다니. 자신과 차우빈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좋게 말해서 부부지 사실은 돈과 몸이 오가는 거래였다.하긴,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모든 사람이 차우빈이 그녀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온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떨면서 말했다.“엄마, 차우빈과 내가 무슨 사이든 엄마랑 아빠는 결국 부부잖아요. 제때 병원비 내주세요.”“집에 와서 날 화나게 하지 마. 네 아빠는 네가 치료하겠다고 고집부린 거야. 병원비도 네가 알아서 해. 시집까지 간 애가 내 집에 자꾸 오지 마.”차우빈이 4억을 준다고 했어도 나희경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이유는 온하나에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하지만 온하나가 차우빈과 이혼을 고집하면 돈줄이 끊어질 테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온하나는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희경은 그녀가 이혼을 원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온하나가 알고 있는 나희경이라면 분명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3년 전 그녀는 이미 온대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온하나가 줄곧 손을 놓지 않았고 3년
“아니, 온하나 그 망할 년 따라온 거야. 반은성이랑 같이 밥 먹고 있어.”차우연이 손가락을 들어 온하나의 위치를 가리키자 양지원은 온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를 갈고 한숨을 쉬었다.‘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온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야?’차우연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양지원은 고개를 돌려 싱긋 웃었다.“하나 언니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네 오빠랑 이혼하려는 거였네.”차우연이 반은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양지원은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어딜 감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반은성한테 들이대? 다 오빠처럼 멍청해서 저 집구석 먹여 살릴 거라고 생각하나.”“저렇게 불쌍하고 연약한 게 남자들한테 제일 먹히니까. 아참, 내가 소식 하나 들었는데 온하나 전 남자 친구가 돌아와서 이 호텔에 묵고 있대.”“전에도 남자 친구가 있었어?”“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사이가 좋았대. 아주 가까웠다고 하더라.”양지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고 차우연은 눈을 부릅떴다. ‘어쩐지 오빠가 한동안 온하나에게 잘해주다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싶었더니 남이 쓰다 버린 거였네.’차우빈이 누구인데 남이 쓰다 버린 여자를 만나겠나.말없이 멍하니 있는 차우연을 보고 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반 선생님도 온하나가 이혼한 걸 알면 본인은 물론 그쪽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정신을 차린 차우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지원 언니, 내 새언니 되고 싶지 않아?”“무슨 소리야, 오빠 아직 이혼 안 했잖아?” 양지원이 짐짓 사람 좋은 척을 해댔다.“큰엄마가 온하나 사인하게 했고 이제 오빠만 남았어. 우리가 불 좀 지필까?”양지원은 속으로 기뻐서 펄쩍 뛰었지만 겉으로는 소심한 척했다.“어떻게 하려고?”차우연이 다가가 양지원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이자 양지원의 눈빛에 즐거움이 감돌았지만 이내 긴장한 기색으로 돌변해 차우연의 말을 가로챘다.“그러면 네 오빠가 널 의심할 텐데 화내면 어떡해?”“화내도 별 수 있어? 난 그냥 정보를 알려준 거고
차우연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차우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 밥 안 먹어?”예쁜 여자들 놔두고 같이 밥 먹으러 와줬는데 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림받았다.그 시각 온하나는 마음속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정승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말 받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를 끊은 뒤 입꼬리를 오리며 반은성에게 사과를 했다.“반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방금 해외에서 돌아와서 위층 호텔에 묵고 있는데 제가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제가 밥 살게요.”행복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은성은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라는 걸 알았다.“괜찮아요. 나도 갈 때 됐어요. 오늘 당직이라 늦게 가면 안 좋을 것 같네요.”반은성의 미소는 차우빈에 비하면 극과 극이었다, 따스한 온기와 서슬 퍼런 차가움.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온하나는 호텔 엘리베이터 입구로 달려갔다.입꼬리와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3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말도 없이 돌아오다니.차우연과 양지원은 이 순간 복도에 숨어 온하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온하나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차우연은 다급했다. “오빠가 아직 연락이 없는데 어떡하지?”“오빠한테 전화해. 온하나가 정말 오빠한테 미안할 짓 하는 거면 우리도 두고 볼 수는 없잖아?”차우연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올려보냈는데 차우빈이 오지 않고는 완벽한 극본이 될 수 없었다.막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끊어버리자 화가 난 차우연은 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마누라가 옛 애인 만나러 갔는데 내버려둘 거야? 오랜만에 만난 남녀가 못 참고 무슨 짓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차우빈에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본 양지원은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제안했다.“우리가 올라가서 사진이라도 찍으면 헛걸음한 건 아니잖아.”차우연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성이 관심을 보인 것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