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부터 대학까지 정승호는 온하나의 곁에서 늘 오빠 같은 존재였다. 맛있는 음식은 그녀에게 먼저 챙겨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와 도와줬다.온하나는 여덟 살 때 온씨 집안으로 입양됐는데 당시 정승호는 이미 열 살이었고 입양이 어려워 보육원에서 자랐다.보육원의 형편이 좋지 않아 정승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육원에서 키워야 할 아이들이 열댓 명이나 되어 그의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그는 원장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선뜻 나서서 학업을 포기했고 2년 동안 보육원에서 원장을 도와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식당에서 설거지와 식재료 다듬기 등의 일을 도우며 돈을 모아 온하나에게 몰래 건네기도 했다.그가 17살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한 친절한 분이 원장에게 연락해 그를 후원하겠다면서 온하나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주기도 했다.정승호는 후원해 준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후원해 준 그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배불리 먹고 나니 온하나의 얼굴엔 무기력함이 드러났다.시간이 늦었는데 신비 캐슬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었다.“무슨 생각해? 조금 전까지 그렇게 잘 놀다가 왜 갑자기 우울해진 거야?”정승호는 온하나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함께 자랐으니 그보다 온하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온하나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아무 생각도 안 해. 시간이 늦어서 이만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내가 마련한 집으로 갈래? 여기서 멀지도 않고 병원이랑도 가까워.”조수연은 정승호가 온하나를 위해 집을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승호 오빠, 진짜 잘해준다. 우리 하나 지금 딱 집이 필요하거든.”정승호가 온하나를 바라보았지만 온하나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 보이지 않았다.온하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시선을 들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야, 마음만 받을게.”어젯밤 차우빈이 이미 모진 말을 들었는데 이혼을 앞두고 더 이상 오해를 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외롭고 쓸쓸한 밤을 그녀 홀로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려 왔던가.찬바람이 목을 타고 들어와 온하나를 오들오들 떨게 했지만 온하나는 여전히 자신이 속해 있다고 느꼈던 유일한 장소인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이때 차우빈은 서재에 있지 않고 거실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마당에 멍하니 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온하나를 보고 손을 들어 발코니 문을 열어젖혔다.“머리가 흐릿한데 찬 바람 맞는다고 정신이 들겠어?”남자의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어두운 밤에 산속 샘물처럼 흘러나왔다.온하나가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차우빈이 나른하게 창문에 기댄 채 담배를 끼운 손을 입술에 가져가고 있었다.온하나가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본 차우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집에 와서 날 보니까 그렇게 싫어? 오늘 그 자식이랑 있을 땐 아주 한심하게 웃던데?”말끝을 살짝 올리는 그가 한껏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온하나, 내가 얼마나 돈이 부족하면 선물 사는데 다른 사람이 돈까지 내줘?”차우빈의 질책에 온하나는 갑자기 고집을 부리는 자신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차 대표님, 자기가 한심하다고 남들도 똑같게 못났다고 생각하지 마. 다 차 대표님처럼 마음에 둔 사람 따로, 같이 자는 사람 따로 있지는 않으니까.”“허!”차우빈은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온하나를 노려보더니 눈썹을 찡긋한 채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렸다.“다 사모님께 배운 거지.”오랫동안 밖에 서 있던 온하나는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에 흠칫 떨고 있었다.“차우빈, 뻔뻔한 사람은 많이 봤어도 너처럼 뻔뻔한 건 처음이야.”차우빈은 그녀와 더 말을 섞지 않고 팔을 당기며 집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내일 김혜숙의 생일 파티가 있기 때문에 온하나가 오늘 밤에 돌아올 거라고 확신했다. 함께 참석해야 김혜숙의 의심을 사지 않을 테니까....다음 날, 그들이 집을 나서려는데 차우빈이 선물 상자를 건넸다.“그 쓸데없는 팔찌 버려.”온하나는 차우빈이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
“뭘 멍청하게 쳐다봐?”짜증스러운 목소리에 온하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은 채 차는 한참을 달렸고 차우빈은 똑바로 앉아 약지에 낀 결혼반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차가 교외로 들어서면서 요란하게 흔들렸고 온하나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꾸만 옆으로 몸이 쏠렸다.무의식적으로 몸을 지탱해 줄 무언가를 잡으려고 손으로 차 시트를 더듬거리는데 차우빈은 한심한 그녀의 모습에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안으며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옅은 담배 냄새와 상쾌한 풀냄새가 섞인 익숙한 체취였다.“멍청하긴.”차우빈의 나무라는 말에 온하나는 차우빈과 처음 차를 같이 탔을 때를 떠올렸다.작고 마른 몸이 차가 급정거하거나 방향을 틀면 온하나의 몸도 말을 듣지 않고 쓰러졌다.그때도 차우빈이 먼저 이렇게 안아줬는데 두 사람이 가까이 밀착한 것도 그게 처음이었다.온하나는 시선을 들어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그녀가 없었다.차우빈은 온하나가 집에 두고 온 결혼반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다.시선을 내려 손에 있는 반지를 보던 온하나는 심장이 저릿했다.온하나가 직접 그린 그림을 차우빈이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다듬고 주문 제작한 결혼반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였고 가격도 당연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그녀의 반지는 라일락꽃 모양에 다이아몬드가 하트 모양으로 박혀 있었고 차우빈의 것은 라일락 매듭과 꽃이 얽혀 있는 형태였다.온하나는 손에 낀 반지를 바라보며 눈시울이 촉촉해졌고 시선을 돌려 차우빈의 약지에 있는 반지를 보자 가슴이 무언가에 눌린 듯 답답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이때 그녀를 안고 있던 남자가 손을 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수술 받으시고 몸 안 좋으니까 자극받으면 안 돼. 말 가려서 해.”온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괜히 감동했지. 그는 여전히 그녀를 미워하고 증오했고 2년이 지나도 그건 바뀌지 않았다.
특히 온하나가 차우빈의 귀에 대고 말할 때 차우빈이 살짝 몸을 기울이는 모습은 배려가 넘쳤고 평소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네 사람이 마주치자 차우연이 싫은 기색을 보였다.“재수 없어. 나오자마자 원수랑 만나네.”양지원이 부드럽게 달랬다.“우연아, 그런 말 하지 마. 오늘 할머니 생신인데 다들 기분 좋게 보내면 좋잖아.”차우빈이 경고했다.“왔으면 말조심해. 할머니 기분 언짢게 하면 너부터 쫓아낼 거야.”“오빠, 그래도 내가 사촌 동생이고 큰엄마가 날 데리고 왔는데 나한테 왜 이래?”온하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귀띔했다.“말 가려서 해요, 아가씨. 자꾸 못된 소리만 하는 그 입이 할머니 미움 사기 충분한데 진짜 쫓겨나면 창피하잖아요.”화가 난 차우연은 발을 굴렀고 오늘 김혜숙 생일만 아니었으면 온하나와 대판 싸웠을 것이다.차우연이 온하나에게 못되게 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온하나가 이번에는 나서서 반격할 줄은 몰랐다.온하나를 돌아보던 차우빈의 눈가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아내가 만만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양지원은 떠나는 차우빈과 온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몰래 이를 갈았고 차우빈의 놀라워하는 기색도 알아차렸다.온하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잡것이 어떻게 차우빈 같은 훌륭한 남자를 얻었을까.성큼성큼 걸어온 도기영은 양지원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는 손등을 두드렸다.물론 차우빈과 온하나를 본 그녀의 마음도 양지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엄마.” 나지막이 부르는 양지원의 목소리엔 억울함이 가득했고 도기영이 눈치를 주었다.“일단 들어가. 심씨 가문에서 크게 파티를 열지는 않았어도 언론에서 냄새 맡고 왔을지도 몰라. 넌 공인이니까 이미지 관리를 잘해야지.”양지원은 도기영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감정을 추슬렀다.온하나와 차우빈이 거실에 들어서자 도우미는 곧바로 반갑게 소리쳤다.“여사님, 도련님이랑 작은 사모님 오셨어요.”거실은 양가 가족과 지인들로 가득 찼
직장에서 그녀는 능력도 뛰어나고 지식도 차고 넘치는 에이스였기에 이금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고 정작 이금주는 오래된 경력만 빼면 엉망이었다.거실에 앉아있던 세 사람은 온하나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많은 친척 앞에서 늘 다소곳한 태도를 보이던 사람이 오늘은 단번에 무시하자 기분이 여간 언짢은 게 아니었기에 더더욱 온하나가 못마땅했다.온하나가 가만히 있자 차우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뒤뜰에서 들어오는 김혜숙에게 시선을 돌렸다.“할머니.”온하나는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며 웃으면서 달려가 김혜숙을 부축했다.말 없는 차별에 거실에 있던 세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그전까지 김혜숙은 건강했지만 얼마 전 심장 문제로 수술을 받아 몇 달 동안 요양 중이었기에 이번 생일 파티도 크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일일이 상대할 수 없을뿐더러 그다지 시끄럽게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김혜숙은 소중한 사람이 생일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온하나를 본 순간 얼굴이 활짝 피었다.“하나야, 얼마 만에 할머니 보러 오는 거야. 할머니가 죽으면 널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봐 그러는 거야?”말하며 눈을 부릅뜬 채 차우빈을 노려보는 김혜숙의 뜻은 분명했다.“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몸이 이렇게 좋으신데. 젊은 사람도 이렇게 빨리 회복하지 못해요.”김혜숙을 부축해 거실에 앉은 온하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자신을 향한 못마땅한 눈빛을 무시했다.3년 동안 참았는데 결국엔 죽 쒀서 개를 준 꼴이 되었다. 이젠 더 참을 필요도, 그들에게 밉보일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할머니 몸이 좋아졌어. 요즘 많이 먹어서 살도 쪘는데 우리 하나는 왜 이렇게 말랐어?”김혜숙이 말하며 고개를 들어 차우빈을 노려보았고 두 눈에 담긴 질책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다이어트한다고 저녁에 밥을 안 먹어요.”웃고 있던 온하나의 얼굴이 굳어졌다.‘남 탓하는 데는 일등이지.’“
이금주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불만스럽긴 했지만 자기 집안이 심씨 가문에 걸맞지 않다는 걸 알기에 화가 나도 말하지 못했다.“네, 외숙모님 말씀이 맞아요. 아주버님은 큰일을 할 사람이라 철없이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우빈 씨랑은 다르죠.”말을 마친 온하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도 한층 낮추었고 이따금 차우빈을 돌아보았다.김혜숙이 다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차우빈, 사랑 연기? 원한다면 제대로 해줄게.’당연히 이를 알고 있었던 김혜숙은 차우빈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찰나 온하나가 이렇게 말하자 지팡이를 들고 내리쳤다.“망할 놈, 하나한테 제대로 사과해. 안 그러면 내가 오늘 너 가만 안 둔다.”심명희는 불쾌해하며 말했다.“엄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뭐 하는 거예요? 애들 부부 문제는 애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게 놔둬요.”김혜숙도 일가친척들을 보며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온하나를 위로했다.“하나야,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 내가 너 대신 제대로 혼내줄게.”이때 양지원이 도기영의 팔짱을 낀 채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본 김혜숙의 얼굴은 더욱 불쾌해졌다.“크게 벌이지 않고 친척들만 모여서 하기로 하지 않았나? 이 사람들은 왜 왔어?”김혜숙의 말을 들은 도기영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더니 다가가 살갑게 웃으며 말했다.“여사님, 저랑 명희 씨, 금주 씨는 자매 같은 사이인데 여사님 생신에 어떻게 안 올 수 있겠어요?”말하며 그녀의 시선이 차우빈의 얼굴에 머물렀고 볼수록 만족스러웠다.김혜숙은 못마땅했지만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데 제 발로 찾아오기까지 한 손님이라 낮게 말했다.“사모님 성의는 받죠.”다만 불쾌한 듯 양지원을 바라보는 눈가엔 질책과 비난이 담겨 있었고 양지원은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찔리는 표정으로 도기영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지원아,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도기영은 이금주와 심명희를 힐끗 쳐다보며 그녀에게 선물을 건네라는 신호를 보냈다.“엄마, 지원이가 선물 가져왔어요. 내가 봤는데 분명 엄마도 좋아하
김혜숙도 어리석지 않았다. 마음에 들긴 했지만 받을 수는 없었다. 안 그러면 예쁘고 착한 손주며느리에게 미안했고 게다가 이 물건은 한눈에 봐도 비싸고 싸구려 장난감 따위가 아니었다.“지원아, 혜각 스님께서 널 위해 준 거면 네가 이 물건과 인연이 있다는 뜻이니 가져가렴.”온하나는 웃었다. 역시 김혜숙이다. 쉽게 매수할 수 없는 사람이다.그녀는 차우빈을 향해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여보, 제가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 가져와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그 말에 김혜숙은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우리 하나가 준비한 건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지.”차우빈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가 준비한 건 그녀 가방에 있지 않나?그가 준비한 건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녀의 손에 건네지도 못했는데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뜻인 걸까.하지만 그녀가 원하니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의 돈으로 산 건 무척 불쾌했으니까.게다가 온하나의 여보라는 말이 그의 마음에 잘 먹혀들어 갔다.김혜숙은 온하나가 차우빈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는 차우빈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이제야 뭘 좀 아네.’그는 느긋하게 코트 주머니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눈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빠르게 그를 쳐다보는 온하나의 눈엔 경멸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가자 차우빈이 멈칫했다.‘싫으면서 왜 가져가, 이 여자가 진짜!’그동안 온하나가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사람에게 매섭게 쏘아붙일 줄도 알았다.온하나는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알면서도 못 본 척하며 김혜숙에게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얼마 전에 이 팔찌가 성해 경매에 나온다고 해서 우빈 씨한테 특별히 낙찰받으라고 시켰어요. 마음에 드시는지 한번 보세요.”김혜숙은 팔찌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정말 예쁜 팔찌네. 내가 좋아하는 색이야. 너도 참, 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엄청 비싼데.”“할머니, 이건 값을 측정할 수가 없어요. 이 팔찌 누구 손에서
“엄마, 어제 점원에게 직접 물어봤는데 분명 틀림없었어. 아마 오빠가 선물이 너무 저급하다고 생각해서 이 팔찌를 준 것 같아.”“이 정도 일도 못 해내면서 우빈이 아내가 될 수 있겠어?”도기영의 질책에 양지원은 억울했다. 차우빈이 즉석에서 선물을 바꿨을 수도 있는데 이게 왜 그녀의 탓인가.양지원은 가끔 차우빈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 사위로서 차우빈에 대한 도기영의 집착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온하나가 곁눈질로 낮게 수군거리는 두 모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문득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복수는 즉석에서 빠르게 돌려줘야 하는 법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만만하게 굴면 남의 손에 멋대로 휘둘리고 만다.연회가 시작될 때까지 김혜숙의 시선은 팔찌를 떠나지 않았고 차우빈은 온하나의 귀에 속삭였다.“온하나, 할머니 기분이 좋으니까 망치진 않았네. 하지만 이러고도 어떻게 출연료를 달라고 해?”온하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차 대표님, 사랑 연기와 할머니 기쁘게 해드리는 것 두 가지 다 해냈잖아. 내 연기가 부족한 것 같으면 그쪽 보배둥이한테 하라고 해. 저렇게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저 여자가 누릴 수 있게 내가 자리라도 비켜줄까?”김혜숙이 자리에 있어서 겉으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던 차우빈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두 사람은 애정이 가득해 보여도 사실 이건 차우빈을 도발한 것에 대한 벌이라는 걸 온하나만 알고 있었다.간지럼을 못 참는 그녀인데 차우빈 이 개자식이 손바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온하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간지러움 때문이었다.그녀는 너무 웃지 않으려고 입 안쪽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진짜 웃음이라도 터지면 민망한 상황이 된다.김혜숙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봐, 얼마나 보기 좋아. 너희 둘이 제일 잘 어울려. 우빈아, 하나 배에 더 소식이 없으면 병원에 가봐. 우리 손주 생기는 데 방해되지 않게.”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