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빈의 얼굴이 검게 일그러졌다. 그 앞에서 부실하다는 말로 대놓고 창피를 주다니.그리고 부부 사이 일을 왜 외부인에게 말하지? 이전의 온하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온하나는 차우빈이 노려보자 삐딱하게 말했다.“왜, 내 말이 틀려? 아니면 내가 따로 침대 마련해 줄 테니 네 보배둥이랑 해볼래?”“하나 언니, 나에 대해 편견이 있는 건 알지만 난 단지 오빠가 걱정돼서 그래. 힘들게 서로를 찾았는데 최대한 오빠한테 잘해주고 싶어서”양지원의 말을 듣고 온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럼 다정한 두 남매 사이 방해하지 않을게. 듣기만 해도 역겨운 게 떠오르거든, 근친상간.”말끝마다 오빠, 오빠 거리는 게 듣기 역겨웠다.떠나는 온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차우빈은 눈썹을 찡그렸다. “약 내려놓고 가. 난 좀 자야겠어.”양지원은 그의 안색이 좋지 않자 내키지 않았지만 얌전히 숙취해소제를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마당으로 나오자 온하나가 차를 몰고 가려는 모습을 보고 한걸음에 다가가 막고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양지원, 난 동물 싫어해.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 특히 불여우는. 그러니까 내려.”양지원은 오늘 온하나의 행동에 정말 놀랐다.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거침없이 욕설을 뱉을 수 있을까.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차우빈을 제외하고 차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특히 심명희는 그녀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기에 양지원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하나 언니, 우빈 오빠가 언니 안 좋아하는데 더 이상 뻔뻔하게 매달리지 마. 언니 미워하는 거 몰라? 안 그러면 일부러 전화해서 언니 엄마 통장 동결시키지도 않았을 거야. 괴롭히고 모욕하기 위해 곁에 두는 건데 이런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야?”“알려줘서 고마운데 네가 오해하는 게 있어, 양지원. 차우빈이 사인을 안 하는 거야. 못 기다리겠으면 당장 사인하라고 해. 너한테 그럴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욱은 상사의 지시를 받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황을 알아보고는 바로 다시 차우빈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은행장 말로는 여사님께서 시켰다면서 나희경 씨 계좌에 몇백만 원밖에 없어서 별문제는 없대요. 제가 이미 은행장에게 정지 풀라고 했어요.”차우빈은 별로 놀랍지 않은 결과에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카드가 병원에 연동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대표님, 확인할 필요 없이 은행장이 병원에 연동되어 있다고 말했어요.”늘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진욱이 이걸 물어보지 않을 리가 없었고 차우빈은 의심했다.‘고작 몇백만 원밖에 없다고?’그동안 온하나가 그에게서 받은 돈은 두 사람에게 나눠줬고 나희경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어떻게 몇백만밖에 없을까.“나희경 명의의 다른 통장도 확인해 봐.”지시를 마친 차우빈은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숙취해소제를 흘끗 쳐다보고는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청소하고 있던 안영자는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물건을 정리했다.“대표님, 몸이 안 좋으세요?”“집안 어른이시니까 상황 파악은 하실 줄 알겠죠? 본분을 지키고 집안에 아무나 들이지 마세요.”안영자는 의아해했다. “대표님,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가 말하는 아무나가 누구를 말하는지 몰랐던 안영자가 작게 중얼거리자 안 그래도 굳어 있던 차우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 집 주인이 누구죠?” “당연히 대표님이시죠.”“등본에 제 이름만 적혀 있나요? 내가 여기 이사 왔을 때도 얘기한 것 같은데요.”안영자도 바보가 아니었다. 등본에는 온하나 이름이 있었지만 심명희는 분명 둘이 곧 이혼한다고 했었다.게다가 2년 동안 차우빈은 눈에 띄게 온하나를 싫어하고 여기저기 양지원을 데리고 다녔기에 순간 안영자도 혼란스러웠다.원래도 화가 났던 차우빈은 술기운에 몸도 불편해지자 더 짜증이 났다.“나와 온하나를 챙기라고 부른 거지 다른 일에 멋대로 나서서 결정하지 마세요. 못 하겠으면 그만두고요.”안영자는 차씨 가문에 들어온 지 10년이 다 되었고
온하나는 병원 근처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때때로 변하는 차우빈에 태도를 짐작하고 싶지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다.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은성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멀리서부터 하나 씨인 줄 알았어요.”“반 선생님, 오늘 당직이세요?”“네, 왜 여기 앉아 계세요?”온하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날씨가 좋아서 여기 잠깐 앉았다가 아빠 보러 가려고요.”“아버님 상태는 무척 안정적이고 간병인도 있으니까 걱정 없이 쉬셔도 돼요.”반은성은 온대훈의 주치의로 그동안 온하나도 잘 챙겨주었다.“반 선생님, 고마워요.”“하나 씨, 우린 동료잖아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사실 아버님 같은 상황에서는 더 버틸 이유가 없어요.”3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내면서 전혀 미동이 없었고 인공호흡기와 영양 수액에 의존해 버티고 있었는데 여러 신체 기관은 이미 각기 다른 정도로 무너진 데다가 매달 생명 부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현재의 온대훈은 심장 박동만 살아있는 시체라고 할 수 있으며 깨어날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이를 온하나도 알고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온씨 집안에서 온대훈의 각별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나희경은 그녀가 학교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그녀는 더더욱 없었을 거다.가족에 대한 이해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온대훈 덕분이었다. 양아버지는 외로웠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려주었다.“호의는 알지만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제가 능력이 있으니까 하루라도 더 버티고 싶어요.”반은성은 온하나의 고집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모습은 3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돈은 제가 마련할 테니 제발 우리 아빠 목숨만 살려주세요.”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녀는 단호하고 힘차게 말했고 가냘픈 아가씨의 눈에는 무시할 수 없는 확고함이 담겨 있었다.지금까지도 반은성은 온하나를 볼 때마다 그날 밤 온하나의 단호하고 확신에
“엄마, 저 바보 아니에요. 매달 드리는 돈도 다 알고 있어요. 2년 동안 손에 적어도 4, 6억은 있어야 하잖아요.”“온하나, 내가 머리 검은 짐승을 키웠네. 네 말대로면 난 돈 한 푼 쓰지 말라는 얘기니?”온하나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나희경의 얼굴을 보면서 꾹 참고 말했다.“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건 우리 아빠 병원비잖아요.”“차우빈 돈이 그렇게 많은데 네 아빠 병원비가 걔 옷보다 비싸겠어? 그런 남자한테 시집간 여자는 평생 놀고먹어도 되는데 넌 이혼이나 하겠다고 난리야. 얼굴 좀 예쁜 것 말고 네가 가진 게 뭐야? 가서 잘 구슬려서 조금씩 뜯어내는 것만 해도 네가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온하나는 나희경의 태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자기 양어머니조차 이런 말을 한다니. 자신과 차우빈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좋게 말해서 부부지 사실은 돈과 몸이 오가는 거래였다.하긴,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모든 사람이 차우빈이 그녀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온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떨면서 말했다.“엄마, 차우빈과 내가 무슨 사이든 엄마랑 아빠는 결국 부부잖아요. 제때 병원비 내주세요.”“집에 와서 날 화나게 하지 마. 네 아빠는 네가 치료하겠다고 고집부린 거야. 병원비도 네가 알아서 해. 시집까지 간 애가 내 집에 자꾸 오지 마.”차우빈이 4억을 준다고 했어도 나희경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이유는 온하나에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하지만 온하나가 차우빈과 이혼을 고집하면 돈줄이 끊어질 테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온하나는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희경은 그녀가 이혼을 원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온하나가 알고 있는 나희경이라면 분명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3년 전 그녀는 이미 온대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온하나가 줄곧 손을 놓지 않았고 3년
“아니, 온하나 그 망할 년 따라온 거야. 반은성이랑 같이 밥 먹고 있어.”차우연이 손가락을 들어 온하나의 위치를 가리키자 양지원은 온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를 갈고 한숨을 쉬었다.‘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온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야?’차우연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양지원은 고개를 돌려 싱긋 웃었다.“하나 언니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네 오빠랑 이혼하려는 거였네.”차우연이 반은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양지원은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어딜 감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반은성한테 들이대? 다 오빠처럼 멍청해서 저 집구석 먹여 살릴 거라고 생각하나.”“저렇게 불쌍하고 연약한 게 남자들한테 제일 먹히니까. 아참, 내가 소식 하나 들었는데 온하나 전 남자 친구가 돌아와서 이 호텔에 묵고 있대.”“전에도 남자 친구가 있었어?”“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사이가 좋았대. 아주 가까웠다고 하더라.”양지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고 차우연은 눈을 부릅떴다. ‘어쩐지 오빠가 한동안 온하나에게 잘해주다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싶었더니 남이 쓰다 버린 거였네.’차우빈이 누구인데 남이 쓰다 버린 여자를 만나겠나.말없이 멍하니 있는 차우연을 보고 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반 선생님도 온하나가 이혼한 걸 알면 본인은 물론 그쪽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정신을 차린 차우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지원 언니, 내 새언니 되고 싶지 않아?”“무슨 소리야, 오빠 아직 이혼 안 했잖아?” 양지원이 짐짓 사람 좋은 척을 해댔다.“큰엄마가 온하나 사인하게 했고 이제 오빠만 남았어. 우리가 불 좀 지필까?”양지원은 속으로 기뻐서 펄쩍 뛰었지만 겉으로는 소심한 척했다.“어떻게 하려고?”차우연이 다가가 양지원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이자 양지원의 눈빛에 즐거움이 감돌았지만 이내 긴장한 기색으로 돌변해 차우연의 말을 가로챘다.“그러면 네 오빠가 널 의심할 텐데 화내면 어떡해?”“화내도 별 수 있어? 난 그냥 정보를 알려준 거고
차우연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차우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 밥 안 먹어?”예쁜 여자들 놔두고 같이 밥 먹으러 와줬는데 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림받았다.그 시각 온하나는 마음속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정승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말 받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를 끊은 뒤 입꼬리를 오리며 반은성에게 사과를 했다.“반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방금 해외에서 돌아와서 위층 호텔에 묵고 있는데 제가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제가 밥 살게요.”행복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은성은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라는 걸 알았다.“괜찮아요. 나도 갈 때 됐어요. 오늘 당직이라 늦게 가면 안 좋을 것 같네요.”반은성의 미소는 차우빈에 비하면 극과 극이었다, 따스한 온기와 서슬 퍼런 차가움.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온하나는 호텔 엘리베이터 입구로 달려갔다.입꼬리와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3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말도 없이 돌아오다니.차우연과 양지원은 이 순간 복도에 숨어 온하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온하나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차우연은 다급했다. “오빠가 아직 연락이 없는데 어떡하지?”“오빠한테 전화해. 온하나가 정말 오빠한테 미안할 짓 하는 거면 우리도 두고 볼 수는 없잖아?”차우연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올려보냈는데 차우빈이 오지 않고는 완벽한 극본이 될 수 없었다.막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끊어버리자 화가 난 차우연은 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마누라가 옛 애인 만나러 갔는데 내버려둘 거야? 오랜만에 만난 남녀가 못 참고 무슨 짓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차우빈에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본 양지원은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제안했다.“우리가 올라가서 사진이라도 찍으면 헛걸음한 건 아니잖아.”차우연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성이 관심을 보인 것 때문
온하나의 눈매가 휘어지며 짓는 미소는 한겨울의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마음을 비춰주는 빛과 같았다.정승호는 입꼬리마저 파르르 떨렸다.“하나야, 오랜만이야.”정승호는 상대를 품에 꼭 안았고 온하나의 은은한 체취가 그를 따뜻하고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쁨에 젖어 있을 때 방의 문이 쾅 열렸고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성큼성큼 들어온 차우빈이 막 떨어진 두 사람을 보고는 눈 밑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서늘함을 드러냈다.“차우빈, 여기 어떻게 왔어?”온하나는 그의 눈가에 담긴 분노를 알 수 있었고 그녀는 차우빈과 정승호를 번갈아 보았다.정승호는 잠옷을 입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몰랐다가 온하나는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차우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온하나, 돈이 그렇게 부족해? 와서 몸까지 팔 정도로?”서슬 퍼런 눈빛에 짙은 경멸을 담은 채 온하나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보다 더 돈 많이 주는 사람 있어?”차우빈은 시선을 돌려 정승호를 바라보며 입가에 조롱 섞인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아, 너였구나.”억눌린 잇새로 겨우 빠져나오는 듯한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지만 얼굴에 걸린 사악한 미소에 온하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차우빈 때문에 놀란 건지 그가 무서운 건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그의 목소리는 온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이 차가웠다.“온하나, 이 자식이 그동안 해외에서 쓴 돈 네가 대준 거지? 겨우 이 정도 집안으로 너한테 얼마나 주길 바라는데?”한 마디 한 마디가 독이 든 칼처럼 온하나의 가슴에 꽂혔고 상대의 뒤에는 차우연과 양지원이 뒤따라오고 있었다.특히 양지원은 나른한 표정으로 문에 기대선 채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온하나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떨리고 심장의 저릿한 고통이 여지없이 밀려왔다.자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랑스러운 보배둥
온하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계속해서 차우빈의 가슴을 때렸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랑 정승호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어. 외국에서 와서 만난 건데 그게 왜? 차우빈, 우린 곧 이혼할 거고 난 네 물건이 아니야. 넌 나한테 이럴 자격 없다고.”온하나가 아무리 소리치고 때려도 차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고 액셀을 콱 밟았다.검은색 벤틀리는 주인의 기분에 맞춰 낮은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추운 겨울밤을 질주했다.신비 캐슬로 돌아온 차우빈이 문을 열고 온하나를 차에서 끌어 내릴 때 그때야 그는 온하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하나가 이처럼 화를 내는 경우는 드문 데 일단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온몸이 굳어지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온하나의 손가락은 뻣뻣해졌고 이가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부딪혔으며 다리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렸다.그럼에도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놓지 않아 선홍빛 피가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차우빈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미워했는지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온하나, 힘 풀어. 입술 놔.”더 망설일 게 없었던 차우빈은 곧바로 손으로 그녀의 이를 막았고 그제야 풀려난 아랫입술이 살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온 채 빨갛게 부어있었다.2년 전 차우빈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외삼촌 나훈경이 돈을 달라고 찾아와서 차우빈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서는 가족도 무시한다며 그녀를 욕했을 때였다.그런데 오늘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자 차우빈은 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위층으로 달려갔다.“아주머니, 목욕물 받아놓으세요.”막 나가려던 안영자는 차우빈의 다급한 표정에 서둘러 따라갔다.그녀는 더 묻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곧장 욕실로 가서 목욕물을 틀었다.차우빈은 온하나를 침대에 내려놓은 채 이불로 그녀와 자신을 감싸고 계속해서 그녀의 손을 비벼댔다.한참이 지나자 피가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