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나는 병원 근처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때때로 변하는 차우빈에 태도를 짐작하고 싶지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다.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은성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멀리서부터 하나 씨인 줄 알았어요.”“반 선생님, 오늘 당직이세요?”“네, 왜 여기 앉아 계세요?”온하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날씨가 좋아서 여기 잠깐 앉았다가 아빠 보러 가려고요.”“아버님 상태는 무척 안정적이고 간병인도 있으니까 걱정 없이 쉬셔도 돼요.”반은성은 온대훈의 주치의로 그동안 온하나도 잘 챙겨주었다.“반 선생님, 고마워요.”“하나 씨, 우린 동료잖아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사실 아버님 같은 상황에서는 더 버틸 이유가 없어요.”3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내면서 전혀 미동이 없었고 인공호흡기와 영양 수액에 의존해 버티고 있었는데 여러 신체 기관은 이미 각기 다른 정도로 무너진 데다가 매달 생명 부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현재의 온대훈은 심장 박동만 살아있는 시체라고 할 수 있으며 깨어날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이를 온하나도 알고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온씨 집안에서 온대훈의 각별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나희경은 그녀가 학교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그녀는 더더욱 없었을 거다.가족에 대한 이해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온대훈 덕분이었다. 양아버지는 외로웠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려주었다.“호의는 알지만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제가 능력이 있으니까 하루라도 더 버티고 싶어요.”반은성은 온하나의 고집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모습은 3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돈은 제가 마련할 테니 제발 우리 아빠 목숨만 살려주세요.”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녀는 단호하고 힘차게 말했고 가냘픈 아가씨의 눈에는 무시할 수 없는 확고함이 담겨 있었다.지금까지도 반은성은 온하나를 볼 때마다 그날 밤 온하나의 단호하고 확신에
“엄마, 저 바보 아니에요. 매달 드리는 돈도 다 알고 있어요. 2년 동안 손에 적어도 4, 6억은 있어야 하잖아요.”“온하나, 내가 머리 검은 짐승을 키웠네. 네 말대로면 난 돈 한 푼 쓰지 말라는 얘기니?”온하나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나희경의 얼굴을 보면서 꾹 참고 말했다.“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건 우리 아빠 병원비잖아요.”“차우빈 돈이 그렇게 많은데 네 아빠 병원비가 걔 옷보다 비싸겠어? 그런 남자한테 시집간 여자는 평생 놀고먹어도 되는데 넌 이혼이나 하겠다고 난리야. 얼굴 좀 예쁜 것 말고 네가 가진 게 뭐야? 가서 잘 구슬려서 조금씩 뜯어내는 것만 해도 네가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온하나는 나희경의 태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자기 양어머니조차 이런 말을 한다니. 자신과 차우빈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좋게 말해서 부부지 사실은 돈과 몸이 오가는 거래였다.하긴,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모든 사람이 차우빈이 그녀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온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떨면서 말했다.“엄마, 차우빈과 내가 무슨 사이든 엄마랑 아빠는 결국 부부잖아요. 제때 병원비 내주세요.”“집에 와서 날 화나게 하지 마. 네 아빠는 네가 치료하겠다고 고집부린 거야. 병원비도 네가 알아서 해. 시집까지 간 애가 내 집에 자꾸 오지 마.”차우빈이 4억을 준다고 했어도 나희경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이유는 온하나에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하지만 온하나가 차우빈과 이혼을 고집하면 돈줄이 끊어질 테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온하나는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희경은 그녀가 이혼을 원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온하나가 알고 있는 나희경이라면 분명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3년 전 그녀는 이미 온대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온하나가 줄곧 손을 놓지 않았고 3년
“아니, 온하나 그 망할 년 따라온 거야. 반은성이랑 같이 밥 먹고 있어.”차우연이 손가락을 들어 온하나의 위치를 가리키자 양지원은 온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를 갈고 한숨을 쉬었다.‘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온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야?’차우연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양지원은 고개를 돌려 싱긋 웃었다.“하나 언니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네 오빠랑 이혼하려는 거였네.”차우연이 반은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양지원은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어딜 감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반은성한테 들이대? 다 오빠처럼 멍청해서 저 집구석 먹여 살릴 거라고 생각하나.”“저렇게 불쌍하고 연약한 게 남자들한테 제일 먹히니까. 아참, 내가 소식 하나 들었는데 온하나 전 남자 친구가 돌아와서 이 호텔에 묵고 있대.”“전에도 남자 친구가 있었어?”“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사이가 좋았대. 아주 가까웠다고 하더라.”양지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고 차우연은 눈을 부릅떴다. ‘어쩐지 오빠가 한동안 온하나에게 잘해주다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싶었더니 남이 쓰다 버린 거였네.’차우빈이 누구인데 남이 쓰다 버린 여자를 만나겠나.말없이 멍하니 있는 차우연을 보고 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반 선생님도 온하나가 이혼한 걸 알면 본인은 물론 그쪽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정신을 차린 차우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지원 언니, 내 새언니 되고 싶지 않아?”“무슨 소리야, 오빠 아직 이혼 안 했잖아?” 양지원이 짐짓 사람 좋은 척을 해댔다.“큰엄마가 온하나 사인하게 했고 이제 오빠만 남았어. 우리가 불 좀 지필까?”양지원은 속으로 기뻐서 펄쩍 뛰었지만 겉으로는 소심한 척했다.“어떻게 하려고?”차우연이 다가가 양지원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이자 양지원의 눈빛에 즐거움이 감돌았지만 이내 긴장한 기색으로 돌변해 차우연의 말을 가로챘다.“그러면 네 오빠가 널 의심할 텐데 화내면 어떡해?”“화내도 별 수 있어? 난 그냥 정보를 알려준 거고
차우연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차우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 밥 안 먹어?”예쁜 여자들 놔두고 같이 밥 먹으러 와줬는데 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림받았다.그 시각 온하나는 마음속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정승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말 받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를 끊은 뒤 입꼬리를 오리며 반은성에게 사과를 했다.“반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방금 해외에서 돌아와서 위층 호텔에 묵고 있는데 제가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제가 밥 살게요.”행복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은성은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라는 걸 알았다.“괜찮아요. 나도 갈 때 됐어요. 오늘 당직이라 늦게 가면 안 좋을 것 같네요.”반은성의 미소는 차우빈에 비하면 극과 극이었다, 따스한 온기와 서슬 퍼런 차가움.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온하나는 호텔 엘리베이터 입구로 달려갔다.입꼬리와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3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말도 없이 돌아오다니.차우연과 양지원은 이 순간 복도에 숨어 온하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온하나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차우연은 다급했다. “오빠가 아직 연락이 없는데 어떡하지?”“오빠한테 전화해. 온하나가 정말 오빠한테 미안할 짓 하는 거면 우리도 두고 볼 수는 없잖아?”차우연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올려보냈는데 차우빈이 오지 않고는 완벽한 극본이 될 수 없었다.막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끊어버리자 화가 난 차우연은 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마누라가 옛 애인 만나러 갔는데 내버려둘 거야? 오랜만에 만난 남녀가 못 참고 무슨 짓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차우빈에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본 양지원은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제안했다.“우리가 올라가서 사진이라도 찍으면 헛걸음한 건 아니잖아.”차우연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성이 관심을 보인 것 때문
온하나의 눈매가 휘어지며 짓는 미소는 한겨울의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마음을 비춰주는 빛과 같았다.정승호는 입꼬리마저 파르르 떨렸다.“하나야, 오랜만이야.”정승호는 상대를 품에 꼭 안았고 온하나의 은은한 체취가 그를 따뜻하고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쁨에 젖어 있을 때 방의 문이 쾅 열렸고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성큼성큼 들어온 차우빈이 막 떨어진 두 사람을 보고는 눈 밑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서늘함을 드러냈다.“차우빈, 여기 어떻게 왔어?”온하나는 그의 눈가에 담긴 분노를 알 수 있었고 그녀는 차우빈과 정승호를 번갈아 보았다.정승호는 잠옷을 입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몰랐다가 온하나는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차우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온하나, 돈이 그렇게 부족해? 와서 몸까지 팔 정도로?”서슬 퍼런 눈빛에 짙은 경멸을 담은 채 온하나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보다 더 돈 많이 주는 사람 있어?”차우빈은 시선을 돌려 정승호를 바라보며 입가에 조롱 섞인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아, 너였구나.”억눌린 잇새로 겨우 빠져나오는 듯한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지만 얼굴에 걸린 사악한 미소에 온하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차우빈 때문에 놀란 건지 그가 무서운 건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그의 목소리는 온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이 차가웠다.“온하나, 이 자식이 그동안 해외에서 쓴 돈 네가 대준 거지? 겨우 이 정도 집안으로 너한테 얼마나 주길 바라는데?”한 마디 한 마디가 독이 든 칼처럼 온하나의 가슴에 꽂혔고 상대의 뒤에는 차우연과 양지원이 뒤따라오고 있었다.특히 양지원은 나른한 표정으로 문에 기대선 채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온하나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떨리고 심장의 저릿한 고통이 여지없이 밀려왔다.자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랑스러운 보배둥
온하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계속해서 차우빈의 가슴을 때렸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랑 정승호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어. 외국에서 와서 만난 건데 그게 왜? 차우빈, 우린 곧 이혼할 거고 난 네 물건이 아니야. 넌 나한테 이럴 자격 없다고.”온하나가 아무리 소리치고 때려도 차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고 액셀을 콱 밟았다.검은색 벤틀리는 주인의 기분에 맞춰 낮은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추운 겨울밤을 질주했다.신비 캐슬로 돌아온 차우빈이 문을 열고 온하나를 차에서 끌어 내릴 때 그때야 그는 온하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하나가 이처럼 화를 내는 경우는 드문 데 일단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온몸이 굳어지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온하나의 손가락은 뻣뻣해졌고 이가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부딪혔으며 다리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렸다.그럼에도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놓지 않아 선홍빛 피가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차우빈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미워했는지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온하나, 힘 풀어. 입술 놔.”더 망설일 게 없었던 차우빈은 곧바로 손으로 그녀의 이를 막았고 그제야 풀려난 아랫입술이 살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온 채 빨갛게 부어있었다.2년 전 차우빈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외삼촌 나훈경이 돈을 달라고 찾아와서 차우빈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서는 가족도 무시한다며 그녀를 욕했을 때였다.그런데 오늘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자 차우빈은 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위층으로 달려갔다.“아주머니, 목욕물 받아놓으세요.”막 나가려던 안영자는 차우빈의 다급한 표정에 서둘러 따라갔다.그녀는 더 묻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곧장 욕실로 가서 목욕물을 틀었다.차우빈은 온하나를 침대에 내려놓은 채 이불로 그녀와 자신을 감싸고 계속해서 그녀의 손을 비벼댔다.한참이 지나자 피가 굳었다
그렇게 말한 뒤 차우빈은 온하나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직접 욕조에서 사람을 끌어낸 뒤 온하나의 몸에 걸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온하나가 저항하며 그를 때렸지만 개 같은 남자는 여전히 온하나의 몸에 있는 옷을 잡아당겼다.홧김에 온하나가 그의 옆구리 살을 잡고 손톱으로 깊게 파고들자 고통이 밀려왔다.“스읍, 아파! 네 몸 중에 내가 못 본 곳도 있어?”남자의 목소리를 차가웠고 젖은 옷을 재빨리 벗기고 가운을 가져와 그녀를 감싸는 그의 손놀림도 부드럽지 않았다.살짝 핏빛이 감도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우빈의 목소리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온하나, 네 위치 잊지 마.”“차 대표님, 제 위치가 뭔데요?”온하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의 차갑고 고고한 눈빛을 마주했다.“차우빈 네가 부르면 언제든 와야 하는 여자? 돈으로 육체적 욕구를 해결하는 섹스 파트너? 차 대표님, 지금은 당신이 주제 파악 못 하고 있는 거야. 우린 곧 이혼할 사이라고.”“우유 마시고 일찍 자.”차우빈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온하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는 평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대신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창문을 열고 있어 안방보다 더 추웠다.이따금 찬 바람이 불어와 온하나를 움츠러들게 했다.방문이 열리자 차우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문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온하나를 보고는 또다시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온하나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진정된 상태였고 평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몇 걸음 떨어져 서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 보았다.깊고 복잡한 눈빛에는 온하나가 전에 본 적 없는 슬픔이 살짝 담겨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은 그녀를 본 찰나의 순간에 머물렀고 온하나의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그는 손을 들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끈 뒤 창문을 닫았다.“무슨 일이야?”덤덤한 목소리엔 아직 짜증
다음 날 이른 아침, 온하나가 일어나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데 안영자의 제지를 받았다.“사모님, 아침 드세요. 대표님이 다 드시는 것까지 지켜보라고 하셨어요.”“고맙지만 됐어요.”온하나가 안영자를 지나쳐 가려는데 그녀가 다시 돌아와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삐죽거렸다.“대표님께서 다 드시고 가라고 하셨어요.”온하나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차씨 가문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니 차우빈의 눈치를 보는 것까진 상관없었지만 그녀의 배려가 상대의 호감을 사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녀를 아무 말도 못 하고 만만한 상대로 보이게 했다.전에는 무시했어도 이젠 이혼까지 앞둔 상황에서 더 신경 쓸 게 없었던 온하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이모님, 아침에 제비집도 가져오시죠.”온하나는 그녀가 먹지 않으면 안영자에게만 좋은 일이란 걸 알았다.전에 안영자가 수작을 부려 온하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잊어버린 척 가져오지 않았다가 온하나가 가면 자신이 실컷 먹었다.안영자는 온하나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왜요, 저 제비집은 제가 못 먹는 건가요?”온하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으로 걸어가 앉으며 말했고 가만히 서 있던 안영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안영자 씨, 난 아직 이 집의 안주인이에요. 전에 했던 행동들은 굳이 따지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나와 이 집에 하루라도 같이 있는 한 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본인 주제 파악 똑바로 하세요. 안 그러면 나도 차우빈한테 다 얘기해요.”안영자는 그런 온하나가 낯설어서 완전히 어안이 벙벙했다.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여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이따금 돌아보았다.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차우빈이 현관에서 온하나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저 여자가 점점 솔직해지네.’다시 제비집을 들고나온 안영자가 목을 빼 들고 해명했다.“저는 오랜 세월 동안 차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뭘 탐낸 적이 없으니 사모님께선 억울한 누명 씌우지 말아 주세요. 오늘 객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