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나의 눈매가 휘어지며 짓는 미소는 한겨울의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마음을 비춰주는 빛과 같았다.정승호는 입꼬리마저 파르르 떨렸다.“하나야, 오랜만이야.”정승호는 상대를 품에 꼭 안았고 온하나의 은은한 체취가 그를 따뜻하고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쁨에 젖어 있을 때 방의 문이 쾅 열렸고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성큼성큼 들어온 차우빈이 막 떨어진 두 사람을 보고는 눈 밑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서늘함을 드러냈다.“차우빈, 여기 어떻게 왔어?”온하나는 그의 눈가에 담긴 분노를 알 수 있었고 그녀는 차우빈과 정승호를 번갈아 보았다.정승호는 잠옷을 입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몰랐다가 온하나는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차우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온하나, 돈이 그렇게 부족해? 와서 몸까지 팔 정도로?”서슬 퍼런 눈빛에 짙은 경멸을 담은 채 온하나를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보다 더 돈 많이 주는 사람 있어?”차우빈은 시선을 돌려 정승호를 바라보며 입가에 조롱 섞인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아, 너였구나.”억눌린 잇새로 겨우 빠져나오는 듯한 목소리는 낮고 잠겨 있었지만 얼굴에 걸린 사악한 미소에 온하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차우빈 때문에 놀란 건지 그가 무서운 건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그의 목소리는 온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이 차가웠다.“온하나, 이 자식이 그동안 해외에서 쓴 돈 네가 대준 거지? 겨우 이 정도 집안으로 너한테 얼마나 주길 바라는데?”한 마디 한 마디가 독이 든 칼처럼 온하나의 가슴에 꽂혔고 상대의 뒤에는 차우연과 양지원이 뒤따라오고 있었다.특히 양지원은 나른한 표정으로 문에 기대선 채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온하나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떨리고 심장의 저릿한 고통이 여지없이 밀려왔다.자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랑스러운 보배둥
온하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계속해서 차우빈의 가슴을 때렸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랑 정승호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어. 외국에서 와서 만난 건데 그게 왜? 차우빈, 우린 곧 이혼할 거고 난 네 물건이 아니야. 넌 나한테 이럴 자격 없다고.”온하나가 아무리 소리치고 때려도 차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고 액셀을 콱 밟았다.검은색 벤틀리는 주인의 기분에 맞춰 낮은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추운 겨울밤을 질주했다.신비 캐슬로 돌아온 차우빈이 문을 열고 온하나를 차에서 끌어 내릴 때 그때야 그는 온하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하나가 이처럼 화를 내는 경우는 드문 데 일단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온몸이 굳어지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온하나의 손가락은 뻣뻣해졌고 이가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부딪혔으며 다리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렸다.그럼에도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놓지 않아 선홍빛 피가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차우빈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미워했는지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온하나, 힘 풀어. 입술 놔.”더 망설일 게 없었던 차우빈은 곧바로 손으로 그녀의 이를 막았고 그제야 풀려난 아랫입술이 살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온 채 빨갛게 부어있었다.2년 전 차우빈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외삼촌 나훈경이 돈을 달라고 찾아와서 차우빈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서는 가족도 무시한다며 그녀를 욕했을 때였다.그런데 오늘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자 차우빈은 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위층으로 달려갔다.“아주머니, 목욕물 받아놓으세요.”막 나가려던 안영자는 차우빈의 다급한 표정에 서둘러 따라갔다.그녀는 더 묻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곧장 욕실로 가서 목욕물을 틀었다.차우빈은 온하나를 침대에 내려놓은 채 이불로 그녀와 자신을 감싸고 계속해서 그녀의 손을 비벼댔다.한참이 지나자 피가 굳었다
그렇게 말한 뒤 차우빈은 온하나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직접 욕조에서 사람을 끌어낸 뒤 온하나의 몸에 걸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온하나가 저항하며 그를 때렸지만 개 같은 남자는 여전히 온하나의 몸에 있는 옷을 잡아당겼다.홧김에 온하나가 그의 옆구리 살을 잡고 손톱으로 깊게 파고들자 고통이 밀려왔다.“스읍, 아파! 네 몸 중에 내가 못 본 곳도 있어?”남자의 목소리를 차가웠고 젖은 옷을 재빨리 벗기고 가운을 가져와 그녀를 감싸는 그의 손놀림도 부드럽지 않았다.살짝 핏빛이 감도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우빈의 목소리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온하나, 네 위치 잊지 마.”“차 대표님, 제 위치가 뭔데요?”온하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의 차갑고 고고한 눈빛을 마주했다.“차우빈 네가 부르면 언제든 와야 하는 여자? 돈으로 육체적 욕구를 해결하는 섹스 파트너? 차 대표님, 지금은 당신이 주제 파악 못 하고 있는 거야. 우린 곧 이혼할 사이라고.”“우유 마시고 일찍 자.”차우빈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온하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는 평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대신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창문을 열고 있어 안방보다 더 추웠다.이따금 찬 바람이 불어와 온하나를 움츠러들게 했다.방문이 열리자 차우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문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온하나를 보고는 또다시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온하나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진정된 상태였고 평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몇 걸음 떨어져 서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 보았다.깊고 복잡한 눈빛에는 온하나가 전에 본 적 없는 슬픔이 살짝 담겨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은 그녀를 본 찰나의 순간에 머물렀고 온하나의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그는 손을 들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끈 뒤 창문을 닫았다.“무슨 일이야?”덤덤한 목소리엔 아직 짜증
다음 날 이른 아침, 온하나가 일어나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데 안영자의 제지를 받았다.“사모님, 아침 드세요. 대표님이 다 드시는 것까지 지켜보라고 하셨어요.”“고맙지만 됐어요.”온하나가 안영자를 지나쳐 가려는데 그녀가 다시 돌아와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삐죽거렸다.“대표님께서 다 드시고 가라고 하셨어요.”온하나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차씨 가문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니 차우빈의 눈치를 보는 것까진 상관없었지만 그녀의 배려가 상대의 호감을 사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녀를 아무 말도 못 하고 만만한 상대로 보이게 했다.전에는 무시했어도 이젠 이혼까지 앞둔 상황에서 더 신경 쓸 게 없었던 온하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이모님, 아침에 제비집도 가져오시죠.”온하나는 그녀가 먹지 않으면 안영자에게만 좋은 일이란 걸 알았다.전에 안영자가 수작을 부려 온하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잊어버린 척 가져오지 않았다가 온하나가 가면 자신이 실컷 먹었다.안영자는 온하나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왜요, 저 제비집은 제가 못 먹는 건가요?”온하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으로 걸어가 앉으며 말했고 가만히 서 있던 안영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안영자 씨, 난 아직 이 집의 안주인이에요. 전에 했던 행동들은 굳이 따지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나와 이 집에 하루라도 같이 있는 한 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본인 주제 파악 똑바로 하세요. 안 그러면 나도 차우빈한테 다 얘기해요.”안영자는 그런 온하나가 낯설어서 완전히 어안이 벙벙했다.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여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이따금 돌아보았다.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차우빈이 현관에서 온하나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저 여자가 점점 솔직해지네.’다시 제비집을 들고나온 안영자가 목을 빼 들고 해명했다.“저는 오랜 세월 동안 차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뭘 탐낸 적이 없으니 사모님께선 억울한 누명 씌우지 말아 주세요. 오늘 객실에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몫을 빠르게 먹어 치운 온하나가 그릇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차 대표님, 만족하세요?”차우빈은 그녀가 내민 그릇을 흘깃 쳐다보며 진지하게 평가했다.“아직 국이 남았잖아. 샌드위치도 남기지 마. 원숭이처럼 말라서 차씨 가문에 너 먹일 돈이 없을까 봐? 아니면 기다렸다가 외할머니 생신에 일러 바치게?”김혜숙은 심명희와 차우빈이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해 만날 때마다 온하나를 위해 나서줬다.심지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온하나에게 자신의 집으로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기도 했다.온하나는 차우빈의 비꼬는 말을 듣고는 그를 향해 경멸하는 눈빛을 보낸 뒤 그릇을 들고 남은 제비집마저 다 마셔버렸다.그리고는 눈앞에 남은 빵 반쪽을 집어 입에 넣고 일어나 가려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발신자가 할머니인 것을 본 온하나는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고 심호흡을 한 후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고 환한 목소리로 불렀다.“할머니.”차우빈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표정이 어두워졌다.‘태도가 이렇게 확 바뀔 수가 있나.’“하나야, 내일 일찍 오는 거 잊지 마. 오랜만이라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으니까 꼭 와.”은근한 당부에는 따뜻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온하나는 김혜숙이 무슨 소식을 들었거나 뉴스를 봤기 때문에 그녀가 오지 않을까 봐 일부러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아직 이혼한 것도 아니고 설령 진짜 이혼을 한다고 해도 온하나는 갈 생각이었다. 김혜숙이 친손녀처럼 대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잘해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온하나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가 더 깊어지며 부드럽게 상대를 다독였다.“할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일찍 갈게요.”김혜숙은 그녀의 말에 기뻐서 몇 마디 당부를 덧붙였다.전화를 끊고 차우빈의 어두운 표정을 매섭게 흘겨본 온하나는 자리를 떠났다.병원에 도착한 온하나는 때마침 주차장에서 반은성과 마주쳤다.“반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차우빈이 그녀를 특별하게 대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차우빈의 뼛속 깊이 남아있는 신사적인 면모로 여자에겐 손을 대지 않을 것이고 기껏해야 입으로만 모질고 독한 말을 내뱉는 것뿐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아래층 카페로 걸어갔고 온하나는 코에 시퍼렇게 멍이 든 정승호를 바라보며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오빠, 어제 오빠까지 끼어들게 해서 미안해. 근데 왜 갑자기 돌아왔어? 아직 방학하려면 한 달 남았잖아.”정승호는 3년 동안 보지 못했던 눈앞의 소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개 같은 시간이 매정하고 무정하게 흘러가서 그가 떠난 사이 많은 사람의 운명을 소리 없이 바꿔놓았다.그가 마음속에 소중히 여겼던 소녀는 그가 떠난 지 불과 두 달 만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소중한 그녀를 차우빈은 무시하고 하찮게 대한다는 점이었다.“오빠?”온하나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불렀고 정신을 차린 정승호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아, 이미 공부를 끝내서 일찍 돌아왔어. 하나야, 이제부터는 내가 있으니까 혼자 짊어지지 말고 기분 안 좋으면...”온하나는 그가 차우빈과의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결혼에 대해서도 줄곧 그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이 행복해지면 그와 만났을 때 그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젠 더 얘기하기 싫었다.“오빠, 내 걱정은 하지 마. 힘든 시간도 이미 지나갔고 오빠 능력이면 좋은 일자리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 다 잘될 거야.”온하나의 담담한 미소에 정승호는 마음이 놓였다.“난 이미 양진그룹에 입사했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 아까 아저씨 뵈러 갔다가 반년 치 병원비 이미 냈어. 너무 너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정승호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이제 막 귀국해서 돈이 필요할 때잖아. 엄마한테 돈 있어. 내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승호가 입을 열었다.“부담 갖지 마. 그 돈은 원래
“난 금융 전공이잖아. 투자해서 돈 버는 게 내 일인데 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돈도 못 벌면 양진그룹에서 왜 나를 데려가겠어? 너 같은 멍청이만 걱정하면서 나한테 돈을 보내지.”정승호가 말하며 어릴 때처럼 그녀의 코를 꼬집으려 하는데 온하나가 슬쩍 피했다.어젯밤 이후 온하나는 자신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어린 시절의 많은 행동이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내 코 꼬집지 마. 가짜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어렸을 때 무너졌을 거야.”정승호가 웃었다.“어렸을 땐 코가 좀 무너졌는데 내가 자주 꼬집어줘서 다행이지.”온하나의 코가 지금 오뚝한 건 자기 덕분이라는 소리다.어렸을 때를 떠올리자 온하나는 마음이 시큰했다. 보육원에서 일 년에 고깃국도 몇 끼 못 먹었지만 자신을 엄마처럼 사랑해 준 원장님이 있었고 매번 자신을 지켜주던 정승호가 있어서 행복했다.입양되지 않았다면 차우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많은 고충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두 사람의 오가는 작은 행동을 임다혜가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했고 사무실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온하나가 남자에게 꼬리 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허, 온하나 씨 얌전해 보이는데 남편이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남자한테 꼬리치네요?”마침 도착한 조수연이 그녀의 말을 들었고 그녀는 옆자리 동료와 함께 사진을 보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어머, 남자 괜찮네. 엘리트 느낌이 나는데요.”호기심이 발동한 조수연이 조용히 다가가 목을 쭉 뻗어 들여다보았다. 정승호를 보는 순간 조수연은 문득 꼬신다는 말이 그다지 거슬리게 들리지 않았다.온하나가 정말 정승호와 사귄다면 두 손을 번쩍 들어 허락할 것이다.온하나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남자는 어디를 봐도 차우빈보다 백배는 나았다....오후가 되자 온하나는 어젯밤 인터넷에서 한참을 둘러보아도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한 김혜숙의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 조수연을 끌고 쇼핑몰로 향했다.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가격 때문에 기가
“손님, 선물하실 건가요? 예쁘긴 해도 젊은 사람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은근히 푸른 빛도 띠고 있어서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아요.”온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선물하려고요.”“그럼 제가 꺼낼 테니 자세히 보실래요?”조수연은 옆에 있는 가격표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나야, 몇천만 원이야. 선물 하나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우리 한 달 월급이 고작 얼마인데.”온하나는 팔찌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가 조수연의 말을 듣고서야 가격을 눈여겨봤다.몇천만 원은 온하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이었다.온하나는 머쓱하게 직원을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돌아보고 올게요.”조수연은 이혼할 때 그녀가 차우빈에게서 돈을 얼마나 받아낼지 의아했는데 지금 보니 괜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그녀가 조수연의 팔을 끌고 나가려는 찰나 밖에서 정승호가 걸어들어왔다.“마음에 드는 거 없어?”평소 사람들의 눈치를 잘 살피는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손님께서 이 팔찌를 눈여겨보신 것 같은데 갑자기 뭐가 문제인지 됐다고 하시더라고요.”“포장하고 이 카드로 해요. 비밀번호 없어요.”정승호가 은행 카드를 건네자 온하나가 이를 막으려 했지만 정승호가 팔을 들어서 막았다.그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네가 준 돈으로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아주 높아. 내 첫 목돈은 네가 준 돈으로 마련한 셈이지. 이 팔찌는 그 20분의 1도 안 돼.”온하나는 직원의 활짝 핀 미소를 보고 제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오빠, 우린 절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잖아. 오빠가 힘들 때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혼자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돈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이러면 나 엄청나게 부담스러워.”“방금 네 입으로 가족이라고 했잖아. 넌 나한테 그냥 주면서 내가 내 가족에게 선물한다는 것도 거절하는 거야? 내 돈이 더러워?”조수연은 옆에서 정승호를 바라보며 많이 달라진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승호 오빠, 이 기세 아주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