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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차우빈이 동작을 멈추고 싸늘한 눈빛으로 허승준을 째려보았다.

허승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턱을 어루만졌다.

“표정을 보니까 설마 온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차우빈이 한때 온하나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잘해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왜 갑자기 온하나를 못살게 구는지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아니,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온하나랑 잘 지내고 싶으면 잘해주고 양지원을 멀리해. 만약 같이 살 생각이 없는 거면 왜 이렇게까지 못살게 구는 건데? 그냥 돈 좀 주고 보내면 되잖아. 너한테는 아주 쉬운 일일 텐데.”

차우빈은 무표정으로 그를 힐끗거리더니 술잔에 술을 따른 다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일이나 잘해. 내 일은 신경 쓸 거 없어.”

그러고는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뒤로 기댄 채 미간을 어루만졌다. 표정만 봐도 지금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허승준이 뜻밖에도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온하나 때문이었어? 온하나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이래? 화를 내도 걔가 내야지. 너랑 양지원이 아직도 실검에 걸려있어.”

차우빈이 양지원에게 비싼 선물을 주고 불꽃놀이까지 선물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쫙 깔렸다.

“아, 맞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온하나도 어제 생일이지?”

허승준이 차우빈을 빤히 쳐다보았다. 차우빈은 장난 가득한 허승준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잠시 후 차우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혼을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허승준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으면서 이래도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허승준이 술 한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우빈의 머리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참이 지나도 차우빈이 아무 말이 없자 허승준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말 못 할 얘기라도 있는 거야?”

그의 질문이 귀찮아진 차우빈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뭔 질문이 그렇게 많아?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불렀지, 잔소리 들으려고 부른 게 아니야.”

허승준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럼 날 부르지나 말 거지. 오늘 어쩌다가 임다혜랑 만나기로 했는데.”

차우빈이 그를 흘겨보았다.

“임다혜가 누구야?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야?”

허승준은 그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 경완이 생일 파티에서 만난 여자인데 경완이랑 같은 대학교 출신인 것 같더라고. 걔도 의학을 전공했어. 온하나보다 훨씬 철이 든 애야.”

차우빈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덤덤하게 말했다.

“넌 정말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다 만나는구나.”

“차우빈, 넌 그냥 욕구불만이야. 하도 오래 참아서 그래. 두 여자로도 그 화를 해소할 수 없으면 후궁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여자 더 소개해줄까?”

차우빈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견과를 확 잡더니 그에게 냅다 던졌다.

“내가 너처럼 지저분하게 노는 줄 알아?”

허승준이 헤벌쭉 웃었다.

“정곡 찔려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고집이 센 거야?”

차우빈은 허승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넥타이를 풀어헤치고는 계속 술잔에 술을 따랐다.

허승준은 씩씩거리는 그를 보며 몰래 고소해했다.

‘누가 너더러 그렇게 예쁜 마누라가 있으면서 또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애인을 만나래?’

“경완이는 요즘 뭐 하고 지낸대?”

“뭘 하긴. 수업하고 여대생 만나느라 바쁘겠지.”

허승준이 테이블 위의 견과를 집어 먹었다. 남자 둘이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자니 너무도 지루했다.

그는 차우빈을 힐끗거렸다.

“야, 그냥 이렇게 술만 마실 거야?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됐는데도 다 같이 모이는 건 싫다고 하고. 오늘 애들 불러서 모일까?”

“며칠 후에 다시 보자. 요 며칠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허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돌아왔다는 거 애들도 다 알았을 거야. 아니면... 대박, 어떤 간덩이가 부은 여자가 널 깨물었어?”

그는 차우빈의 목에 생긴 잇자국을 보자마자 바로 화제를 돌렸다. 차우빈은 그를 흘겨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옷깃을 잡아당겼다.

“참고 있는 거 맞네. 온하나야, 양지원이야? 양지원은 아닐 테고. 걔는 하루 24시간 너랑 붙어있으려고 하니까.”

허승준의 말속에 숨은 뜻을 차우빈이 모를 리가 없었다.

“걔를 건드린 적이 없어, 난.”

차우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승준은 또다시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2년 동안 양지원이 차우빈의 여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행사나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양지원과 함께 다녔고 영화사에 투자까지 하면서 양지원을 띄웠다.

허승준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우빈아, 난 네가 뭘 어쩌겠다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차우빈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술을 마셨다. 이혼 합의서와 이혼 보상 조건만 생각하면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차우빈은 마당에 멍하니 서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온하나는 어둠을 싫어해서 날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불을 켰다. 그가 몇 시에 집으로 들어오든 집은 항상 환했다. 가끔 집에 없더라도 불을 켜놓고 나가곤 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우빈이 집으로 들어가지 않아 비서인 진욱도 떠나지 못했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차우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온하나가 지금 사는 집으로 가.”

진욱은 아무 말 없이 차에 시동을 걸어 신비 캐슬을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온하나는 일찍 씻고 침대에 누웠다. 보일러가 고장 난 바람에 오늘 저녁이 특히 더 추웠다.

이토록 여유로운 저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어쩌다가 일찍 침대에 누웠다. 휴대전화를 잠깐 들여다봤을 뿐인데 어느덧 꿈나라로 들어갔다.

차우빈이 어두운 복도로 들어왔다. 쿵쾅거리는 발소리에 복도의 센서 등이 다 켜졌다.

4층에 올라온 차우빈은 어젯밤처럼 두드리지 않고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오늘은 온서후의 생일이라 온하나가 친정에 갔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여 오전에 진욱더러 키를 복사하라고 했다.

방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또 매우 추웠다. 거실에 작은 등이 켜져 있었는데 웜톤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안방에도 불이 켜져 있었고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

차우빈이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온하나는 이미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부드러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춰 차가운 실내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온하나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이불을 꼭 덮고 있었는데 숨소리도 아주 편했다.

차우빈은 그녀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빼내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은 후 씻으러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침대에 누운 순간 온하나가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침대에 눕는 걸 보고 온하나가 소리를 지르려던 그때 차우빈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자자. 나 피곤해.”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정말 너무 피곤했다.

출장 간 몇 달 동안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오려고 6개월 치 일을 석 달 반에 전부 완성해버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들은 첫 번째 소식이 바로 온하나가 신비 캐슬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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