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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송태훈을 배웅한 후 온하나는 소파에 앉아 온라인 상담을 처리했다. 의사 면허증을 딴 이후로 SNS 계정을 열었는데 지금까지도 온라인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 불임인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어떤 부부는 아이를 가지려고 재산을 탕진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온하나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질문에 무상으로 대답해 주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면 마음이 편했고 의사라는 호칭에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상담을 받은 게 처음이라 오늘 환자들이 한꺼번에 다 몰려온 것 같았다.

환자 유나:[지난번에 해주신 말씀대로 검사를 받았는데 여기 의사 선생님이 자연 임신이 가능하대요.]

환자 막대사탕:[선생님, 저 벌써 시험관 세 번이나 했는데 이식 후에는 두 달도 안 돼서 아이 심장이 멈췄어요. 이런 경우에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너무 속상해요.]

환자 별빛:[뭐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 출산한 후에 생리가 올 때면 생리통이 엄청 심해요. 대체 왜 이런 거죠? 출산 전에는 생리통이 없었어요.]

@유나:[축하드려요. 하루빨리 소원 이루시길 바랄게요.]

@막대사탕:[마음이 속상할 땐 닉네임처럼 달달한 막대사탕 하나 사드세요. 환자분 같은 경우가 드문 경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속상해하고 다시 힘내서 일어나세요. 일단 몸부터 잘 추스르고 올해는 잠시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올해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바람도 쐬고 내년에 다시 생각하세요. 희망은 계속 있으니까 포기하지 마시고요.]

@별빛:[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궁 내막이 손상됐을 수도 있고 자궁경부 염증이나 유착일 가능성이 있거든요. 구체적인 건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어요.]

일일이 답장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점심이 다 되었다. 라면을 끓여 고작 두 입 먹었는데 진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신비 캐슬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오후에 짐 챙기시면 저녁에 운전기사한테 모시러 가라고 할게요.”

“차우빈 그 자식한테 안 간다고 전해요.”

온하나는 성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기가 뭐 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네가 한 말이면 다 어명이야?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해?’

겨우 마음을 먹고 나왔는데 다시 그의 손에 휘둘릴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온하나는 신비 캐슬로 가지 않았고 차우빈도 나타나지 않았다.

화요일, 온하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몇몇 의사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양지원 씨랑 차우빈 대표님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몇 년 동안 지켜봤었는데 드디어 결실을 보았어요.”

“그러게요.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를 만나길 바라는데. 재벌에 시집가는 꿈이 완전히 깨졌네요.”

임다혜가 경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양지원이 없어도 당신 차례는 안 될걸요?”

“나도 내 주제를 알아요. 양지원 씨의 팬들이 지금 사람을 찾고 있는 거 몰라요? 일요일 오후에 차우빈 씨가 카페에서 한 여자의 턱을 잡았대요.”

“그건 또 무슨 상황이죠?”

같은 과실의 다른 여자 의사가 물었다.

“그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그러는데 차우빈 씨한테 매달리는 여자가 카페까지 쫓아와서 차우빈 씨가 화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동료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서 봐야겠어요. 대체 어떤 여자가 그렇게 상스러운지.”

임다혜가 입을 삐죽거렸다.

“양지원이 공개까지 했는데도 매달리는 여자라면 정말 상스럽긴 하네요.”

“옆모습이 꽤 예쁘더라고요. 사진이 흐릿하긴 한데 미녀는 대충 봐도 예쁜 게 알리잖아요.”

온하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진료 갈 준비를 했다.

카페 사진을 들춰낸 동료가 온하나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온하나의 옆으로 가져다 댔다.

“뭐죠? 이 사진 속 여자가 왜 우리 온 선생님하고 이렇게 비슷하죠?”

임다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온하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온하나, 그리고 조수연과 같은 해에 병원에 들어왔지만 온하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온 선생은 이미 결혼한 유부녀인데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요?”

임다혜의 하찮은 말투는 이미 온하나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래요? 온 지 얼마 안 돼서 온 선생님이 결혼한 걸 몰랐네요. 온 선생님은 얼굴이 예뻐서 남편도 괜찮은 사람일 것 같아요.”

동료는 온하나가 결혼했다는 걸 몰랐지만 온하나의 아버지가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3년 넘게 입원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기에 3년이나 치료하고도 포기하지 않았지.

임다혜가 코웃음을 쳤다.

“온 선생이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다는 걸 우리 다 아는데 아직 남편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고는 온하나를 흘겨보면서 비꼬았다.

“온 선생, 남한테 공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온하나는 진료 준비를 마치고 씩 웃었다.

“그래. 죽은 지 2년이나 되는데 지금 나타나면 얼마나 놀라겠어. 그러니까 임 선생도 궁금해하지 마. 그렇게 보고 싶어 하다가 밤에 임 선생을 찾아가기라도 하면 어떡해.”

“하나야, 그런 말 하지 마. 임 선생도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지. 다음 제사에 남편한테 술 따라주면서 임 선생이 보고 싶어 하니까 와서 임 선생이랑 얘기라도 좀 하라고 해. 놀라게 하진 말고.”

조수연이 문에 기댄 채 웃으며 말했다.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겠는데요?”

새로 온 의사는 온하나를 놀라면서도 동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온하나는 말을 잇지 않고 웃음을 참으며 진료실로 향했다. 사무실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세 사람만 남았다.

나가기 전 임다혜의 표정을 힐끗 봤는데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쩍 벌렸다.

조수연은 웃고 있는 온하나를 보면서 충격에 빠진 임다혜 앞으로 다가갔다.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난대.”

화들짝 놀란 임다혜는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조수연.”

조수연은 임다혜를 째려보고는 가운을 갈아입은 후 나가버렸다.

...

오후 퇴근 시간이 되자 허승준이 임다혜를 데리러 왔다. 두 사람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허승준은 온하나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나 씨, 오랜만이에요.”

차우빈이 예전에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 온하나를 데리고 온 적이 있어서 당연히 얼굴을 기억했다.

온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탈의실에서 나온 임다혜는 허승준이 온하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온하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다가 허승준에게 시선이 닿았을 땐 환하게 웃었다.

“대표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미녀를 기다리는 거라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죠.”

젠틀하게 웃긴 했지만 껄렁껄렁한 태도는 여전했다.

가기 전 허승준은 온하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임다혜는 더욱 언짢아졌다.

“대표님, 온 선생을 알아요?”

금방 썸을 타기 시작한 여자에게 허승준은 그래도 인내심이 꽤 있었다.

“질투해요?”

“질투는 무슨. 내가 왜 과부를 질투해요?”

허승준이 놀란 얼굴로 임다혜를 쳐다보았다.

“과부요?”

“네. 아침에 얘기하다가 들었는데 온 선생 남편이 죽은 지 2년 됐대요.”

“콜록콜록...”

허승준이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온하나 씨 얌전해 보이는데 저렇게 독한 말을 한다고?’

임다혜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허승준이 온하나에게 다른 생각을 품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대표님, 왜 그래요? 괜찮아요?”

임다혜는 다정하게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애교 많은 고양이가 긁는 것만 같았다.

허승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웃었다.

“엄청 잘 챙겨주네요. 역시 의사는 달라요. 이러니까...”

‘이러니까 차우빈이 온하나라면 사족을 못 쓰지.’

그 생각에 허승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차우빈에게 문자를 보냈다.

온하나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와 보니 차우빈이 도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실의 스탠드를 켜는 습관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차우빈은 두 다리를 꼰 채 우아하게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얼굴을 본 순간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차우빈, 여긴 왜 왔어?”

“날 보니까 무섭나 안 무섭나 물어보러 왔지.”

차우빈이 차갑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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