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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조수연의 말에 온하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TV에서 봤던 차우빈이 눈앞에 나타났고 옆에는 행복한 얼굴의 양지원이 서 있었다.

그녀가 목에 하고 있는 목걸이가 불꽃과 가로등에 비춰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양지원은 집안 형편이 좋았다. 새아버지가 상장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 도기영은 한때 잘나가던 여배우였다.

그리고 도기영과 심명희는 친구 사이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양지원과 차우빈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중간에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을 뿐.

양지원은 연예계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었고 SNS에 행복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자랑을 온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봐왔다.

그때 차우빈의 시선이 온하나에게 닿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고 불안함과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진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다가 양지원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

양지원이 올린 사진과 글을 본 순간 온하나는 멈칫하더니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오빠와 함께!]

한 글자 한 글자가 온하나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꽉 쥐었지만 손이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그 중요한 사람이 온하나가 아니라 양지원이었던 것이었다. 단지 그녀의 생일이 양지원과 같은 날일 뿐이었다.

최고급 비취 목걸이가 불빛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고 신비로우면서도 귀티가 흘렀다. 그리고 그 목걸이는 지금 양지원이 목에 걸려있었다.

차우빈은 양지원을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양지원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했고 양지원도 처음으로 차우빈을 공개했다. 누가 봐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커플이었다.

“허허, 중요한 사람. 내가 차우빈한테 중요한 사람일 리가 없지. 난 그냥 장식품이고 노리개일 뿐이야.”

온하나는 자신을 비웃었다.

온 오후 기다렸지만 목걸이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현실에 마음만 아팠다. 이혼 합의서에 사인까지 한 마당에 이런 환상을 왜 했는지...

온하나는 이런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

조수연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 온하나를 보면서 위로했다.

“하나야, 내려놓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이제부터 우리 인생을 열심히 살면 돼.”

온하나는 마음을 진정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걱정하지 마. 이혼 합의서에도 사인했으니 절대 후회하지 않아. 후회할 이유도 없고.”

“그래. 두 연놈이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먹을 거 먹고 놀 거 놀자. 마음에 두지 말고.”

조수연은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몰래 차우빈과 양지원을 계속 욕했고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치욕을 안겨주고 싶었다.

온하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자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야. 차우빈은 이젠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조수연은 그녀가 웃는 걸 보고 기분을 더 풀어주려고 재미난 얘기를 해주었다.

“하나야, 너한테 얘기했었더라? 내가 환자 처음 수술할 때 어땠었는지?”

온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내가 물었었는데 아무 문제 없었고 식은 죽 먹기라고 했었어.”

조수연이 귀를 잡고 말했다.

“그때 상황이 어땠냐면...”

그녀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긴장 풀어, 조수연. 이건 작은 수술일 뿐이야. 조금만 버티면 끝나.”

환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선생님, 저 조수연 아닌데요.”

“알아요. 내가 조수연이에요.”

“그거 알아? 그때 그 환자 엄청 겁먹은 얼굴을 날 쳐다봤었어. 그러다가 나중에 외과 교수님이 옆에서 같이 해준다고 하니까 겨우 수술받겠다고 했어.”

그녀의 말에 온하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조수연의 담력이 그녀보다 큰 줄 알았는데 그렇게 긴장한 적이 있을 줄은 몰랐다.

창밖에서 환하게 웃는 온하나를 보고 있던 차우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 옆에 있던 양지원의 웃음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

온하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밤 11시가 다 되었다. 조수연과 저녁을 먹은 후 곧장 집에 온 게 아니라 스파하러 갔다. 따뜻한 산삼 차를 마시고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얼굴 관리를 받으면서 피로를 풀었다.

현관문을 열자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그냥 무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에 그녀에게 왜 전화했을까? 사랑하는 여자와 생일을 보내면서 온하나에게 전화했다는 건 좀 놀랍긴 했다.

온하나가 전화를 받지 않자 상대는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결국 그녀는 시끄러운 나머지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그런데 그녀가 씻으려던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칫솔을 내려놓고 현관문 쪽으로 가서 확인해 보니 차우빈의 차가운 얼굴이 보였다.

쾅, 쾅, 쾅...

문이 부서질 듯한 노크 소리에 온하나는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 밤에 대체 왜 저래? 미쳤나?’

온하나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아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쳤어? 한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 이웃에 방해되는 거 몰라?”

차우빈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문을 쾅쾅 두드렸다.

온하나는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쥔 채 문 뒤에 서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이웃이 소리를 질렀다.

“아주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이구나. 안 가면 신고한다?”

“마음대로 해. 이 집 사람이 지금 자살 소동 벌이는데 늦게 신고했다간 누구 하나 죽어날 거야. 흉가라는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온하나는 결국 문을 연 다음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웃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자살?’

이웃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우빈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방문이 닫혔다. 화가 난 이웃이 발로 문을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려 퍼졌다.

집 안으로 들어온 차우빈은 옷을 소파에 벗어던진 후 양반다리를 한 채 소파에 앉았다. 지금 이 도도한 모습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온하나는 차우빈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여긴 왜 왔어?”

차우빈은 그녀를 보며 검은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었다. 소파에 기댄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 와이프의 밤 생활이 어떻나 보려고 왔지. 온 김에 고맙단 인사 하려고. 이틀 출장 갔다가 오자마자 아주 엄청난 선물을 받았어.”

그의 냉랭한 웃음에 온하나는 또다시 마음이 아팠다. 아무래도 시어머니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어서 무슨 생각인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차우빈, 3년 동안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없었더라면 아빠가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고 오빠도 재활 치료를 받지 못했을 거야. 나도 순조롭게 졸업하지 못했을 거고. 이건 진짜 고마워. 네가 양지원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거 알아. 그래서 둘이 잘되기를 바라. 진심이야.”

온하나는 차분한 말투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더 홀가분해 보였고 태도도 다정했다.

차우빈이 씩 웃었다.

“온하나, 은혜도 모르면서 뭐가 그렇게 당당해? 혹시 나보다 더 통쾌한 돈줄이 생겼어? 한 번에 2억은 전국에서도 몇 안 될 텐데?”

아무런 온기도 없이 모욕뿐인 말에 온하나는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팠다.

온하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마음을 진정하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 대표가 참 통쾌한 사람이긴 하지. 그런데 돈 때문에 3년 동안 팔았으면 다른 방법을 찾을 때도 됐어.”

차우빈의 자세가 눈에 띄게 굳어졌고 온하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함부로 반항해서는 안 된다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는 넌 멈출 자격이 없다고 했지? 온하나, 내가 했던 얘기 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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