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후 온하나는 소파에 기댄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이혼하고 만나지 않는다면 우빈이는 나라는 사람을 아주 빨리 잊겠지.’고등학교 3년, 대학교 7년, 10년 동안 차우빈은 온하나를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해도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무르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밤에 마침 서로에게 맞는 타이밍에 나타났을 뿐이었다.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차우빈은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지만 온하나는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에는 뭐든지 다 원했던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집 앞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듣고서야 누가 복도의 센서 등을 수리하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한 아주머니가 감탄했다.“지금 젊은이들은 참 괜찮아요. 직접 자기 돈으로 등을 수리하다니. 관리사무소에서는 그냥 돈 받을 궁리나 하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수리해주지 않았어요.”“맞아요. 그 젊은이도 관리사무소에서 계속 가만히 있으니까 우리한테 연락한 거예요.”온하나는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센서 등을 수리하면 야근하고 돌아와도 복도가 어두워서 무서울 일은 없을 것이다.그녀는 어릴 적부터 어두운 것을 무서워했다. 특히 어두운 데다가 조용하기까지 하면 더 무서워서 잠을 잘 때도 스탠드를 켜놓고 자곤 했다. 처음에 차우빈과 함께했을 때 차우빈은 그녀를 놀린 적도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한 후 차우빈 덕에 온하나는 점점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무서워하기 시작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온하나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집의 불빛이 참 따뜻해 보였다.‘다들 저 불빛처럼 따뜻하고 화목하게 살고 있을까?’그러다가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렸는데 누군가 작은 나무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아파트 단지 내의 불빛이 어두워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실루엣이 어딘가 익숙했다.그런데 몇 초 후 남자는 자리를 떠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온하나는 자신을 비웃었다.‘온하나, 뭔 생각 하는 거야,
조수연의 말에 온하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TV에서 봤던 차우빈이 눈앞에 나타났고 옆에는 행복한 얼굴의 양지원이 서 있었다.그녀가 목에 하고 있는 목걸이가 불꽃과 가로등에 비춰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양지원은 집안 형편이 좋았다. 새아버지가 상장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 도기영은 한때 잘나가던 여배우였다.그리고 도기영과 심명희는 친구 사이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양지원과 차우빈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중간에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을 뿐.양지원은 연예계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었고 SNS에 행복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자랑을 온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봐왔다.그때 차우빈의 시선이 온하나에게 닿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고 불안함과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진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다가 양지원의 SNS에 들어가 보았다.양지원이 올린 사진과 글을 본 순간 온하나는 멈칫하더니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앞으로 남은 인생은 오빠와 함께!]한 글자 한 글자가 온하나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꽉 쥐었지만 손이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그 중요한 사람이 온하나가 아니라 양지원이었던 것이었다. 단지 그녀의 생일이 양지원과 같은 날일 뿐이었다.최고급 비취 목걸이가 불빛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고 신비로우면서도 귀티가 흘렀다. 그리고 그 목걸이는 지금 양지원이 목에 걸려있었다.차우빈은 양지원을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양지원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했고 양지원도 처음으로 차우빈을 공개했다. 누가 봐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커플이었다.“허허, 중요한 사람. 내가 차우빈한테 중요한 사람일 리가 없지. 난 그냥 장식품이고 노리개일 뿐이야.”온하나는 자신을 비웃었다.온 오후 기다렸지만 목걸이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현실에 마음
온하나가 얼굴을 찌푸렸다.“차우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싫어하는 여자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한테 상처 주고 싶어?”차우빈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남편한테 다른 여자랑 결혼하라고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그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가 다시 뱉었다.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자욱해졌다. 얼핏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지면서 참으로 살벌했다.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때면 각진 얼굴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고집불통인 그의 모습에 온하나가 말했다.“할 얘기 없으면 그만 나가. 그리고 이혼 합의서에 이미 사인했으니까 차 대표도 최대한 빨리 사인해.”그러고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차우빈이 손목을 꽉 잡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쓰읍... 이거 놔, 차우빈. 계속 이러면 신고할 거야.”차우빈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는 온하나를 품에 확 잡아당겼다. 옅은 담배 연기가 온하나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더 세게 끌어안았다.‘오늘 내 생일을 까먹은 건 그렇다 쳐도 또 날 모욕하려고?’온하나는 터져 나오는 억울함과 분노를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차우빈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잘생긴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졌고 하얀 피부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온하나, 죽고 싶어?”기안시에서 차우빈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반박 한마디를 하더라도 망하진 않을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했다.온하나는 차우빈의 성난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차우빈, 오늘부터 난 두려울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어.”그녀는 발끝을 들어 그의 얼굴에 가까이했다.“차 대표, 정신과에 가보는 게 어때? 날 못살게 굴면서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정신 분열증일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러다가 자해라도 하면 큰일이야.”그러고는 차우빈의 목을 확 깨물었다. 차우빈은 이를
온하나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사모님.”“별빛 카페야. 이쪽으로 와.”명령하는 듯한 말투였고 온하나에게 질문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온하나는 이미 끊겨버린 전화를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차우빈이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고 가지러 오라는 뜻인 거 같았다.어제저녁에 차우빈의 체면을 깎아버렸다. 여자에게 따귀를 맞았는데 어찌 참을 수가 있겠는가?만약 평소 그에게 여자를 폭행하는 버릇이 있었더라면 어제저녁에 아마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30분 후, 온하나가 카페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심명희와 양지원이 웃으면서 신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이토록 자애로운 심명희의 모습을 온하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랐다.두 사람이 금방 결혼하여 차우빈이 온하나를 아낄 때도 심명희는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다.심명희가 양지원을 대하는 태도를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야박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온하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다가갔다. 예쁨을 받진 못해도 굽신거리거나 비굴하지 않았다.“사모님.”온하나는 호칭도 바꿔서 인사했다. 이혼 합의서에 이름을 사인한 순간부터 심명희와는 남이라 생각하고 선을 그었다.양지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하나 씨랑 약속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심명희는 양지원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목에 건 목걸이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괜찮아. 네가 남도 아닌데. 이모랑 커피 마셔줘서 이모는 너무 좋아.”그러더니 갑자기 온하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정하던 미소와 자애롭던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싹 다 사라졌다.“앉아.”심명희는 싸늘하게 그녀를 훑어보았고 차가운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온하나는 흠칫 놀랐다. 늘 고귀하고 우아한 심명희는 오늘처럼 싫은 티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무슨 일로 절 부르셨죠? 사모님?”온하나는 미소를 잃진 않았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차우빈이 동작을 멈추고 싸늘한 눈빛으로 허승준을 째려보았다.허승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턱을 어루만졌다.“표정을 보니까 설마 온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차우빈이 한때 온하나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잘해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왜 갑자기 온하나를 못살게 구는지도 여전히 의문이었다.“아니,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온하나랑 잘 지내고 싶으면 잘해주고 양지원을 멀리해. 만약 같이 살 생각이 없는 거면 왜 이렇게까지 못살게 구는 건데? 그냥 돈 좀 주고 보내면 되잖아. 너한테는 아주 쉬운 일일 텐데.”차우빈은 무표정으로 그를 힐끗거리더니 술잔에 술을 따른 다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네 일이나 잘해. 내 일은 신경 쓸 거 없어.”그러고는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뒤로 기댄 채 미간을 어루만졌다. 표정만 봐도 지금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허승준이 뜻밖에도 웃음을 터트렸다.“진짜 온하나 때문이었어? 온하나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이래? 화를 내도 걔가 내야지. 너랑 양지원이 아직도 실검에 걸려있어.”차우빈이 양지원에게 비싼 선물을 주고 불꽃놀이까지 선물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쫙 깔렸다.“아, 맞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온하나도 어제 생일이지?”허승준이 차우빈을 빤히 쳐다보았다. 차우빈은 장난 가득한 허승준을 무섭게 노려보았다.잠시 후 차우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난 이혼을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허승준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으면서 이래도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허승준이 술 한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우빈의 머리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한참이 지나도 차우빈이 아무 말이 없자 허승준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말 못 할 얘기라도 있는 거야?”그의 질문이 귀찮아진 차우빈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뭔 질문이 그렇게 많아?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불렀지,
온하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천천히 마음을 진정했다.“차우빈, 네가 왜 여기 있어? 어떻게 들어온 거야?”차우빈이 덤덤하게 말했다.“이런 곳에 들어오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잠이나 자.”“미쳤어? 어젯밤에 깨문 게 아프지 않은가 봐?”차우빈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더는 온하나를 못살게 굴지 않고 잠을 자려 했다.“차우빈, 제발 정신과 좀 가봐. 아프면 치료받고.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쥐 죽은 듯이 고요한 안방에 차우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조용히 해. 나 졸려.”“자는 척하지 마, 차우빈.”진짜로 피곤한 건지, 아니면 술 때문인지 차우빈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이내 잠이 들었다. 온하나가 아무리 밀고 때려도 전혀 깨질 않았다.온하나는 차우빈 때문에 잠을 다 깨고 말았다. 어두운 불빛을 빌려 차우빈의 옆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실로 가서 과일칼 하나를 챙기더니 너무 추운 나머지 부들부들 떨면서 안방으로 들어왔다.과일칼을 차우빈의 목에 가져다 댄 순간 차우빈이 그녀의 허리를 확 잡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수술칼은 잘 잡을 수 있어도 지금은 손이 떨려서 제대로 잡지 못했다. 두려워서 떠는 건지 추워서 떠는 건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 결국 과일칼을 머리맡 서랍에 내려놓고 이불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온하나는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잠들기 전에 차우빈을 욕했던 것만 기억이 났다.이튿날 아침 온하나가 깨어났을 때 거의 9시가 되었고 옆자리는 진작 텅 비어있었다.씻으려고 일어났는데 화장실 세탁물 바구니에 남자 옷이 가득했고 세면대 위에 남성용품이 놓여있었다.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여기서 살겠다는 거야, 뭐야? 내가 편히 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야, 아니면 하루라도 날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거야?’차우빈은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처리하다가 온하나를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여기 너무 추워. 오늘 신비 캐슬로 들어와.”
송태훈을 배웅한 후 온하나는 소파에 앉아 온라인 상담을 처리했다. 의사 면허증을 딴 이후로 SNS 계정을 열었는데 지금까지도 온라인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환경의 영향을 받아 불임인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어떤 부부는 아이를 가지려고 재산을 탕진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온하나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질문에 무상으로 대답해 주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면 마음이 편했고 의사라는 호칭에도 부끄럽지 않았다.이렇게 오랜 시간 상담을 받은 게 처음이라 오늘 환자들이 한꺼번에 다 몰려온 것 같았다.환자 유나:[지난번에 해주신 말씀대로 검사를 받았는데 여기 의사 선생님이 자연 임신이 가능하대요.]환자 막대사탕:[선생님, 저 벌써 시험관 세 번이나 했는데 이식 후에는 두 달도 안 돼서 아이 심장이 멈췄어요. 이런 경우에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너무 속상해요.]환자 별빛:[뭐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 출산한 후에 생리가 올 때면 생리통이 엄청 심해요. 대체 왜 이런 거죠? 출산 전에는 생리통이 없었어요.]@유나:[축하드려요. 하루빨리 소원 이루시길 바랄게요.]@막대사탕:[마음이 속상할 땐 닉네임처럼 달달한 막대사탕 하나 사드세요. 환자분 같은 경우가 드문 경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속상해하고 다시 힘내서 일어나세요. 일단 몸부터 잘 추스르고 올해는 잠시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올해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바람도 쐬고 내년에 다시 생각하세요. 희망은 계속 있으니까 포기하지 마시고요.]@별빛:[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궁 내막이 손상됐을 수도 있고 자궁경부 염증이나 유착일 가능성이 있거든요. 구체적인 건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어요.]일일이 답장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점심이 다 되었다. 라면을 끓여 고작 두 입 먹었는데 진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신비 캐슬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오후에 짐 챙기시면 저녁에 운전기사한테 모시러 가라고 할게요.”“차우빈
온하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또 왜 이러는 거야?’차우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하나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온하나의 허리를 잡고 확 끌어안더니 귓가에 대고 싸늘하게 말했다.“죽은 남편이 맨날 벌떡벌떡 일어나서 저녁마다 옆에서 자는데 이러다 양기가 모자라는 거 아닌지 몰라.”온하나는 그제야 어떻게 된 건지 알아챘다. 임다혜가 아침에 했던 얘기를 허승준에게 한 게 틀림없었다.허승준과 차우빈이 또 둘도 없는 사이인데 차우빈에게 말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온하나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라곤 없이 차우빈의 검은 두 눈을 빤히 보면서 씩 웃었다.“1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남편이면 있으나 마나 아니야?”차우빈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온하나, 점점 재미있어지네?”그러고는 온하나의 턱을 들고 입술에 키스했다.온하나는 밀어내며 발버둥 쳤지만 차우빈이 품에 꼭 껴안은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의 힘 차이를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너무도 화가 나서 그의 입술을 깨물려고 하는데 차우빈이 갑자기 아래턱을 들었다.“또 깨물려고? 난 귀신이야. 양기를 흡입하러 왔어.”차우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 속에서 온하나가 반항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그녀를 벌하기 위한 키스였지만 어느덧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졌고 그동안 참아온 욕망을 드러내곤 했다.한참 후 차우빈은 그녀를 풀어주고는 촉촉해진 입술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이 참으로 청순했고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이 여전히 고분고분했다.하지만 더는 예전처럼 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가시 돋친 고슴도치라는 걸 차우빈은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온하나는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진정한 후 차우빈을 째려보고는 확 밀어버렸다.“차우빈, 아프면 병원에 가봐. 왜 계속 날 괴롭히는 건데?”차우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아들이더니 담